메뉴 건너뛰기

[해외동향]
       탱크를 막아선 그 시민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왕서방 / 진보교육연구소 연구원

중국과 관련해서 떠오르는 기억 두 가지를 먼저 말하고 싶다.
어렸을 때 동네에는 많은 수의 화교들이 살고 있었다. 전족을 해서 뒤뚱거리며 걷는 호호백발의 할머니와 흔히 ‘짱깨’라고 불렀던 말끝마다 ‘...... GO'라고 했던 중국집 주인 그리고 우리와 방학이 일치하지 않았던 화교학교 학생들... 우리가 국군의 날과 개천절 그리고 한글날이 몰려있었던 10월달을 기다렸다면 화교 학생들은 10월 10일 흔히 신해혁명 기념일인 쌍십절을 기다리면서 우리가 학교가 가던 그날에 그 애들은 동네 골목에서 신나게 놀았었다.
다른 하나의 기억은 대학 신입생 때의 일이다. 89년 5월과 6월의 천안문 사태가 일어나고 곧이어서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4학년 선배중 하나가 ‘중국 대학생들의 무책임한 난동’ 운운에 대해서 발끈하면서 나름대로 민주주의며 자유를 들어서 대학생들을 옹호했었다.

쌍십절과 국경일
1911년 10월 10일 부패한 만주족 봉건 왕조를 타도하고 공화제 정부를 수립한 신해혁명으로 새로운 중국의 역사는 시작이 된다. 반봉건 반식민지의 상황속에서 신음하고 있던 많은 중국인들에게 신해혁명은 두 가지 모순의 지양을 위한 시작이 된다. 그러나 서양 특히나 미국의 민주주의에 경도되었던 손문을 중심으로 하는 지식인들은 거대한 반동과 외세의 물결에 움츠러들고 반혁명의 나락으로 곧 떨어지게 된다. 원세개의 친위 쿠데타와 지역에 할거하던 군벌들의 실질적인 봉건 체제로의 퇴행 그리고 영국과 독일 그리고 새로운 제국주의 국가로 발돋움하던 일본의 수탈과 착취로 중국의 인민들은 ‘민주주의’ 와 ‘자유’의 세례를 받기도 전에 이전 구체제의 모순이 더욱 심화된 상태로 ‘아시아의 암덩어리’ 숙주 역할을 해야만 하였다.
당시 아시아 최대의 항구이자 첨단의 도시였던 상해는 또한 범죄와 타락 그리고 마약의 소굴로 그 악명을 떨쳐야만 하였다. 1917년 러시아 볼세비키 혁명에 경도된 일단의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사회주의사상은 이런 ‘아시아의 매음굴’ 상해의 어느 빈민가에서 중국 공산당을 결성하고 급속하게 인민들 속으로 파급이 되었다.
그러나 장개석의 음모와 배신 그리고 학살로 인하여 급속도로 위축이 되고 급기야 중국 남부의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하던 공동체에 대한 대규모 토벌작전이 개시가 되면서 전설이 탄생하게 된다.
‘대장정’. 진시황의 만리장성을 훨씬 능가하는 지금도 오지로 잦은 재해로 인해 도로가 단절되곤 하는 지역을 종횡무진하면서 수많은 눈덮힌 설산과 급류 그리고 초원과 습지를 맨발로 각종 무기와 식량을 짊어지고 질병과 배고픔을 견디며 수많은 희생을 거쳐 북서부의 척박한 농촌 지역으로의 ‘후퇴’..
이 와중에 모스크바의 영향력에서 탈피하면서 토착 사회주의 사상과 전술을 견지한 마오를 중심으로 하는 혁명 1세대의 진영이 갖추어지고 나름의 전략과 전술 그리고 기율을 토대로 이전의 상해 등의 도시를 중심으로 하던 방식에서 탈피, 농촌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식 혁명 전술이 도모되면서 제 2의 흥기를 맞는다. 그리고 만주와 중국 북동부를 장악하던 일본 제국주의가 45년 8월 무조건 항복하게 되면서 중국 남서부에 거점을 두었던 장개석 국민당 정부와의 내전이 시작되었다.
  1911년 이후 인민들은 국민당 정부의 부패와 무능력 그리고 외세의존 대신 기율과 희생을 몸소 실천하는 중국 공산당에 신뢰를 보내게 되고 드디어 1949년 10월 1일 전제 왕권의 상징이던 자금성의 정문인 천안문에서 새롭게 정비된 광장을 마주보고 역사적인 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하게 된다.

짧았던 영광 그리고 고난과 모순의 아수라장
  부패에 선수였던 국민당의 수뇌부와 군대는 후퇴에도 선수였다. 명나라와 청나라는 물론 그 이전 전제 봉건 시절의 엄청난 유물을 군함에 한껏 싣고 장개석은 일찌감치 꽁무니를 뺐고 군인들 역시 미국으로부터 받은 군수물자를 ‘적’들인 인민해방군에게 팔면서 자신들의 부하들의 생명을 사지로 몰았다. 결국 바다 건너 조그만 대만에 본거지를 틀고 뒤의 미국만을 믿고 택도 없는 본토수복의 기치를 호언장담하고 있을 때 인민의 해방군들은 서쪽의 이슬람교도들 지역과 히말라야 산맥의 조용한 불교국가 티벳을 해방하기 위해 저항하는 그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애초에 ‘만주족에 의한 청나라 타도’라는 신해혁명의 기치에서 보이듯이 철저한 민족주의적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쇼비니즘이 결합된 혁명의 물결은 49년 인민공화국의 수립이후 영토팽창의 작태에서도 들어나듯이 잘못 끼워진 단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민공화국 수립 이전의 반봉건 반식민지 상태에 대한 지양이 진행되면서 50년대 빠르게 사회가 회복이 되고 인민들에 대한 후생 개선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경험의 부족, 잦은 재해 그리고 급속한 사회의 질적 변화로 인한 혼란은 이전 잠시 동안의 회복의 순간을 발목 잡게 만들었다.
  경제 성장과 정부와 당의 거대화로 인한 각종 잡음과 퇴행이 횡행하는 가운데 지도자에 의한 최초의 혁명 즉, 문화대혁명이 66년에 시작이 되면서 76년 마오의 사망까지 10년간의 모색과 후퇴, 혁명과 반혁명의 시대가 지속이 된다.
대개의 경우 일반적으로 4인방을 중심으로 하는 조반파의 악행과 혁명의 시작의 모호성 그리고 진행과정의 폭력성으로 인해 평가받고 있지만 하나의 국가라기보다는 대륙이라고 불릴만한 인구와 영토를 가지고 다양한 기후와 풍부한 수자원 그리고 풍요로운 토양을 가진 중국은 인민들에게는 고통의 세월이 대부분이었지만 권력을 가지고 있던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특별잉여를 끊임없이 창출할수 있었던 수천년간 기회의 땅이었다. 사회주의 혁명의 성공이후 십여년의 시간이 지난 60년대 역시 소수 당원과 정부의 관리들의 특권이 서서히 발생하면서 평등의 기율이 무너지던 즈음 정치 경제적 혁명이후의 새로운 ‘문화’부문의 혁명이 계획되고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처음의 시작과는 달리 혁명의 말미는 시들하다. 어떻게 끝이 났는지 그리고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없고 혁명 기간 몰락하고 퇴출되었던 혁명의 1세대들이 조용히 그들의 추종자들과 복귀를 하면서 권력을 거머쥐고 4인방에 대한 공개 재판을 방송중계하면서 모든 혁명의 과오를 그들에게 투영하면서 반성과 도약의 빌미를 막고 더더욱 퇴행으로 빠져든다.

카우보이 모자와 크로와쌍
  71년 미국의 닉슨의 핑퐁 외교보다도 더 극적인 장면이 79년 미국에서 연출이 된다. 중산복의 중국의 지도자들이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목장에 나타났다. 당시 최고 지도자였던 덩쌰오핑은 미국의 카터와 나란히 미국 팝가수의 콘서트에 얼굴을 비추었고 카우보이 모자를 자연스레 쓰면서 죽의 장막을 거두었다. 유엔 연설이후 덩은 돌아오는 길에 프랑스 파리에 들러 어렸을때 파리에서 먹었던 크로와쌍을 잊지 못해 한 바구니 싸들고 와서 혁명 1세대들에게 돌렸다. 혁명의 이상과 고귀함에 박해받았다고 생각하는 그들은 이제 과거의 회상을 넘어서서 과거로의 회귀를 꿈꾸게 되었다. 대다수 인민들과는 별도의 구중궁궐에 집단 거주하면서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는 여느 노회한 자본가가 된 것이다.
  개혁 개방이라는 이름으로 그간의 혁명의 성과를 무화시키고 자본주의 따라잡기를 넘어서 자본주의로의 진행에 박차를 가한다. 80년대 도시를 중심으로 불어닥친 소비의 광풍은 도시와 농촌은 물론이고 도시민들 사이에 심한 격차를 불러왔고 개방과 개혁의 광풍속에서 새로운 몰락했던 자본가 계급을 대신하여 정치와 경제의 사생아인 새로운 자본가 계급을 형성했고 과거에 타도와 지양의 대상이었던 착취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80년대 중반 임금의 상승을 뛰어넘는 물가의 앙등을  가져왔다.
  문화대혁명 10년간의 고통과 박해에 대한 보상이라도 되는듯 복귀한 당간부와 관료들은 게걸스레 국영기업을 사유화하고 외국 자본을 유치하여 장막뒤의 착취자가 되었다. 노동자들은 물론 지식인들 그리고 대학생들에 대한 우려와 걱정은 비등하게 되고 결국 우려는 현실로 전화하여 89년 봄 북경 서북쪽의 대학가를 중심으로 교내에서 진행되던 토론과 공개비판이 담장을 넘어 혁명의 성지인 천안문 광장으로 옮겨지게 된다.

탱크와 시민 그리고 다시 천안문 광장
  북경은 봄은 뚜렷이 대비된다. 초봄의 황사는 사람들의 눈과 호흡기를 고통스럽게 한다. 그러나 비가 내린후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 청명한 하늘과 길가의 홰나무에 녹음이 지면서 뜨거운 여름을 준비하게 된다. 이즈음 천안문에 학생과 지식인 그리고 노동자들이 모이게 되었다. 개혁 개방의 십년간의 퇴행과 모순에 대한 체험적인 토로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여러 경로를 통한 정부와의 대화 시도가 이뤄진다. 실제로 대화는 방송으로 중계되기도 하였으며 수 많은 다른 지역과 도시의 대학생들은 북경 천안문으로의 상경투쟁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이런 순진한 발로와 대조적으로 문화대혁명의 타도 대상이었던 복귀한 혁명 1세대들과 그들의 후손으로 권력을 세습받고 있었던 2세들은 그들의 자유와 민주주의 주장은 과거의 쓰라린 고통을 연상하게 만들었다. 아니, 곧바로 목숨을 노리는 위협이 되었다.
상황 초기 협상과 타협의 분위기는 시위대들의 힘이 약해질 무렵 강경책으로 돌변하였다.
심지어 미술대학 학생들의 집단 창조물인 ‘민주주의의 여신’ 조소작품이 미국 자본주의를 추종하는 무모한 집단들의 ‘자유의 여신’으로 선전이 되면서 인민해방군의 출동과 북경에 대한 계엄령이 전격 단행되고 시민들의 육탄 저지와 설복에도 불과하고 6월 4일의 대학살은 감행이 된다.
  당시 cnn을 비롯한 서방언론에 의해 보도된 사진과 화면을 보면 진압하려던 탱크를 가로막은 봉지를 든 시민을 볼 수 있었다. 참으로 오래 기억되는 장면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현재까지 없다고 한다.
급속도로 천안문은 잊혀졌다. 빛나는 경제 성과로 기록되는 90년대를 지나면서 사회의 경제적 모순과 적대는 쇼비니즘으로 덫칠해졌으며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최고조로 하면서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아우르는 대국으로 발돋움을 하려하고 있다.

붉은 천안문의 성벽과 허무한 구호
다가오는 10월 1일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아마도 여름부터 준비된 성대한 기념식이 바로 피로 얼룩졌던 천안문 광장에서 열릴 것이다. 중산복 대신 양복을 입은 중국공산당의 지도자들과 관료들은 천안문 주변의 단상에 서서 호기롭게 인민들을 너그러이 보면서 광장과 천안문을 사이의 장안대가에는 각종 신무기들과 자동소총을 든 ‘인민해방군’들이 지나갈 것이며 북경의 상업가인 조양구의 호텔은 기념 특식으로 노동자의 몇 년치 월급에 해당하는 메뉴를 내걸고 중국의 신흥 자본가들을 유혹할 것이다.
  혁명기간 산화한 이름없는 혁명가들을 위해 백옥과 대리석 등으로 조각한 천안문 광장의 인민영웅기념탑은 여전히 조명을 받으며 군인들에 의해서 엄격히 출입이 통제될 것이며 바로 뒤 마오 기념관의 유리관 안에 누워있는 마오는 소리없이 중국 각지에서 온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들을 눈을 감고 환영할 것이다.
광장 너머 중남해에 은거하는 새로운 상위 자본가들은 군대와 경찰들의 호위속에 한달 월급만큼 비싼 고급 담배를 태우며 ‘인민공화국’ 수립 기념사를 준비하지 않을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29 [현안] 10월 13일 낙산으로 모여야 하는 이유 file 진보교육 2009.10.06 1279
528 [현안] 학교현장에서의 비정규노동의 확대! 그대로 둘 것인가? file 진보교육 2009.10.06 1333
527 [맞짱칼럼] ‘눈먼 자들의 나라’ file 진보교육 2009.10.06 1375
526 [담론과 문화] “샌프란시스코”와 히피를 아시나요? file 진보교육 2009.10.06 2314
525 [담론과 문화] 음모와 불신의 배양 그리고 통제 file 진보교육 2009.10.06 1349
524 [담론과 문화] 신종플루 대 반mb플루 file 진보교육 2009.10.06 1356
523 [기고칼럼] 엠비를 넘어, 김대중과 노무현을 넘어 file 진보교육 2009.10.06 1283
522 [현장에서] 중집위원단식농성을 마무리하며 file 진보교육 2009.10.06 1174
521 [현장에서] 일제고사 불복종선언 징계받은 샘의 편지 file 진보교육 2009.10.06 1218
520 [현장에서] 초보대의원의 전교조전국대대 스케치 file 진보교육 2009.10.06 1373
519 [현장에서] 2008서울교육감선거관련 공판풍경 file 진보교육 2009.10.06 1196
518 [현장에서] 청소년 별캠프를 다녀와서 file 진보교육 2009.10.06 1203
517 [기고] 일제고사의 해악성, 철학적 접근 file 진보교육 2009.10.06 1382
516 [기고] 2010년 선거를 바라보는 시각 file 진보교육 2009.10.06 1167
515 [책을 읽고] 상상력으로 민주주의를 혁명하라 file 진보교육 2009.10.06 1087
» [해외동향] 탱크를 막아선 그 시민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file 진보교육 2009.10.06 1093
513 [해외동향] 쿠바의 교육과 문화를 만나다 file 진보교육 2009.10.06 1305
512 [쓰레기] 민노총 와해를 꿈꾸는 수구 file 진보교육 2009.10.06 899
511 [열공] 정치강좌-현실 진단과 전망 모색의 자리 file 진보교육 2009.10.06 1085
510 [열공] 우리는 그동안 “글로 배웠다” file 진보교육 2009.10.06 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