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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 [담론과 문화] 음악수필 거리의 오페라

2009.07.13 18:45

진보교육 조회 수:1714

<음악 수필>  거리의 오페라

송재혁/전교조서울지부 참교육실장

  모순의 모순 아님을 발견하는 즐거움

  세상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상반된 두 개가 하나의 몸통을 이루는 경우가 있고 이것을 보는 순간 당혹스러운 흐뭇함을 느끼게 된다. 사실 그 둘은 어울리지 않을 이유가 없음에도 사회적 모순에 의해 그 어울림이 어색하게 여겨지게 되었다. 그렇기에 당혹스런 흐뭇함은 생활 속의 작은 발견에서 오는 기쁨이라 할 만 하다. 과거 S여대 앞 풀빵 장수 총각과 그 단골 여학생이 결혼한 사실이 신문의 가십으로 다루어져 사람들에게 회자되었을 때, 평양에서 만난 여교장의 남편이 트럭 기사임을 알게 되었을 때도 그러하거니와, 택시 기사님이 이 곡 한 번 들어보시겠어요 하며 교향곡을 틀어주실 때에도, 클래식 음악계의 귀족 중의 귀족이라 할 지휘자의 직분을 가진 이고르 마르케비치가 파시즘의 시대에는 지휘자 일을 중단하고 이태리에서 레지스탕스에 가담하는가 하면 냉전의 시기였던 1960년대에 갑자기 소련으로 들어가 녹음들을 남겼다는 사실을 음반 내지의 한 구석에서 읽었을 때에도 그랬다. 어쩌면 노동조합 활동하는 사람이 클래식 음악에 푹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음을 볼 때에도 그러할지 모르겠다.

  국립오페라합창단, 해체되어도 그만인가?

  길거리에서 투쟁 조끼를 입고 듣는 오페라는 어떤 것일까?  지난 5. 20(수) 오후 3시, 말 많은 MB의 문화 구조조정을 수행하느라 여념 없는 문화관광부 앞에서 ‘국립오페라합창단’ 해체 반대 및 해고자 복직 집회가 열렸다. 창단 이후 비정규직으로 7년을 버텨 온 국립오페라합창단 단원 42명 전원이 2009년 1월 8일 구두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이 날 단장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개인적, 공식적 지침에 의해서 해고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커녕 하루 아침에 해고라니 당한 사람의 아픔이 얼마나 클지 가늠하기 힘들다. 앞으로 오페라 공연이 있을 때면 국립합창단이나 다른 단체와 그 때 그 때 계약하여 공연 하겠다고 했단다. 비용이야 절감될지 모르겠으나, 연기를 병행하는 전문 오페라 합창단의 역할을 일반 합창단이 제대로 해 낼지도 의문이다. 가히 음악 예술에 대한 상식조차 내어 던진, 문화관광부다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팩스로 날아 온 연대 요청 공문을 보고 전교조를 대표(?)하여 집회에 나가 보았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기념할 일인지, 투쟁 100일 기념으로 떡과 사탕과 음료수가 돌았다. 내가 목격한 범위에서는 해고 노동자들 중 가장 귀족적이고 우아한 복장과 용모를 지닌 노동자들이 앞에 도열하였다. 음, 우리하고는 태생적으로 좀 다른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왔다.  
  
  사실 클래식 음악을 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은 보수, 진보 양 진영에서 대체로 무관심의 대상이었다. 이명박이 서울시장 하던 시절 서울시향 구조조정 때에도 그랬다. 당시 시장은 학교장 뺨치게 ‘환경 미화’에 병적인 집착을 하여, 청계천 강제로 흐르게 하기, 버스 예쁘게 꾸미기에 이어  한강에 많은 돈을 들여 오페라하우스를 짓는 계획을 세웠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지휘자 정명훈을 서울시향에 앉히면서 이 악단을 사실상 해체하고 새롭게 재단법인화하는 무모한 구조조정을 감행하였다. 당시 서울시향의 연주회는 나의 막귀로 들어도 사실 연주가 시원치 않았다. 개인이나 집단이나 그런 시기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귀만 똑똑한 자칭 음악 애호가들은 서울시향의 사용자라도 되는 양 구조조정에 대해 대부분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위대한 정명훈을 모셔오게 되었는데 그까짓 단원들의 생존 문제가 뭐가 그리 대수냐는 것, 연주 못하는 단원은 잘려야 마땅하다는 것이었다. 드디어 우리도 베를린필하모니 같은 악단을 갖게 되었다며 환호하였다. 그러나 베를린 필하모니 단원은 정년제이며 지휘자를 단원들이 투표로 선택한다.

  당시 국내 최대라는 어느 음악동호회 싸이트에서는 시향 구조조정 문제로 논란이 뜨거웠다. 대체로 시향의 구조조정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가 다수였는데, 나의 항변은 다음과 같이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었다.  

  우리가 베를린필하모니가 빈필하모니 같은 수준의 서양음악 악단을 꼭 가져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서유럽 나라들은 우리 수준의 사물놀이팀을 가지려 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필요하면 음반을 사서 들으면 된다. 오히려 우리 음악과 문화에 대한 투자와 지원이 보다 절실한 상황이며, 각 부문의 균형 있는 문화 발전을 이루기 위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저명한 지휘자 한 명 초대할 비용이면 신자유주의가 양산한 최저 생계 수준 이하의 처지에 놓인 분들의 생존권을 한시적이나마 보호할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아깝지 않은가 하는 것이 나의 공감 얻지 못한 의견이었다.  

   오케스트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조차 국가의 일정한 지원으로 운영되는데, 다수가 몰락해 가는 심각한 사회 붕괴 현상이 가시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인구의 한 자리 숫자도 안 된다는 귀 까다로운 서양고전음악 애호가들을 위해 그렇게 많은 역량과 물량을 투입하는 것은 곤란하다. 클래식의 이 땅에서의 번영 뿐 아니라 생존 자체의 위협을 받는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공공복지부문에 대한 더 많은 국가의 책임, 기업과 사회귀족들의 더 많은 양보, 아니 최초의 양보가 필요한 시점이다. 먹고 살고 나서 음악도 있는 것 아닌가.

   교육과 오케스트라를 비교하면서, 명문 학교 육성의 논리로 명문 오케스트라 육성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교육은 의식주, 의료와 더불어 국가가 책임질 기본적 복지에 속하는 것이므로 오케스트라의 발전이란 문제는 그 중요성과 긴급성에 있어 한참 후순위에 놓이는 것이다. 교육을 문제삼을 때에도 서양의 소위 명문에 주목하면서 그 '생산성'과 '산출'의 비교에만 집착하면 교육의 근본 문제를 놓칠 수 있다. 하바드와 맞먹는 훌륭한 대학 몇 개 육성이 우리 교육의 목표일 수는 없다. 대다수 학생들이 자기와 맞지도 않는 목표를 위해 오로지 한 방향으로만 놓인 고행길에서 힘겨운 달리기를 강요받고 대다수 학부모들이 이를 뒷받침하느라 엄청난 출혈을 감수해야 하는 현실, 이는 누구나 바하와 베토벤을 사랑하고 존경하기를 강요받았고 바하와 베토벤이 되지 못하는 자기를 음악적 열등생으로 간주하게 만든 우리의 음악교육과도 일맥상통하는 폭력적 상황이다.

  베를린필하모니 보다는 오히려 북한국립교향악단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있을 것이다. 다른 서양 교향악단과는 다른 소리, 모방하기 힘든 독특한 소리를 들려준다. 특히 우리 음악과 서구 음악이 접목된 악곡에서 그러하다. 굳이 요즈음 유행하는 말로 경쟁력 향상이 과제라면, 그 경쟁은 무엇을 위한, 무엇을 향한 경쟁이어야 하는가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베를린필하모니를 우리도 갖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우리만의 유니크한 서울필하모니를 갖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음악을 위해서는 희생하지 못할 것이 없다? 변태적 유미주의자들

  나 역시 매달 최소 1, 2회 이상 우리 교향악단의 연주회를 찾는 콘써트 고어로서 우리 교향악단이 지금보다 발전하기를 바란다. 영화 한 편 값으로 프롤레타리아 프렌들리한 좌석을 구입하여 앉을 수 있으니 불완전나마 복지의 혜택로 본다. 그렇지만 서울시향이나 KBS향에게 베를린필이 되어달라고 요구하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베를린필보다 못하다고 외면하지도 않는다. 단지 그들이 보다 발전되어가는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고, 특히 서구의 몇몇 죽은 작곡가의 잔영만을 쫒지 말고 다양한 음악을 적극 발굴하여 연주해주기를 기대할 뿐이다. 근본적으로 "독창적인 방향"의 발전을 희망할 뿐이다.

  우스운 것은, 당시 서울시향은 독립법인화하면서 자력갱생과 돈 버는 악단을 표방했는데, 티켓값은 대체로 더 올랐음에도 언론에 따르면 시향에 투입되는 예산도 더 올랐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서울시향은 더욱 소수를 위해 복무하고 다수는 더욱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된 셈이다.    

  당시 진보 진영에서 시향 해체 반대 견해를 공식 표명한 사람은 서울시 의회 심재옥 의원이 유일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제대로 된 집회 한번 연대판으로 벌인 적이 없었다. 보수에서는 “연주도 못하는 악단을 세금으로 운영할 이유 없다”, 진보에서는 “그 사람들 다 잘 사는 집안에 유학 다녀온 귀족인데 바쁜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까지 연대 투쟁할 이유가 있는가” 하는 반응이었다. 수십 년간 시향에서 근무한 음악 노동자가 외국의 젊은 오디션 담당 지휘자 앞에 서서 신입단원 선발 때처럼 시험을 보아야 하는 기막힌 현실을 수긍할 단원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서울시향은 2MB 필하모니로 다시 태어났고 음악 애호가들은 시향의 소리가 정말 많이 달라졌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음악을 30년 이상 들어 온 내 귀에는 그 소리가 그 소리였다. 굳이 평하자면 소리는 고와졌지만 패기가 깎여버렸다. 그래서 지금도 2MB 필하모니 보다는 KBS향의 거칠지만 시원스러운 소리를 선호한다.  

   음악을 위해서는 예술노동자의 생존권도, 공공복지의 열악한 예산 수준도, 파탄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민중의 삶도 고려할 것이 없다는 식의 위험한 사고는, 패전이 확실시되었던 2차대전 말기 굶어가면서도 베를린필의 음악회를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곤 했다는, 사실 여부가 의심되는 변태적 유미주의의 전설을 떠올리게 한다.
          
   예술가도 노동자다

   20년 전 성직자적인 교사들이 노동자임을 자처하고 봉기하였듯, 예술인들이 노동자를 자처하고 나서고 있다. 노동자 집회에서 전통적인 예술가 범주에 속했던 사람들이 노동자 계급의 일원으로 나와 자기를 소개하고 공연하는 일이 이제는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2005년 소금꽃나무,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지방의 한 시향 단원들의 이야기를 견주어 쓴 ‘교원평가와 오디션’이란 글에 나오듯, 말도 안 되는 처우 속에 불완전 노동을 하면서도 말도 못하고 움츠려 지내던 예술 노동자들이 이제는 바뀌어가고 있다.

    5월 20일, 문화관광부 앞 국립오페라합창단 투쟁 100일 기념 집회에는 민주노총 각 단위를 비롯하여 많은 연대 단체가 참여하여, 우려를 불식시켰다. 합창단 또한 여러 투쟁 단위에 결합하여 공연을 해 왔다고 한다.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공공노조 국립오페라단지부 대외협력 담당자의 말에 의하면 투쟁 집회와 행사에 초빙되는 경우가 많아 무척 일정이 바쁘다고 한다. 사실 나 역시 6월로 기획 중인 서울지부 창립 20주년 기념 문화제에 이 분들을 초빙하고자 하는 생각이 있어 인사도 나눌 겸 집회에 간 것이다. 이들은 우리의 초대에 기꺼이 응하겠다고 하였으나, 이후 지부 집행위에서 문화제 행사안이 부결됨으로써 공연이 무산되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서울시향 사태 때와는 달리 뭇사람들이 국립오페라합창단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2009년 3월 레디앙에 오른 목수정씨의 지휘자 정명훈에 관한 기사는 이 사태에 대한 관심을 더욱 촉발시켰다. 지휘자 정명훈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또한 예전과 달라졌다. 조국이 낳은 위대한 지휘자에게 맹목적으로 존경과 찬사만을 바치던 과거의 분위기는 가고, 이명박 취임식에서 정명훈과 서울시향이 음악 선전쇼를 벌인 것을 기점으로 그의 정치적 입지에 대한 일정한 비판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합창단 문제로 프랑스에서 라디오프랑스 관현악단과 공연하던 정명훈을 찾아 간 진보신당 당원들이 당한 처우에서 화려한 음의 예술 뒤에 가려진 지휘자의 진면목이 유감없이 드러나고 만다.

   “그러니까, 당신들이 그 100만 명이나 촛불 들고 거리에서 서서 미국 쇠고기 안 먹는다고 시위하는 그런 사람들이란 말이죠? 40년 전에는 미국에서 뭐 안 갖다 주나 하면서 손 벌리고 있더니, 이제 와서는 미국산 쇠고기 안 먹겠다고 촛불 들고 서 있는 그 사람들. 그게 옳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게 말이나 되는... 알았어요. 알았어.”  
   “그렇게 불쌍한 사람들 돕고 싶으면 저기 아프리카나 가서 도와줘요. 여기서 그러지 말고.”
   그의 마지막 말은 “기도하라”였다고 한다. 음악은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 음악을 생산하는 음악가도 자동으로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역시 성악가들이라 투쟁사도 목소리 시원시원하고 좋았다. 한편의 레시타티브 같은 투쟁사랄까. 문화관광부 측이 회유책을 제시했단다. ‘코리아 오페라 코러스’인가 하는 비틀어진 명칭의 합창단을 만들어 오디션을 새로 볼 기회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해고자들이 항복하기를 기다리는 시한의 마지막 날이 투쟁 100일 째 되는 그 날이었기에, 한 남성 단원은 투쟁 경과 보고를 하면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래, 얼마나 힘들겠는가. 강고한 투쟁을 하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겠지만 어찌 심적인 갈등이 없을까. 합창단원들도 젊은 나이에 다른 노동 현장에서 흔히 겪는 분노와 설움을 그대로 오롯이 느끼고 있었다.

   거리의 오페라

   의례적인 투쟁사와 연대사가 끝나니 몸짓패의 멋진 공연이 이어졌다. 붉은 조끼를 입고 힘찬 몸짓을 휘두르는 전형적인 노동자 투쟁 문화였다. 몸짓패 중 한 분의 말씀이 재미있었다.
   "저 오페라 모르고 안 봅니다. 사실 해고 사건이 없었다면 저는 오페라 합창단 단원 여러분과 평생 만날 일이 없었을 것이고, 단원 여러분도 아마 저를 평생 못 만났을 것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길거리에서 이렇게 만나니 한 편 좋지 않습니까?  이런 길거리 투쟁의 현장에서 합창단원 여러분도 자주 나와 노래해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시겠지요?"
   “네에…….”
   그렇다. 오페라만 들으면 골패라 머리가 아픈 사람도 그들과 함께 투쟁해왔는데,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학생과 학부모가 아닌 시민들도 전교조의 투쟁을 지지해야 하듯이.  

   마지막에 하이라이트, 오페라합창단의 길거리 공연이 있었다. 자본주의를 비판한 쿠르트 바일과 브레히트의 ‘서푼짜리 오페라(Die Dreigroschenoper)’보다도 더 싼, 공짜 오페라였다. 먼저 한 여성 단원이 나와 그 부르기 힘든 모차르트의 오페라 ‘요술피리’ 중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참 시원하게 불러버렸다. 밤의 여왕 역을 맡아 음반을 낸 조수미나 루치아 포프처럼 정말 멋지게 불렀는데 고음역에서도 음정이 정확하고 흔들림 없는 안정된 연주였다. 자신들이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예술가임을 널리 알리려는 듯,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피아노가 아닌 전자악기의 조잡한 반주 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당당하게 불러냈다.

   이어서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오페라의 유령' 중 이중창 'All I Ask of You', 베르디의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 중  '대장간의 합창'을 불렀으며, 우리 노래 중 한 곡도 불렀는데 제목이 떠오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오 해피데이'를 불렀다. 다시 복직하는 행복한 날을 기대하며 불렀을 것이다. 오늘은 가진 자의 해피데이일지 몰라도 내일은 당신들과 우리들의 해피데이일 것이다.

   집회 끝나고 나서 첫 곡을 부른 분께 엄지손가락 올려 보이며 “밤의 여왕의 아리아, 최고였습니다” 하고 칭찬해드리니 지음을 만난 듯 좋아했지만, 여성 예술 노동자가 길거리에서 대낮에 밤의 여왕이 되어야 하는 오늘의 그로테스크한 현실이 당혹스러운 즐거움 주었기에 특별히 감동적이었던 것이다.  

   전교조가 성년을 맞았다. 지난 20년간 수없이 불러 온 ‘참교육의 함성으로’의 첫 소절은 파시즘의 암울한 광기가 독일을 뒤덮었던 1933년 12월, 망명지에서 한스 아이슬러와 브레히트가 함께 만든 당대의 유명한 투쟁 가요 ‘통일전선의 노래(Einheitsfrontlied)’에서 따 온 것이다. 국립오페라합창단 동지들이 복직한 후 이 노래를 언젠가 어느 무대에서 오케스트라의 멋진 반주에 맞추어 불러준다면 만사 제끼고 가 볼 것이다. 그런 날이 올 것인가? 소위 대중음악과 클래식의 넘나듦 뿐 아니라 1920년대 베를린에서 그랬던 것처럼 노동자 합창단과 연주단이 노동가와 진보 음악을 클래식 공연장에서 연주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가 우리에게 온다면, 길거리에서의 오페라 공연 또한 더 이상 어색한 볼거리가 아닐 것이다. 이 쯤 되면 음악의 평등은 어느 정도 실현되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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