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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 [기고] 용산에서 우리는 전쟁 중

2009.07.13 18:30

진보교육 조회 수:1625

용산에서 우리는 전쟁 중
- 용산참사 5개월을 넘기며

박래군 / 용산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 인권활동가



지난 6월 20일은 용산참사가 발생한지 5개월이 되는 날이었다. 날 수로는 152일째였다.
한겨울에 시작된 용산 전쟁은 계절이 바뀌어 여름이 다가오도록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150일 넘도록 전쟁을 치르는 동안 김수환 추기경이 돌아가셨고 수십만 명의 애도 속에 장례를 치렀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자결을 한 뒤 수백만 명의 애도 속에 장례를 치렀다. 노동자 박종태 동지도 장례를 치렀다. 그렇지만 아직 용산 철거민 열사 5분의 시신은 순천향병원 장례식장 시체 안치실에서 얼음덩이로 남아 있다.

용산은 질 수 없는 전쟁

‘용산’은 단순한 투쟁이 아니다. 용산에서 철거민들 5분이 죽임을 당한 뒤 아마 정부가 살인진압에 대해 사과하고 그런 뒤에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살인적 재개발 정책의 변경을 위한 수순을 밟았더라면 아마도 용산 문제는 하나의 사건으로 축소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가정이 얼토당토않지만, 이명박 정권이 그나마 한 국가를 운영하는 민주적 정권이었다면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건 발생 뒤에 정부는 철거민들에게 모든 책임을 물어서 구속․기소하고, 살인진압을 벌였던 경찰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5공 때도 아닌 21세기에조차도 유가족의 동의도 없이 이루어진 강제부검과 시신공개조차도 하지 않고 모든 의혹은 불식한 채 짜 맞추기 수사로 일관한 검찰, 재판에서 수사기록 제출조차 거부하는 검찰, 그리고 용산범대위의 모든 추모제와 추모대회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사법처리에만 혈안이 되었던 경찰, 사람이 죽어나간 뒤에도 포클레인과 용역깡패들을 앞세워 강제철거에 나서는 건설자본, 이런 권력과 자본의 입장에서 고인들조차 욕보이면서 재개발 관련법을 개악하고 나서는 부자들의 정당 한나라당, 그리고 역시나 자본의 나팔수이기를 주저치 않는 보수언론… 우리는 지난 5개월 동안 이런 것들과 싸우고 있다.
우리가 상대하는 이들은 지배세력으로 통칭할 수 있다. 기득권의 유지와 확대, 강화를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이윤에만 눈이 어두워 민중들의 고혈을 짜내는데 주저함이 없는 그런 지배세력들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이들 지배세력들의 계급지배를 위한 외피일 뿐이며, 그 ‘법과 원칙’이라는 게 사실은 피지배 민중들을 지독하게도 합법적으로 억압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며, 검찰과 경찰은 정치적 중립성의 외피를 벗어던지고 권력과 자본에 충성하기로 작정했음을 고스란히 드러낸 게 용산참사였다. 그런 뒤 이들 지배세력은 자신들의 권력과 자본의 질서에 저항하는 용산범대위와 전철연을 ‘대한민국의 적’(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이 전철연을 반 대한민국 단체로 규정하고, 생존권 투쟁이 아님을 강조하는 발언을 한 것 등 한나라당과 정부 관료들이 보인 반응을 보라!)으로 규정하고 이를 철저하게 불법화하는 과정을 밟아왔다.
전쟁은 중간의 회색지대가 있다고 해도 적군과 아군이 죽기 살기로 싸우는 상황을 말한다. 이 전쟁에서 지면 우리는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채 노예 같은 삶을 살 수도 있다. 그런데 적군은 우리를 분명히 적으로 규정하고 우리의 항복을 받기 위해 어떤 양보도 없이 밀어붙이는 반면 이 전쟁에 나서는 아군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적군의 수장인 이명박 정권을 투쟁으로 끌어내려야 하지만 그럴 만한 의지도 실력도 보이지 않는다. 5개월 동안 무수한 전투를 치렀지만 매번의 전투는 적군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기보다는 아군이 되레 몰리거나 지친 상황이다. 아마도 천주교 양심적인 세력들이 이 전쟁에 결합하지 않았다면 우리 투쟁은 훨씬 더 쉽게 물러설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았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5개월을 버티면서 전쟁을 이어온 성과가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이제 ‘용산전쟁’에는 많은 우군, 지원군들이 나타나고 있다. 사실 5개월을 버틸 수 있었던 힘도 가난한 수많은 이들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조직을 통해서든 집회에서 모금을 통해서든 추모제에 참가해서든 아니면 안타까운 마음을 김치와 쌀, 라면으로 표현하였든, 그리고 서명과 고발인으로 참여하면서 용산전쟁의 한 세력을 형성해주었다. 그리고 문화예술인들은 6월 10일 140인의 예술행동으로 나타났듯이 음악, 미술, 문학, 연극, 영화, 만화 등 모든 장르에 걸쳐서 자신들의 역량을 용산에 투여했다.
용산범대위(‘이명박정권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의 약칭)는 다른 범국민대책위원회와는 달리 시민단체들이 이명박 정권에 대한 퇴진을 주장하는 세력에 밀려 초기에 이탈하여 협소한 범위의 세력으로 구성되어 출발이 불안했다. 그렇지만 3월 말부터는 천주교 세력이 문정현, 이강서 신부가 매일 용산참사 현장에서 진행하는 시국미사를 통해 결합하더니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6월 15일부터 현장에서 매주 시국미사를 갖고 단식기도회를 갖게 되기에 이르렀다. 이보다는 미미하지만 개신교도 결합하게 되었다. 야당들도 ‘용산참사 해결을 위한 야4당 공동위원회’를 꾸려서 활동하면서 민주당의 대표가 현장을 방문한 뒤에는 부쩍 이 투쟁에 결합하는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울대 교수들의 시국선언에서 분명히 용산참사가 해결과제로 제시된 이후 나온 수많은 시국선언에서 시급하게 해결되어야 할 과제로 진보운동진영과 민중들 사이에서는 부정할 수 없는 지위를 갖게 되었다. ‘용산참사 해결 없이 국정쇄신은 기만’이라는 목소리가 높다는 점은 이 전쟁에서 우리가 정치적으로 유리한 국면을 장악했다는 것이리라.

‘용산전쟁’에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

참사 발생 150일과 5개월을 넘기는 과정은 무척이나 힘들었다. 6월 18일 150일 추모문화제는 그런대로 경찰의 방해 속에서도 순조롭게(용산에서는 순조로운 상황은 없다. 그나마 이날은 제목 현수막을 못 걸게 막던 정도와 경찰 방송으로 집회를 방해한 정도로 그쳤다는 말이다.) 진행되었지만, 6월 19일에는 단식 중이던 나승구 신부가 팔이 꺾여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고, 이에 항의하여 신부들이 한밤중에 도로를 점거하는 투쟁을 벌였다. 6월 20일에는 5개월 추모대회를 마치고 용산역을 거쳐 참사 현장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유가족들이 도로를 점거하자 이를 경찰이 강제로 끌어내는 과정에서 유가족 세 분과 단식 중이던 전종훈 신부가 실신하여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6월 21일 아침에는 느닷없이 단식기도회를 하는 신부들의 천막 현수막을 철거하러 경찰이 들이닥쳐서 이강서 신부의 옷이 찢기고 팔이 꺾였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문정현 신부도 폭행을 당했고(오죽하면 길 위의 신부, 문정현 신부가 하루라도 안 맞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할까), 함께 했던 유가족과 용산범대위 대표와 활동가들, 철거민들의 몸은 온통 피멍이 들었다. 몸에 피멍만이 들었을까? 그렇잖아도 5개월 넘도록 장례도 못 치룬 유가족과 범대위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큰 멍이 들었을 것이고, 더 큰 분노가 자리 잡았을 것이다.
용산 참사 현장에서는 이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크고 작은 전투가 발생한다. 현장을 지키는 일은 이런 전투를 온몸으로 견뎌내는 일이기도 하다. 유가족들은 150일을 이처럼 길거리에서 수난을 견디면서 이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용산전쟁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많은 동지들은 이 투쟁이 장례를 치루면 끝나는 투쟁쯤으로 알고 있는 듯하다. 지금껏 다른 열사투쟁이 그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용산전쟁’은 그러게 마무리하기에는 진도가 너무 많이 나갔고, 그런 대부분의 책임은 현 정권의 용산 문제를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용산 문제에 대해서 경찰은 살인진압과 이후 집회․시위에 대한 탄압의 역할을 맡았고,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남용하여 경찰에 면죄부를 부여하고 진실규명 자체를 어렵게 만들었다. 법원은 이런 검찰과 경찰의 행태를 묵인하거나 영장청구에 대해 영장을 발부해 줌으로서 일조를 하고 있다. 국회는 특별검사제 도입이나 특별법안의 발의를 묵살한 재개발 사업에 건설자본이 유리하게 관련 법률들을 개정하고 있으며, 정부는 경찰의 정당한 법집행이라면서 아무런 법적인 도의적인 책임을 질 수 없다며 ‘부인’(denial)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렇게 국가의 모든 권력기관들이 모두 자본의 편인 나라에서 민주주의는 설 수 없다. 용산에서 철거민들을 죽인 경찰과 검찰이 공안탄압의 강도를 높이고 있고, 그런 공안세력들을 이명박이 오히려 중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은 더욱 후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것은 최근 검찰총장 인사에서 용산참사와 PD수첩 수사의 최종 책임자인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을 검찰총장에 내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명박은 국정쇄신을 하라는 각계의 들불 같은 목소리를 오히려 공안탄압 강화로 맞대응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 중이다. 결국 우리가 상대하는 적은 외형적으로 더욱 강해졌다.

장례 이후를 고민하자

그러나 민주주의와 인권을 말하는 누구도 용산 문제를 비켜갈 수 없다. 문제는 어떤 민주주의인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이후 ‘민주주의의 회복’을 많은 사람들이 말하지만, 그 회복되어야 할 민주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차이들이 있다. 우리는 진정 민주주의를 가져본 적이 있을까? 노무현 시대의 민주주의가 후퇴한 측면이 있지만 그 본질에서 이명박 시대와 무엇이 다를까? 결국 지금까지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라고 해도 좋다)는 사회경제적 토대 위에 세워지지 못한 사상누각의 민주주의였음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자랑스럽게 말하는 6월 항쟁은 곧이어 전개된 노동자대투쟁(사실 이런 용어부터가 차별적이다)의 요구를 배제한, 즉 민중배제의 민주주의로 귀결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민주정부였다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에 오히려 민중들은 더욱 더 생존권의 위기 속에 놓이게 되었지 않은가. 철거민들의 투쟁은 자본의 가장 극악한 약탈에 대한 저항운동이었고, 용산참사는 그 저항운동의 과정에서 국가권력이 자본의 이익을 위해 가장 극악하게 진압한 사건이다. 철거민 또는 비정규직 노동자, 실업자 나아가 정규직 노동자라고 해도 자본의 이익에 장해가 된다면, 언제든지 진압할 수 있다는 지배세력의 선전포고였다.
그러므로 용산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주의는 민중배제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중주체의 민주주의, 한 번에 역전되고 후퇴할 수 있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토대 위에 굳건하게 세워지는 대의제를 넘은 민주주의여야 함을 말해준다. 그것이 단박에 획득되는 것은 아니라 해도 이전의 민주주의 담론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계기라도 만들어낸다는 것이라고 본다.
누구는 장례를 치루면 이 투쟁은 끝나는 것으로 말하고는 한다. 하지만 언제고 장례를 미룰 수 없다면 우리는 오히려 장례를 치룬 다음에라도 용산전쟁을 이어가야 할 준비에 나서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용산참사의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투쟁을 지속하면서 살인적인 재개발을 통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제와 약탈을 멈추게 하는 투쟁까지 용산전쟁은 이어져야 한다. 용산전쟁은 그래서 단기적인 투쟁이 아니라 종합적이고,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투쟁이며, 우리 사회의 본질을 문제 삼는 투쟁일 수밖에 없다.
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우리가 각자 선 자리에서, 서로 다른 투쟁을 하면서도 고민하고 연대하자. 그래서 5개월을 넘어선 용산전쟁 그 이후를 준비하자, 궁극적인 승리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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