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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 [현안] 누구나 믿고 사는 사회를 원합니다

2009.03.25 15:51

진보교육 조회 수:1751

누구나 믿고 사는 사회를 원합니다
3불 폐지와 입학사정관 등 대입자율화가 잘 되었으면

송경원(진보신당)


얼마 전에 10년이 넘은 자동차를 폐차시켰습니다. 속시원하답니다. 그동안 들어간 돈이 상당했거든요. 특히, 최근 몇 년간 정기적으로 수리비 등이 뭉텅이로 빠져나갔답니다. 배보다 배꼽이 큰 현상, 중고차 구입비보다 수리비가 더 많은 일이 지속되다보니, 이래저래 속이 쓰렸답니다.
하지만 속쓰림은 그 놈의 똥차만을 겨냥하지 않았습니다. 집 근처에 있는 정비업소에 의혹의 눈빛을 더 보냈답니다. 오래된 차를 끌고 다니지만 보닛을 열어도 뭐가 뭔지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저 사람이 혹시 날 가마니로 알고 아무렇게나 막 수리비를 부르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침 차를 맡기면 정비사는 “이것도 문제고, 저것도 문제네요. 요것도 갈아야 하고, 고것도 바꿔야겠는데”라고 또 말해준답니다.
그래서 믿고 사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놈의 대학이란 곳에 들어갈 때도 비슷했습니다. 담임교사의 말만 믿고 원하지도 않은 학과에 진학했는데, 알고 봤더니 제 성적으로는 원하는 과에 갈 수 있더군요. 죽어라 냅다 교실에서 책만 파는 고교생활에서 지겹도록 들어왔던, 하지만 한 줄기 빛과 희망을 선사하였던, 낭만적이고 멋진 대학생활도 웬걸 보이지 않더이다. 대신 막걸리가 소주로 바뀌고, 다시 맥주로 변천하는 삶이 기다리고 있었죠. 덩달아 주사도 변화하고 말입니다.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압권은 임용고시 실시였습니다. 국립사범대에 입학할 때는 분명 ‘국가의 책임 발령’을 들었는데,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시험봐야 가능하다”라는 정부 조치를 만났답니다. 요즘 유행하는 ‘시파’ 소리가 저절로 나올 수 밖에 없죠.
그래서 믿고 사는 신뢰로운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학교교육이 살아나고 사교육비가 줄었으면......
이명박 정부 인수위가 지난 1월에 발표한 <대입 3단계 자율화 방안>을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학생과 학부모의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공정하고 다양한 입시제도를 만들기 위해” 대입 3단계 자율화 방안을 마련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1단계로 △수능등급제 폐지와 수능점수제 복귀, △학생부 및 수능 반영 자율화, △입학사정관제 확대, △대입업무를 대학협의체로 이양, △신입생 모집 결과 공개, △논술가이드라인 폐지 등을 언급했었죠. 이것들 다 되었습니다. 2008년 올 한 해 만에 모두 이루었습니다. 목표가 초과 달성된 셈이지요.
그렇다면, 인수위가 이야기했던 효과, “학생들은 자신의 특성을 계발하는 창의적이고 다양한 학교교육을 통하여 불필요한 학습부담 없이도 대학에 진학”할 수 있고 “학교교육이 살아나고 사교육이 줄어”드는 현상이 조금이나마 슬슬 나타나겠죠. 물론 아직 2단계와 3단계가 남아있긴 합니다. 하지만 2단계 수능과목 축소와 3단계 완전 자율화는 2012학년도 입시부터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2년 동안은 지금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이제 인수위가 말했던 “학교교육이 살아나고 사교육이 줄어드는” 광경을 보여주세요. 1단계 대입자율화의 효과를 보여주세요. 완벽하게 시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대로 효과가 나오기 어렵다는, 택도 없는 소리는 말고, 조금이나마 나아지고 있다는 사례를 말해주세요. 그래서 믿고 사는 신뢰로운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불은 폐지하는게 아니라 폐지를 고려할 수도 있다?!
작년 11월 말에는 사립대 총장들이 모인 자리와 대교협이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3불 폐지’ 발언이 나왔습니다. 언론에는 11월 30일 대교협 박종렬 사무총장의 “기여입학제는 모르지만 고교등급제와 본고사 실시는 대학 자율로 둬도 사회가 혼란스럽지 않을 것이라는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라는 발언이 주로 보도됩니다. “서울에서 2010학년도부터 고교선택제가 시행되는데, 이 제도로 진학한 아이들이 대입을 치르는 2012년 즈음에는 자연스럽게 고교등급제 금지 방침이 무너지지 않겠느냐”고 덧붙이는 말과 함께 말입니다.
하지만 언론 보도와 비판 여론이 비등해지자, 바로 대교협은 해명자료를 배포합니다. 발언의 진의가 잘못 전달되었다며 “사무총장이 언급한 것은 2010년 고교선택제가 도입됨에 따라 이들이 대학을 입학하게 되는 2013년경에는 대학들이 이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고교등급제를 도입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해명합니다. 그러니까 고려할 수 있을 뿐이지, 3불을 폐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지요.
이렇게 대교협은 오해였다며, 자신들의 해명을 믿어달라고 합니다. 우리도 그러고 싶습니다. 누군들 소통과 신뢰로 충만한 사회를 마다할까요. 그러나 시간이 좀 지나면 또다른 오해 발언이 나올 겁니다.
한창 고교등급제 논란을 일으켰던 고려대도 “그건 오해예요”라고 말합니다. 고려대를 조사했던 대교협도 “고교등급제 아니랍니다”라고 발표하고, 교과부 역시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갑니다. 고려대, 대교협, 교과부 등 3형제만 빼고, 모든 이들이 의심하고 있는데, 사실무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믿으랍니다. 무슨 신앙도 아니고......
이러다간 우리 사회가 오해로운 사회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대입자율화가 해결책이었으면 합니다
3불 폐지와 관련하여 대교협이 좀 성급했습니다. 대입자율화 3단계가 실시되는 2012년 이후에 3불을 폐지하면 되는데, 구태여 때이르게 지르고 말았습니다. 고려대나 일부 대학의 입시 전형에 의혹의 눈길이 쏠리는 국면을 전환하려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앞서도 너무 앞섰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대입자율화 1단계가 상당부분 실현된 까닭에, 지금부터 2단계가 논의되는 2011년까지는 공백기가 있기는 합니다. 그래서 심심했나 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입자율화가 정말 해법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대학이 마음대로 고등학교에 등급을 매기고, 대학이 초중고 교육과정에 나오지도 않는 본고사 문제로 학생을 선발하고, 돈받고 입학허가증을 팔아 학교교육이 좋아지고 사교육이 줄어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수능과 내신 비율을 대학이 알아서 정하여 학부모의 혼란과 부담을 덜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신경을 많이 쓰는 입학사정관제도 또한 의도한대로 “시험성적 위주의 전형을 지양함으로써 수험생의 특기, 적성, 잠재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고등학교 교육과정 운영 등의 특성을 반영할 수 있는 제도”로 자리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제도 자체가 공정성과 객관성을 완벽하게 구현할 수 없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 취지대로 운영되기를 희망합니다. 입학사정관제도의 또 다른 칼날인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잣대를 가지고 속칭 ‘일류대’가 자기 마음대로 학생을 고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입학사정관제가 고교등급제와 기여입학제의 우회 통로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이 제도를 놓고 일부 깐깐한 학부모들이 공정성 운운 하며 소송 따위를 제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의 우려가 한낱 기우가 되기를 꿈꿉니다. 한국의 대입 경쟁은 대학서열화가 원인이지 대입제도의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들이 모두 거짓말이었으면 합니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근 60년 동안 대입제도를 무려 수십 차례 이래저래 고쳐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며,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고들 말하나, 아직까지 시도해보지 못했던 미지의 제도가 있었고 그게 대입자율화였으면 좋겠습니다. 대학에서 마음대로 학생을 뽑는 게 예전에도 몇 번 있었지만 그것과 이명박 정부의 대입자율화는 다른 것이었으면 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이야기했던 “입시문제의 원인은 정부의 과도한 입시 규제와 획일적인 학교교육 운영”이라는 진단이 정확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래서 대학서열을 완화하거나 없애지 않고도, 경쟁의 원인을 제거하거나 감소시키지 않고도, 이 지긋지긋한 일류대 진학경쟁과 사교육비가 사라지기를 그 누구보다 희망합니다. 웬만한 사람은 “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야”라고 말들을 하고, 학교 현장과 학생들은 웬지 전보다 더 힘들어진 것처럼 여겨지나, 그게 모두 일종의 착시 현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개천의 용이 멸종 위기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의 1%만이 승천한다는 이야기 따위는 오직 전설로만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역대 정부의 입시 정책을 ‘4년지대계’라고 비꼬아 말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백년지대계의 기틀을 다지는 초석이 되기를 꿈꿉니다. 미친 교육이나 2년지 대계 따위가 아니라 말입니다.
인공수로와 수돗물로 청계천을 복원했듯이, 그렇게 이명박 정부가 신뢰와 소통으로 충만한 믿고 사는 사회, 꿈과 희망으로 가득찬 축복의 땅을 만들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비사는 분명 이제 괜찮을 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난 다음에는 뭔가가 또 말썽을 부립니다. 수십만원이 나갑니다. 그리고 당분간은 괜찮을 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약간 지난 후에는 또 정비업소로 차를 끌고 갑니다. 역시 수십만원입니다. 이건 뭐 사람이 차를 타고 다니는 건지, 차가 사람을 부리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다른 이유도 있지만, 결국 폐차시켰습니다. 그랬더니 돈 쓴다고 속쓰리지 않아도 되더군요. 카드 결제일에 한 무더기가 빠져나가지도 않더군요.
아, 폐차시키면 되는 거였습니다. 안되는걸 부여잡고 낑낑대는게 아니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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