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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아메리카의 현실과 누에바 깐시온

김현식 ‖ 포항 대동중

"예술가에게는 예술과 삶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미래에 투사하고,
모든 국가의 인민이 절규하는 사회 변혁을 위한 끊임없는 요구를 지원할 기회가 있다.
누에바 깐시온 운동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길로 이끄는 모든 것들과 함께 해야 한다.
계급이나 국가가 없는 예술, 그 예술이 주는 메시지는
희망과 인간다움이 지닌 가장 고결한 이상인 것이다”
- <누에바 깐시온 결성선언문> 중에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 자본의 세계화와 함께 변혁을 지향하는 우리에게도 새로운 관심의 대상으로 다가오고 있다. 편집자로부터 라틴 좌파 음악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부탁에 참 난감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라틴 아메리카의 진보적 음악을 소개하여 우리들 문화 담론의 폭을 넓힐 수 있다면 다행이라 생각한다.
  월드 뮤직이라 불리는 ‘이 세상의 모든 음악’에 대한 관심은 깊어가고 있지만, 정작 모순을 혁파하기 위해 무기로 쓰인 음악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흡하다. 탱고, 보사노바, 볼레로, 맘보, 차차차, 살사, 레게, 메렝게 등 라틴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음악은 어쩐지 혁명과 저항의 이미지보다는 퇴폐적이고 현실 안주를 위한 음악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음악, 라틴아메리카의 민중 음악 누에바 깐시온을 찾아 떠나보자. 그에 앞서 라틴 아메리카 역사와 문화, 정치적 배경과 모순을 극복해가기 위한 민중들의 투쟁에 음악 분야에서는 어떠한 움직임이 일어났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만난 것은 70년대 헌책방에서 발견한 <들어라 양키들아!(Listen Yankee!)>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누렇게 바랜 그 책은 4.19 혁명 직후 번역된 책이었다. 당시 이 책을 읽은 김수영 시인은 “뜨거운 마음으로, 무수한 박수를 보내면서 읽었다.”고 기술했다. 나는 라이트 밀즈를 통해 쿠바와 젊은 카스트로를 만났고 그들의 활약이 부러웠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체게바라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 것은 한참 뒤였다. 하지만 첫사랑처럼 내게는 체게바라보다 카스트로가 훨씬 더 혁명가로서 믿음직스럽게 다가왔다. 문학과 예술을 좋아하는 혁명가는 아무래도 여러모로 비판꺼리가 더 많기 때문이다.
  2003년 깐꾼(Cancun) 투쟁단의 열렬한 반세계화 활동과 더불어 라틴 예술과 음악 분야에 대한 소식이 궁금했지만, 다녀온 사람들에게서 그 분야에 대해 별로 듣지 못했다. 오히려 '문화' 부문이라는 '곁다리'에 대한 관심은 운동의 대의를 방해하거나 또는 하찮은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를 쉽게 깨기 어려웠다. 음악이나 미술, 생태와 전통에 대한 관심은 '엄혹한 정세'하에서 꺼내서는 안 될 사치품처럼 여기는 풍조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나라 70, 80년대는 변혁 운동이 성장하면서 문학, 미술, 음악 분야 등 다양한 문화 운동도 퍼져나가기 시작하였다. 라틴 아메리카 투쟁 역사에서도 예술, 특히 음악 분야에도 그 과정에 직간접으로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광주 5.18이나 87년 유월항쟁, 2008년 촛불시위는 그저 우연히 한꺼번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많은 활동가, 예술가, 지식인, 민중의 노력들이 실타래처럼 얽혀 예측하지 못한 기점에서 불꽃을 피운 것이리라. 해서 변혁운동에 몸담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투쟁한 라틴 아메리카 음악가들에 대해 잠깐 살펴보고자 한다.

  15세기 콜럼버스의 침략 이후 아메리카 대륙은 유럽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어 원주민들은 대부분 싸우다 죽거나 짓밟혀 고통스런 삶을 영위하게 된다. 식민지는 수천년 동안 지켜 왔던 모든 문화를 철저하게 파괴당하고, 결국 에스파냐, 포르투갈이 이식한 라틴 문화에 편입되고 만다. 부족한 노동력은 아프리카에서 잡혀온 니그로들이 충당한다. 인종의 혼혈이 이루어지고 문화의 융합이 일어난다.
  18세기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자유, 평등이라는 이념이 전 유럽을 사로잡았다. 공화주의자였던 베토벤 역시 나폴레옹을 프랑스 혁명 이념을 전파해주는 위대한 영웅으로 생각하여 교향곡 제3번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어느 민족도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지 않고 스스로 독립된 나라를 가져야 한다는 민족주의 사상의 후원 아래 라틴 아메리카 식민지들은 하나 둘 독립을 쟁취하게 된다.
  라틴아메리카 민중은 제국주의 압제에서 벗어나 민족 독립을 이루었지만 실제 그들의 삶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지배하는 세력이 바뀔 뿐이었다. 토지를 지키고 생존권을 얻기 위한 혁명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강대국으로 성장한 미국은 다국적기업과 매판 세력을 앞세워 라틴 아메리카 민중의 피땀을 짜내기 시작하였다. 라틴 아메리카 혁명은 번번이 실패하고 대부분 미국이 지원하는 군사독재의 더럽고 추악한 역사적 경험을 하게 된다. 군사독재 시절 지식인과 종교인들이 나서서 저항하기 시작하고, 예술가들도 이러한 운동에 함께 결합하게 된다. 가톨릭 세력 중 일부는 해방신학과 종속이론 등으로 무장하며 모순을 극복하려 하였다.
  라틴 아메리카 진보 음악 운동의 출발은 유빵끼로부터 찾을 수 있다. 아따우알파 유빵끼는 원주민 혈통인 아버지와 에스파냐 바스크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아르헨티나 북부 안데스 산지 마을인 뚜꾸만에서 자랐다. 유빵끼는 에스파냐 침략자에 대항해 끝까지 싸우다가 전사한 잉카 제국의 마지막 황제의 이름이다. 이를 기리기 위해 본명 대신 사용하였다. 그는 젊은 시절 아르헨티나 민중들의 삶속에 전해지던 원주민들의 노래와 민요를 수집하면서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해간다. 유신 독재에 저항하기 시작하던 70년대 우리 나라에서도 미국을 통하여 들어오는 팝과 일본 영향을 받은 대중 음악에서 벗어나 서정적인 포크 계열 음악이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점차 우리 전통 속에서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고자 하였다. 마당놀이와 판소리, 민요, 탈춤이 재해석되며 음악은 독재 타도의 새로운 무기로 쓰이기 시작한다. 유빵끼는 단순히 원주민 음악 전통 복원에 그치지 않고, 공산당에 입당하여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인민을 위한 해방 운동에 헌신한다.
  칠레에서는 비올레따 빠라가 제국주의에 침탈되고 상업화된 음악에서 벗어나 원주민 전통을 복원하기 위해 열정을 쏟았다. 그는 전국을 돌면서 수집한 민중들의 한과 노래를 자신의 음악으로 만들어 대중화시켜나갔다. 그가 부르는 노래는 농민과 노동자,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역시 원주민의 전통 악기를 대중화시켜 나갔다.
  이렇게 시작한 새로운 노래를 누에바 깐시온이라고 한다. 누에바 깐시온을 대표하는 표현이 '기타는 총, 노래는 총알'이다. 제국주의와 군사 독재 정권에 대한 투쟁의 무기로 그들이 들고 나선 것이 음악인 것이다. 멕시코 사파티스타가 '우리의 무기는 말'이라고 하며 인터넷을 통하여 혁명의 대의를 전 세계로 향하여 선전하러 나선 것과 마찬가지다.  
  1959년 최초로 쿠바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여 라틴 아메리카에도 기나긴 억압 체제의 탈출구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동안 미국의 뒷마당이었던 이곳의 지식인과 문화예술인들의 움직임이 더욱 가열차게 진행되었다. 미국 대중 문화를 뒤따라가던 그들이 자신들의 문화 정체성을 찾고자 하였다. 라틴아메리카 문제는 원주민의 자각과 그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해결의 단서를 찾아야 한다. 이로써 새로운 노래, 즉 누에바 깐시온의 흐름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지배 계급에 편입되지 못한 혼혈인 메스티소들은 세상을 전복시키기 위해 단결하기 시작하였다. 지식인과 예술가, 노동자를 한 곳에 묶기에 가장 좋은 무기는 노래였다. 광주항쟁과 유월항쟁 시기 <애국가>와 <아침이슬>을 합창하고, 월드컵 열풍 때 <오 필승 코리아>가 대중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과 같다. 조안 하라가 쓴 책 <끝나지 않은 노래>에서 빅또르 하라는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예술가란 진정한 의미에서 창조자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으로써 그 본질 자체로부터 혁명가가 되는 것이다. 그 위대한 소통능력 때문에 예술가는 게릴라만큼이나 위험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칠레에서 예술은 정치적인 사회 운동일 수밖에 없었다. 억압자를 위해 봉사하는 음악이냐, 민중 해방을 추구하는 음악이냐는 선택에서 많은 음악가들이 민중 편에 서게 되었다. 결국 이런 흐름은 드디어 1970년 최초로 선거를 통한 사회주의 정권을 만들어 낸다. 선거 혁명을 주도한 아옌데는 대통령으로 새로운 나라를 꾸려나간다. 하지만, 불과 3년 만에 미국의 지원을 받은 피노체트가 이끄는 군인들에 의해 칠레의 운명은 바뀌게 된다. 기관총을 들고 아옌데는 끝까지 저항하다가 죽었고, 혁명가이자 예술가였던 빅또르 하라 역시 체포되어 고문을 받고 사살된다.
  작곡가인 세르지오 오르테가는 피노체트 치하에서 살아 남아 유명한 <단결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는 곡을 만들었다. 칠레 저항 가요의 대표곡인 이곡은 얼마 전 내한한 재즈 피아니스트 지오바니 미라바시에 의해 예술의 전당에서 연주되었다.
  아옌데 정권이 무너지고 라틴 아메리카는 쿠바를 제외하고 대부분 군사 독재 체제로 접어들게 된다. 누에바 깐시온 역시 탄압을 받게 된다. 누에바 깐시온 관련된 음악은 대부분 금지곡이 되고 원주민의 악기를 사용하는 것조차 불온하게 여겨진다. 우리 나라에서 ‘금지곡’이 지하에서 은밀히 불려지고, 한복이나 북과 꽹과리가 저항의 상징이 된 것처럼 말이다. 칠레의 민중 음악가들은 해외 망명 생활을 통해 누에바 깐시온을 확산시키기 시작한다. 촛불을 끄려다가 들풀로 번지게 되는 경우다.

  인민주의 정권인 페론의 실각 이후 아르헨티나 역시 70년대 군사 독재를 경험한다. 이곳에서 메르세데스 소사가 활약하면서 누에바 깐시온을 단순한 혁명의 도구가 아니라 예술의 경지에까지 올려놓게 된다. 소사는 누에바 깐시온의 창시자인 유빵끼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뚜꾸만에서 출생하였다. 전통 무용을 가르치다가 60년대에 누에바 깐시온 운동에 합류하게 된다. 그녀는 독재 정권 아래서 민중을 위한 노래를 부른다. 인권과 민주주의, 노동자와 농민의 권리, 반전평화 등의 노래들을 불러 아르헨티나 민중들의 사랑을 받는다. 군사 정권에 의해 수차례 투옥되었다가 고국으로부터 추방되어 유럽에서 활동을 하면서 재즈와 클래식 등 새로운 음악을 접한다. 누에바 깐시온의 형식이 더 풍요로워진 것이다. 1982년 위험을 무릅쓰고 아르헨티나로 귀국하여 감격스런 연주회를 가진다. 그녀는 아르헨티나 민중에게 희망의 빛을 던지기 위해 비올레따 빠라의 <삶에 대한 감사(Gracias a la vida)>를 흐느끼며 부른다. 관중들도 함께 눈물을 흘린다. 아르헨티나 군사 독재 정권은 곧 무너지고 만다. 메르세데스 소사의 음반은 우리 나라에도 여럿 소개되었고, 내한 공연이 예정되었다가 건강상 이유로 취소된 바 있다. 누에바 깐시온 가수 가운데 우리 나라에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나는 전 세계 민중을 위해 노래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건 나를 지지하고 지원해주는 사람들을 위하는 것이니까요. 노래는 변합니다. 투쟁과 단결의 노래도 있고 인간의 아픔에 대해 호소하는 것도 있습니다. 내가 아르헨티나로 돌아왔을 때, 나는 무대 위에서 국민들에게 새롭게 표현해야 할 방식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건 국민들에게 용기를 잃지 않게 해주는 것이었어요. 왜냐구요? 아르헨티나에선 산다는 게 투쟁이거든요.”(메르세데스 소사)

  쿠바에서는 옛 노래(비에하 뜨로바) 대신에 새로운 노래(누에바 뜨로바)가 불려진다. 까를로스 뿌에블라가 전통 음악을 복원하고 새롭게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쿠바 음악은 사회주의 정권의 지원을 받으면서 점차 교조적인 모습으로 바뀌어 혁명기의 열정과 점차 멀어지게 되는 아쉬움이 남는다.

  누에바 깐시온은 단순한 저항 수단으로 예술을 이용한 것은 아니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침략자들과 끌려온 자들과 함께 섞여서 인간 보편적인 정서를 움직이게 하는 서정성을 가미했기에 민중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최근 촛불집회 때 불러지는 노래를 보자. 우리들의 영원한 투쟁가라고 하는 <님을 위한 행진곡> 대신에 70년대 고전인 <훌라송>이 다시 등장하고, <아침이슬>이 흘러나온다. <뽀뽀뽀> 개사곡이 사랑받고, 윤민석의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인기를 누린다. 지금도 많은 '촛불의 노래'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처절한 기타맨'이 <싫어송>을 부르고 <되고송>에 사람들은 박수와 환호를 지른다. 노래는 '칼라 TV'를 통해 실시간으로 인터넷 중계된다. 파급 효과는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다. 농민 발언자는 <흙에 살리라>를 신나게 불러 제낀다.
  80년대 그 많던 우리들의 '운동가'인 '민중가요'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민중을 계도하겠다는 오만함이 그 많던 노래를 다 죽여 버린 건 아닌가. 2008년 다시 정태춘이 등장하고 꽃다지는 일본 오키나와 반전평화 집회에서 우리 민중가요를 부른다. 어쩌면 혁명은 소수 운동가가 만든 투쟁적 가사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라, 가장 밑바닥, 가장 원초적으로 깔려 있는 민중들의 소망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올 때 완성되지 않을까?

  기나긴 압제에 독재에 저항하며 싸워온 라틴 아메리카 민중들의 노래는 무수히 많다. 누에바 깐시온은 니카라구아와 엘살바도르, 베네수엘라, 브라질 등에 혁명의 무기로 작용하였고, 미국의 반전 가수나 포크송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포크송은 70년대 한국의 민중가요 형성에 밑바탕이 되기도 한다. 누에바 깐시온과 우리의 민중 가요는 지구를 돌아서 반세계화 투쟁의 현장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자본의 세계화가 이루어질 때 그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노동 계급과 해방을 위해 싸우는 예술과 문화 역시 연대하여 영향을 주고 발전해나간다. 아직도 다른 세계를 꿈꾸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투쟁에 복무하는 음악가와 예술가는 수없이 많고, 다양한 형태의 예술 행위가 혁명과 더불어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 광장에서 일렁이는 촛불과 함께, 저기 라틴 아메리카 민중들의 혁명을 위한 행렬 속에서...

<참고 자료>
단결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El Pueblo Unido Jamas Sera Vencido)

민중이 단결하면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민중이 단결하면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일어나 노래하라, 승리로 나아가도록,
단결의 깃발 아래 전진하자
그리고 그대여 나와 함께 행진하자.
그러면 깃발과 노래가 만개하는 것을
볼지니, 붉은 새벽의 빛이
희생의 삶을 선포할지니.

일어나 행진하라, 민중이 승리하도록,
희생의 삶이 더 나을지니.
우리의 행복을 쟁취하러,
그러면 수백만 목소리의 아우성으로 투쟁하고 봉기하자
자유의 노래를 부르자
승리하는 조국의 결정과 함께

이제는 민중이 투쟁으로 일어날 때,
거대한 외침과 함께, 전진!

민중이 단결하면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민중이 단결하면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조국은 단결로 단련되리니
북에서 남으로 동원하라
염전과 광산에서 남쪽의 삼림까지
투쟁하는 조합과 노동자들은 조국을 품으리
그리하여 미래를 선포하리라

일어나 노래하라, 민중이 승리하도록
수백만이 진리를 강제하리니
단련된 의지로, 불타는 군대
그 손으로 정의와 이성을 내걸고.
여성들이여, 열정과 용기로
곧 여기서 노동자들과 함께 하리니

이제는 민중이 투쟁으로 일어날 때,
거대한 외침과 함께, 전진!

민중이 단결하면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민중이 단결하면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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