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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 서문_호시우보

2006.03.07 15:57

진보교육 조회 수:1320

우리말에 ‘공부해서 남 주냐?’하는 속담이 있다. “공부 열심히 하면 그 열매를 네가 다 챙기잖아? 그런데 그 실사구시(?)의 논리를 왜 그렇게 몰러? 응, 이 먹통아!” 그런데 그 엄중한 논리를 사람들이 왜 모르겠나. 눈앞에 따먹을 열매가 또렷이 보이기만 한다면 벌떼처럼 몰려가서 아귀떼처럼 공부하리라.

그렇게 공부한 사람들의 한 가지 사례를 우리는 알고 있다. 근래에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전국의 중고교 사회과 교사들 얼마를 모아놓고 공부를 시켜준 뒤 ‘욕봤다’며 해외여행의 선물들을 안겨준 것이다. 일주일간의 중국여행 코스인데, 경악하지 마시라. 일인당 4백만 원씩 경비를 베풀어주었으니 그 교사들이 밤마다 어떻게 놀았을지는 넉넉히 짐작할 만하지 않은가. “공부해서 내가 갖는다. 그러니 눈 벌겋게 뜨고 공부거리 찾아 헤매리라!”

우리의 교육노동운동은 할 일이 ‘징하게’ 많다. 둑 무너진 틈새 틈새로 터져 나오는 봇물을 막느라, 정신이 없다. 어려운 학교 살림을 개선하기 위해서도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왼갖 사안이 다 밀려드니 놓치는 것 투성이다. “어쩌나, 어쩌나…” 발을 동동 구르기 십상이다. 패배주의의 심리가 알게 모르게 우리 주변을 휘감고 있다. 무엇부터 나서야 할까?
조선의 한 먹물 연암 선생이 중국을 배우러 갔을 때 이야기. 큰물이 진 요하를 캄캄한 밤에 말 안장 위에 둥둥 떠서 건널 때, 그는 몹시 떨었다. 격랑하는 물소리가 너무나 무서웠다. 그는 문득 생각을 용트림했다. “이 노도 같은 강물을 내 신발로, 옷으로, 성정(性情)으로 여기리라…”

우리가 지금 가장 먼저 할 일은 무너진 운동의 기풍, 허물어진 사상을 다시 세우는 일이 아니겠는가. 여전히 콩나물 교실이라도 좋다. 여전히 ‘법’이 우리 편이 아니라도 좋다. ‘돈의 자유’를 구가하는 못 말릴 제도들이 꾸역꾸역 밀려들어도 조바심내지 않는다. 내 기풍이 바로 서고, 네 사상이 우뚝 선다면 법과 제도와 풍토를 바로잡고 사람을 키울 ‘동력’이 일단 확보되지 않는가. ‘시작이 절반’ 아니겠는가.

전경련과 상공회의소가 ‘경제교육’ 명목으로 기업들에게서 삥 뜯는 일에, 꼴 사납게도 KDI와 재경부와 한국은행까지 덩달아 나서는 것이 지금의 우리 사회다. “한국 아이들아, 돈 잘 버는 게 최고여! 그 기술, 가르쳐줄게!” 한국 교육계는 가히 ‘미친 년들, 널 뛰는 노름판’이 되어버렸다. 그 꼬락서니를 넋 놓고 쳐다보는 게, 한 줌도 못 되는 전교조 활동가들이다.

가장 급한 일은 ‘싸움을 선포하는 일’이다.
“자본찬양세력에 견결하게 맞서리라. 그래야 교육이 산다!”
‘돈/자본’에 환장한 세력의 목소리가 학교로 거침없이 밀려드는 것에 정면으로 싸움을 걸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돈세상을 넘어서는 상상력’을 일깨워야 한다. 이 아이들이 3년, 5년 뒤에는 당당한 ‘정치의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꾸준히 주도면밀하게 참교육 실천에 나설 일이다. 요컨대, 시들어가는 교육노동운동의 타개 방향을 그 뿌리에서 찾을 일이다.
…… 호랑이와 독수리는 사람보다도 더 멀리 내다본다. 굼뜬 소의 발걸음이 대지를 갈아엎는다. 할 일이 까마득 많아도 천천히 확실히 10년 뒤를 내다보며 나아가리라.

이번 회보는 예와 다름없이 ‘당면 현안’을 다룬다. 교원정책 시나리오, 평준화와 학교자치 문제, 코앞에 닥친 ‘보궐선거’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과제들이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여력’이 찾아진다면, 아니 ‘여력’을 짜내서라도 10년을 내다보는 과제들에 대한 고민을 틈틈이 보태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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