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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 | 학벌없는사회 학생모임


얼마 전 고려대에서는 이건희 삼성회장이 박사학위를 받는 것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있었다.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재벌 총수를 직접 상대로 한 드문 시위라는 점에서, 그리고 시위 이후 고려대 안에서 벌어진 처장단(보직교수) 총사퇴, 시위학생징계, 총학생회 탄핵 같은 일련의 사건들이 유례없을 뿐 아니라 상식 이하였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학교 밖에서 바라보기에 고려대에서 벌어진 이러한 일들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다. 하지만 고려대 안에서 몇 해 전부터 일어났던 여러 가지 모습들을 쭉 살펴본다면 이번 사태는 모종의 연관 속에서 벌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2004년 학생들의 본관 점거농성

이번 시위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2004년 고려대에서 있었던 학생들의 본관 점거농성을 먼저 알아두어야만 한다. 2004년 4월 고려대에서는 고대 교육투쟁 역사상 유례없이 한 달 가까이 지속된 학생들의 본관 전체 점거농성이 있었다. 그때부터 이미 학교는 ‘100주년 사업’의 일환으로 2005년 5월 5일에 맞춰 대대적으로 학교의 외형을 바꾸는 일을 시작했다. 학생들에게 등록금 인상을 강요한 뒤, 그 돈으로 교육여건개선과는 별 상관없는 건물을 여기저기에 짓는가 하면, 수 억 에서 수 천 만원씩 하는 ‘100주년 기념 ○○행사’를 여는데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전반적인 대학의 시장화 흐름에 발맞춰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만들기 위해 강의를 바꿔나가고 있었다. 그 전까지 절대평가였던 많은 수업들이 상대평가로 바뀌었고, ‘영어전용수업’으로 전환되었으며, 졸업하기 전까지 그러한 수업을 일정 학점 이상 이수해야 한다고 강제규정을 만들었다. 그밖에 ‘LG-POSCO관’, ‘이명박 라운지’ 같은 기업가의 이름을 단 강의실이 들어서기도 했다.
이렇게 전면적이고 급속한 대학의 시장화 흐름과, 그에 맞춰 사학재단과 영리기업의 배를 불리기 위해 이뤄지고 있는 등록금 인상에 대해 적지 않은 수의 학생들이 분노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분노에 힘입어 열의 있는 학생들이 2003년 겨울부터 단과대 학생회들과 총학생회를 비롯해, 여러 자치단위와 개인들이 함께 ‘교육투쟁 연대모임’(이하 연대모임)을 꾸리고 활동해 왔다. 그러다가 2004년 4월 6일 “등록금 동결, 신자유주의 교육재편 반대”를 내걸고 본관 전체 점거농성에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독자 점거농성과 징계, 깨진 학생들의 연대와 학교측의 탄압

하지만 당시 힘차게 출발했던 점거농성은 연대모임에 참여한 학생들 사이에 신뢰만 깨져버린 채 흐지부지 끝나게 되었다. 점거농성 당시 총학생회와 같은 계열인 노학연대선봉대와 다함께, 노동해방학생연대가 “학생들이 더 이상 점거농성에 대중적인 지지를 보내지 않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4월 20일 돌연 농성을 끝냈고, 정경대․문과대 학생회(연대회의), 교육투쟁공동행동을 비롯한 몇몇 단체와 개인 참가자들만 계속 남아 점거농성을 열흘 가까이 이어갔다. 그러다 결국 총학생회의 힘빼기와 “점거농성을 하고 있는 사람들만 골라 징계 하겠다”하는 학교측의 탄압으로 인해 남아있던 점거농성단의 대다수가 농성을 그만두게 되었으며, 4월 29일 새벽까지 점거농성을 계속하던 몇 명의 학생들은 “농성장을 청소하러 왔다”는 총학생회 집행부를 비롯해 총학생회와 가깝게 활동하는 학생들의 손에 이끌려 점거농성장에서 나와야만 했다.
그러자 그동안 “본관 점거 농성을 빨리 풀지 않으면 징계뿐만 아니라 학생회비도 가압류할 것”이라고 협박해온 학교측은 사상 처음으로 농성과정에서 발생한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다며 학생회비를 무단으로 가압류하고, 총학생회장을 포함한 점거농성 관련학생 17명을 징계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때 몇몇 양심 있는 교수들이 동의하지 않아 징계시도는 무산되었으며, 처음부터 무리가 많았던 학생회비 가압류도 실패로 돌아갔다. 그 후 학교측은 교수들의 동의 없이도 총장이나 학생처장이 원하면 언제든지 자유롭게 징계할 수 있도록 학칙을 마음대로 바꾸었으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생회비를 등록금에서 분리 징수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등, 학생들의 교육투쟁을 탄압하는 일련의 조치들을 발빠르게 진행시켰다.
그러나 학생들은 어떠했는가? 당시 점거농성을 그만두자고 주장했던 총학생회, 다함께, 노동해방학생연대는 점거농성 과정에서 불거졌던 배신감과 상처를 치유하고 학교측의 잘못된 학교운영을 함께 바로잡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으며, 그 이후 더욱 더 빨라진 학교재단의 돈벌이 행태와 대학의 시장화 ․ 상업화 흐름에 대해서도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학교재단이 학생들을 징계하기 쉽게 마음대로 바꾼 학칙도 바로잡지 못했고, 학교는 2005년 개교 100주년에 맞춰 차근차근 학교외양을 바꿔가며 학생들을 포섭해갔다.  
한 예로 2004년 10월, 고려대학교 한복판에 스타벅스, 던킨도너츠, 페밀리레스토랑, 호프집으로 가득 찬 ‘타이거플라자’란 건물이 들어섰을 때도 ‘타이거플라자를 바꾸는 사람들’란 공동 연대모임을 꾸리고 이에 적극 반대한 학생들이 있었다. 이들은 2004년 4월 점거농성장을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학생들이었다. 하지만 당시 총학생회와 같은 계열인 노학연대선봉대 학생들은 총학생회 재집권을 목표로 선거활동을 하며 “강한나라 강한고대”를 내세워 학교발전논리․학벌논리에 편승했고, 총학생회와 함께 점거농성을 그만둔 다함께는 이 문제가 설사 자신들에게 별 관심 없는 주제라 해도 매주 열렸던 타이거플라자 바꾸기 집회에 한 번 함께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데 의식적으로 이 활동에 함께하지 않으려는 종파주의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 결과 당시 꽤 많은 학생들과 언론의 관심과 지지를 얻었던 이 활동은 별다른 성과도 없이 흐지부지 끝났으며, 지금은 타이거플라자에 이어 또 다른 상업시설이 들어서고 있는 상황이다.

2005년 ‘개나리’ 교육투쟁

그렇게 한 해가 흘렀고 2005년 봄이 되었다. “강한나라 강한고대”를 내세우며 총학생회에 다시 당선된 노학연대선봉대 계열의 학생들과, 다함께, 노동해방학생연대 등의 학생들은 이제 와서 학교의 100주년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면서, 해마다 높아져가는 등록금 때문에 힘들어하고 지금 학교의 모습에 뭔가 문제를 느끼는 학생들의 분노를 모아내려 했다.
그러나 그 친구들의 노력과 학내 여러 뜻있는 학생들의 활동에 힘입어 다시 살아나는 듯 했던 교육투쟁의 불씨는 또다시 여느 해처럼 금방 꺼지게 되었다. 학생들이 처음부터 주장한 ‘등록금 동결’을 비롯한 핵심요구사항 중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했는데도 4월초가 되자 학교측과 총학생회가 맺은 ‘합의문’이 나왔다. 총학생회 등은 4월 7일 학교재단과 협상한 결과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교육투쟁에 함께 해주신 학우여러분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투쟁으로 이만큼이나 얻어냈습니다”하면서 투쟁결과를 과장하고, 교육투쟁의 흐름을 자의적으로 마무리 지으려 했다.

5월 5일을 정점으로 한 학교재단의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

그러는 동안 학교는 100주년 사업을 더욱더 자신감 있고 힘차게 밀어붙였다. 학교재단은 5월 5일에 맞춰 학교곳곳을 100주년 깃발로 장식하고, <동아일보>, <주간동아> 등의 재단 소유의 언론과, <고대신문>, <고대투데이> 등의 학내 언론을 동원해 “고대가 100주년을 맞아 세계적 대학으로 나아가는 큰 변화를 꾀하고 있다”며 떠들어댔다. 심지어 학교 주변 도로의 모든 태극기 게양대에 호랑이 문양의 고려대 깃발과 고대 100주년을 알리는 깃발을 매달아 두기도 하고, 하루가 멀다하고 100주년 기념행사가 학교 안팎에서 화려하게 열렸다. 학생들에게는 100주년 기념 뱃지를 나눠주고,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100주년 기념 배너달기’, ‘100주년 기념 100만클릭’ 캠페인을 벌였다.
안 그래도 고려대 학생들은 입학 할 때부터 학벌공동체의식이 매우 강한데, 그런 학생들에게 “모교인 고려대의 100주년 발전을 위해 고대가족이 하나 되어 기뻐하고 노력하자”는 학벌주의 ․ 학교발전 논리는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매우 쉽게 먹혀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100주년 행사는 갖가지 매체와 홍보물을 동원한 학교재단의 선전공세 때문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학교재단 관계자뿐만 아니라 꽤 많은 학생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듯했다. 2004년 겨울까지만 해도 “다른 거 다 해줄 테니, 2005년 교육투쟁을 할 때 제발 5월 5일 100주년 행사 때만은 그냥 있어 달라”하고 까지 당부(?)했던 학교 관계자들의 걱정은 이제 괜한 기우가 돼 가는 듯 했다.
2005년 5월 2일 이건희 회장 박사학위 수여식

그러던 가운데 학교재단은 100주년 기념행사 가운데 하나로 100주년 기념관을 짓는데 400억 원을 기부한 이건희 삼성회장에게 명예 철학박사학위로 보답하겠다며, 학교 홈페이지에 학위수여식 행사를 팝업광고까지 띄우며 학생들도 함께하자고 알렸다. 그리고 일간 신문에는 며칠 전부터 삼성 회장의 고려대 명예박사학위 수여사실이 기사로 다뤄지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학교재단 사람들은 이제 자신들이 하는 ‘100주년 행사’가 이제 큰 흐름이고, 행사당일에도 별다른 일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삼성그룹의 노동자 탄압 사실을 익히 알고 있던 몇몇 활동가들 사이에 “이건희가 온다는데, 그래도 뭔가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공감대가 모아졌고, 당일에 피켓 시위라도 하자고 즉자적인 결정이 내려졌다. 그래서 피켓도 5월 2일 당일에 부랴부랴 만들고, 집회 홍보도 당일 아침에서야 대자보를 붙여 알렸다. 그런데 학위수여식이 열리기 2시간 전인 오후 3시가 되자, 학위수여식이 이뤄질 예정인 인촌기념관 앞에는 갑작스런 집회준비에도 불구하고 1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모였다. 그동안 학교재단의 100주년 공세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학생들과, 삼성의 ‘무노조 경영’ 철학을 심각하게 여기던 학생들이 그 자리에 모이게 된 것이다. 보통 학내에서 그나마 많이 모인다는 3월 교육투쟁 집회를 할 때도 보통 100명 안팎이 모인다는 사실을 감안해 봤을 때, 당시 모인 학생들의 숫자는 매우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학교측은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모인 것에 깜짝 놀랐는지, 2004년 본관 점거농성 때도 동원하지 않았던 교직원들 수십 명을 동원해 인촌기념관 정문을 에워싸고, 심지어 운동부(럭비부) 학생들 50~60명을 동원해 학생들을 위협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이에 더 큰 분노를 느끼며 행사장 정문에 진을 치고 항의시위를 계속했다. 그러던 가운데 이건희 회장의 차가 도착하였고, 무리하게―후문으로 들어가거나 이재용처럼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면 조용히 들어갔을 텐데―학생들이 농성하고 있는 정문으로 들어가려 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직원들과 학교재단 관계자들이 학생들을 밀쳐내면서 몸을 밀고 당기는 일이 발생했고, 정문 앞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심지어 이건희 회장이 행사장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학교재단은 학생들이 건물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철제문을 내렸고, 학생들은 가로막힌 철문 앞에 앉아 농성을 계속했다. 이건희 회장은 행사장 연단 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건물 안에 있던 재단 이사장실에 앉아 있다가 사돈 사이인 김병관 이사장에게 박사학위를 받고, 행사장 뒷문을 통해 조용히 돌아갔다. 행사는 당연히 제대로 될 수 없었고 수많은 삼성 임직원들과 다른 회사 사장들은 각자 차를 타고 학생들의 야유를 받으며 돌아가야만 했다. 어윤대 총장은 행사장 연단에 올라 회장님께 죄송하다면 계속 사과를 하며 죄송하다고 했고, 집회 참여 학생들을 두고 “판단력이 부족한 소수의 학생들”이라는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해가며 비난했다.
바로 다음날 아침 부총장과 보직교수 전부가 사퇴서를 제출했다. 학교재단은 이와 같은 정치적 술수를 통해 학생들을 철저히 징계하겠다는 무서운 칼날을 드러낸 것이다. 작년 점거농성 때도 ‘학생들 시위의 충격’으로 부총장이 병원에 입원하고, 그 모습을 학교 언론에 선전한 뒤 곧이어 시위참가 학생 17명을 징계하려 한 얄팍하고 정치술수를 쓰더니 이번에는 처장단 총사퇴라는 더 강경한 술수를 쓴 것이다.
덕분에 가만 놔두었으면 대학에서 일어난 하나의 해프닝 정도로 끝날 일이 일파만파 더욱 커지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언론에서도 학생들을 취재해 갔으며, 많은 사람들은 “역시 삼성의 힘이 세긴 세구나”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도리어 삼성측에서 “왜 이리 일을 커지게 만드냐”하고 당혹스러워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학교재단이 양심 있는 학생들을 징계하고 때려잡기 위한 욕심에 눈이 멀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학교재단은 이와 같은 사퇴서 제출과 함께 곧바로 관련 학생들을 징계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그러나 조금만 제대로 보면 이건희 삼성회장을 초청한 행사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보직교수들이 사퇴를 하고 학생들을 징계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이었기에, 결국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여러 시민사회단체 등 각계각층 여론의 압력에 밀려 결국 징계시도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발전주의에 사로잡힌 학생들

하지만 이 날 사태를 보는 많은 학생들의 눈길은 참 싸늘했다. 실제 고려대 학생 천 여명을 상대로 이뤄진 어느 설문조사에서는 거의 80%학생들이 이번 시위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시위 이후 학교 문 앞에서 시위의 정당성을 알리는 유인물을 나눠누자 받는 즉시 찢어버리는 학생들도 있었고 찡그리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평소 학교에서 노동현실을 이야기하고, 교육현실을 들어 학교재단을 비판할 때에도 학생들이 이렇게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유달리 이번 경우에만 그렇게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많은 학생들은 그런 시위로 괜히 학교 이미지만 나빠졌다며 못마땅해 했다. 보통 때는 기업을 비판하고 노동자들의 현실을 이야기하면, 그 이야기에 별로 공감하지 않더라도 “그래 너는 그렇게 생각하고 떠들어라”, “그래 너 좋은 이야기 한다”정도로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갔다면, 이번 같은 경우엔 학교에 400억을 준 사람을, 그것도 한국 최고 기업의 회장을 학교 이미지를 망쳐가면서 그렇게 대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고대생의 삼성취업은 이제 물 건너갔다”하는 비아냥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일은 그저 “너네 좋은 소리 한다”하고 무시하고 넘어가도 될 일이 아니라 자신들의 실질적인 이해관계까지 위협하는, 즉 학교이미지를 훼손하고, 기업이 우리 학교에 돈을 기부하는 것을 활성화 하는데 큰 악영향을 끼치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편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좀 더 적극적으로 이번 시위에 반대하는 학생들은 '총학없는 평화고대'라는 모임을 꾸린 뒤, 학생들을 상대로 학생들의 이번 시위가 '폭력적'이었다고 이야기하며 학생들을 선동했다. 급기야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학생들 1800여명의 서명을 받아 총학생회 탄핵안을 발의하기까지 했다. 그 덕분에 고려대는 삼성 이건희 회장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보직 교수들이 모두 사퇴서를 쓰고, 학생들을 징계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학생들이 총학생회를 탄핵하려는 슬픈 현실을 경험해야 했다.

뜻을 함께하는 학생들이 ‘교육투쟁 연대모임’을 꾸려나가야

뜻밖의 반응에 학내에서 활동을 펼쳐온 학생들은 한편으로는 많이 놀라고 또 한편으로는 조금 움츠러들기도 했다. 한편으로 이는 그동안 학교재단의 행태에 대해 적극 대응하지 못한 활동가들이 이제는 평소에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또렷하게 알려준 계기가 되기도 했다. 지금도 학교재단은 '학교발전'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이윤과, 기업의 이윤을 위한 조치들을 취해나가고 있다. 여름 계절학기 수업료가 무려 30% 올랐고, 타이거플라자에 이어 갖가지 상업시설이 줄줄이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으며, '100주년 기념관'은 삼성이 기부했다고 해서 ‘삼성관'으로, '애기능광장'은 하나은행이 기부했다고 해서 '하나 사이언스 파크'로 이름이 바뀌기도 했다. 또 이미 LG전자와 손을 잡고 시행중인 '(기업) 맞춤형 석사제도'는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학생들을 상대로 화려한 수사를 동원하여 이러한 변화들이 모두 고려대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고 달콤하게 속삭일 것이다. 앞으로 이에 대해 꾸준히 잘 대응하지 않는다면 고려대 학생들은 더욱 더 학교재단의 논리 속으로 포섭되어 갈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교육투쟁 과정에서 앞서 나온 잘못된 모습들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각 활동주체들은 종파주의적인 이해관계를 떠나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에 맞서 공동으로 올바른 연대를 꾸려나가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학교' 발전을 내세우며 기득권층의 이해를 학교 안에서 대변하고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학교재단의 공세에 점점 밀려 위축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고려대의 경우 사회적으로 학벌 기득권을 누리는 이른바 일류대학인 까닭에 지금도 정부와 기업의 각종 지원 등 여러 가지 특혜를 누리고 있다. 그래서 대학 구조조정과 대학의 시장화 흐름 속에서도 대다수 대학들과 달리, 고려대 학생들은 자신이 대학구조조정과 대학시장화의 피해자라기보다는 수혜자라고 느끼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고려대에서 교육투쟁을 해나가는 학생들은 어렵더라도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그 시작을 교육투쟁 사안에 대해 서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며 토론하고, 토론한 내용을 바탕으로 나름의 합의점을 찾아 공동의 실천을 이뤄내는, 민주적인 ‘교육투쟁 연대모임’을 다시 꾸려나가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삼성회장 박사학위 수여 반대 시위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의 배경에는 대학의 시장화와 학교발전을 내세우는 학벌주의, 그리고 종파주의적 이해관계에 치우친 학생운동의 바람직하지 못한 대응이 원인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전국의 학생운동 활동가들은 고려대 교육투쟁의 현황과 문제의식을 참고해서 더 좋은 활동을 이뤄나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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