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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싸늘함, 그 모순된 감정을 그리며


강유신 | 교육공동체 나다 철학교사

 

 

연분홍빛 사월에 시작된 초짜 세미나는 짙은 초록의 팔월에 막을 내렸다. 그리고 지금은 밤바람 차가운 시월이다. 사월에 바라본 시월은 막연하되 은밀한 기대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시월에 돌이키는 사월은 아쉬움 반, 그리움 반이다. 삶을 워낙 미숙하게 사는 까닭에 의미나 목적보다는 사건이 먼저였는데, 초짜세미나 역시 이러한 미숙한 방식의 예외가 되지 못했다. 모니터 너머에서 진보교육연구소를 훔쳐보기만 하던 어느 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전화를 걸었다. "저, 초짜세미나 신청하려고 하는데요 …."


지하철 4호선 숙대입구


4호선 숙대입구는 그리 익숙한 곳이 아니었다. 대학 신입생 때, 미팅이네 축제네 하며 굴다리를 지나 숙대 앞에서 어슬렁거렸던 가물가물한 기억만이 그곳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진보교육연구소는 숙대입구 근처에 있되 상당한 거리감을 가지고 있었다. 공간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정말 먼 거리였다. 북적거리는 여대 앞 정경과는 달리, 연구소를 향해 나있는 길은 '싸늘함' 자체였다. 사월에 느끼는 싸늘함이라니…. 연구소가 있는 낡은 건물 앞에서 싸늘함은 본격적으로 냉기를 드러냈다. 삼층으로 올라가 연구소 문을 열었고, 열린 문이 만들어낸 작은 틈으로 순간 밀려오는 눅눅함은 발길을 돌리고 싶은 강한 욕구를 만들어 냈다. '그냥 갈까….'


환하게 맞아주는 간사의 반가워하는 얼굴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 우선은 자리에 앉았다.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첫 세미나라 그런지 다들 눈빛이 초롱초롱해 보였다. 사람들 얼굴 사이사이로 훑어본 연구소는 어지간히 정신 없어 보였다. 삼층 전체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여러 단체가 오밀조밀하게 공간을 나눠 쓰고 있었다. 연구소는 출입문 바로 옆에서 문간방 살림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자기소개가 끝난 후, 첫 세미나가 시작됐다. 주제인 신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참가자들의 인적 구성이 워낙 다양했던지라(현직교사, 대학생, 영화인, 노동운동가 등) 세미나는 종종 갈팡질팡했고 그 와중에 제자리를 찾으려는 간사의 힘겨운 노력이 기억에 남았다.


넓어지는 빈자리, 깊어가는 술자리


세미나는 2주에 한 번씩, 화요일 저녁 7시에 진행됐다. 새로운 멤버들이 종종 신선한 충격(?)을 주며 참석했지만, 전반적으로 빈자리는 늘기 시작했다. 다른 현장경험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차이들이 빈자리를 채우려 애를 썼지만, 결국 6월 중순을 넘어서면서부터는 대여섯 명 정도로 참가 인원이 고정되고 말았다. 틈틈이 관련주제 전문가를 초빙까지 하며 애를 썼던 세미나 간사의 가슴앓이가 꽤나 깊지 않았을까 싶다. 연구소의 힘들게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는 문간방의 눅눅함을 엄연하고도 두터운 현실로 만들었지만, 간사가 틈틈이 내오는 얼음 덩어리를 입에 담은 5기 초짜들은 순간의 시원함에 모든 걸 잊을 수 있었다. 물론 가끔씩 무엇을 말해야 할지조차 잊었던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고정 멤버가 결정되고, 한 번 두 번 세미나 뒤풀이가 이어지면서 초짜들은 더 이상 서로에게 초짜일 수 없었다. 현장에서의 외로움, 거기서 비롯되는 막막함 등이 서로를 함께 있게 했고, 함께 있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함께 가슴 아파했다. 일명 함께의 딜레마였다. 세미나라는 형식에 억눌렸던 어눌하되 솔직한 의견들도 뒤풀이의 성과라면 성과였다. 지나친 이론적 탐구에 대한 비판에서 새롭게 구성된 5기였건만, 이론학습에 대한 갈증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어두컴컴한 술집에서 반짝거리며 술잔들이 부딪히는 사이 지구는 꽤나 많은 운동을 했고, 눈앞엔 팔월이 있었다.


6기야 6기야


대학평준화를 골자로 한 공교육 개편안을 끝으로 5기 초짜세미나는 막을 내렸다. 막 내린 텅 빈 무대는 아쉬움과 그리움의 적절한 배치를 낳았다. 초짜세미나는 스포츠 분야의 신인왕처럼 두 번 경험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그런 까닭에, 세미나 끝난 지 두 달이 되어가건만, 조금만 더 열심히 할 걸, 하는 결코 채울 수 없는 아쉬움이 끊이질 않는다. 초짜세미나가 끝나도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세미나가 끝나면서 고민은 시작된다. 새롭게 시작되는 고민을 함께 담고 버무릴 수 있는 그릇이 연구소 안에 있으면 지금의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초짜세미나 자체에 대한 아쉬움 몇 가닥도 여기서 함께 풀어야 할 것 같다. 간사 개인의 역량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 세미나방식, 자료집 구성시 정세 파악과 이론 탐구를 병행할 수 있는 방식, 세미나 참가자들의 세미나 참여도를 높임으로써 늘어가는 빈자리를 최소화시킬 수 있는 방식 등에 대한 고민을 통해 1년 후 6기의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으면 좋겠다.


지하철 4호선 숙대입구역은 이제 진보교육연구소라는 새로운 기억의 옷을 입게 되었다. 물론 지하철역에서 연구소로 가는 길은 대단한 지각변동(?)이 있지 않은 이상 여전히 싸늘할 것이다. 사월의 싸늘함이 얼마나 모순적인 감정인지 굳이 확인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내년 6기 초짜세미나를 강력 추천한다. 연구소의 눅눅한 문간방 살림도 당분간은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연구소를 둘러싸고 있던 싸늘함과 눅눅함은 이제 낯익은 무엇이 되었고, 그렇기에 더 이상 '초짜적'이지 않게 되었다. 기억의 공간에서 낯익음은 관계에 대한 그리움을 낳는다. 연구소 주변의 싸늘함과 눅눅함, 그 사이사이를 채웠던 사람들, 이 모두가 새로운 관계, 종종 그리워해도 좋을 관계로 남았고, 그 속에서 나는 변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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