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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 특집_교육담론 지형 변화 분석

2003.11.07 15:03

jinboedu 조회 수:1331 추천:5

교육담론 지형 변화 분석

교육담론 지형 변화 분석

 

특집팀

 

1. 담론, 담론지형, 담론투쟁

 

모름지기 사회라는 공간에서 유통되는 인간의 말이나 글은 무의미한 소리나 철자의 단순한 조합으로 치부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내뱉거나 글로 쓰여진 '언어'들은 거의 대부분 자신이 처한 정치적 입장과 사고의 방식들 그리고 사회적 힘의 관계가 스며있다. 말이나 글이라는 '평범한' 말 대신 '담론'이란 용어를 굳이 사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수년간 떠돈 교육에 대한 말이나 글들 역시 그 자체로 사회적 상황이나 주체의 생각을 반영하거나 역으로 그것을 다른 방향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 속에 있었다. 따라서 그러한 '교육담론'을 생산하는 주체(개인이든 집단이든)와의 관련과 사회적 맥락 - 정치적 함의, 계급성의 반영 -  속에서 의미를 파악하고 그것이 갖는 정치적 효과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또한 말은 '주고받는 것'이며 '대상이 있는 것'이다. 계급 계층적 위치, 그 속에서 정치적 입장이 상이한 집단들은 나름대로 '교육'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고 그것은 '다툼'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특히 지배집단의 담론 생산자들은 물적 토대에 기반하는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대중'들을 포섭하고 현혹시키기 위해 가공하고 공세를 펼쳐 교육을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만들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댄다. 여러 담론들은 사회적 힘의 관계를 반영하고 때로는 그것에 영향을 미치면서 형세와 흐름을 이루는데 이것을 '담론지형'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물적토대가 탄탄한 지배세력이 언론과 의회, 정치권을 장악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지배세력이 담론지형에서도 우위에 있게 마련이나, 지배세력이 사람들의 머리에 특정한 상식을 주입하고 동의를 획득하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시장주의 담론이 수년간 유포되면서 알게 모르게 공교육에 대한 상식은 상당히 많이 변화해온 것이 사실이다.

지난 수년간 교육 부문에서 치열하게 맞붙은 담론은 신자유주의의 교육시장화론과 진보진영의 교육공공성 강화론이다. 그리고 자유주의 담론이 일정 정도의 지위를 갖고 있었다. 시장화론과 공공성 강화론은 절충이나 타협이 가능치 않은 대립물이다. 지금도 이 둘 사이의 쟁투는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어느 쪽이 승리하느냐가 앞으로의 교육의 향방을 가름할 것이다. 민중교육권 쟁취의 길로 나아가느냐 긴 암흑기의 도래냐. 공공성강화론은 시장화론에 대해 다소 '수세적인 입장'에서 시작되었다. 공공성 강화 진영은 시장화론의 본질을 밝혀 폭로하고 비판하는 것에서 차츰 공공성강화론을 민중, 진보진영의 대항담론이자 대안 담론으로서의 구체화시켜 나갔다. 두 담론은 일정한 변화를 겪어 왔고 두 담론간의 대립 지점도 상승, 확대되었다.

 

2. 교육시장화담론의 변화추이

 

시장주의자의 담론 제출 방식을 접하다보면 마치 아무거나 다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를 연상케 된다. 교육에서 벌어지는 어떤 사태든 "시장원리 도입"이란 예정된 해법의 제시로 치닫기 일쑤다. 시장주의자들이 평준화 해체를 주장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무슨 일만 터지면 "교육이 문제다"라는 식으로 호도하는 오랜 전통이 우리 사회에는 전해져오고 있다. 시장주의자들은 이런 방식을 능란하게 구사한다. 사교육 문제든, 학력의 하향화든, 심지어 집값문제와 교육의 형평성 훼손도 '평준화 탓'이라 책망하며 해체를 주장한다. 이들의 논리는 논리적 근거나 현실적 근거가 취약해보여도 우습게 볼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몇 년 전 만해도 '감히 할 수 없는 소리'들이 요즘엔 아무렇지도 않게 튀어나오는 걸 보며 가슴이 서늘해질 때도 있다. 어쩌다가 이런 '막가파식 발언'이 가능해졌을까? 아마도 시장주의자들이 기득권층(뭐, 그 밥에 그 나물로 학연, 지연, 혼연으로 똘똘 뭉쳐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자들이지만...)과 합세(시장주의 지배연합이라 부를 수 있겠다)하여 벌인 수년간의 '시장주의 담론 들이밀기'와 '정책 주도권 행사'로 인한 지형 상의 변화가 오늘날 '막말' 정국의 배경인 듯하다.  

따지고 들면, 이건 자연스럽게, 필연적으로 그리 될 수밖에 된 것이 아니라 강한 의지 속에서, '투쟁' 속에서 벌어진 결과물이다. 신자유주의 시장화 정책은 몇 년간에 걸쳐 교육을 총체적으로 바꾸는 '패러다임' 수준의 담론을 형성해 왔으며, 그 내에는 일관된 논리의 고갱이가 있고 그 논리를 대중용 어법으로 바꾸어 외쳐대고 을러댄 작업이 병행되었다. 그리고 담론의 대대적 유포와 진정한 개혁 세력에 대한 과감한 공격을 통해 '정책적 힘'으로 전화시켜 '대세'를 만들어내곤 했다.

 

1. 기본틀 : 효율과 경쟁, 자율, 다양성과 선택

 

신자유주의는 국가의 복지 기능을 축소하고 공공재정의 축소를 지향하는데 사유화, 상품화 전략을 통해 이를 실현시키고자 한다. 곧, 사회 전 분야에 시장적 질서(사적소유, 소비의 확대, 모든 것의 상품화)를 확대시켜 시장 영역을 확장하려 한다. 시장화의 동력을 일구는데 강력한 역할을 하는 이데올로기는 '효율성'이며 이는 '관료주의'를 공격하는 주요논리가 된다. 효율성이라는 경제적 잣대를 최고의 가치로 전제한 후 공공부문의 공급-소비 방식은 효율성을 저하시킨다고 단정한다. 그리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이유를 '경쟁'이란 시장원리의 부재와 연결시킨다. 관료주의적 체제 하에서는 공급자간 경쟁 없이 제공되므로 소비자의 요구에 대단히 둔감하거나 무시가 일어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공급자 내부 혹은 공급자 간 경쟁' 기제를 도입해야 이런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의 목표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자본의 요구와 교육의 연계성을 강화하는 것으로서 철저히 교육을 경제적 요구에 종속시키고자 한다.(경제우선주의는 교육개방 문제에서 절정에 달하고 있다.) 공교육을 평등성, 민주성, 공공성을 중심으로 틀을 짜고 운영하는 한 경제적 요구의 직접적 관철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끊임없이 교육이 경제적 요구를 직접 수용하도록 만들려고 한다. 이런 목적은 대학 재편에서 보다 중요하게 부각된다. 다른 하나는 교육을 통한 이윤의 추구이다. 이 역시 교육을 '공적'으로 관리 운영하는 한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기존의 공교육 제도를 공격한다. 여기에 상층의 '분리욕구'를 자극하면서 '갈라치기' 교육을 시도한다. 일부에게만 그 혜택이 돌아갈 수밖에 없는 선택과 다양성의 논리로 바로 이런 욕구를 자극하면서 재편의 동력을 확보하는 방식을 취한다.

 

2. 담론/정책 흐름

 

현재의 교육담론과 정책을 규정하는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교육재편이 본격화된 시기는 김영삼 정부 때이다. 뒤이어 집권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 있어서도 정책 노선의 근본적인 변화는 없었으나, 각 정권의 국정지표나 대국민 동원 이데올로기에 대한 강조점에서는 다소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1) 김영삼 정부 : 토대 마련기

1995년 5.31 교육개혁안이 발표되어 대대적인 '교육개혁'의 분위기를 몰고간 때이다. 이때를 교육에 있어서의 신자유주의 재편의 출발기로 볼 수 있다. 기존의 교육을 공급자 중심이라 규정하고 앞으로의 교육은 '수요자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천명하였다. 과거 정부에서 보였던 '입시위주 교육의 변화', '대입제도의 개선' 등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신교육체제'라고 스스로 명명했듯 '교육체제의 변화'를 꾀하는 교육질서의 본질적 변화를 염두에 둔 개혁논의였다. '신교육체제'의 수립을 위해 소비자 주권론, 경쟁력 강화론이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선전되었고 '자율과 경쟁', '다양성과 선택'이라는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의 기본구조와 연관을 맺는다. 경쟁력 강화론은 국민 통합 및 동원 이데올로기로서의 성격을 가지는데 온 국민에게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군소리없이 이 대열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소비자 주권론'은 기존의 교육에 대한 폭넓은 불만을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의 지지로 만들기 위한 대중 선동용 수사이자 공교육의 기본 성격을 재규정 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담론이다. 5.31교육개혁안은 교육개혁의 추진원칙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교육의 수월성을 신장하기 위하여 각급학교 운영에 자율과 경쟁의 원리를 도입하는 한편, 소외계층과 지역을 위해서는 형평성이 확보되도록 하면서 체계적인 평가를 통하여 교육의 질이 관리되도록 한다. (강조는 필자)

'수월성', '자율과 경쟁' 등은 이후 교육질서의 재편방향을 예고하는 것으로서 경제 이데올로기가 교육부문의 정책논리로 적극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는 공교육에 대한 재개념화나 마찬가지 시도로서 공교육이 사회적 기본권으로서의 교육권을 보장해주기 위한 장치로서보다는 경제적 성격을 갖는 기구의 하나로 그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이 시기에는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의 기본논리구조와 재편의 밑그림이 마련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대적 이데올로기 작업을 병행하면서 신자유주의 재편의 동력을 확보한 시기였다. 1997년 교육개혁 추진상황에 대한 교육부의 자체 평가 문서에서 서술되어 있듯이 97년 중에 교육개혁 추진 기반인 법적, 제도적 기반 구축 완료를 중심계획으로 설정하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는 '평가'를 통한 현장통제기관으로서의 성격을 갖는 교육과정평가원과 공교육의 직업교육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한 직업능력개발원 관계법령 정비되고 기관이 설립되었다. 학교 현장에서는 민주적 장치인 듯 보이는 학교운영위원회제도가 도입되어 '소비자 주권'을 확대시키는 정책이 추진되었다.

교육개혁의 필요성을 설파하는데 사용된 논법은 한국교육현실에 대한 거센 문제제기였다. 당시의 개혁 담론에서 기존의 공교육은 주요한 타격의 대상이었다. 공감할만한 수사법으로  한국교육의 문제점을 전면에 내걸었다. 문제의 원인을 '공급자 중심의 체계'에 있다고 진단하고 '선택'과 '자율', '다양', '책무'를 강화하는 시스템이 그 해답으로 제시되었다. 이런 해석은 자세히 뜯어보면 시장주의적 해법을 개혁방안으로 설정하는 것이었지만, 문제제기에 대한 공감은 개혁방안에 대한 교육운동 진영의 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특히, 자유주의적 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방향에 대한 전반적 지지를 표명하는 모습이었다.   

당시의 개혁 담론에서 주목할 지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시대 변화를 이전 시기와 단절되는 것으로 규정하였다는 사실인데, '세계화', '정보화' 담론의 대대적 유포가 그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세계화'를 떠들고 다녔으며 무한경쟁 시대의 '살아남기' 전략으로서 '경쟁력 강화'라는 경제이데올로기를 전 국민에게 주입시키려는 시도를 했다. 당시 시대 흐름을 '문명사적 변화'라 하면서 세계화, 정보화 시대(지식기반사회)라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 변화에 적응하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대대적 교육개혁이 불가피함을 강조했다. 그런 전반적인 기조 속에서 기존의 공교육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낡은 것'이며 관료주의의 폐해를 노정해온 획일적이고 질 낮은 교육'이라 규정하며 기존의 교육에 대한 공격의 강도를 높여 대중적으로 교육개혁에 대한 동의를 획득하고자 하였다.

둘째, 교육부문에서 특히나 중요하게 취급되어야 할 것으로서 '교육권'에 대한 재해석이 '자본'과 '부유층'의 입장에서 처음 시도되어 대중적으로 확산되었다는 점이다. 교육권을 '자유권' 내지 '소비권'으로 해석하였고 이로 인해 교육 주체간의 대립이 조장되었다. 그 논리는 교육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을 해소하려면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교육의 틀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였고, 대중을 선동하기 위해 동원된 수사가 자율, 다양, 선택의 강조였다.

셋째, 이후 추진될 교육재편의 밑그림만 구상한 게 아니라 '제도적 기반'도 마련했고 학교운영위원회, 종합생활기록부 도입 등이 이루어졌다. 법적 정비라든가 교육정책 담당 기관의 정비가 이때 본격적으로 이루어졌고 이것이 이후 개혁정책을 추동하는 바탕이 된다. 김영삼 정부가 야심적으로 내놓은 5.31교육개혁안은 과거에 정부의 교육개혁안에 견주어볼 때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교육재편의 내용을 담고 있다. 초중등은 물론 고등교육과 평생 교육 등 교육의 전 영역을 총 망라하여 3차에 걸쳐 개혁안을 발표하였다. 이것을 담당한 것은 대통령직속 자문기구인 "교육개혁위원회"로서 당시 교육학계의 주요인사가 대거 포진해 있었다.

김영삼 정부 때의 교육담론, 혹은 개혁담론에서는 아직 '자본'으로의 편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 상태였고 개혁안 작업에 참여했던 인사들도 대부분은 교육계 인사들이었다. 이들은 열심히 영미의 교육개혁모델을 수입해서 전파하고 교육개혁의 논거를 만드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그리고 '개혁정책'은 현장에서 관료와 교사들의 은근한 저항에 부딪혀 지지부진한 듯 했고 피로감을 몰고오는 개혁에 대한 불만이 존재했었다. 당시만 해도 '그런다고 수십년동안 안 바뀐 한국의 교육이 과연 바뀌겠어'라는 심리가 있었다. 그러나 이후 전개된 상황은 김영삼 정부 때의 작업들이 '헛짓'은 아니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2) 김대중 정부 : 체계화, 구체화기

김대중 정부는 출범하면서 '민주적 시장경제론', '생산적 복지'를 국정지표로 천명하며 신자유주의적 노선의 물타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4대부문 구조조정 등 신자유주의적 사회재편이 이 시기에 대부분 추진되었다. IMF구제금융과 동시에 출발한 김대중 정부는 '살아남기' 이데올로기를 여전히 사용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 만들어진 '사회재편'의 밑그림을 그대로 이어받되 시장주의적 교육 개혁 노선은 보다 정교해지고 노골화되었다. IMF사태이후 대대적 구조조정 국면을 거치면서 경제 이데올로기는 더욱 강화되었고 공공부문 전반 및 그 내의 교육부문의 경쟁기제 도입 논리도 강화되는 양상이었다.  신자유주의 교육재편 논리를 하나의 완결된 구조를 갖춘 패러다임 형태로 제시하였다. '신지식인론'이란 형태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교육과정 및 교수-학습이론에서 구성주의를 주요한 이론적 근거로 활용하였다. 김영삼 정부시기에 '학습자 중심'이라든가 '열린교육' 등 이론적으로 체계화된 형태보다는 정치적이고 감각적인 개념을 그대로 사용하던 것에 비하면 이론적으로 정교화하여 기존의 교육실천들을 '낡은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힘을 갖추려는 것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교육부를 교육인적자원부로 개편한 시기이기도 하다. 교실붕괴, 학교붕괴로 이슈화된 공교육의 위기 상황을 선정적으로 활용하면서 신자유주의 개혁의 근거로 삼으려 하기도 했다. 붕괴의 원인 분석을 책임론으로 연결하면서 학교체제와 교사를 공격하고 공교육의 축소 혹은 시장적 재구조화를 주장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던 것이 그러하다.

김대중 정부 시기의 개혁담론의 특징은 '지식'과 '인적자원'을 경제적 잣대를 들이대어 크게 강조했다는 점이다. 본질적으로 '지식'과 '인간'을 다루는 행위인 교육정책이 이의 영향을 안 받았을 리 없다. 당시 두드러졌던 사건으로는 신지식인 담론이다. 교육학자를 동원하여 신지식인론을 체계화하고 신지식인을 선정하는 등 대국민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김대중 정부의 선전멘트로 활용했다. 한편, 신지식인라는 용어로 신자유주의의 경제적 인간상이 제시되고 대중적 홍보, 캠페인이 진행되었다. 신지식인론은 신자유주의의 이념적 수준을 사회역사관과 인간관의 수준으로까지 확대, 심화한 것으로서 앞선 시기의 정보화, 세계화 시대의 자율적, 창의적, 도덕적 인간상이라는 다소 애매한 표현보다 경제 중심성을 분명히 드러냈다. 그밖에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 갈 수 있다'는 말로 대중을 현혹시키면서 학교현장을 혼란에 몰아넣었을 뿐 아니라 이는 보편교육의 기본 성격과 위상을 왜곡시키는 효과를 나타냈다.

한편, 교육은 인적자원개발을 위한 것이라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실행에 옮겨진다. 물론 이것을 뒷받침하는 담론은 김영삼 정부 때부터 등장한 지식기반사회라는 사회상에 대한 규정이었다. (육체노동이 아니라) 지식이 이윤창출의 중요한 기반이라는 논거가 그 바탕에 깔려 있다. 한국이 무한경쟁의 세계 경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식강국, 인적자원강국으로 거듭나야 하며 그러기 위해 교육은 '신지식인'이라는 경제적으로 효용성있는 인간을 이상으로 설정해야 한다는 논리가 유포되었다. 이런 논리에는 보편 교육의 역할과 기능을 근본에서부터 선회시킨다는 의미가 있다. 또한 이 사회가 누구에 의해 움직이고 어떻게 발전하는가라는 점에 있어서 다수의 성실하고 이름없는 노동자보다는 돈벌이에 기막힌 재능을 발휘하는 빌게이츠나 박찬호, 박세리 같은 인물이 더 중요하다는 세계관과 인간관이 내포된 것이었다. 따라서 공교육은 '평범한 민주시민'을 기르는 일보다는 80을 이끌 20의 엘리트를 위해 재정비되어야 마땅하다는 논리가 숨어있었다. 요컨대, '인적자원개발'을 교육의 기본 기능으로 표방했고 이로써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의 본질이 외연화되었다. 소비자 주권론에서 말한 소비자가 결국 기업과 자본이고 선택권을 누릴 계층은 부유층에 불과함이 정책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 셈이다.

김영삼 정부 때에는 '해결해야 할 교육문제가 많다'가 대중들에게 강조되는 개혁론의 외연이었다면 김대중 정부에서는 교육의 그리고 인간의 경제적 기능과 활동이 전면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과거 교육의 문제 해결'보다는 '미래지향적인 교육개혁'이 김대중 정부시기의 교육개혁 컨셉이었던 셈이다. 1999년 발표된 교육발전 5개년 계획안 서두에 "교육이 변해야 미래가 보인다"를 큰 글씨로 강조하고 지식기반사회 도래의 불가피성과 그에 따른 교육의 대대적 변화의 불가피성을 정당화한다. "창조적 지식기반국가를 주도하는 교육"으로 교육의 경제 종속 제도화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김영삼 정부 때 "인성과 창의성을 함양하는 학습자 중심의 열린교육 확산"이라는 식으로나마 교육개혁안에 '교육적 가치'를 의식한 말들을 앞에 놓은 것에 비해 교육이라는 행위에 있어서의 '경제적 가치'가 노골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한다.

이데올로기와 논리, 이론적 근거 확보 뿐 아니라 정책의 입안 및 추진도 이전 보다 진전되는 양상을 보였다. '경쟁력 강화' 정책이 고등교육에서 시행된 것과 더불어 보편교육단계인 초중등 교육의 틀을 바꾸는 일이 진행되었다. 초중등 단계 보편교육개념의 재규정이 실제로 제도화되기 시작하였는데, 학교정책, 교육과정정책, 교원정책 등 각 영역에서 구조조정 정책이 구체적인 일정 속에서 추진되었다. 7차 교육과정, 성과급, 자립형 사립고, 자율학교 도입, 등의 초중등구조조정 정책이 시행된 것과 더불어 대학의 구조조정은 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대표적으로 BK21이 시행되어 이후 고등교육 재편의 중심 논리가 선택과 집중에 있음이 드러났다.

한편, "소비자 주권"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 대두된 점을 인식하여 "교육공동체"라는 물타기식 담론을 도입하기도 했다. 이전 정권과의 차이점을 부각하기 위해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하겠다 강조하면서 온갖 사람들을 개혁의 주체라고 떠벌였다. 정부가 주도하는 개혁이 아니라 '민간'이 함께 참여하여 개혁의 양대 세력으로 자리잡아야 한다고 이야기한 속내는 사실상, 자본의 이해를 교육개혁에 반영할 틀을 갖추기 위한 수사에 불과했다. 사실상, 새교육공동체위원회라는 이름에도 사용된 교육공동체 개념은 '학생, 학부모, 교사'를 중심에 세우고 이들이 개혁의 주체가 된다는 점이 중요했던 게 아니라 사실은 그 외의 집단 이른바 '민간'을 교육개혁의 주도세력으로 포괄하기 위해 동원된 수사에 불과했다. 산업체, 지역 및 시민사회, 정부를 모두 포함시킴으로서 사실상 기업과 자본의 이해와 상층의 계층적 이해 관철을 위한 시스템을 공동체라는 말속에 희석시킨 셈이다. 김대중 정부의 이러한 구상은 2001년부터 노골화된다. 교육인적자원정책위원회(인자위)가 구성되었고 국가인적자원국가인적자원개발 기본계획이 발표되었다. 교육부는 교육인적자원부로 승격, 개편되었다. 한편, 2001년부터 평준화에 대한 공격이 거세진다. 해체 담론이 노골적으로 등장한 시기가 바로 이 시기이다.  평준화 해체의 논거로 선택권 확대를 위한 다양성 제고 뿐 아니라, 평준화가 교육의 형평성을 훼손한다는 논리까지 가미하여 KEDI(한국개발연구원)이 선봉에 서서 유포하기 시작했고 이후 정치인, 관료 등은 줄줄이 고교평준화 해체론을 쏟아냈다. 자립형 사립고 도입 등을 통한 평준화 해체가 만만치 않았던 탓도 있겠다. 평준화 해체론은 노무현 정부 들어서 분권화, 개방화 담론, 우경화 흐름과 결합하면서 급물살을 타고 있다.

 

(3) 노무현 정부 : 시장화 + 개방화 + 분권화의 총체화기

노무현 정부는 동북아중심국가론, 2만불시대를 떠들며 시작했다. 로드맵이 홍수를 이루고 TF팀이 난립해 있다. 노선과 방향이 김대중 정부와 하등 다를 바 없는 노정권이기에 '말빨'로 새로운 듯한 인상을 주려는 것에 불과하다. 교육담론에서는 김대중 정부의 노선을 계승하되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을 완결하기 위해 기존의 시장화 담론의 기본 뼈대에 개방화 + 분권화 담론을 결합하면서 시장화+개방화+분권화로 시장화론을 총체화하고 있다. 개방화, 분권화 담론은 시장화 담론의 취약성을 보충하면서 시장화의 동력을 확보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수년간 진행된 신자유주의 개혁의 폐해가 현실에서 드러났고 노동자, 민중의 저항에 부딪히면서 기존의 시장화 담론만으로 더 이상의 시장주의적 개편을 밀어붙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잠시 잠깐이나마 대선 공약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 보였던 '복지'와 '개혁' 컨셉은 완전히 실종되었으며 김대중 정부 때보다도 시장화 공세를 강화하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국면에서는 개혁적 인사에 대한 배제가 철저하지 못했고(혹은 정권 초기라 철저할 수 없었고) 개혁 인사가 일부 포진된 상태에서 작성된 정책보고서를 통해 '개혁'에 대한 기대를 잠시나마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관료의 저항과 우익의 집권 프로젝트 발동, 김대중의 신자유주의 정책 노선을 자발적으로 따르는 노무현 정권의 특성상 개혁 실종은 빠른 시기에 가시화되어 급속한 우경화의 길을 걷고 있다.

지난 4월 대통령 주재 하에 열린 2003년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의 업무보고 당시 윤덕홍 교육부총리는 참여정부 교육정책의 기본방향을 "초중등교육의 공공성 제고", "대학교육의 경쟁력 강화"로 설정하였다고 밝혔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초중등교육에서 공공성이 중요함'을 부정하진 않았다. 10월 현재, 노무현 정부의 교육정책 기본방향과 추진전략의 실체가 분명히 드러났다. 상반기 노무현 정권이 보인 행보만으로도 '개혁 실종 흐름'을 읽기는 충분하지만, 초중등교육에서 공공성을 운운한 것조차도 얄팍한 립써비스에 불과했음이 드러나고 있다.

현재 교육정세의 흐름은 신자유주의 교육시장화정책의 총체화다. 지난 수년간 시장논리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온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은 지난해부터 개방화, 분권화 방향과 원리를 더하기 시작했으며 올해 들어 노정권의 급진적 신자유주의 정책 속에서 총체적으로 전면화되기 시작하였다. 지난 3월 교육개방 양허안을 제출했고 경제자유구역 시행에 들어갔으며, 분권화의 경우 교원 지방직화를 일단 유보했지만 2004년 말로 시한을 정하면서 연일 교육정책의 지방이양 방침을 쏟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특구를 통한 교육개방의 권한도 지방에 주어지고 있다. 현재 노무현 정권이 추진하는 지방분권은 공공부문 축소가 기본방향인 시장주의적 분권화(신자유주의 정책기조의 하나가 공공부문 축소를 의미하는 '작은 정부'와 결합된 '지방화, 분권화'임)이다. 시장주의적 분권화는 공공부문의 유지/강화, 기본권 보장과 관련된 국가권한을 지방으로 넘겨주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지방단위를 경쟁의 주체로 나서게 하여 자연스럽게 공공부문 민영화, 기본권보장과 공공복지 축소를 유도한다. 개방화와 분권화는 현시기 교육시장화 정책의 주요한 형태이며 대학구조조정과 교과구조조정 등 개방화, 분권화와 별개의 시장와 정책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한마디로 그간의 시장화 정책이 현단계에는 시장화, 개방화, 분권화의 총체적 공세로 전개되고 있다. 그 귀결은 국가차원의 교육권보장과 공공성 확보의 책임과 권한구조가 파괴되고 국제교역 차원의 교육시장화, 지자체 단위와 개별 교육자본이 시장적 경쟁주체로 나서게 되는 전면화된 시장적 교육질서 재편을 의미한다. 그것은 곧 공교육과 민중교육권의 무덤에 다름아니다.

지금 정부 내에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완결을 자임하는 경제 엘리트와 이기적 욕망으로 똘똘 뭉쳐 공교육에 계급적 구획을 그리고자 하는 기득권 층이 정책 주도 세력으로 자리를 잡은 듯하다. 전성은이라는 자유주의적 개혁을 상징하는 듯한 인사를 위원장으로 기용하며 출발한 교육혁신위원회는 실질적 힘을 거의 발휘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신자유주의 교육 재편 노선의 '물타기' 용도로 활용될 소지가 크다. 아직 별다른 활동조차 없으며 '듣기에 그럴 듯한 말'만 늘어놓는 위원장 및 위원들의 면면으로 볼 때 혁신위에 기대를 거는 건 어리석다. 교육개혁추진기구를 구성해야겠기에 구색맞추기용으로 설치한 기구에 불과한 수준이며 정부 내에서도 정책 주도권은 경제 관료와 시장주의자 쪽으로 넘어가 있다. 지금은 학원단지조성 문제와 평준화 문제에서 교육인적자원부와 재경부가 갈등을 겪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이미 교육정책에 대한 주도권은 재경부 관료 쪽으로 기운 듯하다.

담론은 현실성을 상실할 때 그 영향력도 같이 잃을 수밖에 없다. 신지식인론이 위력을 잃은 것도 따지고 보면 신지식인 만들기 캠페인이 현실 속에서 '거짓'임이 드러났기 때문인 것이다. 시장주의자들이 교육에서 개혁몰이를 시작하면서 대중들에게 유포한 '에듀토피아'는 객관적 현실 속에서 거짓임이 드러났다. 시장주의 정책의 패해가 가중시킨 공교육 위기와 모순은 시장화 담론의 위력을 반감시켰기 때문에 더 이상 기존의 '자율, 다양, 선택' 등등의 대중선동용 수사는 더 이상 설득력있게 다가서지 못하는 상황이다. 또한 민중, 진보진영의 대응으로 그 허구성과 기만성이 폭로되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이렇듯 기존의 시장화 담론만으로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의 추진동력이 확보되지 않자 현재 적극적으로 결합되고 있는 것이 개방화, 분권화 담론과 그 정책들인 셈이다.

 

3. "공공성강화론"의 등장과 발전, 그리고 전선의 변화

 

80년대 그리고 90년대를 경유하면서 교육운동의 중심방향은 교육민주화와 참교육이었다. 이는 비민주적이고 억압적인 교육현장에 대한 문제의식의 발로였으며 교육시장화라는 흐름이 형성되기 전이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교육운동의 기본방향과 노선은 '민중교육권'에 입각한 본질적 성격의 것이었다기 보다는 '자유주의' 교육담론의 성격에 가까운 것이기도 했다. 이후 교육시장화 물결이 몰아닥치면서 교육운동의 중심방향은 민중교육권 쟁취, 교육공공성 강화, 평등교육실현 등으로 가닥을 잡아왔다.

현재, 공공성 강화 진영이라 부를 세력은 전열을 채 정비하기도 전에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의 공세에 직면했다. 김영삼 정부의 교육재편 구도가 시장주의적 노선임이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못했고 교육운동 진영 내부에서도 혼란을 겪었다. 이는 아마도 앞서 살펴본 대로 김영삼 정부 때의 교육시장화 담론에 여러 가지가 혼재된 상태였고 '교육문제의 해결'이라는 중차대한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일 터였다. 그래서 교사평가를 강화하고 정년단축을 실시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등장했을 때도 그 대응은 근본적으로 일관된 방향과 논리를 갖추지 못한 채였다. 교육부문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담론 투쟁이 하나의 체계적 틀로 전개되기 시작한 것은 1997년경부터이다. "신자유주의와 한국교육의 진로"라는 저서를 통해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의 논리와 개혁안의 성격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출하는 계기였다. 이처럼 시장화 담론에 대한 공공성 강화 진영의 대응은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폭로, 비판하는 데에서 출발하였다. 비판담론의 제출은 시장화담론에 대한 공격의 의미도 있으나 더 크게는 교육운동 진영이 정부의 교육재편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결여하고 있는 상태에 대한 정비의 성격이 강했다. 교육운동에서 반신자유주의 투쟁 전선을 강화되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정부 들어서 신자유주의 정책노선이 보다 분명해진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이 때는 주로 개별 사안에 대한 대응, 저지투쟁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상태였고 '교육평등'과 '교육공공성'이 투쟁의 주요 슬로건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성과급 반납 및 7차 교육과정 저지를 위한 대중투쟁의 과정에서였다. 그러나 공공성 강화 담론은 아직 체계화되고 정비된 성격은 아니었고 단어를 제시하는 수준이었다. 교육공공성 개념은 상당 기간 '국가주의'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개념적으로 완비되고 대안담론으로서 위상을 확보하기에는 부족했다. 이에 대한 개념화 작업과 공공성, 민주성, 평등, 복지 등을 핵심 개념으로 하는 새로운 교육시스템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2002년 부터였고 현재는 WTO교육개방저지와 교육공공성실현을 위한 범국민교육연대의 공교육 개편 사업이 전개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는 시장주의세력이 시스템 재편 수준의 교육논의를 전개해 앞서 전개해 온 것에 비해 늦은 출발이지만 민중 진보 진영의 교육시스템 재편 요구를 처음으로 제기하는 만큼 그 실천적 의의가 크다.

 

4. 시장주의 지배연합 對 공공성강화 범민중진영, 진검승부를 펼칠 시기

 

현재,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추진으로 만들어진 공교육의 위기(=교육공공성의 파괴)는 많은 이들에게 패배감과 대세론적 인식을 심어놓았다. 많은 사람에게 고통의 이유가 될 만큼 교육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된 가장 핵심적 원인이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있고 따라서 방향 선회 없이 고통의 해결은 가능치 않음에도 시장주의적 개혁론자들과 기득권층은 '더욱 더 철저한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맘놓고 떠들어대고 있다. 최근에 일파만파로 확대되고 있는 평준화 논란(수정, 보완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상은 전부 해체론이나 마찬가지)은 지난 수년간 평준화를 사실상 흔드는 학교정책들(자사고, 특성화고, 특목고 확대, 부분적인 선지원 후추첨 시행 등)이 평준화의 기반을 상당부분 잠식해 들어왔고 사람들의 머릿속에 '선택권 확대'의 환상을 심어준 결과다.

 

1. 시장주의 지배연합 적자(嫡子)의 전면 등장

 

김영삼, 김대중 정부를 거쳐 노무현 정부에 이른 지금, 시장화 담론 생산의 중심부위 이동 방향은 예의 주시할 일이다. 결론적으로, 교육정책과 담론의 중심지점이 교육계 자유주의자, 신자유주의자로부터 재계와 기득권층으로 이동했다. 지금 시장주의 담론을 주도하는 세력은 신자유주의의 '적자'들이다. 각 정권이 설치한 위원회의 인적 구성에서도 이것은 분명하다. 김영삼 정부시절 교육개혁위원회에서는 교육계 인사가 주로 활약했다. 이들은 '공공선택론'에 기반한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의 논리를 먼저 시행한 영미식 교육개혁방안을 수입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후 재편의 기본골격을 이루는 학교정책, 교원정책, 행정정책 등을 구성하였다. 그래도 이들은 '순수한 편'에 속한다. 한국교육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장적 해법'의 도입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여겼고, 아직까지 이들 사고의 중심은 '교육문제'였다. 김대중 정부 초반에 구성되어 활동한 새교육공동체위원회의 기본틀은 민간과 정부가 결합하는 틀이었다. 여기서 방점을 찍을 곳은 교육문제를 교육관계자들만 논의하는 게 아니고 교육개혁 추진은 교육관료와 교육인사만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이후 인자위로의 이동을 위한 사전 포석이나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교육부를 교육인적자원부로 개편되었고 교육인적자원정책위원회가 설치되었다. 인자위에는 경제학자, 재계 인사가 다수 포진하는 구조였다. 올해 불거진 판교 신도시 학원단지조성, 외국교육기관 설립, 교육특구 지정, 강북 특목고 확대 등 현안에 대한 발언은 교육인적자원부가 아닌 딴 데서 나오는 형편이다. 사실상, 네이스에 대한 결정권은 국무총리실로 넘어갔고 교육개방은 재정경제부와 외교통상부, 지방대 육성방안은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몫이다. 이제 교육개혁담론에서 경제담론의 우위성은 노골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담론이 생산만 될 뿐 '유통'되는 구조를 갖추지 못하면 그 영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담론생산 부위 뿐 아니라 눈여겨봐야 할 것은 담론이 어떻게 가공, 유통되어 대중들의 '상식'으로 자리잡는가의 과정이다. 시장주의 세력은 담론 형성·유통 과정에서 체계적으로 역할을 나누어 맡고 있다. 미리 짠 각본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의 시스템을 통해 담론지형을 주도해 들어가고 대중들의 머릿속을 장악해 들어가는 작업을 일상적으로 진행한다. 정책연구기관, 학자집단, 정부 부처의 관료들은 정책을 생산하고 정책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는 역할을 맡는다. 조중동 등 보수언론은 교육에 대한 기획기사 및 논설 등을 통해 정책담론을 대중적으로 윤색하고 보수적 정책 추진의 분위기를 조성해 나간다. 시민사회의 보수 우익적 부위와의 파트너쉽 구축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이들은 어떤 계기가 주어질 때마다 대단히 빠르게 결집해 전방위적 이데올로기 공세를 펼치면서 대응세력을 위축시키고 대대적 여론몰이를 통해 담론지형에서의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고자 한다. 신자유주의 교육정책 추진 과정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나타났다. 학교붕괴론, 평준화 흔들기, 보성초 사건을 악용한 전교조 죽이기에서 나타난 행태가 그러하다.

 

2. 노동자, 민중이 주체가 되어 교육시장화 세력에 맞서야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의 본질을 파악하고 이어진 사안별 대응투쟁에 이어 반 신자유주의, 반WTO로까지 교육운동의 전선이 확대, 상승되고 있다. 교육에 대한 시장화, 개방화 전략은 자본의 생존과 사회지배를 위한 교육재편 전략에 다름 아니다. 지난 8년 간의 시장화담론의 변화 추이로부터 현재 교육재편의 흐름이 단지 교육에 국한된 문제가 아님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그리고 시장주의자들은 이제 '당사자'들이 나서서 교육의 재편 방향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자본은 '산업수요에 부응하는 교육',  '교육이 경제를 망치고 있다', '평준화를 제고해야 한다'는 식으로 자신들의 교육에 대한 욕망(계급분리 욕망과 자본에 의한, 자본을 위한 교육 종속)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 교육을 두고 계급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다는 뜻이겠다.

진검 승부를 펼쳐야할 시기가 곧 도래할 것이다. 민중 진보 진영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시장화, 개방화, 분권화 공세가 새로운 구조재편으로 매듭지어지느냐 마느냐 여부는 2004년 하반기로 집중된다. 왜냐하면 2004년 하반기는 WTO교육개방협상이 마무리되는 시기이며, 교원지방직화 등 교육분권화 핵심정책의 추진 여부가 결정되는 시기이다. 또한 주5일제 등에 따른 교육과정개편 윤곽도 정해진다. 2004년 민중 진보 진영이 전면 대응으로 시장화, 개방화, 분권화 공세를 극복하고 교육공공성 강화의 큰 흐름을 정치적, 대중적으로 만들어가느냐 마느냐는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민중진영이 머뭇거릴 여유는 없다. 교육에서의 계급대립은 점점 더 격화될 것이다. 시장주의 지배연합에 의한 교육재편은 노동자, 민중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것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고 이미 교육에 대한 '계급분리 욕구'는 기승을 부리며 표면화되고 있다. 중산층의 허위의식을 자극하고 있다.

지배연합의 재 민중진보진영 對 자본 보수로. 이제 교육계 내의 진보 보수의 대결 수준이 아니다. 이미 벌어지고 있는 교육의 총체적 위기와 모순상황은 이미 그런 국면이다. 교육적이냐 비교육적이냐를 가름하는 차원을 이미 넘어 민중적이냐 반민중적이냐를 가름하는 기로에 우리는 서있다. 기존의 교육운동진영과 교육계 보수우익끼리의 '집안싸움'을 넘어서는 싸움이 조만간 전개될 수밖에 없고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에겐 이 싸움을 치를 '명검'이 있는가? 냉정하게 점검하고 시급히 대오를 정비할 단계이다.

 

5. 어떻게 맞서 싸워야 하는가

 

총체적 위기에 직면한 교육은 물론 사회 전반에 위기가 심화되고 '생존을 위한 투쟁' 없이는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위기가 대규모의 대중 행동으로 저절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우리는 담론투쟁을 이전보다 더 치열하고 정교하게 그리고 강력하게 전개해야 한다. 교육에 대한 상식을 바꾸는 싸움이 더 거세게 일어야 한다.

교육이 문제가 많다고 여기고 바뀌기를 바라면서도 시장주의자들이 내세우는 '현실론'과 '대세론'의 위력은 대중의 떨쳐일어섬을 가로막고 있다. 신자유주의 공세, 분할통치, 경제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오히려 더 깊어진 중산층의 허위의식(자기 자리라도 지키려는 욕망, 노동자, 민중과 가깝기보다는 상층계급 모방욕구가 더 강한 의식)은 싸움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보수언론이 떠드는 '노동귀족 어쩌구', '경쟁력 강화가 어쩌구' 하는 소리를 수년간 들은 결과 이제는 스스로의 입으로 보수언론이 떠든 이야기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일도 종종 있다. 스스로가 노동자, 민중이기를 거부한 채 '그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해버린다.

첫째, 노동자, 민중이 주체로 나서도록 해야 한다. 자본을 중심으로 한 시장주의 지배연합이 주도하는 교육재편에 맞설 주체는 노동자, 민중이며 노동자, 민중이 나설 때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둘째, 기존의 대항, 대안 담론 생산 주체들은 시장주의 교육재편의 현실론과 대세론을 박살낼 정교하고 강력한 무기를 준비해야 한다. 공교육개편안은 더 많이 다듬어져야 하고 현실적, 실증적 근거들을 확보하면서 시장주의 담론의 허구성을 폭로해야 한다. 동시에 민중진영의 교육대안이 현실적 근거가 있다는 사실을 다각도로 입증해야 한다.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지형은 만만치 않다. 쉽지 않은 싸움일 것이다. 그렇다고 불가능하다 낙담할 일은 아니다. 생존권을 위한 투쟁에 나서는 이들은 기득권을 위한 투쟁에 나서는 자들보다 훨씬더 절실할 수밖에 없고 이미 객관적 상황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로 귀착되고 있다. 이미 수년 동안 노동자, 농민은 더 이상 갈 곳 없을 정도로 '양보'해 왔다. 더 이상의 '양보'는 곧 노동자, 민중의 생존 포기를 의미한다. 패배주의를 걷어내고 노동자, 민중의 교육희망을 만드는 것이 지금의 교육운동 주체들에게 부여된 역사적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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