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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호 대학평준화, 당당히 가야할 길

2002.12.13 11:17

손지희 조회 수:2543 추천:4

대학평준화, 어렵지만 가야할 길

대학평준화, 이제는 당당히 가야할 길

연구소 심포지엄 대학평준화준비팀

 

대학평준화는 새삼스런 의제가 아니다. 이미 거론되고 있으며 진작에 사회적 의제화를 서둘렀어야 하는 대학개혁 방안이다. 서구사회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평준화된 대학체제를 현실화시켰다.
한국에서 대학평준화가 제기될 수밖에 없는 동력은 크게 세 가지이다.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과소비를 강요하는 계층간 불평등 학력, 학벌 획득 경쟁과 이에 대한 폭넓은 불만, 사회전반 및 노동시장에서 벌어지는 명문대 학벌 카스트의 독점구조에 대한 공분, 그리고 대학입시가 공교육을 피폐화시킬 뿐 아니라 정상화를 가로막는 주범이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은 대학평준화 논의를 사회적 의제로 밀어올리는 동력이다. 나아가, 교육의 공공적 권리 확대를 위해 확장되어온 공교육의 역사적 흐름에 비추어볼 때, 유아교육과 고등교육에서 교육권 확장 이슈를 형성하는 건 자연스럽다.1)

아직까지는 '대학평준화'가 사회적 의제로 힘있게 떠오르지는 못해왔지만, '대학의 서열구조'가 온갖 병폐의 중심에 있으며 이를 없애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공감대는 넓게 만들어져 있다. 대학서열구조 개혁방안은 서울대 폐지론 내지 해체론으로 제기되거나, 학력/학벌차별 없애기라는 사회운동으로 조직되거나, 입시위주 교육의 철폐라는 교육주체의 요구로 나타났었다.

신자유주의자들마저도 대학서열구조를 문제삼는다. 이들은 시장원리 도입을 전제로 한 서열해체를 이야기한다. 기존의 질서가 허물어진 자리에 새로운 서열체제를 들어앉히는 것을 염두에 둘 뿐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의 서열해체가 아닌 것이다. 서울대 중심 서열구조는 '자의적'이므로 "공정한 경쟁질서를 구축"의 해법으로 이를 합리화하겠다는 뜻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서울대 중심 서열구조를 '합리화'란 명목으로 경쟁을 강화하여 해체하면서 상품적 질서(곧, 시장원리에 입각한 서열화)를 세우겠다는 발상이다. 이들도 과소비적 경쟁과 대학 간 질적 차이를 지적하지만 경쟁에 의한 시장적 서열화는 불공정 입시경쟁과 교육불평등, 교육상품화 문제를 더 키울 뿐이다. BK21 사업을 두고 벌어진 삐그덕거림은 신자유주의적 대학개혁이 국가재정만 낭비할 뿐인 '헛발길질'이요, 대학교육 파행화의 길임을 잘 일깨워준다. 이들은 한편으로는 합리화를 주장하면서도 그 자신이 비합리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선정과정에서 불거진 특혜 의혹은 서열화된 대학구조의 특혜를 받은 정책 입안자들에게 대학개혁의 주도권을 맡겨선 안 된다는 교훈을 준다. 신자유주의적 정책시행 과정에서 서울대 바로 밑의 대학들은 서울대의 자리를 차지하려 애쓰고, 서울대는 그 자리를 고수하기 위해 발버둥친다. 자기들끼리 이전투구하는 양상이다. 결코 문제의 본질은 건드려지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신자유주의 대학개편안은 당장 폐기처분해야 한다. 교육공공성의 원리에 입각한 대학평준화를 통해 서열화 구조 자체를 완전히 깨는 방식이 아니고서는 공교육의 정상화도 아득한 꿈 속의 일일 뿐이다.

이제 고등교육에 대해서도 공공성의 잣대를 들이대어 개혁론을 당당히 이야기할 때다. 경쟁을 핵심기제로 삼는 시장 질서에 의한 구조조정은 고등교육을 둘러싼 모순을 절대로 해결하지 못한다. 공교육 파행화를 한껏 부추기며 대학간 불평등, 학벌주의를 더 키운다. 대학평준화야말로 고등교육까지 공교육체제의 한 요소로 포괄,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공교육정상화를 기할 수 있는 핵심적 방안이다. 서열화된 대학구조와 학력사회의 모순, 그리고 공교육의 왜곡을 해결할 접점에 있는 정책대안이 대학평준화임을 분명히 하고 사회적, 정치적 의제로 만들어야 한다.

물론 대학 안팎을 둘러싼 상황은 대학평준화를 사회적 의제로 힘있게 부각, 실현해내기에 만만한 조건은 아니다. 고등교육와 관련된 온갖 병리현상들의 확대재생산을 떠받치는 물리적, 이데올로기적 토대들 또한 확대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1. 극복의 지점들

- 고등교육이 처해 있는 물리적, 이데올로기적 지형과 팽배해 있는 패배주의

한국식 고등교육 대중화는 대학 간 서열구조의 강화, 사립대학의 과잉 팽창을 수반하면서 이루어졌다. 고등교육은 90년대 들어 대중화 단계에 돌입했다. 한국에서 고등교육의 대중화는 공공성의 원리에 입각해서 진행되지 않았다. 국공립이 주요 설립유형도 아니었고, 교육비 부담은 개인의 몫으로 떠넘겨져 '무상'의 원칙은 자리잡을 여지를 갖지 못한 채 개인이 부담해야 할 몫은 갈수록 커지고만 있다.2)

대학교육의 질을 균등화하는 공적인 노력은 더더군다나 없었다. 경쟁격화의 주요지점인 서울대 중심의 서열구조는 전혀 손대지 않은 채 대학정원만 확대해서 생긴 일이다. 설상가상으로, 늘어난 교육기회 대부분은 비싼 등록금과 낮은 교육여건으로 악명이 높은 사립대학 설립에 의한 것이었다. 서열구조를 굳히고 사립대학의 과잉팽창을 수반하며 이루어진 고등교육기회 확대는 지금에 와선 대학평준화를 실현하기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프랑스나 독일이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준화를 추진하기 좋았던 조건은 대학이 100% 국립이었다는 점과 대중화되기 이전에 평준화가 시행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그리고 이들 국가는 교육에 대한 공적 지원이 탄탄하여 고등교육무상화도 일찍이 이루어졌다. 사회구성원들은 교육을 당연한 사회적 권리로 인식하며 돈주고 교육받는 상황을 의아해한다. 그렇기에 지금 한국 상황에서 대학평준화 방안은 부실사학에 대한 국, 공립화 추진 및 사립대학에 대한 공적 지원의 확대까지 포함해야 한다.

고등교육은 사회적으로 보장되는 공공재가 아니라 개인간 경쟁을 통한 쟁취의 대상, 사학재단의 이윤추구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육은 사회적 지위 획득의 관건적 위치를 차지한다. 중등교육까지 보편화된 상황에서 고등교육은 개인의 지위 획득 및 대물림의 주요한 수단이 된다. 이런 이유로 고등교육은 계급간 이해가 갈등하는 주요지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등교육은 중등교육에 비해 공공성의 원리에 의해 구조화되기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공공성의 강화가 그래서 더욱 절실한 영역이다.3)

한국처럼 대학이 공교육체제에 포괄되지 않은 구조라면 문제는 한결 심각하다. 이미 고등교육은 사적 소비와 사적 전유의 대상으로만 인식될 뿐이다. 즉, 한국에서 고등교육은 공공재가 아니라고 주장될 만큼 경합적이고 배타적 양상을 띤다. 공모된 경쟁구조에 참여하는 개인들은 대단히 괴로워하면서도 고등교육 기회는 경쟁에 이겨 쟁취해야 할 대상이라는 인식을 쉽사리 바꾸지 못하는데, 이는 '제도' 자체가 이런 개인의 인식을 유지하게끔 강제하는 객관적 조건으로 자리잡고 있는 탓이다. 그러나, '돈'이 좌우하는 지금의 경쟁구조는 공정하지조차 못하다는 불만이 증폭되고 있다. 이제 시장화 시도를 물리치고 공공성의 관점에서 고등교육을 바라보고 공공성의 원리에 입각하여 대학구조개편에 나서야 할 때다.

고등교육에 대한 보수적 엘리트주의와 국가경쟁력 담론에 기반한 하향평준화 공격이 거세다. 고등교육에 대한 부르주아적 관념의 벽은 상당히 두터우며 대학평준화가 돌파해야 할 장애물이다. '엘리트주의'와 '기능론적 시각'은 번번이 확인되는 사실이다. 고등교육은 '선별된 사람'만이 받아야 한다는 '통제적 관점'과, 노동시장의 수요에 맞추어야 한다는 경제종속적 사고방식이 도사리고 있다. 고등교육이 급격하게 팽창되었고 개인이나 사회에 있어 '보편적으로 충족시켜야 할 그 무엇'이 된 마당에 이런 엘리트 의식은 통용될 수 없다. 60%를 상회하는 대학진학률이 그것을 뒷받침해준다. 물론, 대학교육이 양적으로만 확대되었을 뿐 서열화는 여전하고 대학간의 교육여건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은 이런 생각을 유지시키는 객관적 조건이다. 엘리트주의에도 여러가지가 있긴 하지만 엘리트주의 그 자체는 본질적으로, 20의 '똑똑이'를 선별하여 그들로 하여금 사회를 이끌어가도록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보수적 주장에 한덩어리로 묶인다는 점에서 문제다. 더군다나 한국과 같은 학벌사회에서 엘리트주의는 학벌카스트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구실밖에 못한다. 좋은 엘리트주의와 나쁜 엘리트주의를 구별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결별해야 할 문제이다. 기능적 사고는 더욱 쉽지 않은 대목인데, 이는 실업과 불평등으로 얼룩진 노동시장의 현실이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다. '실력도 안 되는데' 어거지로 대학 나와서 쓸데없이 눈만 높아진 인간을 많이 키워내느니 차라리 대학교육기회를 제한하여 고등실업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그러나 실업 문제는 교육이 그 원인이 아님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경제적 시각에서 교육기회를 배분해야 한다는 담론의 유포는 '인간의 발달'과 '사회적 기본권으로서의 교육복지'라는 핵심적 사명을 부차화할 것을 종용하는 이데올로기 조작에 불과하다. 노동시장에서의 임금차별 철폐 등이 사회개혁 과제로 남는다.

잘 알다시피, 고등학교 평준화 공격의 주요 논거는 '하향평준화'였다. 경쟁력 담론에 직접 노출되어 있는 대학의 경우 '하향평준화' 공격은 더 거셀 게 뻔하다. 실증적 검토에 의해 고등학교 평준화가 하향평준화를 유발했다는 공격은 근거없음이 드러났다.4) 대학평준화제도가 정착되어 있는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그들도 신자유주의 세계화 질서의 영향으로 인한 고민은 있지만) 하향평준화를 이유로 평준화를 공격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하향평준화 혐의 씌우기는 객관적 근거가 취약할 뿐인 기득권 유지 차원의 이데올로기 공세일 뿐이다. 물론, 전반적인 교육기회 확대와 질의 상승을 보다 나은 사회상과 연결시키는 입장과 소수를 선별 육성하여 그들로 하여금 사회를 이끌어가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다. 그러나, 서울대 망국론에서 나타나듯 서열화 구조 속에서 온갖 혜택을 입고 살아온 한국의 '정치, 경제 엘리트'집단이 공적 책무성을 견지한 집단이었는지 기득권 유지를 위해 공모해온 집단이었는지는 역사가 증명해준다. 초국적 자본의 교육시장개방 압력이 거세지는 지금, 이들은 '합리화'란 이름으로 자본에게 교육을 팔아먹는 책동에 앞장서고 있다. 5)

대학교육의 질을 제고하여 개방화시대에 대처하려면 '대학 간 경쟁'을 강화하는 방향의 적극적 구조조정이 필요불가결하다는 '시장화'에 대한 명분론이 유포되고 있다. 대학교육의 질이 낮다는 불만은 진작부터 있었다. 대학교육의 질에 대한 불만을 가장 노골적으로 표출하는 집단은 자본이며,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대학을 개편하고자 한다. 신자유주의는 교육과 노동시장을 최대한 밀착시키려 하며 교육정책을 그쪽으로 몰고 간다. '다루기 쉽고 우수한' 노동력 배출을 고등교육기관이 떠맡아야 한다는 기대가 신자유주의 고등교육정책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또 다른 측면은 대학 자체를 돈벌이 기관으로 인식하여 그렇게 만들고자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산업교육진흥법 개정시도는 바로 대학이 이윤창출에 가담하는데 필요한 조건을 만들어 '대학을 기업화'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고 있다.6) 신자유주의에서 고등교육의 질 제고 방식으로 택하고 있는 것은 역시 '경쟁'이다. '공공성'의 원리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방식이다. 평가와 지원을 연계함으로서 대학간 경쟁을 유발함으로써 대학들은 보다 질좋은 교육을 제공할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시도 속에서 공교육비 부담률은 전반적으로 축소되어 왔으며 등록금의 형태로 개인의 부담은 커져왔다. 이런 방향 설정은 각 대학들이 '홍보'(연예인 모셔오기, 지하철에 광고하기 등)나 '드러나는 성과'에 열을 올리게 만들고 있는데 이것이 대학교육의 내실화와 무슨 상관인지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도서관의 장서를 늘리고 대학교수의 수를 확충하는 게 더 확실한 방법이다.

게다가 신자유주의 대학구조조정은 개방화에 대비한다는 명분을 시장화의 동력으로 삼으려 한다.7) 신자유주의자들이 국가의 교육경쟁력 지표라고 내세우는 국가간 고등교육 질의 비교지표는 설득력이 없다. 이들이 내세운 지표는 기껏해야(!) 미국 노동시장에서 각국 노동자들의 교육수익률이다.8) 이것이 국가 간 교육의 질을 비교하는 지표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하며 결코 바람직하다 볼 수 없다. 사회문화적 조건의 차이가 분명한 국가마다의 교육을 하나의 잣대로 비교한다는 발상자체가 미국적 기준에 모든 국가의 교육을 폭력적으로 맞추려는 시도 아니냐는 혐의를 추궁해야 한다.

주체의 패배주의가 팽배해 있다. 대학을 둘러싼 위와 같은 상황은 주체들의 개혁의지보다는 패배주의를 키워왔다. 교육모순의 정점에 있는 대학문제에 대해 동의하더라도 그것의 대안인 대학평준화를 '현실화 가능성'을 이유로 의문을 제기한다면 이것은 패배주의에 다름 아니다. 대학평준화 제도는 서구에서는 익숙한 현실이다. 식민지의 엘리트주의적 고등교육체제에 미국식 대학모델이 덧씌워진 우리에게나 낯설 뿐이다. 즉, 지구상에서 불가능한 현상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대학평준화는 결코 비현실적인 주장이 아니며 당위성의 측면에서 사회적 의제화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는 대학체제개혁 방향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대로, 신자유주의자들도 서열구조를 문제삼을 정도로 대학서열구조는 지탱될 명분이 바닥나 있다. 이것이 지금의 서열구조가 봉착한 상황인데도 '현실적 가능성'을 이유로 대학평준화를 적극적으로 밀어올리기에 주저하면 신자유주의 세력에 대학개편의 주도권을 완전히 넘겨주게 된다. 시장화+개방화 질서의 구조화는 더 큰 재앙을 부른다. '교육주권을 위협'하는 개방화 압력 앞에서 시급히 대학을 공공의 질서로 재구조화하지 못하게 되면 초국적 자본에 저항할 어떠한 근거도 마련하지 못한다. 대학평준화는 대학체제개편의 방향으로 진작에 설정되었어야 한다. 이미 대학평준화에 대한 동력은 객관적 현실로 존재함을 분명히 인지하자. 이것이 제대로 조직되지 못했을 뿐이다.

물론, 교육체제를 바꾸는 일은 계급간의 다툼꺼리이다. 지위획득의 관건적 위치인 고등교육을 둘러싸고는 말할 나위도 없다. 지배집단이 중등까지는 밀려서 양보했지만 고등교육에 대해서는 통제권을 놓지 않아 왔다. 서열화된 대학구조에서 어떤 집단이 이득을 보고 어떤 집단이 손해를 보는지는 분명하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그렇기 때문에 대학평준화는 사회적 의제화가 필요하고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문제인 것이다. 교육운동 주체들은 대학평준화를 적어도 사회적 의제화까지 빠른 시일 내에 밀어올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대학평준화의 현실적 근거와 당위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패배주의를 걷어버리는 일이 앞서야 한다.

진보적 대학개혁을 가로막는 이와 같은 난맥상은 그 자체가 개혁의 대상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국면에서 고등교육을 둘러싼 모순구조는 더 이상 심화될 수 없을 지경으로 격화되어 왔다. 고착화된 대학서열구조는 초중등교육에까지 파장을 미친다는 사실에서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데, 서열구조가 온존하는 상황에서는 고등학교 평준화제도까지 흔들리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다. 이미 알려진 대로 현 국면은 시장화와 개방화가 하나로 구조화되어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런 흐름은 결국 교육을 시장판으로 만들어 초국적 자본의 먹잇감으로 격하시키게 될 것이다. 대학교육이 이런 흐름에 무너지게 되면 공교육의 미래는 보장받지 못한다. 공세적으로 개혁의 상을 제출해야 할 결정적 시기는 이미 도래했다. 이제 대학평준화를 새로운 대학개혁의 방향으로 힘있게 제기해야 한다.

2. 대학평준화를 제기하는 배경 - 고등교육의 현재

서열화된 대학구조 및 사립대학의 과잉9)이 유발하는 사회적, 교육적 부작용은 쉽게 동의할 수 있는 대목이다.

첫째, 대학교육기회가 양적으로 확대된 상황에서도 치열한 경쟁구조는 대학서열구조에 그칠 줄 모르고 확대 복제되고 있으며 사적 기관의 난립과 공적 책임의 방기로 인한 높은 등록금 부담은 고등교육기회에 있어서의 새로운 불평등 체제가 되고 있다.

둘째, 초·중등교육을 왜곡시키고 사교육의 기형적 확대와 공교육기관과의 이상스런 경쟁을 부추기는 것이 바로 대학의 서열구조이며, 서열구조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진행과정에서 대학교육 내부도 파행으로 치닫고 있기는 마찬가지다.10)

셋째, 이른바 '명문'대학의 대도시 집중에서 비롯되는 지역 간 교육기회 차별은 대학서열구조 속에서 계속해서 심화되고 있다.

넷째, 학벌주의 확대재생산의 제도적 기반은 대학서열구조다. 대학평준화에 명운을 걸고 저항할 집단은 분명히 서열화된 구조로 인해 득을 챙기는 집단이다. 이들은 '경쟁력'의 이름으로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대물림하는 수단으로 고등교육을 사고한다. 특시 신중간계층이 그러하다. 확실하게 경제적 기득권을 쥔 이들은 학벌경쟁에서 어느 정도 부릴 여유가 있지만 소위 '전문직, 관리직'에 종사하면서 고소득과 사회적 위치를 보장받아 온 이들은 자식들에게 대물림하기 위해 열심히 학벌경쟁에 참여하고 그 구조가 깨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다섯째, 사립대학의 문제다. 대학평준화 정책은 고등교육의 공교육화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사립대학의 문제는 대학평준화 정책이 직접적으로 부딪힐 문제다. 그렇다고는 해도 재정자립도가 형편없는 채 장삿속으로 설립된 대학의 경우 점진적인 국공립화의 가능성이 봉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문제들로 얼룩져 있는 대학 및 왜곡된 대학구조로 인해 왜곡되고 있는 초중등교육은 서열화된 구조라는 뿌리를 제거하지 못하는 한 계속해서 확대재생산될 것이다. 또한 대학교육을 그대로 두는 한 끊임없이 시도될 신자유주의의 반민중적 반교육적 시장화, 개방화 공세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고등교육의 공교육화를 포함하는 평준화 방안은 시장화, 개방화에 대항하는 질서를 창출할 대안이다. 이후에서는 현재의 대학교육의 문제를 짚어본다.

(1) 고등교육 기회구조의 특징 - 확대된 기회, 새로운 불평등 체계 11)

확대된 기회 : 진학률과 성인 인구 중 대졸자비 증가
▷ 25세 이상 성인인구 중 대졸자 비율 : 1.6%(1970년) => 13.5%(1995년)
▷ 고등학교 졸업생의 대학진학률 : 26.9%(1970년) => 65.0%(2000년) 12)

<표1 > 고등학교의 고등교육으로의 진학률 추이

년도

고등학교->고등교육

일반계->고등교육

실업계->고등교육

1970

26.9

40.2

9.6

1985

36.4

53.8

13.3

1990

33.2

47.2

8.3(진학희망률:22.1)

1995

51.4

72.8

19.2(진학희망률:35.6)

2000

68.0

83.9

42.0(진학희망률:50.8)

※ 진학률 = 진학자 / 졸업자 × 100 고등교육은 전문대학, 교육대학, 대학(교), 각종학교 포함
자료 : 교육통계편람 및 간추린 교육통계

이런 지표로 볼 때, 양적인 면에서는 대학교육은 대중화되었다 볼 수 있으며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보아도 높은 수준이다.
교육기회 보편화 양상은 양적 지표만으로 논하기엔 무리가 있다. 특히 학력사회에서는 분화(서열화 혹은 기능적 분화)된 대학체제에 있어서 어느 대학, 어느 학과를 나왔느냐가 관건이 된다. 학벌은 이후 (특히 분단된) 노동시장 진입경쟁 및 그 내의 (수직, 수평) 이동 과정에서 '차별'을 낳고 이를 정당화하는 주요 기준이 된다. 고등교육 이수율은 크게 확대되었지만 고등교육 이수자 사이에서도 사회경제적 차별은 현실로 존재한다. 이런 사실은 임금격차는 교육연한의 차이 만으로 설명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고등교육 내에서도 질적 차이가 존재함을 나타낸다. (물론 교육에 따른 임금차별이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고등교육 내에서의 질적 차이는 한국의 경우 대단히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때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취급되는 고등교육의 질은 순수한 의미의 질과는 거리가 있다. 졸업장이 노동시장 진출과정 및 노동시장에서 갖는 효과의 차이가 고등교육의 질적 차이의 일반적 의미이다.

새로운 불평등 체계 : 그렇다면 과연, 늘어난 고등교육기회의 수혜는 모든 계급의 구성원에게 동등하게 돌아갔는가? 13)

교육기회의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의 학제는 두 차례에 걸쳐 선별이 이루어지는 구조이다. 먼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의 계열이행 단계에서, 그리고 고등학교에서 고등교육으로의 이행과정에서 또 한 차례 선별이 이루어진다. 후기 중등단계의 계열화는 고등교육의 기회를 양적인 측면에서 제한하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실업계 출신은 대학진학에 대한 욕구가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반계 출신에 비해 진학률에 있어서 현저하게 떨어진다.

한편, 고등학교에서 대학으로의 이행단계에서는 대학 구조에 고착화되어 있는 서열에 의해 고등교육기회의 질적 분화가 일어난다.14) 문제는 두 번째 단계에서 일어나는 질적 분화가 '기능적 분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서열화된 대학체제에서의 질적 분화는 교육의 질의 사회계층별 분화 양상과 맞물리고 있다.

<표2> 고등학교 졸업 후 출신 사회계층별 미진학, 대학(전문대·대학교) 진학 분포 15)

(단위 : 명; %)

구 분

미진학

전문대 진학

대학교 진학

부의 교육

중졸 이하

695 (54.7)

232 (18.3)

344 (27.1)

1,271 (100%)

고졸

253 (31.0)

196 (24.0)

367 (45.0)

816 (100%)

전문대졸 이상

54 (16.9)

45 (14.1)

221 (69.1)

320 (100%)

부(모)의 직업

농림어업

307 (57.8)

95 (17.9)

129 (24.3)

531 (100%)

기능·생산

147 (53.6)

49 (17.9)

78 (28.5)

274 (100%)

서비스·판매

235 (42.8)

119 (21.7)

195 (35.5)

549 (100%)

준전문·사무

123 (28.5)

97 (22.5)

212 (49.1)

432 (100%)

관리·전문

95 (10.5)

59 (16.0)

214 (58.2)

368 (100%)

가족의 소득계층

하층

271 (49.5)

102 (18.6)

175 (31.9)

548 (100%)

중층

471 (42.1)

227 (20.3)

420 (37.6)

1,118 (100%)

상층

155 (29.5)

96 (18.3)

275 (52.3)

526 (100%)

가족의 사회자본

없음

913 (45.8)

387 (19.4)

693 (34.8)

1.993 (100%)

있음

127 (26.3)

93 (19.3)

263 (54.5)

483 (100%)


일반적으로, 질적 차등이 존재하는 교육 체계에서 보다 높은 질의 교육기회는 주로 상층계급에게 돌아간다. 달리 말해, 확대된 기회 구조 속에서도 상층계급 출신 학생들은 하층계급 출신 학생들에 비해 보다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가 높아지며, 이는 다시 보다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증진시키게 된다. 한국 역시 고등교육까지 대중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양적인 확대에 불과하며 그 내에서 사회계급간 교육기회의 격차는 완화되지 않고 있음을 여러 연구 결과가 뒷받침하는 형편이다.

한국사회의 대학서열주의, 엘리트주의 등은 팽창하는 학력사회16)에서의 차별주의가 제도화된 형태인 셈이다. 위계서열적 대학구조는 지배계층의 질적 차별화를 위한 '방어적 투자'를 보장하고 과열시키는 제도적 토대인 셈이다.17) 게다가 한국사회는 계층을 막론하고 교육열이 유별나게 높은데, 그 배경요인으로는 임금격차가 심한 불안정한 노동시장구조 및 교육이라는 '보험'에라도 들어놓지 않으면 기댈 곳 없는 취약한 사회보장제도와 극히 제한된 기회구조 등을 들 수 있다. 사회 양태가 이렇다면 사람들은 교육을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투자' 개념으로 바라보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그 투자행위는 대단히 과소비적(가난한 계층에겐 '출혈')이다. 대학 진학을 넘어서서 보다 좋은 대학을 위해 출혈을 감수할 수 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고등교육기회 획득 경쟁은 애초부터 계층간 불평등 경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입시제도는 교육기회의 계층적 차등화를 매개하는 요소 : 수능체제는 모든 계층에게 공정한가?

앞서 말했듯이 대학교육의 양적 기회는 계열화된 고등학교로의 이행 단계에서 일차적으로 걸러진다. 대학교육기회의 질적 차이는 대학서열에서 차지하게 되는 위치로 나타나며 이는 수능점수18)가 매개하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수능체제는 가정의 문화자본의 영향력을 더욱 확대시킨다고 한다.19) 한 통계조사에 따르면 부의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부모의 직업적 위신이 높을수록, 그리고 가정의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수능 상위권 점유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여기에서 대학진학의 결정적 요소인 수능 성적에 대한 가정배경의 영향이 큼을 시사받을 수 있으며, 상위권 대학의 진학자들은 상층의 지위집단들이 차지한다는 사실도 더불어 나타나고 있다.

<표3> 출신 사회계층별 고등교육 진학자(대학·전공 및 학과)의 수능서열 분포 20)

(단위 : 명; (%))

구 분

수능 하위

수능 중위

수능 상위

부의 교육

중졸 이하

233 (51.2)

152 (33.4)

70 (15.4)

455 (100%)

고졸

192 (43.2)

141 (31.8)

111 (25.0)

444 (100%)

전문대졸 이상

44 (20.4)

75 (34.7)

97 (44.9)

216 (100%)

부(모)의 직업

농림어업

95 (55.2)

52 (30.2)

25 (14.5)

172 (100%)

기능·생산

50 (48.1)

32 (30.8)

22 (21.2)

104 (100%)

서비스·판매

117 (47.2)

80 (32.3)

51 (20.6)

248 (100%)

준전문·사무

97 (38.3)

85 (33.6)

71 (28.1)

253 (100%)

관리·전문

58 (27.5)

75 (35.5)

78 (37.0)

211 (100%)

가족의 소득계층

하층

101 (47.2)

65 (30.4)

48 (22.4)

214 (100%)

중층

224 (43.0)

175 (33.6)

122 (23.4)

521 (100%)

상층

95 (33.0)

92 (31.9)

101 (35.1)

288 (100%)

가족의 사회자본

없음

385 (44.9)

278 (32.4)

195 (22.7)

858 (100%)

있음

91 (32.5)

96 (34.3)

93 (33.2)

280 (100%)


<표4> 4개 대학학생들의 수능평균점수와 부의 계급별 분포 21)

부의 계급

o대학
(서울)

ㅈ대학
(서울)

ㅊ대학
(지방)

ㅁ전문대
(서울)

평균

평균수능점수
(상위 백분위 %)

1.12%

5.49%

14.28%

20.65%

6.63%

자본가계급

45(18.2%)

13(8.1%)

0 (0.0%)

7(8.2%)

65(10.9%)

중간계급 1
(전문직/관리직)

125(50.6%)

63(39.4%)

11(10.3%)

15(17.6%)

214(35.7%)

중간계급 II
(하위사무직)

34(13.8%)

39(24.4%)

28(26.2%)

5(5.9%)

106(17.7%)

노동자계급

14 (5.7%)

12(7.5%)

18(16.8%)

25(29.4%)

69(11.5%)

쁘띠부르주아지계급

24 (9.7%)

25(15.6%)

27(25.2%)

20(23.5%)

96(16.0%)

농민계급

5 (2.0%)

8 (5.0%)

23(21.5%)

13(15.3%)

49(8.2%)

합계

247
(100.0%)

160
(100.0%)

107
(100.0%)

85
(100.0%)

599
(100.0%)


위의 통계자료들에서 일관되게 확인되는 것은 사회 전체의 계층 구성비와 반비례의 관계로 대학교육의 배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전문, 관리직이나 전문대졸 이상, 소득 상위 계층은 그들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훨씬 상회하는 비율로 상위 고등교육 기회를 차지하며 이는 수능 점수에 의해 매개되고 있다. 낮은 계층은 이와 정반대로 이들의 인구점유율에 훨씬 못 미치는 비율로 대학교육기회의 수혜를 받고 있다. 이는 각주13에서 언급한 부르디외의 교육기회평준화 개념에 정확히 위배되는 상황이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서열화된 대학구조에서 이후 지위획득에 유리한 상위권 대학 및 인기 학과의 진입기회는 점차 지배계층이 독점해가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고등교육 기회가 양적으로 확대된 반면 서열이 분명함으로 해서 대학 진출과정은 사회계층간 경쟁적 투자의 장이 되고 있다. 이런 경쟁적 투자는 개인의 배경요소(사회, 경제, 문화적 자본)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며 경쟁의 양상은 대단히 과소비적인 행태로 나타난다. 요컨대, 고등교육기회는 양적 측면에서는 확대되었으나 질적 측면에서는 불평등이 존재하며 이는 대학의 서열화된 구조와 관련이 깊다.

(2) 이미 시장판이나 다름없는 공공성의 불모지, 대학

한국의 교육기회 확대과정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교육비 부담에 있어서는 무상이 아닌 유상에 의해, 교육기관 설립에 있어서는 국공립이 아닌 사립에 주로 의존했다는 점이다. 이는 교육의 단계가 높아질수록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인데, 그나마 고등학교의 경우는 '평준화'정책을 시행하면서 공사립간의 교육비 부담 차이를 해소하는 것을 통해 그 부작용이 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학에 있어서는 교육비 부담의 방식이나 기관의 설립유형 등 전반적으로 볼 때 사사성(私事性)이 공공성을 압도하고 있다. 즉, 대학교육기회의 확대조치가 공적인 통제와 관리체제를 근간으로 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무분별한 사립대학의 설립을 허용하는 조치를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대학의 공공적 성격은 바닥권이다.

전체 대학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사립대학의 높은 등록금은 구매력의 차이에 의한 교육기회 불평등을 낳고 있으며, 사립대학의 파행적 운영방식은 악명이 높다. 교육기관을 사적 이윤 추구의 수단으로 전용하여도 마땅히 제재를 가하지도 못하는 형편이어서 학내 분규가 끊이지 않는 것이 한국 사립대학의 현주소다. 게다가 몇몇 상층의 사립대학은 '운영의 자율성'을 거론하며 기여입학제를 정당화하려 들고 있으며, 서울대의 독점적 지위를 향해 공격을 퍼붓고 있으나 이는 대학서열 자체를 문제시하기 보다는 자신들이 그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3) 서열화된 대학 진입 경쟁이 공교육전체에 미치는 파장

- 공교육 전반의 파행적 운영과 사교육 확대를 불러일으키는 구조적 원인

고등교육기회가 과거에 비해 크게 확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과열경쟁은 엄혹한 현실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경쟁의 양상은 갈수록 심각한 수준이 되고 있는데, 특정 지역으로의 전학요구 사태라든지 유명 학원가 주변의 집값이 상승하는 것도 대학가기 경쟁과 닿아 있다. 경쟁구조 속에서 사교육시장은 날로 번창하여 또다시 경쟁구조를 격화시키는 양상이 고리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식의 경쟁은 대단히 비효율적이고 과소비적인데다가 공교육의 틀 자체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하다. 고등학교 단계에서는 물론 중학교, 초등학교 단계에서도 이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비효율적이고 과소비적인 경쟁은 모순적인 양상으로 볼 수 있는데, 사실상 기회가 확대된 국면에서도 경쟁이 그칠 줄 모르는 이유는 경쟁이 대학가기 그 자체에서 비롯되는 수준을 넘어섰음을 의미한다. 지금과 같은 경쟁구조이 유지되는 동력은 주로 어느 대학, 어떤 학과에 들어가느냐를 두고 벌어진다.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는 이후 지위경쟁에서 결코 안심할 수 없다는 점이 상식이다. 서열화된 대학체제는 과열, 과소비적 경쟁을 낳는 구조적 원인인 셈이다.

공교육 정상화라는 관점에서 대학진학경쟁을 살피면, 이런 식의 경쟁구조는 전체 공교육의 정상적 운영을 가로막는 직접적 원인이다. 각 교육단계의 교육목표나 인간의 발달과정은 무시된 채, 입시에서의 성공이 행위선택의 최우선 기준이 되고 있다.

공교육 정상화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된 요구이자 과제이지만 입시위주의 교육행태는 어떠한 교육정책으로도 해소되지 않았다. 공교육의 비정상적 운영의 가장 근본적 원인은 공교육 내부가 아니라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교육의 정상화는 그에 한정된 정책만 가지고 달성할 수 없다. 공교육의 정상화나 사교육비 문제는 대학구조 개혁이 함께 진행되어야 비로소 본 궤도에 오를 수 있다. 정부의 '공교육정상화방안'은 경쟁구조를 허물지 못한다. 입시정책만 건드리는 것도 마찬가지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입시 정책은 이미 10번도 넘게 바뀌었으며 심할 때는 매년 조금씩 달랐을 정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자유주의 교육개편은 이런 경쟁을 극한으로까지 몰고 가고 있다. 공교육의 정상화는 대학서열구조를 혁파하는 정책이 누락되는 한 언제나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

대학서열구조가 공교육을 흔드는 모습은 고등학교 평준화제도 해체시도에서도 발견된다. 상층집단은 대학가기에 보다 안전하고 유리한 조건을 창출하기 위해 고등학교를 갈라치기 교육의 장으로 전환하려 한다. 대학서열구조가 유지되는 한 불씨는 계속 남아있는 셈이다. 단적인 사례로 고등학교 평준화 해체 시도에서 알 수 있듯 공공성의 원리와 거리가 먼 대학서열구조는 공교육전반의 구조와 본연의 사명을 흔든다.

(4) 서열화된 대학구조는 학벌(파벌)주의를 재생산하는 제도적 기반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서열화된 대학구조는 학벌주의와 학벌의식(파벌의식)를 양산하는 제도적 근거가 되고 있다. 학력사회는 귀속적 요인을 대신하여 '학력'이라는 비교적 합리화된 지표에 의해 사회적 지위의 배분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전근대시기에 비해서는 진일보한 측면이라 볼 수 있다. 학력사회의 전제는 학력이 개인의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라는 점이다. 학력은 개인이 처한 귀속적 배경에 상관없이 누구나 '경쟁'에 참여하여 획득할 수 있는 것이라 가정된다. 물론 이때의 평등개념은 지위경쟁에 참여할 기회를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열어둔다는 데에 한정될 뿐이다. 지위 획득 경쟁이 학력획득 경쟁으로 나타나면서 나타난 문제점은 여전히 학력획득에서 우위를 점하는 집단은 기존의 상층계급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학력사회는 이전보다 교묘한 방식으로 기존의 계층구조를 재생산하고 상층계급이 자신들의 자녀에게 사회경제적 지위를 대물림하는 수단이 바뀌었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지위 획득 경쟁의 수단으로 학력이 자리매김되자 교육은 지위획득의 관건적 위치가 되었고 이는 교육에 대한 '경쟁' 이데올로기의 현실적 근거가 되고 있다. 교육에 대한 통제권을 쥔 지배계급은 고등교육기회를 끊임없이 제한하려 하였으며 '선발'절차를 통해 이를 조절하였다. 그러나 고등교육 역시 대중화의 단계에 들어서면서 지배계급이 시도한 '차별화'전략은 바로 학벌에 의한 차등이다. 학벌은 곧바로 파벌화되어 '높은 학벌'을 획득하여 상층 지위를 점한 이들은 기득권 유지를 위해 서로 공모하여 기존의 학벌구조를 재생산하고 이를 자신들의 자녀들에게 대물림하기 위해 교육에 대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입시제도, 학교제도를 바꾸려 듦) 학력사회는 봉건적 지위세습 구조를 교묘한 방식으로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학력주의는 한국과 같이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학벌주의로 이어지게 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문제는 학력주의와 더불어 학벌주의이다.

이러한 학벌주의의 재생산을 일차적으로 보장해주는 것은 바로 서열화된 대학구조이다. 예컨대, 프랑스나 독일과 같이 평준화된 대학체제를 갖고 있는 사회에서는 학벌에 의한 파벌의 형성이 노골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데 이를 통해 한국 특유의 학벌주의 재생산 구조는 바로 서열화된 대학체제임을 알 수 있다.

(5) 한국의 서열화된 대학체제는 신자유주의 시장화, 밀려드는 개방압력에 취약

신자유주의적 대학개편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이전, 이미 대학교육은 신자유주의의 시장적 질서가 뿌리내리기에 적합한 구조적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서열화라는 말로 포괄할 수 있는 한국의 대학구조의 시장적 특징은 신자유주의적 시장화, 개방화 추진하는데 호조건이다.

첫째, 대학은 교육공공성 의미에 입각한 공적 관리, 통제의 대상이 아니었다. 즉 공교육체제에서 사실상 분리되어 있는 영역이다. 국가통제는 있었지만, 온전한 의미의 공적 책임까지 담보하는 구조는 결코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국가부문으로 인정되기 어렵기 때문에 서비스 개방의 대상목록에서 빼내기 어렵다.

둘째, 이미 '소비자간 경쟁'은 차고도 넘치는 현실이었다. 여기에 신자유주의 대학구조조정 국면에서 '공급자'인 대학 간 경쟁이 추가되었다. 따라서 이미 '소비-공급'의 구도는 형성되어 있는 셈이다.

셋째, 고등교육은 보편적 권리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서열화 구조 속에서 선발을 거치긴 하지만, 대학교육을 일종의 '상품'으로서 선택하는 질서가 이미 존재하고 있다.

넷째, 경쟁력 담론에 극히 취약한 지대이다. 국가경쟁력 담론의 직접적 대상은 대학이다. 노동시장과 곧바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때문에 그렇다. 따라서 초중등교육보다 훨씬 더 생산구조와의 연계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교육부문이다. 그래서 자본이 통제하고자 하는 직접적 대상이 바로 대학이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서열화 구조는 고등교육이 공공재가 아니라는 공격에 취약할 수 밖에 없으며 신자유주의적 시장질서를 들여올 수 있을 정도로 시장형성이 되어 있는 데다가 이것은 개방의 물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는 조건이다. 따라서 공교육화를 전제로 하는 대학평준화 방안이 개방화 흐름을 뒤바꿀 정책대안이다.

3. 대학평준화의 기본얼개

(1)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의 틀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은 대학평준화 정책의 구상에도 적지 않은 시사를 준다. 성과와 한계에서 모두 그러하다. 고등학교 평준화는 학교간의 학생구성상의 차이를 없애는 데에는 어느 정도 성공하였으나 학교간의 교육여건 차이 해소에는 별다른 후속조치가 취해지지 않음으로 해서 지금 정책의 위기에 맞닥뜨려 있다. 대학평준화 얼개를 제시하기 전에 먼저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에 대해 살펴본다.

고등학교 평준화가 정책으로 입안된 당시 주목하였던 교육 현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중학교 교육이 파행을 겪고 있는 현실이었다. 입시 준비 과정으로 전락한 교수 학습은 단편적인 주입과 암기로 이루어지고, 학교의 교육과정 운영도 종종 입시 전략이란 맥락에서 변칙적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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