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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 방아타령

2002.03.31 20:15

정은교 조회 수:1619 추천:3

02년3월회보시평

방아 타령

정은교 ∥ 잡필가

1. 박찬호, 월드컵과 평준화

전철을 타러 갈 때마다 나는 신문을 '강제' 구독한다. 1호선 수원행 전철은 간격이 뜸하여 승강대에서 한참이나 기다려야 한다. 일없이 서성거리다 보면 눈길은 자연스레 신문 가판대 위에 걸터앉은 백가지 신문들, 그 중에서도 총천연색 울긋불긋한 스포츠신문 쪽으로 쏠리게 마련이다. 지난 겨울에는 1면 톱기사에 '박찬호'가 참 많이도 오르내렸던 것 같다. 프로야구철도 축구철도 아니고, 무슨 굵직한 대회도 없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 빈 공백을 메우는 스타는 박찬호! "박찬호, 연봉협상 줄다리기중!" "박찬호, 연봉 00억 달러 제시!" 우라질! 박찬호가 연봉으로 100억을 벌었건, 1천 달러를 벌었건 왜 우리가 그 액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아프리카 어느 부족에겐 숫자 언어가 '하나, 둘, 셋'뿐, 그를 넘어서는 숫자는 다 '많다!'로 일괄하여 나타냈다는데, 우리도 "박찬호, 그 친구? '많이' 벌지." 하는 쯤으로 알고 넘어갈 것이지, 왜 그 액수를 즐겨야 하는가? "나, 교육노동자, 한 달에 이백쯤 번다. 더 적은 돈을 더 고달프게 버는 사람들도 많은데, 눈길을 바깥으로 돌려 보면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찾아드는 제3세계 노동자도 있는데 이는 정말 고마운 일 아닌가!" 차라리 제 월급 봉투를 세어보고 또 세어볼 일이지, 왜 좀털만큼도 나와 상관없는 어떤 재수꾼의 연봉 액수를 할 일없이 헤고 헤는가? 눈살이 더 찌푸려졌던 제목은 "박찬호, 겨울 훈련에 돌입!" 따위다. 아, 사회의 목탁이요, 공기(公器)요, 어쩌구저쩌구 침 겔겔 자화자찬 늘어놓는 ×병할 신문사 업주들, 박찬호 하나 팔아서 먹고 사는구나! "여러분, 박찬호 선수 지금 막 침대에서 일어났습니다. 세수를 하러 지금 마-악 세면대로 향하고 있습니다! 칫솔을 드느냐, 치약을 먼저 집을 것이냐?" 저희들 벌이를 위해서, 백성들에게 '박찬호의 일거수 일투족 엿보기'를 강요한다.

시를 쓰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문학이 우리를 구원해주지 않을까, 얼풋 바랜 적도 있었다. 지금 내 머리는 시를 잊은 지 오래지만, 그래도 가끔은 툰드라에 피어나는 민들레꽃과 티베트 산중의 순박한 노인들을 떠올리고 싶다. 학교일과 집안 대소사와 전교조동네 일 빼고 나머지 머릿속을 연예계/정치계 방아찧기로 채우기는 정말 싫다. 전철 안, 이곳저곳을 둘러보아도 스포츠신문에 머리를 처박은 사람들. 그 머릿기사 활자를 내 눈에 담지 않으려고 애써 고개 돌리건만 어디도 눈길 둘 곳 없는 전철 안에서 나는 이따금 상자 안에 갇힌 염소처럼 불편하다. 인문 교양의 이 소름 끼치는 획일화여, 하향 평준화여! 박찬호가 개천에서 날아오른 뒤로 기세 등등하게 자리잡은 대미(對美) 문화-해바라기여!

신문사 업주 ××들, 그동안 '월드컵 축구'도 실컷 팔아 먹었지. 엊그제 「한겨레」에는 모처럼 양식 있는 기사가 실렸다. "월드컵 대표팀이 막대한 돈 써가며 유럽 전지훈련 떠나는 날, 효창운동장에서는 한 선수가 딱딱한 맨땅에서 태클을 걸다가 부상을 입었다. 그는 선수 생명이 끊길 위기에 놓였다고 한다." 그 며칠 전에는 같은 신문에서 '월드컵을 통하여 무엇을 얻을 것인가?' 어쩌구하는 제목으로 먹물쟁이 여럿을 불러다 수다를 떨게 했는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을 비롯해 꽤 쟁쟁한 개혁파 지식인들이 나왔었다. 읽어보나마나 그 입에 그 소리렷다. 이미 실력이 굳을 대로 굳어진 대표선수 몇 명 닦달해서 '16강의 환상'을 일으켜 보려고 이 나라의 언론들은 어지간히도 애들 썼다. 생활체육과 축구저변 확대에도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는 그 놈의 운동 장사판에 왜 「한겨레」와 개혁파 지식인들도 꼽사리 끼는가?

들것에 실려나간 한 어린 선수를 떠올린다. 한국 축구선수들에게 '승부근성'과 '감투정신'을 귀따갑게 주입시킨 부랑당패들이 누구냐? 말이 좋아 '감투'지, 왜 아마추어 선수가 황폐한 헝그리 근성으로 내몰려야 하는가? '(취업) 경쟁'에 쫓기지만 않았더라도 그는 무모한 태클을 삼갔을 것이다. 효창운동장이 남아 있는 한, 축구로 직업 삼을 청소년들을 키워서는 안될 일이었다. 운동생명 끊긴 그에게 월드컵 장사판이 과연 무슨 신바람을 안겨다 줄 것인가? 운동장을 잃어버린 그에게 한국 사회는 어떤 미래를 열어줄 것인가?

"평준화를 때려 부숴라!"

올 초부터 사납게 불어닥치는 이 여론몰이 바람이 심상치 않다. 올 초에는 이 문제로 TV 토론회가 열렸었는데, '우리쪽'이 몹시 죽 쒀 버렸다는 얘기를 듣고, 녹취록을 검색해 보았다. 할 말들을 안 한 것은 아니더라. 하긴 했으되, 저들 공격을 방어하는 데에 급급했다. 모처럼 반격에 나설라 치면 사회 보는 친구 길종섭이가 딴 주제로 슬쩍 화제를 돌린다. 저들 서슬에 알게 모르게 기가 꺾인(?) 세 분은 '평준화를 통해 얻은 게 뭐냐?'는 사회자 질문에도 묵묵부답이었고, 평준화 때려부수기주의자 윤정일(전 교총 출신)이가 되려 자상하게 평준화의 '공'을 일러주더라. 이에 화답하여 길종섭이가 "평준화 반대쪽은 여유가 있으시군요"하고 말 희롱까지 일삼더라. 나 같았으면 사회자 목덜미부터 물고 늘어졌겠다. "당신 질문부터 삐뚤어진 것이오. 평준화를 통해 얻은 것도 있지만, 잃은 것도 있으니 공평하게 결론 맺기를 평준화의 취약점을 보완하는 쪽으로 가자는 게 당신들 뻔하고 짠한 논리 아니오? 그래서 자립형도 들여오고, 특목고도 들여오자는 것일 텐데 그게 어찌 '보완'이오? '해체'지! 똑똑히 들으시오. 평준화를 통해 얻은 게 적다 하여 그것이 평준화 수정 또는 해체를 두둔해 주는 논거는 될 수 없소. 따지려거든 평준화를 평준화답게 벌이고, 교육 평등을 제대로 추진해 놓고설랑 평준화의 공과를 따지시오."

그곳에 참석한 전교조 활동가는 저들 논리에 휘말리는 발언을 한두 차례 하여 저들의 기세를 높여 주었다. "여지껏처럼 주입식 교육을 하는 데는 '수준별'이 좋다. 그러나 다양성을 드높여야할 21세기에는 수준별이 맞지 않다"는 것인데, 무슨 이런 어정쩡한 말이 있는가? '다양성을 위해서는 학력 이질집단이 낫다'는 이야기는 핀트가 어긋나도 한참 어긋난 말이다. 우리가 '수준별'을 반대하는 으뜸 이유는 '다양성 보존' 때문이 아니라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이 더 깊어지는 것을 막자'는 말이여. '다양성 어쩌구'도 곁가지 논거 쯤은 되지만 어찌 그 급박한 토론회 자리에서 한가로운 이야기를 꺼내는가? '다양성의 챔피언'은 저들인데, 어찌 저들 앞에서 ('다양성'이라는) 문자를 쓰고 주름을 잡는가?

거기 나온 이주호라는 작자, 5.31개혁안의 수괴 박세일의 수제자, 한국의 싱크 탱크인 코넬대학 커넥션(박세일/이주호/유상덕 등등)의 한 멤버, 차기 집권을 '따논 당상'으로 여기는 한나라당에게 발빠르게 충성 경쟁을 벌이려고 '비전 2011'을 펴낸 한국개발연구원 그룹의 한 사람, 말도 안 되는 ×같은 소리까지 맘껏 지껄였다. "학력 이질집단이 더 낫다고 그러는데, 걱정 말아요. 학생 선발권을 사립학교들에게 허용해 주면 (우등생) 동질집단을 선호하는 사학재단도 있을 거고, (우등 + 열등생) 이질집단을 반기는 재단도 있을 테니까." 에라, 이 '제논의 역설'인가 궤변인가 늘어놓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제논이 우등 열차 타고 가다가 우동 사먹고 이질에 걸려서 집단적으로 까무러칠 소리, 발언하는 사람아. 세상에 명문고 되기를 싫어하는 사학재단이 어디 있다고 그 따위 욕지기 나는 궤변을 늘어놓는단 말이냐.

"하긴, 학원이 학교보다 더 잘 가르치지. 다양성도 나쁜 것은 아니여" 저들 말,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 어찌 저들을 거꾸러뜨리는가. 물론 다양성은 좋을 때도 있지. 그러나 문제는 '지금 현실이 (그리고 보편교육의 성격에 비추어) 다양성을 말할 때인가'다. 한가로운 교수께서도 '선택'에 맞장구쳤다. "학교 들어가서 과목을 선택하는 것도 선택인데, 왜 꼭 '학교 선택'만 선택이냐"고? 똥인지, 된장인지도 헷갈려 해서야 어찌 평준화를 옹호할 말힘이 생길까? '선택의 이데올로기'가 판치는 세상에서는 어떤 놈의 선택이든 당분간 같이 놀지 말아야 한다는 '재난 대비책'을 모르셨단 말인가?

저들은 한껏 고무돼 있다. 대다수 학생들이 학원 문 앞을 열심히 들락날락거리는 현실 하나만 놓고 보아도 학교는 도무지 할 말이 없을 테니 국으로 처박혀 있으라는 뜻이다. 이미 학원과의 경쟁에서 학교는 패배했다!(→이 말이 과연 논리적으로 성립하는지, 나 같았으면 이 말도 쏘아 붙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의 최고 화두는 '학교의 경쟁력 높이기'가 되어야 한다, 괴발개발 지지배배....

너덧 개의 거대 언론기업이 박찬호 하나, 팔아 먹고도 거뜬히 살아가는 사회에서 평준화 혐오론자들은 기승을 부릴 만하다. 수많은 소시민들이 양키와 감히 어깨를 겨루는 우리 영웅(?)의 일거수일투족 엿보기를 일상의 낙으로 삼는 현실에서 '수월성 교육'의 당위성은 한껏 드높을 수밖에 없다. 우리 눈에는 근사한 홍명보와 이동국의 활약상만 보이고, 그늘진 곳의 어두운 얼굴들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어제 보아도 오늘 잊는다. 오늘 보아도 내일 지운다. 경쟁력이라, 내 새끼가 당장 일류, 아니면 이류 대학에라도 입성해야 겠고, 전문대학도 못 들어간 먼 이웃보다 제법 학교성적 올리는 가까운 친척 조카가 더 이뻐 보이는 사람들에게 '경쟁력'은 낯선 이역의 존재가 아니다. 머릿속으로는 대동세상을 그려도 몸으로는 '좁은 문'을 향해 뜀박질하는 우리들에게 이미 '평준화'는 반쯤 허물어진 체제다.

줄기찬 저들의 공세, 우리가 얼마나 되받아칠 수 있을까? 어디까지 밀리고 어디서 되밀어낼 것인가? 나는 모른다. 한국 사회/교육운동의 잠재력이 얼마나 뻗어갈지 나는 예견하지 못한다. 우리가 무너져내리는 언덕 위에 서 있음만 알 뿐이다. 여기저기서 많든 적든 돌멩이가 일어나 외치리라는 것은 안다.

2. 교장선출보직제 유감

"교장을 교사들 손으로 뽑자!" 전교조의 오래된 이 외침을 모르는 이는 없다. 대체로 맞는 이야기를 놓고서 시시콜콜 시비 걸 생각이 없었다. 그러기가 싫었다. 그들 논거의 허약함을 입증해낸다 해서 무슨 힘이 생기겠는가. "교장선출 보직제 쟁취 운동을 올해 전교조 으뜸 사업으로 잡자!"는 이야기가 한 구석에 나돌았지만 별로 세력을 이룬 주장은 아니라 여겨서 잊고 지냈다. 그런데 전교조 기관지에서까지 '전교조 대표 브랜드 어쩌구' 대문짝만하게 떠든 것을 보니 잠깐이나마 참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네들 주장부터 옮긴다.

"왜 지금 이 때에 '교선보제'인가? 첫째, 교육민주화 투쟁의 총체적 전선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신자유주의-교육시장화 개방 저지 투쟁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셋째, 7차 교육과정과 입시 문제에 일정한 해결의 실마리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참교육 운동의 전진 기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시비하는지부터 다시 밝힌다. "교선보제는 전교조가 추구할 과제의 하나"라는 주장에 대해 딴지 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올해 '으뜸 사업'으로 삼자는 고집센 이야기에 대해 비평하는 것이다. 교선보제는 오래 전부터 나온 요구다. 뒤집어 말하자면, 지금 갑자기 절실해진 사안이 아니라는 말이다. 새삼스레 거기 방점을 찍으려면 정세가 어찌 바뀌었는지 그 배경을 납득하게 해줘야 한다. 책상머리에서 관념적으로 전술을 논할 때에는 이 '설명'이 요긴하게 느껴지지 않을지 모르겠으나, 일선 학교에서 동료 교사에게 '함께 행동에 나서기'를 부탁할 때는 한 줄 한 줄의 '배경 설명'이 얼마나 긴요한지 모른다. '취지 설명'이 조금이라도 허술할라 치면 동료 교사는 0.1초 안에 '동참 거부'의 명분을 발견할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자. '교장의 횡포'는 점점 더 심해지기는커녕 전교조가 나름의 발언권을 행사하게된 뒤로 오히려 얼마쯤 약해진 것이 사실이다. 전교조의 조직력이 여전히 약한 곳에서는 변함없이 득세하고 있다고? 그래, 누가 아니래나? 그렇다고 그것이 '절실함'의 논거가 되지는 못한다는 말씀일세.

학교 교육의 기본 방향은 누가 정하는가? 교장이 정하는 게 아니라 교육관료와 그 등 뒤의 경제관료가 정하고 지배엘리트 계층이 배후에서 조종한다. 우리가 지금 신자유주의 교육 개악을 염려하고 이를 막아내려고 안간힘 쓰고 있는데 이 흐름을 교장이 주물러대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살펴 보게나. 교육을 기껏 '인적 자원 관리'쯤으로 우습게 깔보는 교육부 관료들께서 '교장 선출보직제'를 결사 반대하지 않고 있네. 그렇다면 박정희가 일국의 장관 나리들을 워커발로 쪼인트 까던 때 말고 21세기 지금 이 때, '교장 임명' 아닌 '선출제'라는 것이 옛날만큼의 혁신적인 의의는 띠지 않는다는 것을 헤아릴 수 없는가? 87년에도 '직선제 개헌'은 결코 혁신적인 슬로건이 아니었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어쨌건 그 시절은 '절차 민주주의의 회복'이 나름으로 중요한 때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네. 그렇기는커녕 신자유주의자들이 '교장 선출'을 흔쾌히 수긍하고 있다면 그들에게 무슨 야리꾸리한 꿍심이 숨어 있으리라고 추리해볼 수 없겠는가? 단위학교 저마다, 공립의 울타리를 벗어나 멋대로 하게 하여라! 그에 걸맞는 격식을 갖추려면 교장도 알아서 뽑게 하는 게 그럴싸하다!

전교조 신문의 기고자 김대유 선생께서는 교선보제에 온갖 화려한 의의를 다 갖다 붙였다. 교육민주화의 총체적 전선을 이룬다? 대관절 어떤 비결로? 해직교사 1세대가 교장으로 좀 진출해야 전교조의 정체성이 더 탄탄해질 거라는 야무진 비전을 제시했는가? 괜찮은 교장들이 여럿 생기기는 하겠으나 이는 전교조의 정체성과 전혀 무관한 일일세. 전교조는 노동자/피고용자들의 단체임을 잊었는가? '신자유주의 저지투쟁의 보루'라는 기이한 해석에 대해서도 길게 논박할 필요가 느껴지지 않는다. 대관절 '선출된 교장'들이 미국의 교육시장 개방 압력에 맞서 결사 항전할 시위대로 나서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7차 교육과정의 최대 문제점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압살에 있다. 선출된 교장단이 자율적 내신체제를 세워 입시개혁의 선봉투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야릇한 논거도 듣기 딱하다. 세상에 입시제도 개혁을 둘러싸고 집권엘리트들이 온갖 지× ×병을 다 떨었어도 별무 신통이었음을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선출된 교장은 무슨 '하늘에서 내려온 기마 민족' '환인, 환웅' 쯤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민주운동을 거드는 사람들은 자부심이 너무 세다. 기본 방향성이 옳다는 데 대해서야 천만 곱절 자부심을 품어도 무방하지만, 옳은 길을 지향하기만 하면 옳은 방법과 전술이 저절로 찾아질 것이라 착각해서는 안될 노릇이다. 우리가 무슨 '하늘에서 점지해준 현인들'이 아닌 다음에야, 우리 자신이 가지가지 과오와 단견과 실수를 통하여 운동의 길을 가까스로 찾아나가는 것이다. 게다가 기성 사회가 어지러이 이해관계에 얽혀 있고, 우리도 그 속에 깊숙이 발을 담그고 살아가는 것이라면 우리 자신이 좀스런 욕심과 눈앞만 내다보는 단견에 얽매여 운동의 길을 그르칠 가능성은 언제든 도사리고 있지 않은가. 지금의 '교선보제 만만세!'도 그런 의혹을 벗어나기 어렵다.

여러분, 아시다시피 골수 부르조아 진념군이 "학벌 폐지? 시끄런 소리 집어쳐!" 멋드러진 인기 발언 터뜨린 뒤로, 평준화 깨부수고 학교민영화, 화끈하게 들이밀려는 책동이 한결 흉흉해지고 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교육'을 둘러싸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교선보제당 당원'들께서는 도통 고개 돌리려 하시는가? 당신들의 속내를 넘겨짚어 추리해 보는 것을 용서하시라. "7차 교육과정 막아내는 것은 우리 전교조 힘으로 도무지 안된다. 대세를 크게 뒤바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우리 힘으로 따낼 수 있는 것이나 따내자. 교선보제, 그 얼마나 짭짤한 실리인가? 실리를 챙긴 뒤에 어찌어찌 해보면 또 나중에 무언가 길이 생길 게다. 아슬히 그런 느낌이 든다...." 교선보제를 외치는 부르짖음 뒷전에 완강히 깔려 있는 생각은 '신자유주의, 못 막아낸다'는 패배주의, 또는 '7차 교육과정과 평준화 해제론, 왜 우리가 꼭 막아야만 하냐?'는 방향상실증 따위 아닐까? 어찌하여 한 도막의 진실만 담고 있는 절차민주주의 문제에 그렇게 끈덕지게 매달리는 한편으로, 현안으로 휘몰아치는 다른 문제들에 대해 그렇게 무관심할까?

'교선보제 비판'이 사실 내키지 않는다고 앞머리에서 밝혔다. 이것만 비판해내면 어떤 한 가지 선명한 전술 방책에로 전교조와 교육운동 진영의 의견이 화끈하게 몰려드는 그런 형편이라면 비판에 돛을 달 수도 있겠으나, 지금은 (거칠게 표현하여) 솔직히 바람 한 점 없는 망망 死海에 떠있는 기분이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교선보제당 당원'들에게. 이렇게까지 냉정하게 비판할 것은 없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었다. 어디 진구렁에 빠진 것이 당신들 뿐이겠는가. 엊그제 신문에는 빛나는 시민운동단체 '참여연대'의 대표 박원순씨가 민주당의 '국민참여 경선제' 현장을 다녀 와서 "아직 투명선거가 되기는 한참 멀었노라."고 매섭게 꼬집는 글이 실렸다. 말씀이야 안 읽어봐도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겠으나, 문제는 그의 관심이 참으로 한가로운 곳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참여연대'가 엄청난 행동력을 지닌 것도 아닌데 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고작 그러한 일반/절차 민주주의 확립의 문제에 머문다는 말인가. 전교조가 '교선보제의 세계'에서 유유하게 노니는 것과 참으로 닮은꼴이렷다.

밤이 깊어져야 별빛의 또렷함을 안다 하였다. 교사운동의 침체상이 깊어질 때, 우리들 눈은 오히려 더욱 형안(炯眼)으로 빛날 지도 모른다. 어느 지인(知人)은 '살아야겠는데 그래도 답답하다'는 넋두리를 이메일로 보내 왔다. 문득 누군가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앞엣 분에게 언어의 순서를 좀 바꿔 보라고 권하고 싶다. "답답하다. 그래도 살아야겠다." 내게도 건네주는 권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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