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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 바우처의 거짓 약속_강신현역

2001.11.08 14:14

Bob Lowe 조회 수:1648 추천:7

바우처의 거짓 약속

바우처의 공허한 약속
(The Hollow promise of school vouchers)

Bob Lowe1) 역자 : 강신현

 

역자주

이 글은 Rethinking schools(http://www.rethinkingschools.org)자료실에 있는 것을 번역해 본 것이다. 글에서 필자는 미국의 공교육이 어떤 경로를 거쳐서 시장논리가 판치는 형편없는 꼴이 되었는지 다루고 있다. 처브와 보우, 공교육의 실패를 만회해보고자 하는 의도로 Polly Willinams가 밀워키주에서 시작한 학교선택프로그램이 '선택' 논리가 대중화되는데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 보여준다.

보다 구체적으로 선택의 원리가 경제적인 면에서 또 교육기회 제공면에서 기득권층에 상당히 유리하여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립학교는 국가로부터 독립되어 있어 자율성이 크고 이에 따라 우수하다고 하지만 사립학교의 관료성과 특권화된 모습이 글속에서 자세하게 드러난다. 특권층과 자본이 시장의 원리와 선택의 논리를 지지하는 이유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서비스를 독점하고 공적인 책임으로부터의 회피하려는 데 있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글에서의 오역이나 서투른 부분은 전적으로 역자의 책임이다).

 

서두

지난 150여년간 미국의 공교육은 기본적인 공익(public good)을 증진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생각은 공격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수십년 동안 국가권력의 공적책무를 근본적으로 재정의한 보수주의자들은 "선택"이란 보호막을 앞세워 공립학교를 시장으로 대체하자는 제안을 계속해왔다. 또한 그러한 그들의 주장을 그럴싸하게 만들어서 다양한 계층에 퍼뜨리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심각한 공교육의 부실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시장화로 내모는 것은 모두에게 평등의 효과도 긍정적인 효과도 가져오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특권층을 사회적 의무로부터 자유롭게 할 것이며 그들의 독점적인 출세만을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선택의 원리로 교육을 시장화(educational markerplace)하려 한 직접적인 시도는 보수경제학자인 밀튼 프리드만(Milton Friedman)의 업적이다. 1950년대 중반에 쓰여진 저작에서 프리드만은 모든 학부모에게는 자녀들이 학교를 다니는데 드는 비용과 동등한 금전적 가치를 갖는 바우처(voucher)2)가 주어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학부모는 정부의 감독을 거친 학교라면 어떤 학교라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프리드만은 이것을 레스토랑의 위생검사와 연관지었다). 부모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학교의 가치만큼 학교에 자산을(resource) 투여할 수 있으며, 학교는 입학하려는 학생의 교육수준과 입학조건을 정할 수 있었다.

당시 프리드만의 제안은 광범위한 지지를 받지 못하였다. 비록, 많은 사람이 1950년대 러시아와의 우주경쟁에서 뒤쳐진 것은 커리큘럼이 느슨한데 원인이 있다며 공교육을 실랄하게 비난했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수반교실에 더많은 관심과 커리큘럼상의 혁명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낙관론이 우세하였다. 게다가 1954년 Brown v. 교육위원회의 결정이후 초기 십 년간은 공교육이 교육평등(Educational equity)을 낳을 수 있다는 믿음이 여전히 우세하였다. 사실 프리드만의 보수적 성격이 잘 드러난 것은 학교의 인종차별폐지(School desegregation)주장이었다.

 

최초의 선택 프로그램

최초의 선택 프로그램은 백인 학생들이 흑인들과 같이 공립학교를 다니지 않고 사립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한 버지니아 공립기금에서 비롯되었다.3) 프리드만은 이 문제를 그의 제안에서 언급했다. 비록 그가 인종차별철폐(integration)에 대해 개인적으로 지지한다고 했지만, 인종차별철폐를 국가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학부모의 선택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프리드만은 평등보다는 자유의 우위를 역설하였고, 모두 동등하게 소유할 때보다 훨씬 크기가 줄어든 자유를 술책을 써서 은폐하였다.

1960년대에는 공교육이 평등과 수월성(excellence)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팽배하였다. 하지만 1980년대 국가를 경제적·사회적 해악의 개선자가 아니라 가해자로서 규정하였던 정치적 분위기 하에서 그런 자신감은 상당히 위축되었다. 학생의 능력을 발전시키기에 학교는 매우 부적절해서 미국이 경쟁 우위를 잃고 있다고 주장하는 일련의 국가보고서는 이런 분위기에 상당히 큰 기여를 하였다. 또한 백인학생과 유색인종 학생간의 교육 결과의 불평등이 여전하다는 주장은 평등한 교육기회의 제공을 목적으로 하는 공립학교에 대한 신뢰를 상당히 손상시켰다. 그런 상황에서 저소득층 유색인종학생의 선택기회를 강조하는 새로운 사립학교 선택프로그램은 교육 시장화의 변호를 의도한 새롭고 공적인 연관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접근해 들어감으로써 선택이 모두를 위해 좋다는 환상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하였다.

그런 연관은 1990년 6월 공개적으로 드러났는데 그 당시 위스콘신주 공화당원인 Annette "Polly"  Willinams(D-Milwaukee)는 - 상당히 저명한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밀워키주 학부모 선택 프로그램의 후원자인 - 존 처브와 테리 모우에 의해 쓰여진 "정치, 시장 그리고 미국 학교"을 홍보하기 위한 차원에서 상당히 비중있는 참석자로서 Washington D.C를 방문하였다. 학문적 저작은 언론의 관심을 별로 타지 못했지만, 이것은 교육에서의 선택을 홍보하는 다양한 캠페인이 벌어질 것이란 것을 암시했다. 그것은 또한 시장에 학교를 열어주는 것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보수적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훨씬 광범위한 지지층이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해 주는 것이었다. 비록 "선택"에 대한 지지가 다양한 정치세력간의 합의를 나타낸다고 볼 수 없겠지만, 미국에서 이 입장은 빠른 속도로 주요한 정치쟁점이 되어 학교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평등도 교육적 우수성도 없는 선택의 원리

이러한 쟁점의 가장 첨예한 지점에 밀워키주 선택 프로그램과 처브과 모우의 "정치, 시장 그리고 미국 학교"이 있다. 전자는 사립학교에 정부지원금(public funds)을 제공하는 온당한 프로그램으로, 선택이 기회의 평등을 넓혀준다는 것을 실증한 것처럼 보였다. 후자는 선택이 교육에서의 수월성을 낳을 것이라는 전제로 모든 공교육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고자 하였다.

전체적으로 이 양자들은 선택이 평등과 교육에서의 수월성을 낳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진실에 가까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비록 밀워키주 선택 프로그램이 설령 참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했을 지라도, - 몇몇 차별(差別)폐지조치(affirmative action)4)과 같은 시도 - 모든 사람이 사립학교에 다닐 수 있게 바우처를 제공해야 한다고 했던 처브와 모우의 논의는 그들의 가정을 실증하지 못하였고, 교육기회의 평등을 극단적으로 내포하였다.

밀워키주 학부모 선택 프로그램이 곧장 어떤한 효과를 발휘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이에 걸맞지 않게 관심을 끌었다. 프로그램이 실행되었을 때 10만 명쯤의 학생이 있는 지역에서 처음으로 1000명의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개인당 2500달러정도를 지원하여 비종교계 사립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하였다. 1990∼1991년 사이에는 겨우 558명의 학생이 신청하여 대략 341명의 학생이 참여한 7개 학교에 최종 입학하게 되었다.〔이 기사는 Rethinking Schools의 1990년 겨울호에서 전재한 것이다. 밀워키주에 관련된 수치는 좀 변했지만 전반적인 프로그램은 여전히 예전 그대로이다.〕

프로그램의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명망있는 보수주의자들은 이를 강력하게 지지했다. 학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그 프로그램은 부시정부, 월스트리트저널, 위스콘신 공화당 주지사였던 토미 톰슨, 그리고 저명한 브래들리(Bradley)재단 등으로부터 상을 받았다. 그 프로그램이 성공했는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수많은 지지자들은 국가 교육의 건강성을 다시금 회복한 최초의 시도였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들은 공교육의 독점을 깨뜨리는 것만이 국가 교육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방법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호되게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전 위스콘신주 교육위원회 교육감(Superintendent of Public Instruction)이었던 Herbert Grover와 같은 반대자는 개인적 의도와 별개로 공익파괴에 몰두하는 우파의 상업적 이해관계를 결과적으로 도와준 공범이었다고 폴리 윌리암스를 낙인찍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지금까지 자연스럽게 여겨져온 다양한 재화를(perceived goods) - 인종차별철폐, 교사노동조합, 보통교육과정, 특수장애아를 위한 교육기회제공을 포함하여 - 무로 돌릴 수도 있다는 이유로 그 프로그램에 반대했다.

그래서 지지지들과 찬성자들 모두 윌리암스의 시도를 미국교육의 미래를 둘러싼 전쟁에서 분기점을 형성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밀워키주 선택프로그램은 의도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보수주의자들이 프로그램을 지지한 것이 폴리 윌리암스를 그들의 대리자로서 생각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밀워키주 공립학교의 계속되는 실패를 극복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유색인종 저소득층의 아이들에게 적절한 교육기회를 제공하고자 했을 뿐이었다.

예를 들어, 1989-90년대 히스패닉계의 평균 GPA5)는 1.47이었으며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평균은 1.31이었다. 밀워키주 15개 고등학교 중에서 3개 학교에서 37%∼40%의 흑인이 정학을 당했다. 이전까지 매년 중퇴율이 아프리카계는 17.8%였으며 히스패닉계는 17.4%였다.

윌리암스는 너무 형편없느 평균성적과 경악스러운 정학률 그리고 중퇴율을 치유해보고자 아프리카계 학생과 히스패닉계 학생에게 오랫동안 교육기회를 제공해왔던 학교에서라도 - 부분적으로 그들의 지역사회에서 - 소수의 학생만이라도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 프로그램을 대중학교(common school)와 사회통합의 이상을 해쳤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것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런 실현되지 않은 전망은 아이들이 교육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잠재적 기회를 앗아간데 대한 변명으로 적절치 못하다.

선택을 옹호하는 자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밀워키 프로그램은 그동안 할 수 있는 최대한은 실행했던 저소득층에게 몇 가지 선택권을 부여하였지만, 누구도 일부 특권층이 학교를 선택해서 교외로 이주해가거나 또는 사립학교를 선택해서 입학할 권리는 사실상 막아내지 못하였다.

 

문제의 소지가 있는 질문들

하지만 그 프로그램은 몇가지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비록 학생들이 사립학교 수업료로 2,446달러를 지원받아 프로그램 첫해에는 선택의 기회가 생겨났지만, 이런 상대적으로 적은 바우처로는 부모들이 아무리 하고싶어도 엘리트학교나 압도적으로 많은 백인 대학진학준비학교까지(preparatory school)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둘째, 그래도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은 가장 적극적으로 아이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제공해 주려하는 부류의 사람이었으며, 결과적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에 비해)가장 많이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enfranchisement) 주어진 사람이었다. 셋째, 참여한 사립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기회보다 지원자수가 많아지게 되었다. 입학은 제비뽑기를 원칙으로 하였지만, 공공감독청(Department of Public Instruction)이 과정을 감시하지 않았기에 힘있는 지원자들이 우선적으로 입학하는 것을 규제하지 못했다. 비록 그 프로그램의 성공이 두드러졌지만, 그것이 공립학교를 시장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믿음의 근거가 될 수 없었다.

부시 행정부의 계속되는 찬사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의 첫해에 몇가지 문제가 되는 사건이 생겨났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우처(voucher-bearing)고객을 대상으로 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Juanita Virgil Academy인데, 시작부터 부적절한 교과서와 시설물로 지적을 받더니 급기야 문을 닫아 입학했던 63명 학생의 학교생활을 혼란에 빠뜨렸다. 대체로,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학생중 비졸업생인 333명중에서 155명(46.5%)이 다음해에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밀워키주의 선택프로그램이 갖는 문제점은 처브와 모우의 책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개인이 "선택"의 기회를 가지게 될 때 더욱 증폭된다.

처브와 모우는 "정치, 시장, 미국의 학교"에서 밀튼 프리드만의 논지를 보다 정교하게 다루었다. 프리드만처럼 개인의 교육기회 평등에 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지만, 교육을 시장에서의 경쟁원리로 맡겨두게 되면 모두를 위해 좋다고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공립학교는 일반적으로 효과적인 교육을 제공해줄 수 없는데 왜냐하면 현재의 운영방식이 결함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처브와 모우는 오늘날 공교육이 직면하고 있는 수많은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그들은 교장이 교사를 고용하거나 해고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교사가 늘상 자격증을 요구하는 주위 상황아래서 고초를 겪고 있으며, 교실에서 자율성이 없고, 공통의 목적을 가진 동료들과 융합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학부모는 아이가 의무적으로 다녀야 학교에 아무런 의견도 제시할 수 없다. 저자들은 그런 불만족스러운 상황을 미국 교육을 저해시키고 있는 핵심 요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게다가 그들은 1980년대의 교육개혁이 - 예를 들어, 학기연장제, 방과후 과제의 증가, 고등학교 졸업요구조건의 강화 - 관료적이었기 때문에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사실, 그들은 관료제를 효율적인 학교를 만드는데 있어 최대의 장애물로 지목하고 있다. 그들은 관료제 때문에 교장과 교사의 전망(vision)에 따라 학교를 바꾸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사장시키고 있으며 부모의 이해에 반응하지 않게 되었다고 믿고 있다.

처브와 모우에 의하면, 현재 교육 문제의 해결책은 관료적 통제를 강화하여 교육의 질을 높이겠다는 쓸데없는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통제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들은 민주적으로 통제되는 구조에서조차 관료주의는 경쟁적인 정치집단이 영향력을 제도화하는 수단으로 쓰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공립학교는 관료적이 된다고 주장했다. 대조적으로 사립학교는 자율적인데, 시장메카니즘에서는 관료적 규제에서는 절대 생겨날 수 없는 책임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논리를 따르면, 사립학교가 효율적으로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게 되면 고객은 그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처브와 모우는 시장에 의존하면 교육적 우수성이 향상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주장을 요약하면 공립학교는 효율적인 교육에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자율성이 결여되어 있어서 적절한 지도를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학교는 관료적이기 때문에 자율성이 결여되어 있다. 정치권력이 학교의 틀을 짜고 있기에 관료적이다. 그래서 효율적인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치를 시장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광범위한 데이터베이스 분석을 통해서 이루어진 그들 주장의 분명성과 해법의 단순성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정식화는 문제점 투성이에 불과하다.

 

잘못된 가정

무엇보다 처브와 모우는 1980년대 별로 영향력이 없었던 보고서들과 함께 발표된 "위기의 국가"보고서가 교육에서의 위법행위(malfeasance)6)를 뒷받침해 주었기에 극단적인 처방이 정당화되었다고 생각한다. 국가와 관련된 일을 증명하기 위해 정리된 시험결과는 상당한 의문의 대상이다.

이와 관련해서 처브와 모우가 다른 맥락에서 제기하였듯이 표준화된 시험성적이 정확하게 국가 교육의 건강성을 측정할 수 있는지는 상당히 의심스러운 지점이다.

비록 시험결과 점수가 어느 정도 가치가 있다고 할 지라도, "위기의 국가"보고서에서 미국의 시험점수의 하락과 그것을 다른 나라학생의 점수와 비교하기 위해 채택한 전략은 상세한 분석결과는 거의 설명하지 못한다. 보고서 작성자는 1960년대 이후에 완만한 점수하락을 보이고 있는 부분은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  몇몇 시험에서 70년대와 80년대 나타난 상승궤적은 인정하지 않았으며, 점수가 하락하는 경향이 없는 시험은 거의 주목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보고서는 미국의 12학년의 성취도와 다른 나라 12학년 학생의 성취도를 비교하였는데 그 둘간의 비교는 매우 적절치 못한 것으로 두 집단은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미국의 모든 학생은 12학년까지 마치며, 상당한 비율이 12학년 이상 진급한다. 대다수 나라의 경우 엘리트 학생만이 고등학교를 마칠 수 있다. 하기에 대학수준 이하의 국제비교는 신중하게 이용되어야 한다.

"위기의 국가"라는 불운한 문장을 사용하기 위해 "보통아이들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증대되고 있다고 한 그들의 주장은 증거가 부족할 뿐더러 한번도 유색인종 아이들의 교육이 적절한가하는 문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립학교를 해체하지 않고서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는 가정에 기초해서, 모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시장에 기초한 교육제도를 합리화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처브와 모우는 사립학교가 공립학교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 학자들은 처브와 모우가 제시한 자료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였는데, 간명한 복수선택시험(multi-choice test)이 학생의 성취도를 적절하게 증명할 수 있는지, 그리고 표본으로 뽑인 사립학교가 엘리트학교만을 지나치게 대표한 것은 아닌지 하는 것들이다.

비록 수많은 흑인과 라틴계부모들이 카톨릭계 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게 됨으로서 비참할 정도로 몰락한 공립학교의 교육에서 벗어났을지라도, 단순하게 그런 사립학교를 예로 들어서 학교의 우수성을 비교할 수 없다.

밀워키주 카톨릭계 학교의 성취도에 관한 최근 자료에서 고소득층과 저소득층학교 간의 성취도가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은 매우 당연한 것이며, 그것이 밀워키주 공립학교의 성취도 결과와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에서 보듯이 학생의 성취도에서 인종별 차이는 여전하다고 할 수 있다.

데이타에 관한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처브와 모우의 주장은 조사결과를 상당히 왜곡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사립학교의 특성이라고 주장했던) 자율성이 학생성취도에 큰 영향을 준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모델에서 자율성은 성취도의 변수로서 그다지 많은 것을 설명해주지 못하였다. Gene Glass와 DeWayne Matthews와 같은 학자들은 "자율적인 구조에서 변수구간의 100/5에서 100/95까지 유동적인 학교는 표준화된 성취도시험과 동등한 단위로 등급이 상승하기 위해서는 한달 가량 걸릴 것이다"라고 말했다.7) 나아가서 처브와 모우는 자율성이 증대할수록 학생이 우수해지는지 아니면 우수한 학생들이 보다 자율적인 학교에 입학하기를 원하는 것인지 증명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사립학교의 높은 성취도가 그 학교의 독특한 구조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거기에 참여하는 학생이 선별적 집단이기 때문에 그러한지 증명하지 못하였다. 마지막으로, 사립학교에서 실제 중요한 문제는 자율성이 아니라 교육과정의 국가 종속이 증대하는 것이라는 전제를 -공립기구에서도 재생될 수 있는 문제 - 넘어서는데 실패하였다.

 

과장된 사립학교의 우수성

또한 처브와 모우는 교사의 전문성을 지지하면서 사립학교의 우수성을 과장하였다. 사립학교의 교장이 공립학교에 비해 강력한 권한을 갖는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립학교 교사가 전문가로서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교원노조의 보호막이 없기 때문에 사립학교 교사란 직업은 상당히 불안하다. 이런 불안한 처지가 교사들의 자율성에 미치는 영향은 공립학교에 일반적인 관료적 통제보다 심각하다. 게다가 사립학교 교사들의 봉급은 전혀 전문가에 합당한 대우가 아니다. 전통적으로 한가족도 부양하기 어려운 보수 때문에 사립학교 교사란 직업은 다른 돈벌이가 있는 사람이나, 또는 성직의 일환(一環)으로 아니면 부양자가 직업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직장으로 여겨진다.

물론 과도한 관료제는 조직의 변화를 제한하며 올바르지 않은 교육서비스에 상당한 재원을 소모할 수 있다. 그들이 지적했듯이 사립학교가 관료제로부터 자유롭다는 사실은 옳지만, 미국에서 공립학교를 다니지 않는 상당수의 학생은 카톨릭계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이들 학교는 명백한 관료 기구이다. 범위를 확장해서 사적 영역에 있는 기구 전체를 보자면 관료제가 사적기구보다는 공적기구의 특성이라고 단언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복잡하게 관료화된 기업들은 국가수입의 상당 부분을 생산한다. 사실 기업의 영향력은 관료제의 발전과 중앙집권화된 공교육제도와 상당한 관련이 있다. 하지만 최근 변화는 공립학교가 혁신적 기업처럼 관료제와 자율성이 균형을 이룰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 처브와 모우는 여러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형태의 단위학교경영을(school-based management)8) 도입하여 개혁을 하려했던 시도는 관심을 거의 기울이지 않았다.

게다가 처브와 모우는 공립학교에 영향을 미친 여러 정치권력에 의해 공립학교의 통일성이 저해되었다는 주장을 상당히 과장하였다.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정치권력의 교육에 대한 이중적 개념은 20세기 내내 학교가 엘리트에 의해 지배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부분적으로 관료적 구조는 20세기의 전환기에 학교에 만연했던 인민주의적 정치통제를(popular political control) 없애기 위한 의도로 엘리트에 의해 계획된 것이다. 하지만 변화된 권력관계는 소수자와 가난한 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관료적 방법을 만들게 하였다. 그러므로 1960년대 시민권리운동으로 생겨난 최근의 관료적 규제가 보수주의자들이 불평하는 실제 대상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관료적규제가 인종차별철폐운동을 고양했으며, 이언어병용교육(bilingual education)9)과 약자들을 위한 교육을 만들었고, 전통적으로 권력이 없던 사람들의 요구를 수용하여 약간의 평등을 공립학교에 제도화하였다. 관료적 규제가 교육기회의 평등을 전혀 이뤄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시장이 더 나은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처브와 모우는 시장이 선택기제를 통해 모두를 위해 훌륭한 교육기회를 만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택의 원리는 사적 경제영역에서조차 이것을 달성하지 못했다. 만약 부유한 자들이 캐러비안해안에 있는 으리으리한 병원(health spa)10)과 대궐과 같은 집을 선택하게 된다면, 가난한 자들은 질 떨어지는 의료서비스와 허름한 주택을 선택해야만 한다. 사회적 자본이 없는 사람을 위한 여러 가지 보호제도는 시장이 제대로 역할을 하면 자연스럽게 기회가 보장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규제에 의해서 보장되어야 한다. 지난 수 십년 동안 보수주의자들이 제안했던 의제인 탈규제는 그런 보호망을 조금씩 파괴했으며, 부자와 가난한 자들 간의 불균형을 상당히 증대시켰다. 교육을 시장의 원리로 제도화하는 것은 그런 탈규제의 연장이며, 심각해질 사회적 불평등의 서곡일 뿐이다.

프리만과 처브, 모우 그리고 보수적 정치가와 기업가들에 의해 조장되고 있는 시장제도에서 대중과세는 모든 주에 있는 모든 학생에게 학교를 다니는데 드는 비용과 같은 금액의 가치를 지니는 비교적 적당한 바우처를 제공해 줄 것이다. 그러고 나면 소비자로서 학부모는 그들 자녀가 다닐 학교를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제비뽑기로 입학이 결정되는 밀워키주 프로그램과 달리 학교도 또한 학생을 선택할 것이다. 처브와 모우는 이것에 매우 단호하다. "학교는 학교의 사명을 규정할 수 있어야 하고,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계획해야 하는데, 만약 학교가 맡아야 할 학생이 밖으로부터 떠맡겨지게 된다면 그렇게 할 수 없다. 학교는 그들이 생각하는 관련 기준에 의거해서 - 지력, 흥미, 동기, 품행, 특별한 요구 - 원하는 만큼 적거나 혹은 많게 학생의 입학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하며, 개개 지원자에 관한 비공식적인 판단을 자유로이 할 수 있어야 한다".

 

기득권층만을 선택하는 선택제도

상당한 성취도가 수준에 오른 학생을 선택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사립학교에 달려있는 문제이며, 특히 소규모 학교의 경우 그들이 받아야 하는 바우처의 양을 채워줄 수 있는 학부모의 자녀를 입학시키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전적으로 사립학교의 결정권한이다. 이런 계획을 프리드만식으로 한다면 개개 학부모에게 바우처에 현금을 더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처브와 모우식으로는 지방학구(local district)가 지방세를 올림으로써 바우처의 가치를 늘릴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어느 경우에라도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보다 더 많은 선택의 기회를 갖게 된다.

그런데, 교육시장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보다 중립적인 뉘앙스가 풍기는 "바우처"보다 "선택"이란 말로 그들의 프로그램을 호명함으로서 이데올로기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성공을 거두었다. 우경화된 그들은 학부모에게 교육에 대한 선택권이 주어지는 것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선택"은 경제적 능력이 있는 학부모의 자녀가 좋은 학교에 들어가기 쉽다는 사실을 은폐한다. 시장에서 통용되고 있는 것처럼 무언가를 살 수 있다는 것은 거래에 얼마나 많은 현금을 투여하는가에 달려있다.

또한 선택은 기득권층이 가난한 사람을 희생하여 그 댓가로 어떻게 경제적 이득을 얻는지 은폐한다. 세금율이 줄어들면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사립학교 수업료의 일부 금액에 해당하는 바우처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재산에 의존해야 하는 사립학교를 선택할 경우나 공립학교교육에 필요한 세금을 상당히 요구하고 있는 경우와 현저하게 비교가 된다. 가난한 지방에 자원을 재분배하는 연방과 주 수준의 과세제도를 폐지한다면 부유한 지방이 세금을 최저한계 이상으로 올린다고 해도 남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프리드만의 세금혜택 계획은 처브와 모우의 제안에서도 변형되어 나타난다. 대조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경우 기본 바우처에 재정 지원을 더하기 어려운데 그런 상황은 흑인학교와 백인학교간에 학생당 교육비용사이에 커다란 격차가 존재하던 남부의 Jim Crow식 교육을 연상시킨다.

Jim Crow식 교육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자발적인 노동력 기부를 통해 학교를 세우고 그들의 변변치 못한 수입에서 교사의 월급을 지급하여 부족한 공립학교 재정을 보충해야 했던 상황에서 아주 일반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흑인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은 개선되지 않았다. 학자인 W.E.B DuBois가 주장하듯이, 만약 가난한 학교가 비상한 노력으로 우수한 성적을 냈다면, 지원금이 더 많았더라면 성적은 더욱 우수했을 것이다.

바우처제도는 오랜동안 아주 적은 예산으로 유색인종 아이들의 교육을 효율적으로 담당했던 지역사회기반의 교육프로그램(community-based education)을 지원할 수 있다. 하지만 Juanita Virgil Academy의 실패가 보여주었듯이, 선택원리를 통해 작고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학교가 존재하는 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시장원리로 가게주인에 의해 운영되는 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만큼이나 신화적인 사고방식이다. 높은 수준의 자본화와 규모의 경제는 건물을 세우고, 광고캠페인을 하고,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학생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를 운영하고, 부유하지 않은 지역에 있을 충분치 못한 바우처를 메꾸는데 필요할 것이다.

맥도날드 햄버거가게의 직원들이 주문을 받을 때 재잘거리는 소리가 표준화되어 있듯이 교사의 대본화된 수업 양식과 유사한 점이 있는 거대 패스트풋기업은 교육에서처럼 이와 유사한 결과를 보여준다.11) 19세기의 자선(빈민 charity)학교처럼, 그런 학교는 특권에 기반을 둔 교육세습체계에서 바닥의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교육을 시장주의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불평등의 문제말고도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논란을 일으킨다. 아무리 목적지향적인 개인이 그것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대중적 책무(accountability)와는 하등 상관이 없는 학교에 재정지원을 계속하는 것이 계속 허용되어야하는 문제인가? 특수한 엘리트학교,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학교, 인종차별적 이데올로기가 팽배한 학교, 미래의 노동자 양성을 위해 기업에 의해 경영되는 학교에 대중이 보조금을 지급해야 하는가? 이제는 가족이 자녀의 교육 기회를 극대화하기 위해 책임을 지는 경영단위가 되어야 하는가? 이런 시장주의적 정신은 다른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책임의식과 교육에 대한 지역사회의(community) 통제 의무 그리고 학교를 민주적 담론장으로 여기고 있는 의식 또한 미국을 건설했던 다양한 사람들의 정치적 투쟁과 문화작품을 벼려서 교육자들이 새롭게 만들었던 보통교육과정(common curriculum)의 필요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과장된 차이들

보수주의자의 정책이 미국에 있는 다양한 집단간에 실재 존재하는 차이를 상당히 부각시켰으면서도 그들중 많은 이들이 다문화운동을 적대적분할운동으로 비난했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가난한 이들과 유색인종이 살고 있는 도심부 경제를 희생하고, 중간계급 백인이 살고 있는 교외화정책(suburban preserve)을 계속했던 과거 정부정책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공화당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1980년대 이후 세금개혁정책을 퇴보시키고, 사회적 서비스를 감소시키고, 제조업일자리의 국외 유출을 용인함으로서 부자와 가난한 자간의 불균형은 매우 커졌다. 역사학자 Robert Weisbrot에 의하면 1983년까지 이미, "레이건정부의 정책이 누적되어 나타난 결과 미국의 가난한 자들로부터 부유한 5%에게로 이전된 가처분소득은 250억달러에 이르렀으며, 가난한 사람들의 숫자는 1980년 2,930만명에서 83년 3,530만명까지 증가했다."

서비스영역의 전문직종이 육체노동자의 직종을 대체할 수록 교외화(suburbanization)계획은 도심부 주택의 고급화를 부추긴다는 증거가 있다. 역사가 Kenneth Jackson은 가족구조의 변화와 함께 연료, 땅, 집세비용이 상승함에 따라 교외의 생활의 매력이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시장화는 부유한 자들로 하여금 불충분한 세수로 인해 공적서비스가 열악해지고 있는 도심을 재구조화하는 주요 동기였다. 탈산업화와 연방정부의 공적부조의 감소로 인해 점차 공적영역이 황폐화되고 있는 도심에 살고 있는 전문직종 인들은 오로지 그들에게만 혜택이 돌아오는 서비스에만 비용을 지불하려고 한다. 이러한 특권층의 고립으로 인해 사설클럽, 사설경호업체, 사설도로보수서비스, 사립학교에 대한 수요가 커졌다.

그러한 서비스에다가 최고 공립학교조차도 재정이 부족한 상황하에서 선택은 사립학교교육을 선호하는 도심거주 전문직종사자들의 기호를 지원하는 한가지 방법이었던 것이다. 실제 모든 도시마다 지역학구의 자원을 중간계급아이들을 위한 대학입학준비과정 프로그램에 불균등하게 집중하는 마그넷학교(magnet school)가 있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인종간 균형을 맞춰서 최소한의 기본적인 평등만을 실천했을 뿐이어서 중간계급 지원자 모두에게 입학허가를 해 줄 수는 없었다. '선택'제도로 인해 교외에 살던 이들이 다시 회생한 공적서비스를 희생해가면서12) 그들의 사적 욕구를 즐기기 위해 도심으로 돌아오게 될 수록, 그들은 가난한 자들을 쫓아내고 나아가 무시할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은 국가의 재분배기능이 없어진다고 해서 가난한 자들의 책무성마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책무성은 선택행위를 통해 개인 각자에서 떠넘겨진다.

하지만 사실은 사회적인 것들중 많은 것은 공익에 기여하고자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부유한 이들의 공익정신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예를 들어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대학학위수여의 기회를 주고 뿐만 아니라 그 아이들에게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할 수 있도록 학문과 상담서비스를 제공해야한다고 주장했던 뉴욕 사업가 Eugene Lang과 몇몇 이들의 제안에 상당한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 참여했었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수 십년 전부터 실시된 그런 일에 관여해야 했을 TRIO프로그램이 -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는 - 관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TRIO프로그램은 극소수의 엘리트 인구에게만 자금지원 혜택을 주었지만 선전은 요란해선 기록으로만 보면 성공한 것이다. 사실 그런 사업에 대한 연방정부의 지원은 무엇보다 우선적이었는데 왜냐하면 평등에 헌신했던 Lange와 다른 몇몇 자선가들은 오히려 예외적인 경우였기 때문이다. 미국 노동부장관 Robert Reich가 지적했듯이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보다 자선행위에 쓰는 수입이 적으며 그들이 제공한 것은 엘리트의 문화행위나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기구에 대부분 소모되고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기업이 요란스럽게 떠들어 대며 공립학교에 지원금을 주기는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훌륭히 쟁취해 낸 특별감세에서 얻어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립학교를 고르는 선택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지원금이)주어지고 있는 선택의 문제는 사립학교가 늘어난다고 해도 공익이 증대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다고 해서 공립학교가 비난의 화살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만약 공립학교가 유색인종의 아이들을 위한 곳이었다면, "선택"에 대한 관심은 제한되었을 것이며 다문화적 교육을 지키려는 시도는 불필요한 것이었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공립학교 학생들은 민족중심주의적이고 의심할 바 없이 민족주의적 교육과정을 받아왔다. 또한 그들이 받아온 학문의 수준은 민족과 계급에 따라 너무도 다른 것이었다. 예를 들어, Jonathan Kozol과 같은 작가는 이미 불균등하게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는 특권층을 지원하는 불공평성을 분명하게 강조하면서, 심각한 공립학교간의 불평등문제를 신랄하게 다루었다. 그래서 지금껏 혜택받아왔던 자들에게 선택프로그램은 제한되어야 마땅한 일이다.

 

차별폐지조항에 반발하는 보수주의자들

하지만 부시행정부는 이것을 -특권층에 대한 규제나 제한을-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들의 차별폐지조항에 대한 반대는 확고부동하기 때문이다. 1990년의 시민권법에 대해서는 반대했으면서도 법정에서 밀워키주선택프로그램을 옹호했던 시민권리를위한Landmark법률센터(legal center for civic rights)13)와 같이 공화당과 보수세력을 이끌고 있는 곳은 밀워키주 선택프로그램을 단지 모두에게 바우처를 제공하기 위한 시도의 서막으로 간주할 뿐이었다. 이런 의제는 선택을통한수월성추구연맹(Excellence through Choice in Education)에 의해 시작된 캘리포니아주 제안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1993년 11월에 치뤄진 투표에서 모두에게 바우처를 받을 권리를 부여하는 주전체방안을 마련하고자 한 연맹의 노력은 시작 초기에는 저소득층 가계만을 위한 방안이었다.

만약 모두에게 교육기회를 제공해야하는 책임을 공교육이 제대로 담당하지 못한다면, 시장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교육기업도 그것을 담당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극소수의 특권층 사이에서 선택의 논리가 대중화된다면 모두를 위한 보통교육은 결국 신화라는 메세지를 공립학교 교사들에게 던져줄 것이다. 하기에 평등에 관한 대중의 담론을 보편화하고 유색인종 사람들이 사회에 대한 공동-책임의식(co-ownership)을 느낄수 있는 방식으로 공교육을 변화시킬 다문화적 의제의 필요성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보통의식을 가진 이들을 교육하는 -다양성의 풍부함을 구현하고자 하는 -학교의 이상이 보수적 지도자와 선택을 옹호하는 단체의 생각에서는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20세기초에 기업엘리트들은 전문가 중심적이고 관료적인 공립학교를 만들어서 학교를 정치로부터 자유롭게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효율성과 공평한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는 그들의 요구는 기업이 노동계급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코자하는 정치적 욕구를 은폐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처브와 모우는 노동력을 양성하는데 있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관료적인 학교를 비난하고, 나아가 학교가 정치로부터 자유로와져야 한다는 기업엘리트의 입장을 분명히 대변하고 있다. 하지만 학교를 시장에 열어놓아야 한다는 그들의 요구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있는 정치전략이다. 그것은 1960년대 자유쟁취투쟁을 통해 부유한 자들에게서 얻어낸 합리적이고 법률적인 모든 보호망의 멍에로부터 더욱 자유로와지게 해줄 것이다. 나아가 부자들로 하여금 모든 공교육에 대한 책임성에서 자유롭게 할 것이며, 최근 급진적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추구하려는 목적의 다문화주의자의 투쟁에 심대한 타격을 가할 것이다. "선택"의 원리에 의해 교육이 지배되게 된다면 공동체에 대한 소수계급의 이해는 승리를 거둘 것이며, 현존 기회의 불평등을 가속화할 것이다.
주--------------------------
1) Robert Lowe는 Rethinking School의 편집인이며, Louis국립대학에서 수업을 담당하고 있다. 1993년 글
2) 학생의 1년 평균교육비용이 100만원이라면 99만원정도의 바우처(교육상품권)를 가정에 지원하는 것이다.
3) 대표적으로 5년동안 공립학교가 이런 이유로 문을 닫아야 했던 Prince Edward 카운티는 악명높다. 흑인도 바우처를 받을 수 있었지만, 흑인들이 인종차별대우폐지에 대한 위임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많은 아이들은 그 기간동안 제도교육을 받지 못하였다.
4) 1970년대 미국의 반전운동의 성과중 하나로, 사회에서 차별받는 흑인, 여성, 소수자 등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로 요구한 것. affirmative action과 관련된 기구들은 취직, 교육, 계약에서 흑인, 여성 등을 배려하여 뽑을 수 있도록 국가, 지역사회등의 목표와 구체계획표를 정한다. 그렇다고 afffirmative action이 강제규정은 아니어서 동등한 조건일 때 백인보다는 흑인을, 남성보다는 여성을 선택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규정이 누군가에게 역차별로 인한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다.
5) 미국에서 일년동안 학생들의 평균 성적을 내기 위한 제도
6) 학기연장제, 방과후 과제의 증가, 고등학교 졸업요구조건의 강화와 같은 80년대의 교육개혁을 의미한다.
7) 즉, 사립학교의 자율성 때문에 성취도가 높아진다고 하지만 실제 통계조사를 보편 자율성의 변수는 구조 변수에 비하면 그다지 큰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다는 의미.
8) 물론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으로 도입된 단위학교경영은 학교운영에 대해 교사와 교장이 책임지게 되어 자율성이 커진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교육재정과 행정에 대한 책임이 개별 학교에 떠넘겨지고 국가는 오히려 평가자의 위치에서 학교를 평가하고 감독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부분에서 필자가 제시하는 단위학교경영이 구체적으로 어떤 맥락인지 파악하기는 어렵다.
9) 영어로 수업하는 학교에서 영어가 서툰 소수 민족 학생에게 모국어를 병용하여 교육하는 제도
10) 사전적 의미는, 체중을 줄이기 위한 온천
11) 교육에서와 마찬가지로 대규모 자본을 갖고 전세계에서 엄청난 이윤을 벌어들이고 있는 거대 패스트풋 기업도 돈은 많이 있을 지라도 상당부분은 광고로 쓰여지거나 자본가의 이윤이 되어버리고 패스트풋 가게의 표준화된 규율에 짜여져 있는 어린 직원들은 이윤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
12) 대중을 대상으로하던 공적서비스가 몇몇 특권층에게만 제공된다는 의미.
13) Landmark법률센터는 부분적으로 브래들리재단(Bradley Foundation)으로부터 자금지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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