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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마녀의 성, 동백과 술라

바람꽃(연구소회원)

 

병사: “저 사악한 마녀를 무찔러야 한다. 폐하께서는 저 흉측한 마녀의 성에 들어가는 왕자에게 공주님을 신부로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백성1: “왕자가 왔어, 거대한 쇠말뚝으로 성을 뚫으려나봐. 저런, 성문에서 마녀가 이빨모양의 무기로 말뚝을 물었다 놓아서 병사들이 모두 깔려 죽었네.”

백성2: “다른 왕자다. 이번엔 대포 공격이군. 마녀가 용(dragon)처럼 생긴 무기로 화약을 받아 다시 쏘고 있어. 모두 전멸됐어.”

백성3: “이번 왕자는 불화살 공격이야! 성이 불타고 있어. 앗, 성위로 물기둥이 솟아나와 불을 끄네. 마녀가 회전칼을 날려. 끔찍해. 다 죽었어. 이젠 아무도 들어가지 않을 거야.”

청년: “아니요. 제가 해요!”(나무 위에서 곰곰이 생각하다 내려와 허리춤의 칼을 버린다.)

백성4: “아니, 왕자도 아닌 네가 무슨 수로? 무기도 없이 혼자! 안돼! 위험해! 돌아 와!”

청년: “똑똑똑”(성문을 노크하는 소리) “들어가도 될까요?”

마녀: “끼익”(문을 여는 소리) “이 성에 들어오기 위해 주인인 내 허락을 구한 건 당신이 처음이에요.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성을 구경하시겠어요?”(청년이 ‘예’라고 답한다.)

“여긴 도서관이예요. 세계적인 훌륭한 책들과 그림들을 많이 모아놨지요. 이 화실에서는 기계 설계도를 그린답니다. 조금 전 보셨던 기계들은 여기서 만든 거예요. 지하수를 이용해서 물레방아를 돌리지요. 여긴 정원이에요. 필요한 햇볕은 거울을 통해서 얻고 여러 가지 야채나 약초를 키워요. 이 호수로 불을 끄고 평소에는 휴식처로 이용한답니다.”

청년: “정말 아름다워요. 이제 공격은 없어요. 투구는 벗으셔도 됩니다.”

병사: “승리의 왕자여. 폐하는 약속을 지키신다. 우리는 당신을 공주에게 데리고 가려고 왔다.”

청년: (성벽위에 서서 큰소리로) “저는 마녀를 사랑합니다. 마녀의 성에 남겠습니다.“

 

프린스 앤 프린세스 중 ‘마녀의 성’(애니메이션, 1999)

 

옹산의 마녀, 동백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이하 동백꽃)’이 끝났다. 고아에 미혼모, 술집을 한다는 이유로 마녀의 성에 갇힌, 세상 고독한 동백이가 ‘순박섹시’한 촌(놈옴)므파탈 용식이의 폭격형 사랑세례로 주체감 충만하신 걸크러쉬가 되어 자신을 가둔 가타부타를 박살낸다는 가족밀착형 치정극이다. 첨에는 용식이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농고출신에 전교 꼴등을 세 번이나 했지만 정의감이 넘치는 가슴 따듯한 용식이. ‘쩌거, 쩌거, 쩌거 있자나유~’, ‘우리 쩌거해유~’, ‘쩌거, 있자나유~ 나랑 연애하면 아주 죽어유~’하면서 동백이에게 들이대는데, 누구든 그를 사랑하지 않고는 배겨낼 재간이 없다.

 

 

게다가, 이들의 알콩달콩한 사랑을 달콤살벌하게 만드는 장치가 있었으니! 바로 ‘까불이’라는 연쇄살인범이다. ‘동백꽃’은 로맨스와 스릴러가 찰진 궁합을 이루는 통에 매순간 내 속의 소녀가 심쿵 거렸다가 까불이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면 내 안의 셜록홈즈가 호출되는데! 용식이 표현으로 말하면, “쩌거, 쩌거 있자나유, 정말 환장해유~!”다. 제작진이 깔아놓은 깨알 같은 복선을 찾아내 하나하나 퍼즐을 맞춰가면서 까불이의 정체를 밝히느라 방송이 끝나기 무섭게 인터넷을 검색했다. 근데 어느 순간 더 이상 까불이의 정체가 궁금하지 않았다. 어느 날 동백이가 새벽시장 가는 길에 버스에 써 있던 붉은 글씨의 낙서를 보던 날부터.

 

'불타지 않는 마녀는 없다'

"살았대? 그러니까 불을 붙여 보는 거지. 사람이면 타죽고 마녀면 안 죽어"

종교적 신념을 선(善)으로, 이에 반하는 사람들은 마구잡이로 마녀와 이단으로 몰아 ‘부당하고 근거 없이 매우 잔혹하게’ 사람들을 죽였던 마녀사냥. 간혹 남자나 어린이도 마녀라는 판결을 받기도 했지만 대부분 마녀는 여자였는데, 그 이유는 터무니없게도 여자의 나약함이라는 것(마녀의 망치, 수도사 하인리히 크라머). 어차피 마녀로 몰아 죽일 거면서 진짜 마녀인지 아닌지를 식별한다는 이유로 불에 태워 죽이고 살아나면 살아서 마녀라고 죽이고, 커다란 바위를 몸에 매달아 바다에 빠뜨려서 죽이고 살면 마녀라서 다시 죽이고, 마귀가 들어간 자리를 증명한다면서 바늘로 수없이 찔러 죽이고 안 죽으면 마녀라고 죽이고, 펄펄 끊는 뜨거운 물에 들어있는 쇠덩이를 꺼내게 해서 팔에 상처가 안생기면 마녀가 아니고 상처가 나면 마녀라서 또 죽이고... 죽이는 것도 모자라 마녀 실험에 드는 온갖 비용과 시체 처리비, 운반비까지 마녀의 가족에게 부담시켜 가족마저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마·녀·사·냥!

이성의 힘과 인류의 무한한 진보를 믿으며 현존질서를 타파하고 사회를 개혁하려는 데 목적을 두었던 계몽주의의 등장으로 유럽의 마녀사냥은 줄어들었지만 식민제국주의로 장소를 옮긴 마녀사냥은 자신들이 정복한 본토인들의 토속종교나 전통을 미신으로, 마녀로 몰아 잔혹하고 악랄한 살인을 저지르면서 마녀 사냥은 계속되었다...

마녀라는 딱지를 갖다 붙이기에 적절한 대상들은 누구였을까? 교회의 권위나 식민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개혁적인 여성 혁명가, 남성에 종속되지 않는 여성(비혼), 프랑스 애니메이션 ‘마녀의 성’에 나오는 여성과학자나 여성이론가처럼 기존의 사회적 인습과 통념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던 여성일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지 않을까?

 

‘마녀’는 ‘동백꽃’이라는 드라마의 본질을 푸는 암호였다. 마녀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눈에 보이는 사물이 숫자로 이루어진 허상이라는 것을 눈치 챈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드라마의 판이 다시 보였다. ‘동백꽃’은 단순 로맨스 스릴러가 아니다. 로맨스 스릴러를 가장한 ‘마녀의, 마녀에 의한, 마녀를 위한 페미니즘’ 드라마다. 동백의 마법이 풀리는 순간, 마녀에서 어벤져스가 되어 까불이를 때려잡는 것이 빼박이다. 그래서 까불이의 정체는 더 이상 안물안궁!

‘동백꽃’은 마녀에 부합되는 여자사람들이 빼곡히 포진한 드라마다. 미혼녀에 고아에 술집을 하는 동백이 부터, 남편이 죽고 세 아들을 억척스럽게 키우면서 혼자 살아온 용식이 엄마 곽덕순에서, 남편의 폭력을 피해 동백이를 업고 집을 나왔지만 먹고 살기위해 동백이를 버렸으나 몰래 동백이 주변을 돌면서 까불이로부터 동백이를 구해주는 동백이 엄마 정숙과, 전교1등 고학력에 당당하게 이혼하고도 쿨하게 남편을 위기에서 구해주는 여벤져스 홍변호사까지. 자의든 타의든 남편의 보호아래 사는 인형의 집의 로라들이 아니다. 마녀를 왕따시키는 ‘옹(산)벤져스’ 마저 남편을 부양하는 마녀들이다. 게다가 옹산 게장골목이라는 지역 설정마저 작가의 숨겨진 의도아래 치밀하게 계산된 마녀의 구역이다.

하지만, 대놓고 마녀는 동백이다. 옹산의 게장골목이라는 작은 폐쇄집단의 중년여성들이 동백이를 마녀로 찍어서 핍박하는 것은 ‘혼자서 술을 파는 동백이 얼굴과 몸매가 자기들하고는 판이 하게 다른 소녀같은 비혼모’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자유와 교환한 가정(남편)을 위협하지 않도록 동백에게 ‘호로 여시에 백구대천에 잡년’이라는 딱지를 기어코 붙이려고 집단폭력을 가하는 것이다. 그러다 까불이의 위협으로부터 아들을 지키기 위해 동백이가 옹산을 떠나려고 하자 순식간에 마녀사냥을 멈추고 동백을 지키는 ‘옹(산)벤져스’ 여성연대를 결성한다. 감동한 동백은 ‘고아에 비혼모에 술을 파는 잡년’ 취급에 주눅 들어 있다가 세상을 구하는 여전사로 변신한다. 동백이 세계평화를 위해 구해야하는 세상은 바로 옹산이다. 당연, ‘Dreams come true!’ 여전사 동백이 까불이에게 억울하게 희생된 향미의 500cc 맥주잔으로 그놈의 머리통을 후려갈긴다. 우후~ 사이다!!^^

 

연쇄살인범도 잡고, 옹산에 평화가 찾아오면서 덤으로 옹산은 사람냄새 폴폴 나는 마을공동체가 된다. 여기서 약간 나의 주장(페미니즘)에 흠집을 내는 것이 하나 있는데... 마녀 동백이를 여전사로 성장, 각성시킨 사람이 바로! 용식이라는 남성이라는 것이다. 이를 어쩐다~ㅠㅠ

이것을 옥의 티로 봐야할까? 아니면 페미니즘 안경 하나로 세상을 보는 나의 단순함을 경계해야 될까? 불타는 논쟁거리를 숙제로 이 영민한 페미니즘 드라마에게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상’을 드리는 것으로 하자.

 

 

보텀의 마녀, 술라

 

또 한명의 마녀 술라. ‘동백꽃’은 1993년 흑인 여성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토니 모리슨의 ‘술라’의 오마쥬다. ‘술라’는 1919년부터 1940년의 미국 흑인마을 보텀을 배경으로 성과 인종이라는 이중적 차별에 포섭된 흑인여성들의 현실을 그린, 깊은 슬픔을 담은 잔혹(?)소설이다. ‘동백꽃’은 모든 사람들이 다 주인공이 되어 따뜻한 공동체를 형성하지만, ‘술라’는 저 홀로 끝없는 회오리 속에서 부유하다가 어두운 침묵 속으로 침잠한다. 어느 한쪽을 그대로 옮겼거나 둘의 끝을 접어 하나의 공간을 만든 것 같지만 실은 둘의 공간은 냉정과 열정처럼 따뜻하면 할수록 서늘하고 처연하다. ‘술라’를 만나러 가야한다.

 

 

‘술라’와 ‘넬’은 흑인이지만 서로 다른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술라는 남자 없이 자유로운 삶을 살아온 해나와 에바(술라의 할머니와 어머니)를 통해 인습을 벗어난 삶을, 가능성을 보며 성장한다. 반면, 넬은 결혼으로 안정된 사회적 지위를 얻은 것을 자랑하며 구속과 제약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어머니 밑에서 자란다. ‘살갑지 않은 어머니들과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들의 딸’로서 ‘백인도 아니고, 남성도 아닌, 그 어떤 자유와 승리도 그들의 몫이 될 수 없다’는 동질감으로 둘은 자연스럽게 친구가 된다. 넬이 결혼을 하고, 술라는 고향을 떠나 대학을 다니고 ‘보텀(bottom)같은 세상’에서 지나다가 홀연히 ‘보텀’으로 돌아온다. 술라가 보텀에 돌아오는 날, 울새 떼가 하늘을 덮고 사방에 날아다니면서 똥을 싸거나 아무데나 앉거나 죽는 기이한 현상도 함께 데려온다. 마치 마녀처럼. 비혼에 나이보다 더 어려보이는 술라는 보텀의 여자들과 달리 이가 빠지지도, 멍이 들지도, 허리가 두껍지도, 뒷목에 살집이 생기지 않았고, 관습 밖에서 자신의 욕망이 이끄는 대로 ‘보텀’의 남편들과 잠을 잔다. 친구인 넬의 남편까지도 말이다. 이 장면을 목격한 넬은 술라를 원망하면서 떠나가고, 마녀의 성에 갇힌 술라는 친구도 돈도 없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술라가 죽고 나서야 넬은 비로소 자신이 그리워한 사람은 자신을 떠나버린 남편이 아니라 술라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술라는 흑인 여성으로 불가능한 욕망을 꿈꾸면서 ‘나’를 찾기 위한 실험적인 삶을 살았지만 결국 통제할 수 없는 욕망의 광포함으로 모든 것을 파괴했다. 욕망이 있었으나 욕망을 건설할 아무런 터전도 사람도 없었다. 흑인여성에게 어떤 선택지도 없었던 시대의 비극이었다.

동백이 사는 성에는 단단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피어나는 꽃밭이 있지만, 술라의 성에는 모래밭 위에 심어놓은 사과나무처럼 파도는 밀려오는데 발밑에 움켜질 흙 한줌, 팔을 뻗어 기댈 나무 한그루가 없었다. 소설은 내내 흑인작가 특유의 신비주의를 깔고 미치듯이 요동치는 춤사위를 멈추지 않았지만 ‘거기에는 바닥도 없고 꼭대기도 없고, 그저 원을 그리면 돌고 또 도는 슬픔뿐 이었다.’ ‘술라’는 ‘동백’으로 낯선 땅에서 화려하게 부활했지만 과연 우리의 지성은 개인의 자유로움을 품을 수 있을 만큼 성숙한 걸까? 동백의 화려하고 완벽한 마무리가 불안한 것은 내 상상력의 부재일까, 아니면 기우일까? 이 시대 모든 비체(abject) ‘술라들’에게 손을 내밀어 자유로운 개인들의 조화로운 공동체를 함께 꿈꾸고 싶다. 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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