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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교육과정 현안 문제

-고교학점제를 중심으로-

 

이현(여의도 고등학교)

 

1. 2015 교육과정과 고교학점제

 

현재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핵심적 현안은 고교학점제 준비와 2015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을 학교현장에 적용하는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위 두 가지 과제는 동일선상에 놓인 문제로 보인다. 고교학점제에 대한 교육부의 정의는 학생이 적성과 진로에 따라 다양한 교과목을 선택 이수해 누적학점이 기준에 도달하면 졸업을 인정받는 제도이다. 즉 고교학점제의 핵심은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고등학교의 경우 2015 교육과정 도입의 취지는 융복합의 시대에 학생들이 문이과의 칸막이로 인해 편식교육에 빠져드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학생들을 문이과 계열로 분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편식교육을 막고 균형 있는 학습을 위한 상식적인 방법은 공통과목을 확대하거나 과목군별 최소 이수 단위 기준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2015 교육과정은 정반대로 학생의 선택권을 최대한 확대하고 최소 이수단위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갔다.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하면 자동적으로 균형학습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또한 시도교육청들도 경쟁적으로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도록 학교 현장을 압박하고 있다.

 

2015 교육과정이 내포하고 있던 내적 모순(융복합 시대의 균형학습과 학생선택권 확대)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고교학점제를 핵심 공약으로 제시하고, 새 정부의 가장 중요한 교육정책이 되면서 학생선택권 확대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2015 교육과정은 고교학점제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학생 선택권의 전면적 확대로 가기위한 부분적 확대)로 인식되고 있다.

이제 2015 교육과정과 고교학점제는 학생의 선택에 의한 개별적인 교육과정 구성이라는 궁극적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동일한 성격을 지닌 수단(단지 강도에서만 차이가 존재하는)이 되었다. 2015 교육과정과 고교학점제는 연속선상에 위치하는 정책이 되었다.

 

 

2. 탈입시교육-미래교육 담론의 성격

 

고교학점제와 2015 교육과정 나아가 최근에 진보교육감이나 혁신학교를 통해 유행하고 있는 신학력(혁신교육) 담론은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대한 매우 유사한 공유지대를 지니고 있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학생의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전제이다.

 

고등학교 교육에서 탈입시교육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제시한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이다. 입시중심교육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우선, 입시중심과목(특히 수학과 영어)에 교육력이 집중되면서 학생들의 다양하고 균형 있는 학습을 방해한다. 둘째, 오로지 시험성적만을 위한 교수-학습(객관식 문제풀이를 위한 주입식-문제풀이식 교수-학습)에 매몰되면서 학생들의 지적-인격적 성장 특히 고등정신기능의 발달을 방해한다.

 

교육운동 내에서 탈입시교육의 전략은 대입제도와 대학체제의 개편을 추구하는 제도개혁의 급진 전략과 학교에서 수업과 평가방법을 혁신하는 온건 전략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주로 좌파 진영에서 제도개혁 전략을 추진하였지만, 진보교육운동 진영의 역량의 한계(또는 사회적 양극화 불평등의 심화 그리고 이로 인한 경쟁의 격화라는 사회현실)와 자유주의 정권의 기회주의적 처신으로 지난 2년 동안의 대입제도 개편 운동은 실패로 귀결되었다. 사회양극화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다수 대중이 입시경쟁의 폐지 또는 완화는 불가능하다고 여기면서 오히려 입시경쟁의 형식적 공정성과 변별력 확대를 요구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자유주의 정권은 사회적 불평등의 완화와 대학서열체제 해소를 위한 전망을 제시할 수 없었고, 결국 대중의 요구를 수용하여 정치적 타격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교육감 지역에서 혁신학교를 매개로 탈입시교육을 위한 교육적 실천운동이 전개되었다. 기존의 주입식-강의 중심 수업과 지필평가 중심의 일괄평가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업-평가 혁신 운동이 전개되었다. 수업-평가 혁신운동이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는 상대적으로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입시의 압력이 강한 고등학교에서는 성과가 미비하였다. 이런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 학생의 과목 선택권 확대와 고교학점제이다.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하면 입시중심 과목으로의 편중보다는 학생들의 흥미와 적성에 따라 다양한 과목으로 분산되는 효과가 나타날 것을 기대하고 있다. 또한 고교학점제는 교사별 수업과 교사별 평가를 가능하게 하여 교사들의 수업혁신과 평가혁신의 공간이 넓어질 수 있으며, 고교교육과 대학입시 준비가 분리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고교에서의 과목선택권 확대 논리는 미래교육담론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미래교육담론은 미래사회의 변화에 조응하는 역량교육을 목표로 한다. 미래 교육담론은 신자유주의 인적자본론 그리고 4차 산업혁명 담론과 깊숙하게 연루되어 있다. 신자유주의 인적자본론은 인간의 모든 활동을 자본(투자)-수익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자본가가 자본을 투자하여 이윤을 얻는 것처럼, 노동과정도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이라는 자본을 투자하여 수익을 얻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수익을 높이기 위해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자본의 생산성을 높이려 하며, 노동자에게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노동력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자기계발의 노력 정도에 따라 수익(임금)의 격차가 발생한다. 이는 연공서열 중심의 단일 임금체계를 대체하는 신자유주의적 노동신축화(유연화) 정책을 정당화하는 논리이다. 예를 들어 성과급은 노동력의 생산성에 따른 수익의 합리적 배분이다. 이에 따라 교육은 학생들의 보편적 교양을 높이기보다는 조기의 진로적성 교육을 통해 노동력의 수익성을 최대한 높이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특정한 분야에서 타인보다 뛰어난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역량(competency)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미래사회에서 환영받을 역량은 무엇일까? 이를 위해서는 미래 자본주의 사회의 기술적 트렌드를 살펴보아야 하는데, 이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4차산업혁명의 혁신적 기술에 대한 담론들이다. 4차 산업혁명 담론은 디지털 기술의 전면화(모든 산업분야로의 확산)와 이를 통한 자동화의 확산을 강조한다. 육체노동(로봇에 의해 대체될)은 물론 단순 지적 노동(AI에 의해 대체될)도 더 이상 인간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상황이 곧바로 도래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런 미래사회의 변화에 대응하여 디지털 기술 교육을 강화해야 하며(코딩 교육, 스팀교육 등), 기계로 쉽게 대체될 수 없는 역량인 창의적 역량, 다양한 사람들의 지성과 아이디어를 묶어낼 수 있는 소통 역량, 심미적-정서적 역량, 문제해결 역량, 인문학과 공학을 가로지르는 융복합 역량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런 역량들은 사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만 필요한 특수한 역량이 아니다. 창의성, 소통, 심미적-정서적 능력, 문제해결 능력, 융합능력 등은 시대의 변화와 관계없이 인간에게 필요한 보편적인 고등정신기능과 거의 일치한다. 그러나 역량교육 담론에서는 이런 역량들이 별도의 특수한 역량들이고, 이를 육성할 수 있는 특수한 교육방법이 존재하는 것처럼 주장한다(그래서 역량중심교육과정을 강조한다). 하지만 정작 이를 구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교육적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학교현장에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연령별로 보편적인 발달의 과제를 설정하여 교육과정을 편성하는 것(발달중심 교육과정)과 특정한 역량을 키우기 위한 과제를 중심으로 각 시기별 교육과정을 편성하는 것(역량중심 교육과정) 중에서 아직은 전자가 훨씬 현실적이다.

 

이제, 자유주의 정권과 진보교육감들이 주장하는 중등 교육과정에 대한 입장을 정리할 수 있다. 중학교의 자유학기제나 자유학년제 등을 통해 조기에 진로와 적성을 발견하고, 고등학교에서 과목선택제와 고교학점제 등을 활용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자신의 진로와 적성 분야에서 미래 역량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것이다. 또한 대학입시는 특정한 분야의 준비정도나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학생부종합 전형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입시중심교육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고, 학생들의 개성과 흥미를 존중하는 가장 인간적인 교육과정을 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3. 선택중심과 미래역량 교육을 넘어

 

학생선택권 확대를 위한 고교학점제의 정당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논의를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의 논의들은 고교학점제의 연착륙에 집중되어 있다. 고교학점제 정착을 위한 대입제도 개선방안, 내신평가 개선방안, 학사운영 및 교사 재교육 방안, 학교 간 연계 방안 등등...

사실 고교학점제는 오랫동안 검토되었던 정책이 아니다. 몇몇이서 아이디어 차원에서 제시하고, 몇몇 교육청에서 학생선택권 확대를 위해 연구를 진행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지난 대선에서 핵심교육공약으로 부상하면서 대세가 되었다.

학생의 흥미와 적성을 존중하기 위해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하려는 인간적(?)인 입장은 획일적인 입시교육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이른바 진보적인 교육진영에서 크게 환영받았다. 또한 현재의 불평등과 미래사회의 불안(특히 실업)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미래역량 교육은 미래에 살아남기 위해 거부할 수 없는 필연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선택권 확대와 미래역량교육 담론은 충분한 교육학적 검토나 한국 교육현실에 대한 정밀한 성찰에 기초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고등학교 시절인 10대 후반은 인간의 삶의 과정에서 지성과 인격(윤리성) 발달의 결정적 시기이다.

우선 지성발달의 과정을 살펴보면, 중학교 시절부터 형성해온 개념적 사고를 더욱 발달시켜 각 분야별로 개념들의 체계적인 집합체인 핵심원리, 법칙, 이론 등을 학습하고 이를 활용하여 대상들, 현실과 상황들, 개별적인 지식들 등등을 분석하고 종합하는 능력을 키우는 과제가 존재한다.

그런 점에 한국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결정적인 문제는 사실적 지식들을 분절적으로 암기하고 개념들을 형식적으로 정의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교사들은 사실적 지식들을 암기하기 좋게 도식화하고, 개념과 원리들의 형식적 정의를 정리해서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학생들은 이것을 바탕으로 형식적으로 정의된 개념들과 사실적 지식들을 열심히 짝짓기 하는 문제풀이에 몰두한다.

객관식 문제풀이 중심의 입시교육이 이런 풍토를 조장해왔으며, 학생들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자신의 지성을 현실적인 삶에서 구현하는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즉 요즘 유행하고 있는 지성의 고등한 사용 형태인 창의성, 문제해결능력, 융합능력 등을 키울 수 없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학생선택권 확대는 직접적인 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등학교 시기에는 자연, 사회, 인간에 대해 인류가 장구한 세월 동안 탐구하고 축적해온 기본적인 핵심 원리와 이론들을 공부하고 이를 상황과 맥락에 맞게 현실에 적용하는 능력을 키우는 교육이 핵심이며, 이를 위해서는 선택권을 확대하기보다는 기본과목들을 균형 있게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기본과목은 무엇일까? 우선 인간 사유의 중요한 수단인 언어(모국어와 외국어)와 수()에 대한 학습/ 자연 세계의 3대 분야인 물리학(지구과학 포함), 화학, 생물학에 대한 학습/ 인문사회분야인 문학, 역사, 철학, 지리, 사회에 대한 학습/ 그리고 예술 분야 등등이다. 이는 중학교 교육과정으로 결코 완결될 수 없다. 중학교까지는 각 분야의 기본 개념을 익히는 시기이며, 개념들의 체계적인 집합체인 원리, 법칙, 이론 등을 본격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것은 고등학교 시기이다.

(많은 진보교육운동가들이 고등학교에서 보편적 교육과정의 필요성을 부정한다. 인간의 일반적인 지적 능력으로는 이런 교육을 받기 불가능하며 나아가 불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현실적이며 인간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이런 주장에는 인간의 보편적인 지적 능력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으며 인간에게 특정한 노동능력만 요구하는 신자유주의적 인적자본론에 대한 동조가 놓여 있다. 또한 현대 사회가 지적 능력의 차이에 기초하여 지배와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있으며 보편적 지성에 기초한 대중의 연대를 통해 사회와 생산을 집단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 때에만 진정한 해방이 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들은 인간주의의 탈을 쓴 엘리트주의에 가깝다.)

 

10대 후반의 또 하나의 핵심적인 발달의 과제는 윤리성의 형성 즉 건강한 세계관과 가치관의 형성이다. 이를 위해 기본과목의 학습을 통해 지성을 발달시키고 이를 자신의 실제적 삶에 적용하려는 실천이 가장 중요하다(세계관 가치관의 기본 토대는 세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며, 이를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실천과정 속에서 형성되는 경험과 이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다). 하지만 기본 과목들은 학생들이 대면하게 될 현실 세계의 문제를 탐구하고 이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정립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제공하지 못한다. 기본과목(즉 전통교과)은 현대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충분히 담아내기 어렵다. 따라서 기존 교과로 충족될 수 없는 새로운 영역의 학습의 필요하다. 이 영역들은 이론적-지식적 이해보다는 실천적 관점(즉 올바른 윤리적 태도)의 정립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민주시민(공화주의)교육/ 생태교육/ 평화-인권교육/ 노동 교육/ 페미니즘-젠더 평등 교육/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현대문화(특히 디지털 매체를 중심으로 하는)와 예술 교육 등등) 하지만 새로운 과목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하여 고교학점제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선택권 확대는 진로탐색과 진로준비에도 실제적 효과가 미미하다. 진로 탐색을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보다는 다양한 분야를 고르게 경험하는 것이 필요하다. 10대 중후반은 세상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빠르게 팽창하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한 구상이 역동적으로 변하는 시기이다. 또한 진로 준비(일반계 고등학교의 대학진학)를 위해서도 자기가 전공할 분야를 고등학교 때부터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대학에 가서 해도 충분하다. 오히려 고등학교 때는 다양한 기초를 충실하게 하는 것이 이후 전공에 도움이 된다.(그러 면에서 어린 오타쿠들, 어린 스페셜리스트들의 성공신화의 확산은 매우 위험하다. 아이돌과 최근에는 어린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의 성공담들은 어린 시기부터 특정한 분야에 몰입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잘못된 신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소수의 성공적인 예외적 사례-하지만 교육적으로 옳다고 보기 힘든-들이 마치 누구나 다 추구해야 할 보편적인 모델인 양 선전되고 있다.)

또한 현대사회는 고등교육과 평생교육이 계속 확대되는 추세이며, 지식과 기술의 변화도 매우 빠른 시대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특정 분야의 전문적 지식이나 기술을 섭취하고 연마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다. 오히려 고등학교 때까지는 기초적인 보편 교육을 충실하게 하고 이후 고등교육, 직업교육, 평생교육을 통해 세부적인 전문성을 함양하면 된다.

 

 

4. 나아가며

 

고교학점제는 한국의 고등학교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오히려 고교학점제는 고등학교 교육 문제가 다양성과 선택의 부족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오도함으로써 고등학교 교육의 핵심문제를 은폐하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과목 선택제에 기초하여 특정한 영역에 몰입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지적-윤리적 발달에 필요한 과목을 중심으로 하는 공통교육과정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공통교육과정에는 기초과목으로 언어와 수학, 인문사회 과목으로 역사, 철학, 지리, 정치경제, 사회문화, 자연과학 과목으로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등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또한 예술, 체육, 노작활동도 포함되어야 한다. 나아가 전통적인 기본교과로 포괄할 수 없는 새로운 주제와 내용을 공부하기 위한 범교과학습 과목도 확대해야 한다.

문제는 10대 후반의 발달과제들을 달성할 수 있도록 교육내용과 교수-학습 방법을 혁신하는 것이다.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거나 주입만 하는 교육도 문제이지만, 고등학교 교육에서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고 이를 자신의 의견으로 구성하는 것만을 중시하는 것도 문제이다. 교사의 도움을 통해 각 분야의 핵심적 원리와 이론들을 체계적으로 학습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이를 무기로 학생 스스로 현실세계를 분석하고 종합하는 지속적인 훈련도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아래의 공자 말씀은 많은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공부하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시간 낭비다. 하지만, 생각하고 공부하지 않는 것은 위험하다.” 최근의 진보교육담론들은 전자의 위험(입시교육)을 피하기 위해 후자의 편향에 경도된 것이 아닌가 한다.

 

고등학교 시기가 끝나면 대학전공을 선택하거나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 즉 고등학교 교육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발달의 과제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이후의 사회진출을 준비해야 하는 과제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준비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고등학교 마지막 1년은 향후 진로에 필요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자유학년제를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공계에 진학할 학생들은 심화 수학과 과학을 집중적으로 수강하고, 문과계열에 진학할 학생들은 심화 언어나 심화 인문사회 과목을 집중 수강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체능 계열 진학을 원하는 학생들도 관련 진로 과목을 집중적으로 수강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대학 진학을 원하지 않거나 직업계열의 대학 진학을 원하는 학생들은 일정한 직업 훈련이나 사회체험 활동에 집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 교육과정 예시>

1학년

국어1, 수학1, 외국어1

역사, 정치-경제, 사회문화, 철학, 지리

물리, 화학, 생물, 지학

예술

체육

노작

범교과

프로젝트 학습

2학년

국어2, 수학2, 외국어2

3학년

자유학년제 / 심화과목, 직업체험 등/ 지역사회 수강 가능

고교학점제, 과목선택권 확대가 대통령의 공약이기 때문에 무조건 추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정책들은 한국의 고등학교 교육의 문제 해결에 기여하지 못하면서, 막대한 비용과 노력만 낭비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 학교 현장에서도 왜 학생들의 선택권을 확대해야 하는지, 과목 선택권 확대가 어떤 교육적 효과를 가져 올 것인지에 대한 교육주체들의 명료한 인식도 없이 기계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과목 선택권의 확대가 새로운 교육의 긍정적인 변화로 경험되기보다는, 학사 운영의 혼란과 부담만 가중시키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냉정하게 원점에서부터 고교학점제를 재검토하고,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개선을 위해 고등학교 교육의 위상과 목표를 올바로 설정할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교육제도 개혁(특히 입시제도), 교육과정 재구성, 교수-학습의 혁신역량 강화를 위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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