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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3, 잔인한 4

 

붉은 돼지 (진보교육연구소 회원, 중학교 교사)

 

 

악몽과도 같았던 작년

 

올해로 교직 26년차, 이번 학교에서의 마지막 해. 어느덧 오십이 코앞. 몸도 마음도 늙고 지쳤다. 고비가 온 것 같다.

동갑내기 천사 샘(진짜 천사 같은 사람이다)이 학교에서 사정사정 하여 너도나도 마다하는 3학년 부장을 2년 하고 나더니 몸도 마음도 상처투성이로 결국은 1년간의 무급휴직을 했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신의 한수였다.

작년 이맘때 (3, 4) 안 그래도 학기 초 특유의 분주함으로 정신이 없는 가운데 두 명의 야차 같은 전입생 놈들(이것보다 훨씬 심한 표현을 해야 하지만 참는다) 덕분에 우리 학교 생태계는 무법천지의 아수라장이 되어 가고 있었다. 천국 정도(학교 자체가 천국일 리는 없다)는 아니지만 학교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게 정도로 힘들게 하는 아이들을 이 학교에서 만난 일은 없었다. 직전 해 우리 학년은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알콩 달콩 재미나게 지낸 편이었다.

모든 사정은 180도로 변했다. 아침 출근길이 지옥에 끌려가는 것만 같았다. 스트레스와 피로로 입술은 수시로 부르텄다.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들을 매일 지켜봐야 하는 2학년부에 있다 보니 1학기 내내 그들과 그들을 둘러 싼 무리들의 행적을 기록하고 조사하는 등의 일을 피할 수 없었다. 학교를 잠깐만 쉬고 싶다를 넘어서서 관두고 싶다는 생각마저 굴뚝같아지고 있었다. 학교의 하루가, 매 시간이 지옥이었다. 니들을 못 쫓아내면 내가 관두고 말리라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물론 그 아이들의 사정을 살피면 걔들도 딱하기는 하지만 현재의 학교 구조에서 그 아이들과 같이 지낸다는 건 다른 수백 명의 삶이 파괴되는 것을 방치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 둘은 각각 201712월 말과 2018년 새 학기 첫날, 지난 학교에서 말썽을 피우다 피우다 정식 절차만 생략했을 뿐 우리 학교로 거주지 이전을 가장하여 사실상 ‘(속칭)강전을 온 학생들이었다. 강전 온 학생들 한둘 본 것도 아니었고 강전은 보내지도 않고 어지간하면 같이 지내자 주의였는데 이건 정말 견디기 힘든 일들이 매일매일 펼쳐졌다. 지난 학교 샘들도 참 고생 많았겠다 싶으면서도 야속한 맘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 지경의 아이들을 절차도 제대로 거치지도 않고 위장 전학을 보냈으니... 이건 뭐 졸지에 핵폭탄 맞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 교과교실제 학교에서 아이들과 매시간 부대끼며 지내야 하는 학년부실에 있는 것은 고통 그 자체였다. 쉬는 시간 마다 복도에서는 거친 언행(쌍욕 포함)이 난무했다. 쉬는 시간이 쉬는 시간이 아니었다. 수업보다 고통스런 쉬는 시간...

침을 복도 바닥 뿐 아니라 출입문 유리, 벽면, 게시물, 엘리베이터 버튼, 심지어 다른 아이에게까지 뱉지를 않나... 그 둘과 대화? 지도? 는 커녕 한마디 했다가 쌍욕을 듣거나 주먹질을 당하지나 않으면 다행일 정도였다(실제로 이 아이들에게 이런 심한 꼴을 당한 교사들이 몇몇 되었다). (계기를 만나서인 것인지) 그 아이들의 무리에 포섭된 기존의 이 학교 아이들도 그들의 행태를 따라갔다. 불러도 오지를 않고 불손하고... 하여튼 참.... 말 걸거나 쳐다보기도 싫어질 정도. 그 아이들을 만나지 않았으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아이들이 하루하루 심각해져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나 괴로웠고 손을 쓰기 힘들도록 그 무리와 비상식적 행태는 심해져 갔다.

학교의 온갖 선생님들에게 불손과 무례를 넘어 무차별적으로 아무 상황에서나 대들었다. 막판에는 우연히 마주친 교장선생님에게도 대들 일조차 아닌데 대들었다. 그들은 학교생태계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들이었다. 어떠한 말도 듣지 않았다. 어떠한 규칙도 필요 없었다. 교사들에게 이런데 아이들에게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 만만한 아이들은 그들 밥이었다.

교사로서의 최소한의 자존감마저 허락지 않는, 생존의 위협마저 느껴지는, 필설로 형용하기 어려운 일들을 매일 매일 겪는 사이 관리자들은 교사들과 피해를 입는 아이들이 호소를 해도 한 달을 넘게 수수방관, 나몰라라였다. 이들의 행태를 낱낱이 조사하고 기록하여 고발하는 글을 전교사에게 돌리고 수시로 교장과 교감을 닦달한 끝에 1층의 그분들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고통은 오롯이 그들과 매일 얼굴을 맞대야 하는 힘없는 교사들과 그들에게 당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아이들의 몫이었다. 학교가 어수선하니 교사들에 대한 불신도 알게 모르게 학생들과 학부모들 사이에 쌓여가는 듯했다. 특히 졸지에 우연히 그들의 담임이 된 젊디젊은 두 선생님, 똑 부러지고 나랑 딱 맞는 2학년 부장 선생님, 생활지도부장 선생님이 겪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매일매일 나는 그들의 행태를 칠판에, 종이에 기록하고 조사했다. 2학년 생활지도를 맡은 선생님은 이 상황을 감당하기는커녕 그 아이 중 하나로 인한 최대의 피해자였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일을 자청할 수밖에 없었다. 보호받지 못하는 교사들, 아이들의 방패막이가 되어주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교사들의 처지에 분노하고 좌절했으며 1층의 안전한 곳에 있으면서 몸만 사리는 학교관리자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이 화가 났다. 이럴 때는 쓸모없는 학폭 매뉴얼, 교권보호 대책에 어이가 없었다. 그나마 마음을 다잡고 강단 있게 대처하는 학년부장과 함께라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고 많은 선생님들이 함께 이 사태에 대처하고자 힘을 보탰다. 수차례의 선도위원회, 등교정지, 교외 봉사 끝에 그들의 강제 전학(학교장 추천 전학)은 결정되었지만 사실 이미 많이 늦은 때였다. 수많은 일을 수많은 사람이 겪고 나서 여름 방학 직전에야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2학년도 2학년이지만 그 여파가 가장 큰 것은 3학년이었다. 3학년의 십여 명 아이들과 한 무리가 되어 그들의 우두머리 노릇을 한 끝에 그들은 떠났지만 그들이 남긴 흔적은 너무나 컸다. 3학년들의 2학기에 3학년 부장과 담임들은 너무나 많은 고생을 했다. 수업에 들어가지 않는 무리들이 생겼고 근태는 엉망진창에 흡연과 음주, 그들 내의 폭력적 관계 생성...

그 와중에 나는 학기 초 반 아이들 돌보는 일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그것은 정말 안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새롭게 만난 아이들을 하나하나 파악하는 일은 물론 아이들 관계의 특성을 파악하고 조정하고 새롭게 구축해야 할 시기에 나는 매일 입술이 부르터서 조폭들과의 전쟁을 하는 형사마냥 일을 해야 했다.

한편, 2018년의 미투 운동은 아이들의 의식과 행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모든 일은 좋기만 한 것도, 나쁘기만 한 것도 없다. 미투 운동의 그림자를 보았다. 결국은 우리 사회의 진전과 사람들의 의식 발달에 기여하게 되고 말 테지만 작년의 미투 운동은 결코 적다 할 수 없는 일부의 학생들에게 페이스북 등 sns를 매개로 비틀린 채로 전파되었다. 피해의식과 반페미정서를 부추기는 글들을 보는 듯했고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페미, 여혐, 남혐 등의 말이 매우 부정적인 의미의 일상용어가 되어갔다. 우리 학교 아이들도 이런 영향이었던 것인지 (물론 그 전 해 이 아이들이 우리 학교의 어떤 사건들과 깊게 연관이 있을 테지만) 남녀로 대립구도를 만들어 갈등하는 현상은 이전에 겪지 못했던, 새로 공부해서 대처해야 하는 과제로 부상하고 있었다.

학기 초의 중요한 시기를 놓친 나로서는 이런 상황들이 이미 구조의 일부가 된 상태에서 남은 기간 동안 학급 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을 통제하고 주도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교사인 나는 강제로 무능해졌다. 관계의 위기가 뻔히 보이는 대도 이를 바꿔나갈 수단이 내게는 없어 보였다.

그들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얼추 아이들 지도는 크게 어렵지 않은 배테랑 교사가 된 줄 나대던 참이었다. 마침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비고츠키 교육학도 어깨너머로 배웠겠다 이제는 아이들의 발달을 돕는 교사인 줄 자만심에 빠져 있던 나는 엄청난 풍랑을 만났던 것이다.

그들이 떠난 후 2학년과 학교는 조금씩이나마 안정되어 갔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대한민국 중학교의 부장으로 살아가기의 고충을 난생 처음으로 겪고 있다.

 

부장님말고 선생님이라고 불러주세요.

 

그 아이들과 온갖 사건을 겪는 와중에 지칠 대로 지친 나. 이대로 계속 교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싶어 학습연구년제를 신청해 볼까, 손가락을 빨고 살더라도 무급휴직을 할까? 궁리만 하다가 바빠서 때를 놓치고 교원평가 점수 반영 규정에, 안내 공문의 협박성 문구들을 보니 이건 아니다 싶어 자존심 세우다가 모든 기회는 날아갔고 점점 새 학기가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 서울 살이 무주택자 주제에 일 년을 아무 벌이 없이 까먹고만 산다는 것은 공포다. 무서운 전세 값과 떨어질 줄 모르는 집값은 나에게 잠깐의 휴식조차 허락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올해는 그냥저냥 숨만 쉬며 살아보자 할 즈음 출장이 많은 일을 전교조 덕에 덜컥 맡게 되었고 10년을 넘게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연타로 담임을 했었기에 한 해 정도 정말로 담임을 쉬어가고 싶었지만, 지역에서 가장 학급수가 작은 학교 사정(우리 학교의 비담임 자리는 단 한 명. 무조건 부장 아니면 담임을 맡아야 한다)에다가 울며 겨자 먹기로 떠밀려 3학년 부장을 했던 또 다른 천사표 선생님은 일 때문에 애들 때문에 하루하루 울다시피 학교 생활하다가 마침 학교를 옮긴다. 업무도 과중하지만 결국은 강전으로 일단락된 그 아이들의 행태가 영향을 가장 크게 미친 것은 3학년 학생들이었고 2학기 내내 아이들 생활지도 문제로 엄청나게 속을 썩었다. 안 그래도 기피하는 자리인데다가 작년의 그 꼴을 지켜본 교사들 모두 공석이 된 생활지도부장, 생활지도부기획과 더불어 3학년 부장은 절대로 피해야 할 3대 업무 분장으로 학년말에 회자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일이 내게로 왔다. ‘3학년 부장 맡기기 딱 좋은 나이탓에 처음에는 비담임인 학년부장은 하지 않겠다 발을 뺐다가 업무분장을 최종 결정하는 인사자문위원회 회의 자리에서 하겠다고 나섰다. 아무래도 학교 관리자들로선 불편한 존재인지라 그들은 나에게 맡아 달라 부탁하는 시늉만 한 후(처음의 나의 거절에 단박에 3학년 부장 맡길 타깃을 이동했다는 걸 곧 알았다) 열심히 다른 선생님에게 물밑작업을 한 모양이었다. 방학 중 집에서 쉬고 있는 중에 (아무래도 나보다는 말랑하다고 본) 맘 약하고 착한 거절을 하지 못하는 두 선생님을 열심히 닦달하고 협박한 끝에 누가 봐도 이상한 업무 배분이 진행되고 있었다. 인사자문위원회 날, 이야기 끝에 내가 맡겠다고 나섰다. 다들 박수를 쳤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주임이 웃사람으로 학교 사회에서 군림하던 시절에 교직을 시작하여 부장이라는 명칭으로 변경된 것이 못마땅하고 그렇게 그들을 부르기도 싫은데, 내가 부장님 소리를 들어야 한다니.. 이런 된장... 할 수 없다. 올해는 출장도 많고 열과 성을 다해 담임 역할을 하기엔 매너리즘이 온 몸에 붙어버렸고 작년에는 아이들 이쁜 맛도 별로 없이 학교를 다녔으니, 이제 교직에서 조용히 숨어서 편안히 수업만 하고 살 길은 도저히 없고 부탁하는 척만 했던 그들이 얄밉고 약올라서라도 해야 되지 싶었다. 부장회의에 들어가서 본때를 보여주리라 다짐하며 그렇게 부장이 되었다.

26년 만에 처음으로 이사람 저사람이 부장님이라고 불러대니 너무나 어색하고 불편해서 처음에는 일일이 부장님말고 선생님이라 부르시라 부탁하다가 지금은 반포기 상태로 접어들었다. ‘부장님호칭에 유난히 철저한 그룹이 있다. 특히 행정실 분들... 아무리 부탁을 해도 인터폰만 해도 ! 부장님!’ 이러는 통에 속으로만 에휴... 하거나 여보세요가 끝나기도 전에 저 아무개인데요라고 얼른 용건을 말하곤 한다. 다른 공무원이나 직장에서는 일반적으로 이런 구분과 위계가 훨씬 더 철저하고 자연스럽겠지. 그리고 호칭은 호칭으로 끝나지 않고 관계의 위계적 성격으로 연결될 테지.

 

망할 넘의 소규모테마형 교육여행

 

학교 살이 일 년 중 3월은 어느 시기보다도 일거리가 많다. ‘많다로는 부족하다. 업무가 폭주한다. 그래도 올해는 담임이 아니니 3월에도 조금은 낫겠지? 아침이 담임일 때보다는 조금은 우아하고 여유롭겠지? 수업도 무난하게 16시간이니ㅎㅎ ;; .

물론 편해진 것은 있다. 일단 나눠주고 걷고 하는 일을 안 하게 된 것. 면담 안 해도 되는 것, 아이들 지각으로 골머리를 썩지 않는 것, 학급 단합대회 등의 부가적 일들을 안 해도 되는 것. 생활기록부 안 써도 되는 것! 메신저들만 봐도 안다. 대한민국 학교에서 담임들의 업무는 너무 과중하다. 담임이 아니라서 내게는 오지 않는 업무 메시지까지 포함하면 더욱 많겠지. 방금 겪어봐서 충분히 안다. 줄일 수 있는 것은 싸워서든 집요하게 말을 해서든 선생님들과 힘을 합해서 어떻게든 줄이고 줄였건만 그래도 담임은 힘들다. 담임들에게 부담주지 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우리 학교 학년부장들은 담임이 없다. 담임이 없으니 바로 옆에서 종종거리고 있는 담임교사가 맡은 업무도 상당 부분 나서서 감당하게 되어 있다. 이게 장단점이 있다. 담임이 없는 학년부장은 나는 담임이 아니니까라며 자청해서 부서원의 일을 대신 하기도 하다 보니 업무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나라에서 벌이고 시키는 일이 장난이 아니어서 아주 귀찮고 짜증나는 일도 많다. 게다가 학년부장은 학폭 업무를 제외하고 생활지도를 거의 책임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 학교에서 학년부장=비담임 공식이 굳어져버렸다. 이걸 바꾸려고 학년부장은 담임을 겸해야 하는데 올해 사정상 나는 둘 다를 하기는 어려우므로 학년부장 하지 않겠다는 것이 처음에 3학년 부장을 거절했던 논리였는데... 나도 이 블랙홀 속에서 지금 헤매는 중이다. 이것도 내가 해야 하나? 그래 내가 해야지 담임이 얼마나 힘들어...라면서. 일을 시키는 위치에 있다는 것도 부담이다. 그래서 나는 부장이라는 자리로 상징되는 위계적 업무분장 구조 자체가 바뀌기를 바란다. 부장 없이 한 부서에서 업무 분담 명확히 하고 때로는 같이 하고 때로는 주도해서 각자 하고. 꼭 부장이 있어야 하나? 이건 행정관료적 편의에 의한 것일 뿐이다.

아무튼 당장에 실현될 수 없는 일이니 나는 가급적 대충, 빠르게 청소, 봉사, 진학, 생활지도 기타 등등 기타 등등의 일들을 했다. 2월 말부터 3월 중순까지는 거의 청소하고 씨름한 것 같다. 버려도 버려도 끝이 없는 과거의 사람들이 남긴 교무실 물품들을 정리하고 새로 옮긴 수업교실을 단장하고 청소용품을 주문하고 배분하고 특별구역청소를 배분했다. 이것도 난이도가 높은 편의 일이다. 민감한 사항이다. 요즘 애들이랑 청소하기가 힘든 데다가 인근 주택가 재개발이 시작된 후로 학생수와 학급수가 확 줄어서 구역은 많은데 사람이 항상 부족하다. 답정너들은 어디에나 있다. ‘나는 이렇게 배치해라고 용감하게 명령을 하는 선생님에게 정말 깜놀했다. 약한 기간제 선생님, 어린 선생님에게 뒤집어씌우는 게 뻔히 보여서 막아보려고 했지만 실패. 그들은 거절을 하지 못한다. 아닌 건 아니라고 명확히 의사표현 하셔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경쾌하게 괜찮아요~” 그러는데 참... 괜찮기는 뭐가 괜찮은가 힘든 게 역력하구만. 그래도 도무지 거절은 힘든 모양이다. 이해는 간다. 나도 수많은 연습과 시뮬레이션 끝에 거절을 어렵지 않게 하게 되었음을 떠올렸다. 이렇게 우리 학교 샘들은 무척 착하고 협조적이다. 한편으로는 좋고 한편으로는 아니다. 달리 이 동네가 관리자들의 로망이 아니다... .

웬만한 일들은 학교업무 경험이 제법 되다 보니 빠르고 쉽게 처리한 편이었지만 도대체 어쩌지 못하겠는 것이 3학년 특유의 업무이고 직접 해보지 않았던 소규모테마형 교육여행(수학여행)과 졸업앨범 업무이다. 행정실과 함께 조정해서 일을 해야 하는 것이 많은데 절차의 복잡함과 비효율적 업무과정에 이미 많이 질렸고 짜증도 꽤 난다. 특히 소규모테마형 교육여행은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다. 별도의 주제로 삼아 욕하는 글을 쓰고 싶을 지경이다. 작년 3학년 부장이 내가 교사인지 여행사 직원인지 모르겠다고 푸념하던 게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목표는 작년보다 간소하게 만들어놓고 이 학교를 떠나는 것.

초과수업수당 기준이 평교사랑 부장이 왜 차이가 나야 해? 부장회의를 왜 수업 한 시간이랑 똑같이 쳐줘? 라고 악다구니 하며 평교사/부장 구도로 딱 갈라서 싸우던 나도 몇 년 전부터는 절대로 담임이 힘들지 부장이 힘드냐?라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그럴 수가 없게 학교가 전체적으로 힘들어졌다. 학교에서 지금 대부분 힘들게 산다. 그만큼 학교의 업무강도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관계의 위기가 깊어지고 발달의 위기가 가중되다 보니 가르치는 보람과 기쁨? 이게 뭐지 먹는 거임? 하는 교사들도 적지 않다. 그래도 담임은 애들이랑 재밌는 순간이라도 있지, 애물단지들이지만 밉고도 이쁜 우리반 내 새끼들! 그래도 담임한테 의지하는구나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지 부장은 그저 학교일 하는 사람이다.

사정이 이러니 수업을 남들의 절반 정도만 하고, 담임은 당연히 맡기지도 못하고, 평가업무 부담도 전혀 없고 놀자고 본인이 맘먹으면 얼마든지 희희낙락 출근놀이 할 수 있는 진로교사는 지금 온 학교에서 미움과 지탄의 대상이다. 제도를 욕해야 하지만 사람을 욕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부장제도도 없애고 진로교사제도도 폐지해야 한다.

학교는 지금 새로 만들어야 할 것보다 없애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교장, 교감 뿐 아니라 느슨하지만 학교에 엄연히 존재하는 위계서열의 상징인 부장. 나는 부장이 되어 부장이 없어지는 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다. 나는 그들이 나를 계속 불편해하도록 하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불편해서 교직을 떠나는 해가 더 빨라질 것 같기 때문이다. 지금 학교의 관리자들은 꽤 나이스한 편이고 그들도 안쓰러울 때가 있다. 오히려 나 때문에 그분들이 불편할 때가 많다고 짐작이 된다. 개개인의 인성 문제보다는 제도의 문제가 크다.

 

지금 시계는 230분을 가리키고 있다. 낮이 아니라 밤. 세 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나서 3학년부장이라는 죄로 높은 자리에서 자유주의적 낭만에 겨워 나랏일 계신 놈이 아무 생각 없이 싸지른 *을 맛보러 간다. 망할 넘의 소규모테마형 교육여행 답사. 집에 돌아오면 자정쯤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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