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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대하는 일의 어려움

 

박연정 (위례별초)

 

최근에 즐겨보는 tv프로그램 중에 ‘미스 함무라비’라는 드라마가 있다. 현직 판사가 직접 극본을 써서 현실감 있는 법원 이야기가 화제가 되고 있다.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특정 직업군의 이야기는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게다가 그 직업의 특성상 다양한 인간군상을 접하며 우리 사회와 인간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 볼 기회를 준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이야깃거리가 어디 있으랴. 나도 이 드라마를 보며 판사들의 직업 세계를 이해하는 동시에 그들의 이야기에 우리 학교사회와 교사들을 대비해 생각해보게 된다.

 

우선 새롭게 알게 된 것은 판사의 역할이나 법원의 기능이 법적으로 정해진 바가 있고 절차나 과정이 대게 비슷한 점이 있으나, 판사 한명이 하나의 헌법기관으로서의 권위가 있어 그의 가치관과 주관에 따라 사건을 다루는 태도와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이 법을 수호하고 법을 적용하여 마치 법을 무기로 다루는 듯하나 결국 칼자루는 사람이 쥐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최근에 불거진 ‘양승태’ 대법관의 사법농단과 같은 사태를 봐도 이는 드라마적 허구의 상황이라기 보다는 실제에 가까운 듯하다.

 

규격화될 수 없는 일

 

사실 학교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같은 공립학교에서 같은 교육과정으로 학급이 운영되더라도 교실에서 교사의 태도와 역할에 따라 아이들이 체험하는 교육의 의미와 가치는 차이가 있다. 우리는 교실에서 최고의 전문가이자 독립된 교육기관으로서 무엇이 가장 국민의 보편적 교육권을 지키는 길인가를 고민하며 실천하고 있다. 그런데 같은 교대에서 교육을 받고 같은 공립학교에서 일을 하더라도 각자의 가치관과 경험에 따라 고민의 지점과 교육을 펼치는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똑같은 교육내용을 가르치더라도 어떤 교사는 여전히 아이들을 체벌하기도 하고, 어떤 교사는 철저하게 학생들에게는 무관심으로 일관하기도 하고, 어떤 교사는 시험과 갖가지 규칙으로 아이들을 경쟁시키고 통제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이 결국 배우는 것은 모두 제각각일 것이다. 교육이라는 일이 특히나 인간의 총체적 발달에 관여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교사는 그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다 살아있는 교육과정이며 교육의 본질일 수 있다. 결국 교사가 교육과 인간에 대해 어떤 관점과 태도를 가지고 아이들을 대하는지가 중요하다. 교사의 가치관과 철학, 교사로서의 성장과정, 교사와 학생간의 관계라든가 교사 간 협력 문화 등 우리가 그간 개인의 영역으로만 생각했던 이런 주제들이 앞으로는 교육의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런데 아직 학교는 이 부분에 대한 연구나 노력이 부족하다. 최근에는 교사 임용시험에서 교육학 일반이론에 관한 부분이 제외되면서 교육대학에서 일반 인문학을 비롯해 교육사상이나 철학 등에 관해 공부하는 수업역시 축소되고 있다고 한다. 인간을 대하는 사람들이 인간을 폭넓게 이해하는 길을 서둘러 포기하고 있는 느낌이다.

 

가장 강하고 위험한 존재

 

이 드라마에서 ‘법정에서 가장 강하고 위험한 자는 바로 판사’라는 대사가 나온다. 판사역할의 무게감과 함께 그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그 무게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할 때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이야기다. 교실 역시 마찬가지다. 교실에서 가장 강하고 위험한 자는 바로 교사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권력이 마치 공기와 같아서 낯설게 느끼지 못한다. 항상 상대적으로 약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만 그 권력은 눈에 보이는 실체가 된다. 우리가 교장의 권력을 늘상 느끼지만 우리가 교실 내에서 가진 권력은 쉽게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돌아보면 항상 수업을 최종적으로 망치는 사람은 바로 교사인 나였다. 아이들은 늘 싸우고 떠들고 장난치고 딴 짓하고 난리법석을 떨지만 모든 아이들에게 그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혹여 내가 화를 한번 내기라면 한다면 교실은 순간 전체가 얼음이 된다. 내가 어떤 아이 때문에 전체 아이들 앞에서 화를 내게 되면 그 아이는 모든 아이들의 적이 되기도 한다.

탈권위화 되고 있는 사회 덕에 요즘 아이들이 교사나 어른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존중을 하거나 어려워하지는 않는 게 사실이다. 그게 교사들에게 때론 어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내가 권력자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어떤 공동체 내에서 권력이 유일할 때 그 권력자는 괴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2년 전 겨울 내내 차가운 광화문바닥에서 깨달았다. 내가 가진 권한과 권위를 우리 모두의 인권을 지키고 학생들의 학습권을 지키는 방향으로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 때 우리는 간혹 괴물이 되기도 한다.

 

애매하고 복잡한 문제

 

드라마를 보면서 재밌는 점은 재판은 합의부라고 해서 1명의 부장판사와 2명의 배석판사가 함께 팀을 이뤄 진행한다는 것이다. 마치 경험 있는 교사와 신규교사들이 팀을 이뤄 수업을 하는 것과 같다고도 할 수 있는 이 독특한 제도는 아마도 재판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한다.

교사들에게도 이런 기회가 있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코티칭이니 협력교사니 하는 현실적인 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교사의 경험과 노하우가 전수될 수 있는 문화, 교사들간에 협력과 동료애가 살아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교사는 임용을 받는 순간 바로 교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혼자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한다. 아무리 양성과정에서 교육을 받았다 하더라도 당장 교실에서 아이들끼리 싸움이라도 벌어지면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게 사실이다. 게다가 생명력이 넘치는 아이들이 교실에서 일으키는 사건과 사고는 항상 우리의 이론과 상상을 초월한다. 그리고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 한명에 관계된 사람이 적어도 한명 이상이다. 교실에 없지만 관계된 또 한명의 인간, 바로 학부모다. 그 또한 만만치 않은 고민거리를 준다. 인간은 혼자서 사는 존재가 아니라 주변 인간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기에 아이 한명을 만나고 있다 해도 그와 관련된 문제들은 언제나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나약함을 극복하는 연대

 

함께 근무하는 옆반 선생님은 올해 초 발령을 받은 신규교사인데 사흘이 멀다 하고 동학년회의 시간에 눈물을 쏟곤 한다. 교실에서도 아이들이 싸우거나 사고를 일으키면 본인이 먼저 울고 싶다고 한다. 아이들 앞에서는 꾹 참다가 선배들 앞에서 하소연을 하면 그제 서야 눈물이 터진다. 경력이 15년이 넘는 나도 아이들이 무섭고 당황스러울 때가 많은데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그 친구에게 30명이나 되는 어린 인간들의 생명력이란 얼마나 무거운 것일까. 도대체 수업시간에 잠시도 가만히 있는 게 어려운 아이들을 어떻게 집중시키는지, 수업시간에 쓸데없는 이야기로 분위기를 흩뜨리는 아이들을 어떻게 제지해야 하는지, 자기가 제일 먼저 제일 좋은 것을 선점해야하는 이기심 많은 아이는 어떻게 타일러야 하는지, 조그만 일에도 쉽게 분노를 폭발하는 아이들의 감정은 어떻게 다뤄야하는지, 왜 교대에서는 이런 것들을 가르쳐주지 않았는지, 왜 책에 쓰여진 대로 해도 책대로 되지가 않는지 등 그 선생님의 고민에 나도 선뜻 답을 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어려움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대하는데서 오는 어려움이다. 정답이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할 수도 없는 이런 애매한 문제들은 항상 우리를 절망에 빠뜨린다. 절망의 끝에서 몸부림치다가 어느새 인간에 대해 냉소적인 괴물이 되기도 한다.

불완전한 인간은 소통과 협력을 통해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이런 어려운 문제 역시 여럿이 함께 고민하는 과정에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 나 혼자서는 너무 약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다. 내가 나약해지고 위험해질 때 나를 바로 잡아줄 동료가 필요하다. 결국 교사가 혼자 교실에서 괴물이 되지 않을 유일한 탈출구는 동료성의 회복에 있다.

 

모호함을 견디는 용기

 

드라마는 판사의 직업세계를 보여주지만 표면적인 이야기의 이면에는 판사라는 직업을 가진 한 인간이 여러 다른 인간과 그 인간세계를 이해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인간을 상대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직업정신과 전문성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얼마나 깊이, 제대로 하느냐에 달려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 이해를 기반으로 자기 스스로가 성숙한 인간이 되어간다.

“솔직히 이 일을 나이들어서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요. 더 늦기 전에 전 부동산 공부는 꼭 해두려구요.”

시작도 하기 전에 지쳐버린 듯한 후배의 하소연엔 나도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나 역시 10년 넘게 학교 급식을 먹고 있지만 교사로서 나의 인식과 실천이 도대체 나아지고 있는 건지, 제대로 하고는 있는 건지 확답을 할 수가 없다. 그저 지리멸렬한 나를 견디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스스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는 상처와 애매모호함을 견딜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 겸손함이 성장하는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이 된다.

 

며칠 전부터 아이들과 교실에서 화분을 키우고 있다. 해가 잘 들지 않는 교실이라 실내조명만으로도 잘 자란다는 식물들을 골라서 심어 돌보고 있는데 생각만큼 잘 자라지 않아서 고민이다. 처음에는 흙에 비료를 너무 많이 넣는 바람에 식물들이 마르기 시작했다. 영양이 너무 과해서 그렇다는 조언을 듣고 다시 흙을 갈아주는 분갈이를 했다. 그런데도 한번 상한 식물들은 쉽게 회생하지 못했다. 심각하게 마른 식물들은 새로 모종을 사와서 다시 심기도 하고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식물을 위해 분무기도 준비해서 수시로 돌보고 있지만 늘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조그만 식물 하나 키우는 것도 이렇게 고민되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하물며 어린 인간들을 대하는 일이 오죽 고단하랴. 이 시간에도 역동적이며 까다롭고, 강하고도 나약하며, 모호하고 불완전한데 다양하고 복잡하기 까지 한 인간이란 존재를 기르고 돌보느라 피, 땀, 눈물 흘리고 있는 수많은 동료들에게 위로와 존경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당부하고 싶다.

생명이란 자체가 완성형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며 변화를 담보하고 있는 존재이기에 우리도 역시 교사로 만들어져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자. 때론 지치고 좌절하여 다 포기하고 싶을 때조차도 우리는 성장하고 있음을 잊지 말자. 바로 내 옆에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동료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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