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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65호 (2017.07.12. 발간)


[일제고사를 넘어!]

다시 만나지 말자

 

김태정_진보교육연구소 회원

 

 



일제고사가 폐지되었다고?

 

일제고사1.jpg


   지난 614일 교육부와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를 올해부터 전체 학생 대신 표본 학생 대상으로만 실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일제고사를 전면부활 시킨 이후 9년만이다.

   그런데 이 과정 또한 순탄치 않았다. 새 정부가 들어섰다고 하나, 교육부 관료들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620일로 예정되었던 일제고사를 강행하여 하였다. 이 때문에 지난 531일 국회에서 진행된 문재인 정부의 성공적인 교육개혁을 위한 정책토론회자리에서 한 교사는 이에 대해 강력히 문제제기를 하면서, 당일 토론회에 참석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에게 이를 공론화할 것을 주문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관료주의는 생각보다 매우 강력하다. 관료들은 어떻게든 기존의 관성을 유지하려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꼼수를 쓴다. 이들은 자신들이 입안하고 집행한 정책이 오류로 판명 났음에도 결코 그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리고 교묘한 방식으로 그 잘못된 정책의 수명을 연장시키려 온갖 편법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620일 일제고사를 학교자율로 운영하게 하여, 보수적 교육감 혹은 부교육감 권한대행 체제에 있는 지역에서 실질적으로는 일제고사가 유지되게 하거나, 심지어 표집의 범위를 가지고 농단을 벌이는 식이다.

   실제로 인천의 경우 교육청은 지난 615일 인천지역 중고등학교에 보낸 공문 '긴급 2017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 시행 변경사항 알림''교육부가 선정한 표집학교는 의무 시행하고 결과 발표와 정보 공시는 일체 없으나, 표집학교가 아닌 학교는 학교 자율적으로 시행하라'는 단서 조항을 넣었다. , 자율이라는 미명하게 실질적으로 일제고사를 실시 할 수 있게 만든 꼴이다.   이에 전교조 인천지부를 포함하여 지역의 교육시민사회단체가 강력한 문제제기를 하였으나, 결국 학교 관리자가 보수적인 학교의 경우 일제고사가 실시되기도 하였다.

   교육부 관료들은 표집의 범위를 확대하여 일제고사를 어떤 식으로든 유지하려 안간힘을 썼다. 예를 들어 표집학교별 한 학급이 아니라 대상 학년 전원을 대상으로 실시하기로 하면서 시험을 치르는 학생 수가 애초 예상보다 10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이러다 보니 지난 620일의 경우 일제고사가 폐지된 것이라 보기 어려우며, 실제로는 일제고사가 축소 실시된 정도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일제고사는 교육계의 대표적인 적폐 중 하나로 지목되어 왔다. 그런데 적폐 중의 하나는 일제고사를 강행해 온 교육부 관료들이다. 이 관료들이 그대로 있는 한 이번 사건과 같은 일은 얼마든지 반복될 것이다. 즉 적폐청산은 인적청산과 함께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새 술을 헌 부대에 담을 수 없듯이, 적폐청산을 외치면서 그 적폐세력에게 그 일을 맡긴다는 것은 기만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제고사 반대투쟁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무려 9년이나 걸려서 일제고사가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그러다보니 지치고 힘들 때도 있었다. 저들이 저리 버티고 있는데 과연 폐지가 가능할지, 일제고사 반대체험활동에 나서는 우리 아이만 바보취급 받는 건 아닌지, 일제고사를 거부하였다가 징계 받는 선생님들만 손해 보는 건 아닌지, 회의가 든 적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와의 5년간의 끈질긴 투쟁의 결과 박근혜정부로 하여금 집권초기에 초등일제고사 폐지를 선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으며, 이번 문재인 출범으로 일제고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뿐만 아니다. 일제고사 폐지 투쟁은 교육운동진영에게 다음과 같은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일제고사2.jpg


   첫째, 잘못된 법과 제도는 폐지하거나 바꿀 수 있다!

   일찍이 레닌은 국가와 혁명에서 국가의 사멸을 주장하였다. 1917년 혁명 직전에 씌여진 이 책에서 그는 노동자계급의 혁명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국가는 과거의 부르조아 국가를 단지 파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즉시 사멸하기 시작한다고 단언하였다. 그는 자본주의 문화는 대량생산, 공장, 철도, 우편, 전화 등을 창출했으며, 이 기반위에서 낡은 국가권력의 기능 대부분은 매우 단순화되어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수행할 수 있는 기록, 서류정리, 대조 등 간단한 조작으로 바뀔 수 있게 되었다, 자본가와 관료를 타도한 다음 즉시 이들을 대신해서 무장한 노동자와 무장한 사람들 전체가 생산과 분배의 통제, 노동과 생산물의 기록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전적으로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옛 행정기관의 도움 없이 즉시 일을 처리할 수 없을 것이지만, 노동자들보다 많은 보수를 받지 않을 옛 행정기관의 관리들은 우리의 지시사항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그러나 레닌의 이러한 기대는 너무나 낙관적인 것임이 드러났다. 레닌 사후 러시아는 특권적 관료계층인 노멘클라투라(Nomenklatura)들이 지배하는 사회로 변질되었으며, 지금은 다시 자본주의사회로 회귀한 상태이다.

   자본주의는 어떻게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유지되고 있을까? 그것은 자본주의 국가의 정교한 지배 시스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그람시가 이미 옥중수고를 통해서 제기한 바 있으며, 알튀세르를 통해 보다 정교하게 제기되었다. 알튀세르는 법을 종교, 교육, 가족 등과 함께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즉, ISA(Ideological State Apparatus)로 규정한바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알튀세르가 법을 단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만이 아니라 억압적 국가장치의 성격도 함께 갖고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법이라고 하면 무조건 지켜야 한다고 여긴다. 그 결과 법이 아무리 비합리적이고 현실에 맞지 않더라도 법은 지켜야 한다는 식으로 스스로를 포박한다. 이것이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로의 효과이다. 그런데 법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만일 잘못된 법을 거부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법은 그를 처벌한다. 이때 법은 억압적인 성격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법은 그 사회의 계급적 모순을 반영한다. 중세의 법은 토지소유자인 귀족과 교회를 위해, 귀족과 교회 관계자들이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사회의 법은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와 그 이데올로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때문에 우리들은 때론 억울함을 법에 호소하나 그 법에 소외당하는 것이 다반사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의 국가기구를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남미의 사례가 그렇듯 민주적 절차에 의해서 진보적인 인물이 통수권자가 된다고 되어도, 개혁이 한계에 봉착하는 이유 중 하나는 기존의 국가기구와 관료들을 그대로 두기 때문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권력을 장악한 이후에 국가기구를 바꾼다는 기존의 방법만을 고수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 자체가 기존의 억압적,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를 해체하거나, 무력화시키거나, 재구성하는 과정을 동반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학교를 민주적 교육공동체로 재구성하려는 실천이 바로 그런 실천이 될 수 있다. 폴 윌리스나 마이클 애플 등이 분석했듯이 학교는 잠재적 교육과정을 통하여 체제 순응적인 노동자를 길러내는 역할을 해왔다. 한국의 경우에는 여기에 가부장적이고 위계적인 조직문화까지 결합되어, 학교는 가장 보수적인 영역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러나 혁신학교나 혁신교육지구사업을 통해 학교를 민주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그 핵심은 훈육과 통제의 대상이었던 학생들이, 동원의 대상이었던 학부모들이, 관리자의 관리대상이었던 평교사들이 학교의 주체로 서로 연대하고 협력을 도모함에 있다. 이를 통해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였던 학교의 성격이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나아가 교육부 폐지와 국가교육위원회 혹은 사회적 교육위원회로의 전환 등이 지난 대선시기에 제기 되어 공론화 된 것처럼 국가기구 또한 충분히 바꾸어 나갈 수 있다.

   마찬가지이다. 법 또한 필요하다면 해체되고 재구성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국가보안법과 같은 악법은 폐지되어야 할 것이다. 국제중학교나 자율형사립고와 같이 학교 서열을 만드는 잘못된 제도 또한 폐지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일제고사 폐지된 것은 이런 점에서 다른 잘못된 법과 제도 또한 얼마든지 폐지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연 것이다. 드러나는 현상은 새로운 정부가 일제고사를 폐지한 것이지만 그 본질은 지난 9년간의 전교조를 포함한 교육시민사회단체의 투쟁이다. , 잘못된 법과 제도를 폐지시키거나 개정하는 근본 동력은 투쟁인 것이다. 일제고사반대 투쟁은 바로 이 평범한 진리를 다시 확인 시켜 준 것이다.

 

   둘째, 프레임의 설정이 중요하다!

   지난 9년간 이명박근혜정부는 일제고사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그들은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라는 프레임을 끝까지 고수하였다. 일제고사 반대 투쟁을 하다 보니, 가끔은 라디오방송 인터뷰를 하거나, TV 방송토론에 나가기도 했는데, 그때 마다 교육부 관료들은 내게 일제고사 아닌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그러한 우리는 일제고사라는 프레임을 끝까지 고수하였고, 결국 대중을 설득하였다.

   일제고사라는 프레임의 효과는 매우 컸다. 사람들에게 일제고사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요?”라고 물으면 나오는 답변들은 획일적인 평가” “전근대적인 교육심지어는 일제시대 에서나 있을 법한 시험이라는 것이 다수를 이루었다. 즉 일제고사라는 프레임은 자연스럽게 일제고사에 대한 부정적인 연상을 떠 올리게 하는 은유적 효과를 만들었다. 은유의 본질은 한 종류의 사물을 다른 종류의 사물의 관점에서(in terms of) 이해하고 경험하는 것이다. 개념이 은유적으로 구조화되고, 행위가 은유적으로 구조화되며, 따라서 언어가 은유적으로 구조화된다. 은유는 단순한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 인간의 사고과정의 대부분이 은유적이기에 바로 사고를 규정할 수 있다.

은유는 매우 중요하다. 서구인들이 서구와 비서구를 분립시키고, 서구를 중심에 놓고 비서구를 주변화시키면서 서구=발전된=좋은=바람직한”, “비서구=저발전된=나쁜=바람직하지 않은이라는 어감을 갖게 만드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마찬가지로 가부장적인 사회에서는 다양한 문학작품을 통해 남성과 여성에 다른 이미지를 형성한다. 예를 들어 많은 문학작품들이 남성을 해로, 여성을 달로 은유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남성은 능동적이고, 문화적이고, 밝고, 높고, 일반적으로 긍정적인 모든 것과 연관되고, 여성은 수동적이고, 자연적이고, 어둡고, 낮고,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모든 것과 연관된다.

   대중들은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라는 딱딱하고 긴 단어 대신, 일제고사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언론에서도 일제고사라는 단어를 더욱 많이 사용하였다. 일제고사라는 4개의 음절이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라는 11개 음절보다 발음하기도 편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일제치하와 군부독재를 경험하고 배운 대중들은 일제고사의 일제라는 수식어를 듣는 순간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이다. 때문에 언론과 대중이 일제고사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이 투쟁은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비록 이명박근혜 정권이 일제고사를 국가를 통해 강제할 수 있었지만 정당성은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은유를 잘 활용하는 것, 대중의 사고를 규정하고 대중의 동의를 얻어 낼 수 있는 프레임을 만들기 위해, 개념을 담을 수 있는 단어를 선택하거나 조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일제고사반대 투쟁은 바로 이를 확인시켜 준 중요한 사례이다.

 

일제고사3.jpg


   셋째, 실천만이 사회단체를 양적으로 질적으로 성장시킨다!

   2007년 나는 교원평가를 반대하는 노동자 학부모 선언을 조직하는데 참여하였다. 그리고 그 선언에 동참했던 학부모들이 모여서 2008년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를 결성하였다. 출범당시 평학의 회원 숫자는 얼마 되지 않았으며, 신생 사회단체로 집행력도 매우 취약하였다. 그런 상태에서 2008년 일제고사반대시민모임에 참여한 것이다. 사실 당시 조직의 수준으로는 버거운 투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학은 모든 최선을 다했다. 회원들은 자신의 자녀들과 함께 일제고사반대체험학습을 떠났다.

   각종 언론에 평등학부모회의 이름이 나오고, 사회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다. 그 효과인지 회원이 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양적인 성장이 이루어지면서 다양한 역량을 가진 회원들이 들어오게 되었고, 이는 집행력의 보완으로 이어졌다. 초기에는 서울에서의 기자회견 중심의 활동을 펼치는 수준에서 벗어나 자체 소식지를 만들 수 있었고, 행정적인 실무를 담보하는 상근역량도 배치 할 수 있었다. 특히 일제고사반대투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지역에서 평학모임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이렇게 양적 확대가 질적 성장을 이끌고, 다시 질적 성장이 양적 확대를 만들어내는 선순환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일제고사 반대투쟁은 이렇게 평등학부모회가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더욱이 정부를 상대로 싸운다는 것은 몹시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불의에 침묵한다면 그 사회는 결코 발전할 수 없을 것이다. 평학과 같은 시민사회단체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잘못된 정부정책에 맞서 올바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또 말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잘못된 법과 제도에 맞서는 것일 것이다.

   보수언론은 시민사회운동을 늘 부정하여 한다. 그들은 시민 없는 시민단체라는 말로 시민운동과 시민단체를 조롱하곤 한다. 그러나 아주 냉정히 돌아본다면 그것은 과장만은 아니다. 회원 없는 시민단체는 시민단체라고 할 수 없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오바마는 연설에서 노동조합에 가입하라고 한 적이 있다. 지난 촛불에서 외쳐진 구호 중 하나가, ‘노동자는 노동조합으로 시민은 시민단체로 가입하자였다. 시민사회단체가 제 역할을 하려면 회원들이 내는 회비로 단체를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회원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회원의 확대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그것은 사회가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에 제대로 된 시의적절한 대응을 하여 대중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때이다. 이는 정책제안 활동일 수도 있고, 기자회견일 수 도 있고, 일제고사반대 투쟁과 같은 직접행동을 감행하는 것 등 다양한 활동을 포함한다. 어떤 시민사회단체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은 결국 정세적 실천을 얼마나 제대로 하는가에 달려 있으며, 특히    불의에 맞서는 실천은 조직을 양적으로 질적으로 성장시킨다.

   한편, 시민사회단체의 성장에 중요한 또 하나는 바로 학습이다. 북유럽의 스웨덴의 경우 천만명의 인구 중 백만명의 성인이 다양한 학습공동체 활동에 참여한다고 한다. 스웨덴의 사회민주주의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시민들의 지속적인 교육활동 또한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일 것이다. 기자회견문을 작성하려 해도, 정부정책을 분석하고 정책제안을 하기 위해서도 학습은 필수적이며, 회원들의 역량을 기르기 위해서도 학습이 필요하다. 실천 없는 이론은 공허하며, 이론 없는 실천은 맹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일제고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일제고사는 사라지지 않았다. 일제고사는 한날한시에 똑같은 시험으로 아이들과 학교를 줄 세우는 시험이다. 그 정점은 바로 대학입학 수학능력시험이다. 수능점수 몇 점으로 대학 진학이 좌우되는 것이 현실이다. 사교육비 부담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대학서열화가 만들어낸 입시 부담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일제고사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다시 운동화 끈을 고쳐 매야 한다. 이제 우리는 일제고사를 넘어서 대학을 평준화하고 수능시험을 대학입학자격고사로 전환시키기 위한 실천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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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일제고사를넘어(94-10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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