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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62호 (2016.10.21. 발간)


[기획]

2. 비고츠키 인간발달이론의 현대적 의의

 

손지희(진보교육연구소 연구원)

 



1) 현대 교육과 비고츠키 인간발달이론

 

  후대 학자들은 비고츠키 이론을 현대적이라고 평가하며, 학교교육 혁신을 이끌어줄 이론으로 주목해왔다. 1960년대 심리학자들이 Piaget를 재발견했다면 오늘날은 Vygotsky를 재발견하고 있는 중이다(크레인, 발달의 이론). 미국학계에 비고츠키 이론을 소개하는데 일조한 제롬 브루너는 비고츠키를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고 하였으며 Mind in Society의 편역자인 마이클 콜은 비고츠키의 이론은 중요한 측면들에서 매우 현대적”(Cole, M. eds. 1978)이라고 평하였다. 국내 혁신학교 운동에서도 비고츠키 이론은 새로운 교육철학으로써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등 과거의 이론임에도 현대적 교육이론으로써 수용되고 있다.


비고츠키 이론의 개념들은 실천적 적용력과 교육현상에 대한 높은 설명력으로 현대 교육학의 여러 영역의 실제적 측면에서 활발히 원용되고 활용되어 왔다.

 

비고츠키의 작품들은 여러 언어를 통해 널리 퍼져 나가면서 확산되고 변형되며 일부는 명백히 그릇되게 받아들여졌으며, 고도로 이론적인 목적으로부터 완전히 실천적인 목적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역사와 발달, 14~15)

 

  이론과 실천의 거리를 좁히고자 한 그의 심리학에 대한 입장은 결과적으로 실용성 높은 이론체계구성의 밑거름이 되었다. 당시 러시아 사회는 실제적인 사회적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과학이 해줄 역할에 대해 높은 희망을 품고 있었으며 비고츠키 역시 순수이론을 지향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론과 실천의 결합을 지향했다. 비고츠키는 교육실천의 영역에서 먼저 경력을 시작했고 당시 러시아의 교육문제, 사회문제와 연동된 주제들로부터 연구를 시작했으며 심리학자로서의 경력 초기에 수행한 선천적, 비선천적 장애인들의 교육문제는 그의 이후 연구에서 깊은 영향을 주었다. 비고츠키는 모스크바 결함학 연구소 창립자이며, 시각장애, 실어증, 중증 정신지체와 같은 의학적 문제들 속에서 이간의 정신 과정을 이해하고 이를 치료와 교정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으로 연결시켰다. 이러한 실천적 지향은 그의 문화역사적 발달 이론의 골격 구성에 있어서 중요한 토대가 되었으며 이러한 교육문제에 실질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과학에 대한 관점에서 비롯된 연구 방법과 결과들은 이론적 깊이와 결합되어 높은 설명력과 실천적 적용력의 기반이 되었다.


  비고츠키 이론이 소개되던 초기 서구사회나 21세기 한국사회나 많은 심리적 현상들과 교육현상들을 분석하고 설명할 만한 이론적 도구가 취약하다고 볼 수 있다. 교육학은 현실과 유리된 학문으로 취급되고 심리학은 병리적인 현상에만 유용성이 있는 것으로 취급되어 왔다. 비고츠키의 이론은 이런 상황에 큰 자극제가 되었고 교육이론의 여러 영역에서 원용되고 활용되고 있다(배희철 옮김, 유네스코가 추천한 비고츠키). 비고츠키는 혁명기 러시아 상황에서 인간발달의 보편적 과정을 변증법적 유물론에 입각하여 연구하였다. 궁극적 지향은 인간발달에 대한 총체적 해명과 혁명적 발달을 담지할 역사적 주체 형성에 있었는데, 그는 개체(개인)발달의 보편적 과정을 의식발달을 중심으로 과학적으로 분석하는데 주력하였으며 사회적 의식해명의 장대한 과제는 미처 진행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였다. 그럼에도 인간발달에 대한 그의 총체적, 인과역동적, 발생적 관점과 도구와 기호, 언어의 매개적 역할, 고등정신기능, 개념적 사고와 주체성의 발달과정, 근접발달영역 창출 등의 개념들은 교육현상과 실천을 이해하는 틀과 개념을 제공한다.

  

  비고츠키 이론의 핵심개념들은 발달심리학을 필두로 하여 현대교육학에 영향을 미쳤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사회적 상호작용개념이다. 현대교육학의 보편적 흐름 중 하나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중시이다.

 

사회적 상호작용과 인지발달의 관계는 비고츠키의 전형적인 주제 중 하나이며, 현재의 심리학에서 크게 유행되고 있는 주제이다. 기호 매개에 대한, 정신 발달에서 기호 체계의 역할 그리고 언어 발달에 대한 현재의 조사에 비고츠키의 개념은 명백하게 강하게 영향을 주고 있다.”(배희철 옮김, 유네스코가 추천한 비고츠키)

 

  비고츠키는 사회적 상호작용이 인간발달에 있어서의 갖는 중요성과 역할을 정확하게 인식한 학자였다. 인간의 고등정신기능은 자연발생적 혹은 생물학적 경로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자연발생적인 문화적 노선에 크게 의존한다는 비고츠키의 이론에서 발달의 핵심기제는 문화를 매개로 한 사회적 상호작용이다. 이처럼 사회적 상호작용은 비고츠키 이론의 중심적 개념 중 하나로서 인간발달의 고유성을 설명하는 핵심개념이기도 하다. 비고츠키에 따르면 환경과의 상호작용 없이 어린이는 고등한 인간 고유의 특성과 활동 형태를 형성해나갈 수 없다(성장과 분화 [4-57]).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며, 사회와의 상호작용 없이 혼자 힘으로는 인류 전체의 체계적 발달의 결과로 발달해 온 특성과 특질을 절대 발달시킬 수 없다는 것이 비고츠키 이론의 인간의 발달과 본성에 대한 기본 전제이다. (성장과 분화, [4-59])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어린이가 지각, 기억, 주의, 생각 등 자신의 심리과정에 대해 의식적으로 되어간다는 비고츠키 논의는 후대 학자들이 메타인지의 영역을 개척하는 것에 도움을 주었다. 비고츠키에 따르면 어린이는 성장과정에서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비의식적 영역을 의식적 파악의 영역으로 개척해나간다. 어린이는 대상과 타인, 나아가 자신의 행동과 개념, 그리고 내적 심리과정 그 자체에 대해 의식적이 되어간다. 이것은 현대 심리학의 한 주제인 메타인지의 문제의식과 일맥상통한다.


  비고츠키 이론에 대한 현대교육학의 또 다른 주된 평가는 교육에 중요성을 가장 크게 부여한 발달이론이라는 점이다. 듀이는 학교와 같은 형식 교육을 현대사회의 상황에 따른 '유용성'의 측면에서 사회에서의 도구적 가치를 가진다고 인정한 반면 비고츠키는 학교와 같은 형식 교육의 가치를 사회적 도구 이상으로 생각했다. 비고츠키에 따르면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수-학습 과정을 통해 정신기능 고차화의 공통토대인 의식적 파악과 의지적 숙달이 발생하게 되며 일상적 상황에서 부지불식간에 수행했던 과정들이 학교에서는 의식적이고 의지적인 형태로 이루어지게 된다. 비고츠키(1934c/2011)는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쓰기'를 예로 든다. 쓰기는 의식적 파악과 의지적 통제를 요구하는 기술이다. 입말로는 부지불식간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던 과정이 글말에서는 더욱 의식적으로 되기를 요구한다. 역으로 글말은 입말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비단 (입말의 변증법적 쌍인) 글말 학습 뿐 아니라 (자연발생적 양 개념과 변증법적 쌍인) 수에 의한 양 개념 학습, (모국어와) 외국어 학습, (일상적 개념과) 과학적 개념 학습 등 학교에서 습득이 이루어지는 기호적 상징들은 인간의 고차적 교류와 협력을 가능케 하는 기초일 뿐 아니라 의식적 파악과 의지적 숙달을 요구하는 활동들이라는 점에서 고차적 의식을 가능케 한다.


  비고츠키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한 인지발달이라는 관점을 원용한 교수-학습이론과 모델 또한 다수 제출되었는데, 협동 학습, 유도된 학습, 도제학습, 대화적 학습, 사회인지적 갈등에 의한 학습, 협력적인 지식 구성 등이 비고츠키 사회적 상호작용을 교수-학습론에 적용한 사례들이다. 비고츠키가 서구사회에 소개되기 시작할 무렵의 발달심리학의 주류 이론은 피아제 이론이었다. 당시의 이론적 추세와 비교했을 때 비고츠키의 교육이론은 학교교육에 대해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이론으로 피아제의 이론과 대비를 이루었다. 비고츠키 교육이론은 강력한 발달론자들과 비교할 때 학교교육에 열광적(크레인, 같은 책)이었다. 비고츠키는 교육이 발달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발달의 새로운 길을 열어 준다”(비고츠키, 1934 : 152)고 보았다. 발달론자들의 입장에서 비고츠키 교육이론의 학교교육에 대한 강조는 지나친 것으로 보였을 것이며 어린이의 본성을 거스르면서 사회의 압력에 의한 특정의 발달목표를 교육을 통해 달성하려는 것으로 비추어졌을 수 있다. 실제로, 러시아 혁명기에 활동했던 비고츠키는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돕고 싶어 했던 까닭에 학교교육에 막대한 중요성을 부여한 것이 사실이다. 실제적인 문제들을 언급하는 이론 구축에 착수했고 학교교육이 어떻게 어린이의 발달을 촉진할 수 있는가를 보여 주고자 했다(크레인, 같은책, 313). 학교교육이 어린이 발달의 새로운 경로를 개척한다는 것을 단순히 강조하는 당위적 차원을 넘어 학교교육과 발달의 관계를 이론적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다. 교수-학습과 발달의 관계를 설명하는 개념이 근접발달영역으로서, 학교가 어린이 발달의 기제로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이 개념을 사용했다. 근접발달영역 개념은 교수과정 자체에 대한 훨씬 더 큰 흥미를 자극하였으며(크레인, 같은 책 : 313), 비고츠키의 논의에 자극받은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교수모형들이 출연하였다. 이는 피아제의 발달관념과 행동주의적 훈련 관념이 충돌하던 당시 상황에서는 새로운 방식으로 교육에 적극적인 발달적 의미를 부여하도록 만들었다. 학교교육, 체계적 학습이 갖는 발달적 가치를 구체적으로 밝혔다. 과학적 개념 체계를 동화하는 것은 학교에서 받는 체계적인 형태의 교육 때문에 가능하다(배희철 역 옮김, 유네스코가 추천한 비고츠키). 비고츠키는 발달의 노선을 자연적 노선과 문화적 노선으로 구분하였는데, 문화적 노선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체계적인 학교교육이다. “교육은 어린이의 인위적 발달로 규정할 수 있을 듯하다. 교육은 단지 발달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데 제한되지 않는다. 교육은 나아가 근본적인 방식으로 모든 행동 기능들을 재구조화한다.”(비고츠키, 영문판 선집1: 107)


  이처럼 과거의 이론임에도 비고츠키의 개념들은 현대교육학자들과 현장교사들에게 재조명되어 유효한 것으로 평가받고 수용되는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비고츠키 이론이 가진 현상에 대한 높은 설명력에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데, 비고츠키 이론이 인간발달이라는 현상에 대해 높은 설명력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특유의 연구방법이 있었다. 비고츠키는 연구주제에 조응하는 연구방법이 중요하다고 수차례 강조하였으며 특정의 심리기능이 형성되는 역동적 과정을 인과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실험들을 시행했다.


  마이클 콜은 비고츠키가 심리적 기능의 발달과정을 추적하기 위해 고안한 실험방법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 실험 결과들이 성격상 양적일 뿐 아니라 질적이다. 둘째, 실험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통해 실험실필드사이의 장벽을 허물었다. 셋째, 심리적 기능들의 발달 과정을 추적하는 실험 방법은 아동의 역사뿐만 아니라 역사와 관련 있는 다른 사회과학적 방법들과 공존할 수 있다(마인드 인 소사이어티, 24). 비고츠키가 실험을 통해 양과 질이 공존하는 결과를 얻게 된 배경에는 주의 깊은 관찰과 그에 기초한 상세한 기술이 있다. 실험 상황에서 실험자는 관찰할 뿐 아니라 의도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상황에 개입을 한다. 엄격하게 개입을 통제하고 최대한 순수한결과를 얻고자 하는 연구와 매우 다르다. 이는 어린이의 발달, 심리기능이 사회적 접촉을 통해 발생하고 내면화된다는 문화역사주의의 이론적 원리와 맞닿는다. 또한, 비고츠키의 실험에서 실험자는 실험자일 뿐 아니라 아동의 발달적 변화를 극적으로 이끌어내는데 결정적 도움을 주는 교육자이기도 하다. 관찰과 개입에 의한 내적 심리 기능 변화를 유도하는 실험이 가능했던 이유는 심리학 연구의 울타리를 넘어 인류학과 사회학 등 직접 간접으로 관련된 연구를 검토하고 심리적 가설을 세우는 원천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인류학과 사회학 등의 영역에서 축적된 학문적 업적들은 인간 의식과 지성의 진보를 설명하고자 한 비고츠키 연구의 동반자들이었다.


  이하에서는 위와 같은 비고츠키에 대한 현대교육의 평가와 앞 장에서의 검토 내용을 토대로 비고츠키의 문화역사적 이론의 의의를 내용적 측면, 방법적 측면, 실천적 측면으로 나누어 도출하고자 한다.

 

2) 변증법적 유물론을 기반으로 인간에 대한 과학적 연구 수행


  비고츠키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인간사회에 대한 연구전통을 심리학 분야로 적용하여 문화가 아동 성격의 일부가 돼가는 기제들을 제시한 첫 번째 현대 심리학자였다. 또한 그는 심리적 기능들이 뇌 활동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면서 실험 인지심리학을 신경학과 생리학과 결합시킬 것을 일찍이 주장했다. 비고츠키는 이 모든 것들은 인간사회 역사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견지에서 이해돼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통합된 행동과학의 토대를 마련했다(마이클 콜, 마인드 인 소사이어티 : 13). 인간 의식 형성의 핵심적인 물적 토대로서 기호와 사회적 상호작용을 확립하게 된 것은 모든 현상들을 운동과 변화 속에 있는 과정들로 연구해야 한다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원리에 입각한 분석의 결과였다.

 

인간 의식을 과학적 탐구 대상으로 설정


  비고츠키 심리학적 연구의 근원적 탐구 대상은 인간 의식이었다. 현대 과학에서 역시 의식은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다. 신경과학, 인지과학, 물리학 분야 등에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반면 비고츠키 이전까지 의식은 주로 철학적이고 사변적인 논의의 주제에 불과했다. 비고츠키는 인간의 의식을 철학적 논의를 넘어 과학적 연구의 대상으로 확장하고자 하였다.


  비고츠키가 활동하던 시대에 의식이라는 주제는 유물론과 관념론의 이데올로기적 대립 지형과 긴밀히 연관되어 쟁점이 형성되는 주제였다. 의식과 물질(존재) 사이의 선차성의 문제를 놓고 유물론적 견해와 관념론적 견해가 충돌하였다. 하지만, 관념론적 입장이든 유물론적 입장이든 양자 모두 과학적 근거 제시와 분석이 선행했다기 보다는 사변적으로 논의되는 경향이 강했다. 유물론적 입장의 경우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는 등 의식에 대한 유물론적 관점을 마르크스가 명료히 표현하였지만 의식 그 자체를 분석대상으로 삼아 연구하는 것까지 나아간 것은 아니었으며 관념론적 입장의 경우 역시 의식에 대해 형이상학적 견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과학적 연구의 대상으로 정립되지 못하는 상태였던 것이다.


  이러한 당대 지형에서 비고츠키는 인간의식의 문제가 유물론과 형이상학의 철학적 배경과 결코 무관하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철저히 과학적 분석의 대상으로 하여 의식에 대한 유물론적인 견해를 강화해야 한다고 믿었다. 역으로 변증법적 유물론, 사적 유물론의 방법론을 통해 의식을 연구하는 것이 가장 과학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이를 위해 인간행동과 의식의 기원과 발달 과정을 재구성하는 것이 심리과학자의 과업이라고 보았다. 비고츠키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원리와 방법들 속에서 과학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주요한 과학적 모순들의 해결책을 봤으며 역사적 유물론이라고 알려져 있는 마르크스의 사회이론의 관점과 방법을 인간의식을 분석하는데 채택했다. 비고츠키가 변증법적·사적 유물론의 관점과 방법을 택한 이유는 그것이 가장 과학적인 방법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현상과 본질이 일치한다면 과학은 잉여적인 것이 될 것이다.”라는 마르크스의 입장에 동의했으며 따라서 유물론은 인간의식의 본질을 규명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여겼다. 비고츠키가 보기에 당시의 인간의식 및 고등정신기능에 대한 연구는 관념적, 환원주의적, 비변증법적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비고츠키의 설명의 논리와 접근방법은 현대 뇌과학, 심리학 분야의 의식 연구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는데, 고도로 발달해 온 현대 과학에서도 의식 연구는 과학적 연구 대상으로서 크게 진전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존재한다. 무엇보다도 의식을 비물질 현상이라고 보기 때문에 과학의 대상이 아니라고 규정하는 흐름이 있다. 아울러, 의식이라는 주제는 어렵고 모호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객관이기보다는 주관의 영역이라고 여기는데 객관과 주관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하여 사고하기 때문이다.


  뇌 과학에서는 의식이 뇌활동의 산물이라고 보고 뇌활동과 의식의 직접적 관련성을 주로 파악해왔다. 진화된 인간의 뇌는 침팬지의 뇌에 비해 두 배 정도 무거우며, 특징적인 부분은 신피질이다. 신피질 가운데서도 언어, 사고, 계획, 판단, 창의성, 영성 등 고등 정신 현상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인간에게서 고도로 발달하였다. 의식과 관련하여 전두엽의 두 반구가 담당하는 의식활동의 기능적 차이 발견하였다. 전두엽의 좌반구는 언어, 사고, 분석, 논리 등의 분명한 의식 현상을, 전두엽의 우반구는 직관, 심미, 통찰, 정서 등과 같이 미분화되고 비선형적이고 불분명한 의식을 담당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문제는 이 두 가지 형태의 의식을 구분하고 둘 사이의 상호작용과 관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대립적인 관계를 전제하는 이분법에 머무르고 있다. 의식의 물질적 근거를 라고 본다는 점에서 유물론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사실상 환원주의로서 이러한 의식을 뇌의 활동 즉 뇌에서의 전기화학적 과정으로 환원시켜 설명하는 경향을 환원적 유물론이라고 지칭한다. 또한 뇌의 변화를 유발하는 혹은 고차적 의식의 원인을 설명함에 있어서 관념론적 인식론에 의지하는 경우도 있다.]


 “뇌라는 물질적 영역 의식이라는 비물질적 영역의 관계에서 뇌와 의식의 직접적 관계만을 논의할 뿐 뇌의 변화 기제에 대한 설명은 모호하다. 그래서 뇌에 직접적인 작용을 가하는 방식으로 의식, 마음의 변화를 유발할 수 있다고 보는 단순한 견해도 없지 않다. 따라서 인간의 뇌에 대한 지식이 양적으로 풍부해졌다고 해서 연구가 더 과학화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비고츠키는 인간 뇌의 진화가 어디에서 기원했는지, 어린이의 발달이 어디로부터 기원했는지에 대해 보다 심층적인 원인을 찾고자 했다. 또한 발달을 인간의식이 고양되는 과정으로서의 개념화함으로써 교육의 본질로서의 발달에 대해 보다 과학적으로 논의할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의식은 총체적이라는 전제 하에 의식을 이루는 주요 정신기능들을 각각 분석하고 다시 의식을 기능들 간의 관계들의 총체로서 종합하였는데, 논리적이고 언어적인 기억, 자유의지, 개념적 사고, 창조적 상상 등 개별 고등 정신 기능들의 발달 과정을 규명하였다. 발달의 시기별로 각 기능들의 관계의 변화와 선도적 기능, 발달의 다음영역을 창출하는 선도적 활동 등의 교육적 논의로 풍부화된다.

 

비가시적 심리 현상에 대한 연구 방법 개척


  19세기까지 인간의 마음, 의식은 주로 철학적 논의 주제였으며 아직 심리학은 학문으로서 정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분트는 독일의 라이프치히에서 1879년 최초의 심리학 연구실을 만드는 등 과학적인 학문으로서의 심리학을 정립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분트(Wundt)와 그의 제자들이 제창한 최초의 심리학 학문 이론이 바로 구조주의다. 분트는 의식의 구성요소를 두 가지로 나누었는데, 첫째로는 무언가를 보고, 듣고, 느끼는 등의 지각(Sensations)이고, 둘째로는 공포, 분노, 사랑과 같은 감정(Feelings)이었다. 구조주의 학파에서는 그 이름대로 위와 같은 두 가지 구성 요소(=구조)를 분석함으로써 인간의 마음과 행동의 원인을 규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 구조주의의 궁극적인 목적은 어떠한 감정이나 지각을 발생케하는 구성 요소를 찾아내고 묘사하는 데에 있었다. 이들의 방법론은 이른바 내성법(Introspection)이라고 불리는 방법론이다. 일반적으로 구조주의자들은 객관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켜왔는데, 정작 그들의 주된 연구 방법론은 내성법이었다. Introspection이라는 단어는 사전적으로 "내면을 바라봄"이라는 뜻을 가지는데, 그 뜻대로 내성법은 어떠한 상황이 일어났을 때, 혹은 일어난 직후 느끼는 감정을 자기 자신이 자신의 내면을 성찰함으로써 관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성법에는 큰 문제가 있었다. 구조주의자들이 객관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이론을 발달시켜온 것과 달리, 내성법은 철저하게 주관적인 영역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 방법론으로써의 객관성이 흔들리게 되고 이는 후일 행동주의 등의 공격을 받는 이유가 된다.


  1900년대 초반 내성적 심리학에 대한 반발로 왓슨 등은 행동주의를 주창하였고 20세기 심리학의 강력한 한 분파로 성립하였다. 이들은 관찰과 측정이 가능한 반응의 측면에서 행위를 설명하려고 한다. 이를 테면, “생각과 같은 심리 현상을 심리학적 대상에서 배제하고 자기반성, 인지, 무의식(unconscious) 등을 비과학적인 가설로 규정하는 등 가시적인 현상들로 연구대상을 한정하였다.

  비고츠키는 행동주의적 입장도 내성법도 따르지 않으면서 일련의 고등정신기능들, 즉 비가시적 심리 현상을 주요한 연구대상으로 하였으며 나아가 이러한 인간 특유의 비가시적 심리현상들을 실험적 방법에 의거하여 재현하고자 하였으며 완성된 형태보다는 그것들이 형성되는 과정을 추적하고자 하였다. 비고츠키는 실험적 접근은 인간의식에 대한 과학적 이해의 지평을 확대하는데 기여하였다. 비고츠키는 발생적 방법을 통해 통상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웠던 비가시적, 추상적 심리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비고츠키가 연구한 고등정신기능들은 모두 비가시적인 내적 심리 과정들이다. 더욱이 그 정신기능들 간의 관계의 체계의 발달의 과정에서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양상을 포착해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비고츠키는 이러한 난관을 극복할 돌파구를 마르크스의 사적유물론의 방법론에서 찾았다. 사적유물론이 비고츠키에 의해 심리학적 연구방법으로 전유된 것이 바로 발생적 방법이다. 사적 유물론의 심리학적 적용이 발생적 방법인 셈인데 발생적 관점에 입각하여 형태적, 논리적 방식만으로 본질에 접근하기 어려운 인간의 내적 심리 기능 변화 과정을 역동적으로 설명하였다.

 

내적 말은 심리학 연구 영역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이다. 실제 데이터는 거의 전무하다. 발생적 방법이 적용되기 전까지는 실험에는 거의 접근 불가능했다. 여기서 발달이 인간 의식의 복잡한 내적 기능의 하나를 이해하는 열쇠임이 밝혀졌다.”(생각과 말 73)

 

개념들 사이의 가장 기본적이고 자연적이고 흔한 관계 형태는 일반성의 관계이다.(식물, , 장미와 같은 차이와 일반성의 관계) 모든 개념이 일반화라면, 한 개념이 다른 개념과 가지는 관계는 일반화의 관계라는 것이 분명하다. 일반화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주로 보편과 개별의 논리적 관계에 집중되었으나 이제 개념 형태들 사이의 발생적이고 심리적인 관계를 연구해야 한다.”(생각과 말 6)

 

  비고츠키는 원자론적 요소주의와 의지에 대한 관념적 견해 극복은 발생적 접근을 통해서가능하다고 믿었다. 비고츠키는 엥겔스의 "10만 개의 증기기관이 1개의 증기기관보다 이 사실(증기기관이 열을 주고 기계적 운동을 얻을 수 있음)을 더 잘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 즉 귀납법이 과학적 발견의 유일하고 가장 중요한 형식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박과 더불어 변증법적 인식의 핵심인 '추상화의 힘'에 따라 '심리적 흔적기능'을 단서로 자유의지를 발생적으로 규명한다. 비고츠키에 따르면 현재 인간들에게서 나타나는 자유의지는 애초에는 이와 동일한 형태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초기에 인간은 스스로 궁지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아직은 미발달된 지성 이전에 외적 자극을 능동적으로 도입하여 행위를 결정했다. 흔적기능을 단서로 한 자유의지에 대한 발생적 분석은 인간의 정신을 운동하지 않는 고정의 것으로 보는 반역사적이고 비변증법적인 의지에 대한 관념적 철학을 무너뜨리는 중요한 계기라고 볼 수 있다.


  발생적 방법은 인간발달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확대하는 중요한 계기일 뿐만 아니라 발생적 방법은 어떤 현상을 이해하는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사유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를 발달 심리학의 영역으로 확장한 것이 비고츠키 이론의 기여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사물의 분석에서 발생적 방법은 필수적이다. 더구나 변화와 발달, 즉 발생 그 자체인 인간의 의식발달을 연구함에 있어 발생적 방법은 더 중요하고 불가피하다. 그는 고등정신기능기호()’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데 있어 등장하는 어려움들을 발생적 방법을 통해 극복했다.

  내적 관계, 변화를 드러내기 위해 비고츠키와 그 동료들은 비교-발생적 실험연구 방법을 고안했다. 예컨대, “낱말의미는 발달한다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여러 연령층을 대상으로 이중적 기능자극법을 고안하여 적용하였다. 이를 통해 비고츠키와 그 동료들은 개념 발달의 실제 과정을 실험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었다. ‘금지색 카드 실험은 기억에 있어서 기호가 내면화되는 발생적 과정을 압축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어떤 기능의 실제적 발달 경로를 단축시켜 놓은 과정을 창조적으로 재현하고자 고안한 비고츠키의 실험방법은 외적 행동을 통해 내적 차이와 질적 변화의 과정를 꿰뚫어보는 방법을 제공한다. 즉 실험의 과정은 피실험자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기능이 발생하는 발달의 과정과 마찬가지이다.

 

연필과 종이의 도움으로 어떻게 기억할 수 있는지를 어떤 식으로든 알아낼 수 있도록 지속적인 도움이 제공되었다. 이런 식으로 연구자는 어린이에게 어떤 수단을 제공하고 어린이가 그것을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지를 관찰했고 또한 실험 대상에게 있어 연필 획이 어느 정도까지 더 이상 단순 표시가 아닌 기억과 적절한 표기를 위한 기호가 되는지를 관찰하였다. 이 장치는 원숭이들이 막대기를 잡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막대기가 도구로 사용되어야만 하는 상황 속에 원숭이를 두고 그 손에 막대기를 쥐어 준 후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살핀 쾰러의 실험을 연상시킨다.”(비고츠키, 2014: 108-109)

 

  실험이 발달 과정의 경로를 효과적으로 연구하는 수단이 되도록 하기 위해 피험자를 엄격하게 통제하지 않고 피함자에게 관찰 가능한 다양한 활동에 종사하도록 기회를 최대한 제공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비고츠키의 실험은 발달을 촉발하는 외적 활동과 상호작용에 대한 방법적 시사를 주며 실제 교육장면에서도 간단히 변형하여 적용할 수 있는 원리들을 찾을 수 있다. 실험 결과들은 어린이 발달에서의 시기와 단계 구분과 시기별 핵심적 발달기능에 대한 실제적 지식을 제공해주었다.

  발생적 방법을 핵심으로 하는 문화역사주의의 연구방법은 교육현상에 대한 과학적 이해의 방법으로 확장할 수 있다. 비고츠키는 당대의 심리학의 과업에 대해 발생적 방법으로 설명하고 해결책을 모색했듯이 한국의 여러 교육문제는 발생적 방법에 의한 분석을 통해 정확히 바라보고 그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입시문제의 경우 단지 학벌이 문제라는 것, ‘입시경쟁이 문제라는 것을 넘어서서 입시가 대학서열구조에서 발생하는 것임을 논리적, 역사적으로 밝히고 지난 수 십 년간 부분적 개선 노력이 구조적으로 실패해 왔음을 인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나아가 다른 나라와의 비교를 통해 얼마든지 변화 가능한 것임을 알게 되면서 대학평준화 논의에 이르게 되었다. 앞으로 교육위기학교폭력’(예들 들면 학교폭력의 원인을 입시경쟁으로 얼버무려 설명하는 방식은 무매개적이고 기계적인 설명) 같은 주요 의제들도 형태적 분석을 넘어 발생적 분석이 결합된다면 설명력을 제고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다학문적 융합과 협력 연구


  비고츠키 저작들은 교육학의 여러 영역과 심리학 분야는 물론 언어학, 기호학에서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심리학 연구임에 분명하지만 인간 심리의 특성을 규명하기 위해 폭넓은 학문적 지식을 배경으로 구성된 연구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비고츠키는 최근 학문계와 교육계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주목받고 있는 융합80년 전에 실천했다. ‘환원주의에 대해 강력한 비판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던 비고츠키는 세분화된 학문체계에서 여러 영역을 아우르는 통합적 시각이 결여되면 각각의 세부적 요소에만 천착하여 환원주의에 빠지기 쉽다. 비고츠키의 이론이 문화역사주의라고 불리운다 해도 비고츠키는 생물학적인 요인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으며 문화결정론으로 흐르지도 않았다.

  환원주의적 경향으로 흐르지 않고 발생적 방법에 의해 두 발달의 동력의 교차와 얽힘을 재구성하는 방법을 고안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비고츠키가 가진 다학문적 배경이 일정한 역할을 했다. 8개 국어에 능통했던 비고츠키는 미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에서 나오고 있던 철학, 심리학, 교육학, 희곡, 문학 등의 주요 연구 업적들에 대해 폭넓은 독서를 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변증법 철학에 대한 관심이 많았으며 대학시절 의학, 법학, 역사학, 철학을 공부하였고 대학 졸업 후 Gomel에서 체류하면서 지역 학교에서 문학, 심리학, 예술사, 미학을 강의하는 한편 이 학교의 성인교육센터에서 연극 분야를 지도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여러 분야를 접한 후 심리학자로서의 본격적인 경력을 시작하였다.

  유전과 환경의 상호작용으로서 발달을 분석하고 설명하기 위해서는 자연과학과 인문학, 사회과학 등의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은 불가피한 것이기도 했다. 인간의 생물학적 특징과 진화과정, 여러 문화적 도구와 기호들의 발생과 역사적 발달에 대해 무지하고서는 정립이 불가능한 이론체계가 문화역사적 이론이기도 하다.

  비고츠키의 동료이자 제자였던 레온티에프의 회상에 따르면 생각과 말의 관계의 문제에 있어서 단어의 의미 혹은 개념의 동화가 심리 발달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지에 관한 의문이 떠오르자 비고츠키는 그럴 가능성은 없다면서 의식 배후에 삶이 있다라는 말을 끝없이 반복(다비도프, 444-445)했는데 레온티에프는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실질적·외적 과정에서 이식을 불러일으키는방향으로 연구를 수행했다는 것이 중요한 사실이며 지능과 감정의 영역까지 탐구하기 시작했다. 이는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는 마르크스의 인간존재에 대한 견해와 비고츠키의 의식의 배후에 삶이 있다는 말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 그 자체만을 보아서는 결코 올바르게 분석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관점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 특히 인간의식 연구는 다학문적 융합이 아니고서는 연구할 수 없는 주제였다.


  한편, 비고츠키는 사후에 심리학계의 모차르트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서구사회 학자들 사이에서 천재성이 먼저 부각되었고 그의 엄청난 다학문적 지식에 관심이 쏠린 것이 사실이지만 그의 학문적 업적은 결코 독자적인 개인의 성취가 아니었다는 것 또한 명백하다. 비고츠키가 주도하고 지도적 역할을 하는 위치에 있었음에 분명하지만 그의 이름으로 남겨진 이론들은 여러 동료들과의 끊임없는 토론과 실험을 통해 이룩한 것들이다. 비고츠키는 자신의 저작에서 나는이라는 주어를 쓰지 않는다. 항상 우리는이라는 주어로 시작된다.

  최근 국내외에서 융합은 관심의 대상이다. 학문계 뿐 아니라 교육영역에서도 융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는 비고츠키가 실천적으로 보여주었고 상당히 성공적이었던 다학문적 융합에 기초한 협력연구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먼저, 학문적 융합은 발달의 초기부터 가능한 일이 아니며 일정한 과정을 거쳐야 가능하다는 점이다. 어떤 대상에 대한 총체적 인식은 결코 한 순간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지난한 과정을 필요로 하는 것이며 비고츠키 또한 어린 시절부터의 숙달의 과정을 거쳐 여러 지식들을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단계로까지 나아간 것이다. 또한 융합에 의한 학문적 성과는 협력이 동반될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셋째, 학문적 융합 이전에 연구문제와 주제가 먼저이다. 융합을 이끄는 핵심이 존재하지 않으면 별로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비고츠키의 경우 인간의식이라는 주제가 있었으며 이의 형성과정을 사회적 관계상호작용을 핵심 기제로 밝힌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융합은 분과학문들의 공통된 철학적 기반을 필요로 하는 동시에 공통의 철학적 기반을 형성해나가는 것을 전제로 해야 가능한 작업이다. 공통의 철학적 기반 없이 사실적 지식들만을 기계적으로 결합한다고 해서 융합이 되는 것은 아니다.

 

3) 인간관과 교육관

 

  비고츠키는 발달이라는 프리즘으로 인간을 연구함으로써 인간의 존재적 본질을 새롭게 조명했으며 사회적 관계와 교육을 인간발달에 있어서 필연적 요소로 설정함으로써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의미의 교육적 인간관을 넘어서는 교육과 인간과 사회가 변증법적으로 통일된 교육적 인간관을 비고츠키 이론으로부터 도출할 수 있다.

비고츠키에 따르면 인간발달의 원천은 사회적 관계이며 기호를 매개로 한 체계적이고 협력적인 상호작용이 인간의 의식을 고양시키는 열쇠이다.

 

발달에 대한 사회-문화적 개념화에서 어린이는 젊은 로빈슨 크루소처럼 그들의 사회적 문화적 환경으로부터 격리된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 다른 사람과의 결합이 그들 특성의 일부를 구성한다.” (배희철 옮김, 유네스코가 추천한 비고츠키)

 

사회적 존재로서 어린이를 보는 관점은 훨씬 큰 함축을 담은 방법론적 접근을 만들어낸다. 이 개념을 교육학에 적용하면 교육의 영원한 딜레마(형식교육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어린이가 개별적인 발달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아니면 어린이가 개별적인 발달 수준에 도달하도록 어떤 교육에 어린이를 노출시켜야 하나?)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이전에 학습 과정과 발달 과정에서의 변증법적 관계를 추적하여 검토하였던 비고츠키는 만약에 어린이가 정확하게 근접발달영역에서 새로운 학습에 노출된다면 발달은 더 생산적이 된다고 첨언했다. , 이 영역에서 어른의 지원으로 어린이는 그들이 동화할 수 없었던 것들을 더 용이하게 동화할 수 있을 것이다.”(배희철 옮김, 유네스코가 추천한 비고츠키)

 

  발달에 있어서 유전이든 환경이든 한 쪽을 강조할 경우 수동적 인간관, 개인중심적 인간관으로 흐르게 되기 쉽다. 인간의 발달을 좌우하는 힘과 원천에 대해 비고츠키는 유전과 환경의 문제를 이분법적으로 분리하여 바라보는 것을 탈피하고자 했으며 유전과 환경의 결합, 혹은 자연적 발달과 문화적 발달의 합금으로 인간의 발달을 설명하였다. 문화역사적 인간발달이론 전체를 관통하는 인간관은 다음의 한 문장을 통해 잘 드러난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며, 사회와의 상호작용 없이 혼자 힘으로는 인류 전체의 체계적 발달의 결과로 발달해 온 특성과 특질을 절대 발달시킬 수 없다.” (성장과 분화, [4-59])

 

  첫째, 인간의 본질은 무엇보다도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둘째,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은 인간이 사회적 접촉과 상호작용을 통해 발달하고 변화하는 존재라는 더 중요한 인간적 특성으로 연결된다. , 인간은 발달지향적 존재이다. 발달을 통해 인간은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획득해나간다. 이를 비고츠키는 고등정신기능 내면화를 통한 인격 형성 과정으로 구체화하여 설명하였다. 비고츠키는 각 연령기의 어린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그 자체로 다른 유기체(성장과 분화, 291)라는 점을 강조한다. “특정 발달 단계의 어린이는, 어른과 동일한 관계들이 축소된 형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이한 관계들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어른들과 다르다고 비고츠키는 표현한다(같은 책, 291). 셋째, 개별 인간 하나하나는 그 자체로서 역사적 단위이며 서로서로의 발달에 있어서 환경으로 작동한다. 고등정신기능의 기원은 사회적인 것으로서 기나긴 역사적 과정을 통해 형성된 인간 보편의 특성과 특질이다. 개체발생과정에서 각 인간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문화적 형태들 즉 고등정신기능을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한다. 따라서 인류 보편의 문화적 행동 형태, 고차적 심리기능들을 내면화한 각 개인은 완전한 개별적 존재로만 환원될 수 없는, 그 자체 내에 인류가 역사적으로 형성해온 문화적 행동 형태들을 응축된 역사적 단위이다. 넷째,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재생산과 적응을 넘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존재라는 것에 있다. 비고츠키에 따르면 창조성은 모든 인간이 발달과정에서 획득할 수 있는 인간의 본질적 자질이다. 만일 창조성이 인간의 본질적 자질이 아니라면 무수히 만들어진 창조물들과 인간 역사에서 목도하는 변화들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나아가 인간은 창조적 활동을 통해 미래지향적 존재가 될 수 있다. 미래를 창조하고 그럼으로써 스스로의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미래 지향적 존재로 인간을 만드는 것은 바로 인간의 창조적 활동이다(상상과 창조, 21~22). 상상은 모든 창의적 활동의 토대로서, 문화적 삶의 모든 측면을 담당하는 중요한 구성 요소 이며 예술적, 과학적, 기술적 창조를 모두 가능하게 만든다.

 

뇌의 활동이 단순히 기존 경험을 보존하는 것으로 제한된다면 인간은 주로 친숙하고 안정적인 환경 조건에 적응하는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새로운 심상이나 행위를 창조해 내는 유형의 인간 활동은 모두 창조적 혹은 종합적 행동의 사례이다.” (상상과 창조, 21)

 

인간은 자신의 발달의 원천인 환경을 창조적 활동을 통해 안정적으로 혹은 획기적으로 발달시킨다.” (상상과 창조, 26)

 

  이처럼 상상과 창조는 자유롭고 비판적인 인간의 본질적 자질로서 삶의 주체성을 포기하지 않고 불합리한 사회 속에서 공정과 정의를 당당히 요구하는 그 누구나가 겸비하는 특성이다. 그리고 이는 과학적 개념과 일상적 개념의 끊임없는 협력과 혁신을 통해서만 길러질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문화화이며 교육은 문화화의 과정이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문화화를 통해 문화를 창조하고 사회 변화를 이끄는데 참여하게 되는 문화역사적 주체이다.

  비고츠키는 생물학적 존재가 문화역사적 주체로 형성되는 것은 자연발생적이고 비의식적인 과정만으로는 결코 온전할 수 없으며 인위적 과정이 필수적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특정한 고등정신기능들은 학교에서의 교수-학습 과정을 통해 더욱 고차화된다. 청소년기에 그 문턱에 들어서기 시작하는 개념적 사고의 경우 학교에서의 교수-학습을 통한 과학적 개념과 일상적 개념의 상호침투를 진정한 개념 형성을 위한 필수적 과정으로 강조하였다. 이렇게, 생물학적 개체로서 태어난 인간이 문화역사적 주체로 도약해가는 과정에서 중대한 역할을 하는 사회적 접촉은 비자연발생적이고 인위적인 과정즉 체계적 학습이다. 결국 교육은 인간의 존재적 본질을 실현해나가는 것이며 문화역사적 주체 형성의 핵심 기제라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문화역사적 주체 형성을 지향하는 교육에서 관계와 상호작용의 본질은 협력이다. 인간은 협력적 관계 속에서 발달하는 존재이다. ‘아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학습을 통해 기쁨을 느끼는 자기 형성적 존재이다. 이러한 비고츠키 이론에 따르면 발달은 고통스런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론적 본질의 실현 과정이며 학습은 타율적이고 강제적인 외적 강압이 아닌 자기실현을 위한 의식적이고 필연적인 과정이다.

 

비고츠키의 생각은 발달을 모방과 강화의 결과로서 외부적인 근원을 그대로 따르거나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전통적 행동주의와 사회 학습 견해들과는 매우 다르다. 그 대신에, 비고츠키는 어린이들이 의미있는 문화적 활동들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협동하면서 내면적인 정신 과정들을 만들어가는 데 기여하는, 발달에 있어서 능동적인 존재라고 보았다. (Laura E. Berk & Adam Winsler, 홍용희 역 ; 어린이들의 학습에 비계설정).

 

  요컨대, 모든 인간은 문화역사적 주체로 나아갈 잠재적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며 발달 지향적존재이자 학습 지향적존재로 바라보는 것이 비고츠키 이론의 인간에 대한 기본 관점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이러한 인간관은 적극적이고 의식적인 교육관과 연결된다. 비고츠키 이론에서 부각시키고 있는 인간적 가치는 자유의지와 창조성이다. 발달의 과정은 본능 -> 습관 -> 지성 -> 의지와 창조성으로 나아가는 역동적 과정으로서 자유의지와 창조성은 개념적 사고의 형성을 기점으로 질적인 변형을 겪는다. 청소년기에 시작되는 개념적 사고 형성은 반드시 체계적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교수-학습의 과정에서 일어난다. 비고츠키에 따르면 교육이란 외적 강압에 의해 고유의 개별성을 잃어버리는 수동적 사회화 과정이 아니라 교사와의 체계적 협력을 통해 고등정신기능을 능동적으로 개인화하는 과정이다.


  비고츠키는 협력이 발달의 핵심기제임을 입증함으로써 협력의 가치가 도덕적, 윤리적인 차원을 넘어 발달이라는 차원에서 가치를 가진다는 것을 구체적 연구를 통해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 협력은 발달을 지향하는 교육의 기본원리임을 밝혀주었다. 비고츠키 이론에 따라 교육은 문화역사적 주체 형성을 위한 체계적 협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비고츠키에 따르면 사회적 관계에서의 접촉을 통해 인간은 새로운 사고양식을 획득하며 개념적 사고를 통해 세계를 체계적으로 인식하는 주체가 되어 간다. 또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토대로 한 인간의 발달과정에서 핵심적인 질적 변화의 방향을 수동적 존재에서 능동적인 주체로 나아간다는 사실에서 찾았다. 또한 세계를 지각하는 존재에서 능동적으로 인식하는 주체로의 변화가 바로 인간의 발달이다. 따라서 전면적으로 발달한다는 것에 포함되어야 할 핵심적 의미는 자유의지를 지닌 능동적 주체이며 이를 위해 세계와 자신에 대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인식역량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상호작용능력과 변증법적 관계를 이루는데 상호작용 능력을 전제로 고차적 역량의 형성이 가능하며 반대로 고차적 역량을 통해 고차적 상호작용이 가능해진다.

 

4) 체계적이고 현대적인 전인교육론 구성의 방향과 원리 제공

 

  “전인은 매우 오래 전부터 존재해온 교육적 지향으로서 전인(全人)이라 함은 지(), (), () 혹은 지(), (), ()를 모두 갖춘 사람을 의미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것을 두루 잘 하는 다기능적 인간이라는 의미로 쓰이는데, 속칭 팔방미인과 동의어로 여겨지기도 한다.

 

전인교육을 통하여 배출될 것으로 기대되는 全人 (whole person)은 모든 것을 갖춘, 온전한,

원만한 인간이며, 여기에 비하여 현재의 교육은 그 모든 것 중에서 어느 특정한 부분 또는 측면만을 편파적으로 발달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에서 전인교육은 全人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부분을, 그 중의 어느 것에 편파적으로 치중함이 없이, 골고루 조화롭게 발달시키는 교육을 뜻하는 것으로 된다.(이홍우, 전인교육론, 1996, 敎育原理硏究 , 5권 제1)

 

  이홍우의 논의대로 전인을 구성하는 모든 부분은 흔히 지정의(혹은 지덕체)의 세 부분으로 나뉘어지며, 전인교육에 대한 흔한 접근법은 가법적 접근으로서 전인교육의 결과로 나타나리라고 추상해낸 요소들을 개념상의 구분이 아닌 사실상의 구분으로 받아들여 전인교육을 이 각각의 요소들을 상이한 교육을 통해 획득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에서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加法的 接近의 문제점은 한 마디로 抽象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달리 말하여, 그것은 抽象抽象으로서 파악하지 않는 것이다. 全人의 요소를 ··로 파악하건 아니면 다섯 가지 학교학습의 성과로 파악하건 간에,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현재 있는 그대로의 全人이나 全人敎育에서 추상된 상이한 측면을 가리키며, 그런 만큼 그것들은 서로 사실상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개념상 구분될 뿐이다. (여기서 측면은 부분과 대조되는 뜻을 나타낸다.) (이홍우, 전인교육론, 1996, 敎育原理硏究 , 5권 제1)

 

그럼에도 불구하고 加法的 接近은 개념상의 구분을 사실상의 분리로 바꾸어서 그 요소들이 각각 교육의 상이한 부분을 통하여 획득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加法的 接近이 추상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홍우, 전인교육론, 1996, 敎育原理硏究 , 5권 제1)

 

  즉 이홍우가 보기에 전인교육은 전인 구성한다고 여겨지는 각각의 요소들을 부분으로 나누어 각 부분을 형성하기 위한 각각의 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올바른 접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전인에 대한 철학적 개념의 오류가 교육적 접근에도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는 문제제기이다. 이홍우에 따르면 지, , 체 등의 요소는 개념으로 구분해낸 것일 뿐이지 총체로서의 인간에 있어서 이 요소들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결합되어 있으며 이 각각의 부분들의 총합이 아닌 총체적인 존재를 구성하는 각 측면으로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홍우는 지식교육을 하는 동안에도 덕과 체의 요소는 함께 있는 것이며 지식교육은 이상적이든 그에 미치지 못하든 전인교육의 성격을 지닌다고 주장한다. 이홍우의 표현을 따르자면 교육에서의 가법적접근은 여전히 비일비재하다. 사실 사회적 요구나 제기되는 문제에 대응하여 제출되는 정책적 처방은 거의 이러한 가법적 접근을 따른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 예컨대, 최근 몇 년간 한국에서는 학교폭력, 존비속살해 등 부정적이고 병리적인 상황이 빈발함에 따라 인성교육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으며 정부는 20151월에 인성교육진흥법을 제정하였고 법에서 정한 바에 따라 교육부는 같은 해 12인성교육 5개년 종합계획을 발표함으로써 인성교육이 제도화되기에 이르렀다. 나아가 인성교육과 교과교육을 대립적이고 적대적 관계로 설정하고 있으나 입시로 인해 어그러져 있는 교과교육의 문제를 인성교육이라는 별도 영역의 도입으로 해결이 가능한지는 의문의 여지가 남는다. 이는 창의성 함양을 위해 창의성 교육이라는 별도의 영역을 설정하여 도입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의 접근법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수도 없이 인구에 회자되고 한 번도 교육적 이상의 자리를 내어준 적이 없었음에도 전인이 무엇인지 개념 규정조차 모호하며 나아가 전인적 발달을 실현하는 교육적 방법도 체계화되지 않은 것이 전인교육의 이론적, 실천적 상태이다. 이홍우의 문제제기는 전인을 총체성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며 지식교육이 올바로 전개된다면 굳이 별도의 교육영역과 평가영역을 설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수용할 지점이 있다. 다만, 주요 교육형태가 교과를 중심으로 한 전통적 지식교육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고 있으며 전인이 개인적 도야를 중심으로 한 개념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한편, 마르크스주의 교육론에서는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전인교육론과는 다소 결을 달리 하지만 전면적 인간발달이 전인교육과 비슷한 위상을 갖는다.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전면적 인간발달은 개인의 측면에서는 소외를 극복한 인간의 존재적 실현인 동시에 사회 역사적 측면에서는 변혁의 조건이자 목적이다. 마르크스는 전면적인 인간발달을 위해서는 첫째,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계급폐지를 통한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둘째,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결합과 협력적 생산 활동의 전개, 셋째, 제반의 사회적 관계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교육을 통해 새로운 역사적 주체를 의식적이고 사회적으로 형성해 나갈 수 있으며 학교가 그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았다. 또한 그는 자본주의적 분업과 파편화된 발달을 극복하고 생각과 활동의 결합, 정신적 발달과 육체적 발달의 통일을 지향하는 교육이 되어야 전면적인 인간발달이 가능하다고 여겼다(천보선, 2014, “애플과 비고츠키”, 진보교육 54).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전면적 인간발달은 소외를 극복한 인간의 존재적 실현이면서 동시에 사회변혁의 조건이자 목적이다. 한편으로는 교육이 지닌 계급적 성격을 강조하면서 교육에 대한 사회적 개입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비고츠키는 맑스의 사회적 관계와 교류가 개별 인간이 발달하는 토대라는 것을 바탕으로 발달시기에 따라 발달을 이끄는 유의미한 활동들을 제시하였을 뿐 아니라 학교에서의 교사와 학생의 체계적 협력과정을 바탕으로 과학적 개념과 일상적 개념의 상호 침투와 결합과정을 통해 개념적 사고가 형성된다고 규명함으로써 생산노동과 학습의 결합을 통한 인간의 전면적 발달이라는 맑스 교육론의 기본 취지를 발달교육학의 차원에서 풀어냈다.

  비고츠키 이론에 따르면 발달의 원천은 사회적 관계이며 올바른 발달을 위해서는 관계가 협력적어야 한다. 적대적 관계 속에서는 발달을 이끄는 교수-학습은커녕 성립 자체를 불가능하다. 이는 기능 발달의 저하로 연결될 수 있다. 최근 교육문제를 넘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사건들은 가치와 교육과정에서 별도의 인성함양 교육이 없거나 부족해서 발생한다기 보다는 입시와 성적 중심 교육패러다임이 관계의 적대성을 강화하며 교과교육이 입시-진도교육의 테두리를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단편적이지만 위의 사례로부터 21세기 한국교육 역시 전인교육에 대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를 갖춘 논의가 협소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비고츠키 이론에서 인격은 고등정신기능들의 총체이며 이 인격은 처음부터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과정에서 변화하고 발달한다. 비고츠키의 인간발달에 대한 총체적, 인과역동적, 발생적 관점과 도구와 기호, 언어의 매개적 역할, 고등정신기능, 개념적 사고와 주체성의 발달과정, 근접발달영역 창출 등의 개념들은 우선 교육현상과 실천을 이해하는 주요한 틀과 기준을 제공한다. 이러한 관점과 개념들은 교육현상에 대한 이해로부터 한걸음 더 나아가 전인교육론의 구성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천보선(2013)은 지금까지 지향적 개념에 머물러왔던 전면적 발달이 비고츠키의 연구와 이론을 통해 비로소 과학적 분석의 개념이자 실천의 방법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비고츠키의 이론은 예술교육, 도덕교육 영역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배희철(2011)에 따르면, 전면적 발달은 학습자의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인지적 측면을 발달시키자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도덕성, 심미성, 창의성의 발달도 종합해야 한다. 하지만 비고츠키의 지적은 발달 과정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이 순차적으로 자발적 주의력, 문화적 기억력, 개념 형성 능력, 의지 집중·지속 능력이다.

  

  비고츠키의 선도활동 개념을 통해 유초중등 단계의 전인교육 방법론을 각 연령 시기별로 구체화할 수 있다. 비고츠키에 따르면 질적으로 구분되는 각 연령기에서 상대적으로 중심적이고 집중적으로 발달하는 기능이 있으며 이는 발달단계별 선도활동 속에서 총체적으로 발달한다. 0~3세의 유아 전기에는 정서적 의사소통과 대상중심적 활동, 학령 전 유아기의 어린이는 놀이, 학령기 어린이는 학교에서의 학습활동, 청소년기에는 동료와의 상호작용을 제시하였다. 이와 같은 선도활동에 입각하여 교육과정을 구성하고 실제의 교수학습과정에서 실현한다면 전인교육론의 추상성과 관념성의 극복도 어렵지 않다.

  

  전면적으로 발달된 인간에 대한 흔한 오해는 다기능적이라는 이미지에서 비롯되며 전인교육은 인성교육’ ‘품성교육등으로 지적인 것과 대립되는 이미지를 갖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비고츠키에 따르면 여러 기능을 능숙히 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 기능들을 학교 교육과정에 대응적으로 도입하여 하나하나 직접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역량의 형성에 있다. 또한 학교 교육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 여러 고차적 기능들이 이후 사회적 문화적 과제들에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대응하고 창조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토대로서 작용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비고츠키의 이론에 근거하면, ‘융합이 대세라고 해서 융합을 초등 어린이에게 직접적으로 가르치고 창의성이 중요하다고 해서 창의성을 개발하기 위한 방법을 직접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효과적이지도 않다. 변증법적으로 전개되는 인간발달의 과정과 조응하지 않는다. 미래의 사회적 의식은 현재에는 동료와의 협력과 학생자치 활동을 통한 민주적 의사소통의 실천에 그 맹아가 있으며 미래의 변증법적 사고는 청소년기의 개념적 사고의 형성에서 그 가능성을 배태하게 되는 것이다. 복합체가 진개념의 과거의 모습이고 글말의 발달은 입말의 발달을 전제로 하듯이 미래의 신형성은 현재의 어린에게는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것임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비고츠키는 사회적 관계와 교류가 개별 인간이 발달하는 토대라는 마르크스의 견해를 출발점으로 삼아 발달시기에 따라 발달을 이끄는 유의미한 활동들을 제시하였다. 비고츠키는 발달의 시기 시기마다 인격은 총체적으로 변화하지만 각 발달단계마다 이러한 총체적 변화의 문을 여는 열쇠의 구실을 하는 '중심기능'이 있고 발달의 다음 영역으로 이끄는 '선도활동'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비고츠키 이론에 근거하여 인간의 전면적 발달의 한 축으로서의 노동을 발달의 과정에 맞게 재해석하여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생산노동과 학습의 결합을 통한 인간의 전면적 발달이라는 마르크스주의 교육론의 지향은 비고츠키의 이론을 통한 재정립이 가능하다. “과학적 개념과 일상적 개념의 결합을 통해 사고가 고양될 수 있고 발달을 이끄는 선도적 활동과 핵심기능이 발달시기별로 다르다는 사실을 통해 전면적 발달은 연령과 상관없이 노동과 학습을 병렬적으로 결합하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발달시기의 특수성을 고려한 교육과정을 통해 가능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어린이 청소년 시기의 발달을 토대로 향후 협업적 생산노동과 민주적 정치문화공동체 속에서 보다 고차적인 상호교류를 할 수 있으며 고차적 상호교류와 창조성을 발휘하는 주체 간의 사회적 관계는 새로운 사회의 전망을 밝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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