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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60(2016.05.09. 발간)

 

[특집] 2016년 한국사회 전망과 교육노동운동의 방향

20대 총선 평가와 진보 정치의 과제

 

진보교육연구소 정세분석팀

 

 

 

들어가며

 

많은 사람들의 예측과 달리, 20대 총선의 결과 여소야대 국면이 형성되었다. 반박근혜-정권심판론의 흐름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안철수의 탈당으로 야권이 분열되고 야당의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모습이 반복되었기에 여당의 손쉬운 승리가 점쳐졌다. 실제로 여론조사들도 그런 예상을 내놓았다.

하지만 총선의 결과는 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뜻밖의 결과라, 박근혜의 통치에 분노하던 많은 사람들은 더 큰 기쁨을 느꼈다. 박근혜 정권의 일방적인 횡포와 퇴행적이고 반동적인 통치에 제동이 걸릴 것을 기대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쉰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만약 예상대로 여대야소 국면이 만들어졌다면, 사람들이 느끼는 절망감과 무력감이 매우 컸을 것이며, 이후 박근혜 정권과 수구세력들의 퇴행적이고 반동적인 통치 방식도 더욱 탄력을 받았을 것이다.

선거는 행정권력이나 의회권력의 세력관계의 변화라는 실제적 효과 이외에도 사람들의 심리적 상태의 변화를 일으키는 상징적 효과를 생산한다. 선거는 대리자를 선출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사회구성원들이 서로의 내밀한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내가 지지하는 흐름이 소수라는 것이 확인되면 사람들은 위축되고 힘이 빠진다. 반대로 내가 지지하는 흐름이 다수라는 것이 확인되면 사람들은 자신감을 얻게 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주는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감이 배가되는 느낌을 갖게 된다.

 

우리는 이번 선거의 결과를 통해 무엇을 알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사회의 현실로부터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집권세력의 통치 방식에 대한 거부감 매우 강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야당세력에 대한 지지의 구체적인 동력이 무엇인지는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 여소가 반박근혜 정서의 산물임은 분명하지만 야대의 원인을 야당 자체의 정체성이나 지향성에서 찾을 수 없다. 어느 선거보다 여야 모두 내부갈등으로 지리멸렬하였으며, 정책선거와는 아주 거리가 멀었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캠프의 공세적인 복지 공약과 이것이 확산되는 과정을 상기해보라)

야대의 전반적인 위치는 현상적으로 보면 오른쪽으로 이동한 것처럼 보인다. 3당으로 부상한 국민의당은 자유주의 야당보다 오른쪽 포지션에 있다고 스스로 주장하였다. 민주세력보다는 중도보수, 합리적 보수의 이미지를 내세우려 하였다. 더민주도 김종인이라는 보수 인사를 대표로 내세우고 운동권 정당에서의 탈피 등을 주장할 정도로 선거전략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였다. 선거 과정에서 더민주는 박근혜 정권심판론, 국민의당은 양당심판론 등 네거티브한 주장을 내세웠을 뿐 자신들의 새로운 전망과 대안을 담은 정책이나 공약을 의제화시키지 못했다. 진보정당의 대표주자로 볼 수 있는 정의당도 야권연대 이외에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였다.

이렇듯 여소야대를 통해 밖으로 드러난 표심은 왼쪽보다는 오른쪽을 지향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현상적인 분석일 뿐이다. 국민의당의 약진은 반새누리-비민주의 반사이익일 뿐이지, 그들의 보수적인 포지션에서 한국사회의 새로운 미래를 보았기 때문이 아니다. 더민주가 지역구에서 압승한 것은 김종인라는 보수적인 인사를 내세웠기 때문이 아니다. 박근혜와 새누리를 심판하겠다는 강렬한 열망이 작용한 것이다. ‘여소야대는 작금의 사회현실과 통치세력에 대한 분노와 반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지만, 그것이 앞으로 어디로 향해야할 지에 대한 대중의 합의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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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 번 총선에서 야당에 압도적 지지를 보내면서 여소야대의 반란을 주도한 20~40대가 중도적 보수를 선택했다고 볼 수 없다. 이 번 총선에서 야당을 지지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반새누리 이외에 별다른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 대부분이 야당에서 미래의 전망을 보면서 높은 충성심을 가지고 지지한 것이 아니다. 신뢰할만한 대안 세력이 없는 것이다. 임시적인 선택일 뿐이다.

 

매우 높은 유동성이 현 정치지형의 본질적 특징이다. 특히 20~40대의 경우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기존의 낡은 정치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치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해왔던 지역주의 정서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물론 반공-안보주의, 성장우선주의 등 보수 편향적 이데올로기로부터로도 자유롭다. 또한 그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교육수준과 합리적 판단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1980년대의 반독재 민주화처럼 이들을 묶어주고 동질감을 부여해줄 수 있는 공동의 지향성이나, 역사적 경험 그리고 가치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존의 굴레에서는 벗어나있지만 새로운 방향은 정립되어 있지 않은 높은 유동성이 이들의 특징이다. 특히 세계자본주의와 연동되어 있는 한국자본주의 구조적 위기의 국면은 이 유동성의 진폭을 더욱 크게 만들 것이다. (미 대선에서의 샌더스와 트럼프의 열풍 속에서 유동적인 한국정치의 미래의 모습을 예시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바로 여기가 우리의 고민지점이다. 바로 여기가 우리가 뛰어야할 로두스이다. 무기력하게 보수세력과 자유주의세력의 게임을 넉 놓고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유동적인 정치지형에서 대중의 흐름을 진보 쪽으로 향하도록 만드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진보정치를 재구성하는 것.

 

2. 87민주 항쟁이후 한국사회의 정치 지형

 

19876월 민주항쟁으로 군사독재가 붕괴한 이후, 한국의 정치역사상 최초로 여소야대 국면이 출현하였다. 하지만 19903당 합당이 이루어지면서 한국의 제도정치는 보수정당 대 자유주의 정당의 양당 체제로 고착화되기 시작하였다.

양당체제는 지역주의와 정치적 성향이(계급적 이해보다는) 결합된 산물이었다. 보수정당은 3당 합당으로 TKPK가 결합하면서 형성된 영남 패권적 지역주의와 상층 기득권 세력 그리고 성장주의, 안보주의, 권위주의 등에 정서적 친근감을 느끼는 정치적 보수층(주로 노장년층 중심)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반면에 자유주의 정당은 지역차별과 광주민주항쟁의 기억을 공유하는 호남지역주의에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선호하는 정치적 리버벌 및 진보층(주로 청장년 층 중심)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상층 기득권 세력 중에 다수가 보수 정당 지지 세력인 것은 확실하지만, 과연 경제적 중하위 계층인 이른바 노동자 서민층 중에 다수가 자유주의 정당의 지지 세력인가는 모호하다. 즉 한국정치에서 경제적 계급 위치와 정치적 성향은 커다란 상관관계를 지니고 있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상류층만 계급투표에 충실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실증적인 자료 부족으로 정확한 논의에 한계가 있다.)

양당은 대략 40% 정도의 고정적 지지층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며, 20%정도가 유동층을 형성하면서 매 번 선거에서 역동성을 형성하여 왔다. 진보정치 지지 세력은 대략 총유권자의 10% 정도이다. 이들을 별도의 독자세력으로 취급하지 않고 자유주의 지지 세력에 포함시킨 것은 이들이 자신의 독자성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총선에서의 비례대표 투표일 뿐, 대선이나 총선의 지역구 선거에서는 후보가 없거나, 있다할지라도 사표방지 심리 때문에 대다수가 자유주의 후보를 지지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직 독자세력으로 위상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3. 20대 총선의 결과

 

20대 총선의 결과 여소야대 국면이 출현하였다.

 

 

새누리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자유선진당

무소속

19대총선

152

127

13

5

3

 

새누리

더민주

국민의당

정의당

무소속

 

20대총선

122

123

38

6

11

 

 

위의 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단순히 야당이 과반을 약간 넘은 것이 아니라, 무소속까지 여야로 나누어 보면 129:171의 구도가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야당이 분열되었음도 불구하고 압도적으로 승리한 것이다. 19대 총선에서는 보수정당이 160여석이었으며, 18대에는 보수정당을 모두 합하면 거의 200석에 육박하였다.

20대 총선의 결과는 19903당 합당 이후 자유주의 정당이 승리한 유일한 총선인 2004년의 17대 총선 결과와 유사하다. 당시 자유주의 정당과 민노당을 합친 의석수 171석이었다. 하지만 당시 총선의 결과는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과 한나라당의 차떼기당이라는 이미지가 결합되면서 나타난 일시적인 현상이었으며, 이후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연전연승하면서 세력구도는 곧바로 역전되었다. 19903당 이후, 영남지역주의와 기득권 세력이 결합한 보수세력이 항상 수적으로 우위를 점하여왔다.

 

지역구 국회의원 정당별 득표현황

 

새누리당

더민주

국민의당

정의당

무소속

득표율

38.3

37.0

14.9

1.6

7.0

 

비례대표 정당별 득표현황

새누리당

더민주

국민의당

정의당

7,960,272

(33.50)

6,069,744

(25.54)

6,355,572

(26.74)

1,719,891

(7.23)

 

20대 총선에서 지역구 정당별 득표율을 보면, 19대와 18대에는 보수정당이 45~55%의 득표를 하였지만 20대 총선에서는 38.3%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37.9%(자민련을 합하면 보수정당 득표율이 40%기 때문에 20대 최악의 결과라 볼 수 있다)를 득표한 이후 최악의 성적을 거두었다. 비례대표의 결과는 더욱 나빴다. 19대는 새누리당이 42.8%, 18대에는 보수정당을 모두 합하면 60%에 가까웠다. 최악의 성적을 거둔 17대에도 35.8(자민련을 합하면 38.6%)였음에 반하여 20대 총선에서는 33.5%에 머물렀다.

 

그렇다면 이 번 총선에서는 일시적이고 이례적인 현상이 아니라 보수의 수적 우위이라는 기본 구도가 깨지기 시작한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17대 총선과 다른 분명한 지점들이 있다.

이 번 총선에서는 두 가지 점에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우선 보수정당 역사상 최대의 패배였다. 이 번 총선과 비슷한 결과를 보였던 17대 총선은 보수정당의 악재만 있었다. 대통령 탄핵역풍과 차떼기 당이라는 오명이 그것이다. 반면에 자유주의 정당은 부당한 탄압을 받는 약자로서의 이미지만 존재하였다. 따라서 당시의 자유주의 정당의 압승은 위에서 이미 언급하였듯이 당시의 특수한 정세에 기인하는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다. 반면에 이 번 선거는 정부여당 못지않게 야당의 악재도 많았다. 누적된 무능함과 추악한 내분 그리고 분당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정당이 일방적으로 패배하였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패배다. 보수위위의 수적 구도에 변화와 균열이 발생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둘째로, 17대 총선과 다르게 지역구도가 붕괴되었다. 17대 총선에서는 자유주의 정당의 압승에도 불구하고 지역구도는 굳건하였다. 자유주의 정당은 탄핵역풍으로 수도권을 장악하였고,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통해 충청 민심을 획득하였다. 그러나 영남 지역은 한나라당이 압승하였다. 20대 총선에서는 보수정당의 텃밭인 영남 지방에서 보수정당의 후퇴가 두드러졌으며, 호남에서도 전통적인 맹주였던 민주당이 후퇴하고 신진세력이 진출하였다.

 

4. 20대 총선의 특징

 

1) 반박근혜, 반새누리당 정서의 폭발 / 보수의 수적 우위 구도의 붕괴(?)

 

한국사회에 선거 결과는 보수 대 자유주의 세력의 수적 구도를 기본으로 하고, 당시에 형성된 정세에 따른 중간 유동층의 향방과 보수블록과 자유주의블록에 속한 사람들의 투표율에 의해 결정된다. 보수 세력에게 유리한 정세가 형성되면 중간층이 보수 쪽으로 이동하고 보수블록의 투표율은 높아지는 반면, 자유주의 블록의 투표율 낮아진다.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19903당 합당 이후 영남지역주의와 기득권 세력 그리고 보수적인 중장년층이 결합한 보수 블록이 수적으로 우세하였다. 15대 대선에서 수적 열세에 놓여 있던 자유주의 블록의 김대중이 후보가 승리한 것은 보수의 분열(이인제의 출마), 자유주의 세력과 보수세력의 연대(DJP 연합), 그리고 이회창 아들들의 병역비리라는 세 가지 특수한 상황이 결합된 산물이다. 그런 면에서 노무현의 대선승리는 매우 특이한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 정몽준과의 후보단일화를 통해 보수세력 일부를 견인한 것은 맞지만 이것을 노무현 승리의 결정적 요인으로 볼 수 없다. 김대중 집권 5년 동안 자유주의 블록이 상당히 팽창한 것, 노무현 개인이 이전의 정치인과 다르게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인 지지자들의 운동을 불러일으켰던 것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세대구성 상 보수지지 세력보다는 자유주의 지지 세력이 양적으로 우세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 등이 자유주의 블록이 박빙의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로 판단된다.

하지만 이런 지지는 오래가지 못하였다. 자유주의 세력 집권 10년에 대한 대중의 실망이 급격하게 고조되었다. 현실적인 사회개혁이 수반되지 않는 노무현의 반권위적 제스처는 자신의 무능력을 감추기 위한 위장막으로 보였으며, 안정적인 사회 관리 능력에 대한 의구심만 불러일으켰다. 결국 수적 구도보다는 자유주의세력에 대한 실망이라는 정세적 상황이 압도하는 가운데 200717대 대선과 200818대 총선이 치러지면서 보수정당이 압승하였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보수적-중간적 성향의 대중의 심리는 자유주의 세력의 통치능력에 불안감이 지배했다. 반면에 개혁적-진보적 대중들에게는 실망감이 지배적 정서였다. 불안감에 휩싸인 전자는 이를 벗어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임 반면, 후자는 움츠러들고 소극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보수 블록의 수적 우위가 점차 약화되는 흐름이 계속된 것으로 판단된다. 6.25 전쟁, 반공주의, 성장주의 신화 등의 역사적 경험을 공유한 세대들이 줄어들고 민주화 투쟁 경험 세대나 민주화 이후 세대들이 양적으로 늘어나면서 수적 구도가 역전될 수밖에 없다.

mb는 자유주의 세력을 무능세력으로 규정하면서 신자유주의로부터 고통 받던 대중들에게 성장을 통한 분배를 약속하였다. 하지만 mb 5년은 경제성장도, 분배의 개선도 없이 민주주의 후퇴만 이루어졌다. 이런 정세적 변화와 수적 구도의 변화가 맞물리면서 18대 대선에 앞서 있었던 19대 총선에서 비례 대표 득표율에서 자유주의 블록(진보세력 포함)은 보수 블록보다 근소하지만 좀 더 많은 표를 받았다.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불신감이 여전히 남아 있었고, 자유주의 블록의 잠재적 지지 세력인 젊은 유권자들을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시킬 수 있는 유인력이 없었기 때문에 젊은 세대의 투표율이 매우 낮았고 결국 전체 의석수에서는 보수세력의 근소한 승리로 귀결되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투표율이 높아지는 대선에서는 자유주의 세력의 승산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나 18대 대선은 보수 후보인 박근혜의 신승으로 끝났다. 박근혜의 승리는 보수 블록의 수적 우위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니다. 박근혜의 당선은 선거 전략에 상당히 기인한다. 박정희의 향수를 통한 성장신화를 통해 보수세력의 결집을 강화하고 복지 아젠다와 경제민주화 이미지를 선점하여 중간세력을 견인하는데 성공하였다. 반면에 자유주의 세력의 선거 전략은 매우 허술하였으며, 대선 후보에 대한 충성도도 약했다. 즉 박근혜의 승리는 낡은 보수에 대한 전통적인 지지의 결과가 아니라 기만적인 좌클릭 선거 전략의 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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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에 대한 혹시나 하는 기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실망과 분노로 변하였다.

 

반박근혜 흐름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구조적인 경제적 위기와 사회적 불평등의 확대이다. 박근혜 집권 이후 경제 위기는 더욱 심화되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단기적인 경기 부양과 자본과 부자 편들기로 일관하였다. 부동산 경기를 띄우기 위해 전월세 및 임대료 폭등을 방치하고 조장하였다. 적극적인 재정 확대나 임금인상, 복지 확대 등을 통해 유효수요를 확대하기보다는 노동에 대한 착취와 하청기업에 대한 수탈을 강화하여 대자본의 이윤을 보장하려 하였다. 청년실업과 나쁜 일자리 증가에 대해서는 무대책으로 일관하였으며, 노동개악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폭력으로 억압하였다. 대선과정에서 제시하였던 복지 공약들은 줄줄이 포기하거나 축소하였다.

그런데 현재 한국사회의 구조적 경제 위기와 사회 불평등의 심화는 한국사회의 특이한 현상이기보다는 세계적 현상의 하나로 생각해야 한다. 한국자본주의의 위기는 세계 경제의 구조적인 저성장, 디플레이션, 금융불안정성 등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와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다. 사회적 불평등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연관된 현상이다. 따라서 현재 한국사회의 위기는 단순히 통치세력의 교체로 쉽게 해결될 수 없을 만큼 구조적이고 중장기적 성격을 띠고 있다.

 

둘째로, 반동적이고 퇴행적인 통치방식을 강화하였다. 대통령을 신성불가침한 제왕적 권력으로 인식하는 시대착오적인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주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무능력과 무책임을 넘어선 반윤리적 모습의 노정, 역사교과서 국정화,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굴욕외교, 대북강경노선, 공작정치-국민감시, 테러방지법 등 반동적이고 퇴행적인 통치 방식을 강화하였다. 모든 책임을 국회와 야당 및 노동자 등에게 전가하고 경제위기와 안보위기를 내세워 모든 사회적 문제제기를 봉쇄하려는 독선적이고 후안무치한 언행을 반복하였다. 이런 퇴행적-반동적 통치는 단순히 박근혜 개인이나 측근세력의 특수성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구조적 위기의 시대에 지배 세력들이 점증하는 피지배계층의 저항을 봉쇄하고 자신들의 지배와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려는 통치 전략의 성격이 분명이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이런 행태들은 결국 총선을 앞두고 친박 친위세력들의 횡포와 독선으로 나타났으며, 새누리당은 이런 횡포와 독선을 전혀 통제할 수 없는 무능력을 보이며 공천파동을 격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와 친박세력 그리고 새누리당 전체가 국민의 안위에는 어떤 관심도 없고 오로지 자신들의 권력투쟁에만 몰두하고 있는 본모습이 적나라하게 노출되었다.

 

사회-경제적 요인, 정치적-통치적 요인 그리고 선거전략적 요인 등 세 가지 요인이 결합되면서 매우 강력한 반박근혜-반새누리 정서가 형성되었다. 사실 새누리 당은 박근혜 대리자에 불과하였기 때문에 반새누리는 반박근혜의 하위범주로 보아야 한다. 정부 여당의 문제 못지않게, 자유주의 정치세력도 심각한 무능과 분열을 노출하였지만, 반박근혜 흐름이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불신을 압도하였다.

 

< 20대총선 수도권 정당 득표율>

 

새누리

더민주

국민의당

정의당

지역구

37.8

42.0

15.4

1.7

비례

31.8

26.3

27.7

8.1

 

이런 반박근혜 정서의 강력함은 교차투표라는 전략적 투표로 드러났다. 특히 여야후보의 격전지인 수도권에서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지역구 투표에서는 당선 가능성이 높은 더민주 후보를 밀어주고 비례 대표 투표는 자기가 선호하는 정당에 투표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결국 세대교체에 의해 자유주의 지지층이 넓어지는 가운데, 강력한 반박근혜 흐름과 전략적 교차투표가 맞물려 야권분열에도 불구하고 야권이 압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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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대별 투표 경향의 강화와 지역주의 약화

 

20대 총선에서의 보수정당의 패배의 원인을 반박근혜 정서의 강력함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20대 총선의 근저에는 매우 근본적인 변화의 징후들이 포착된다. 그것은 한국 정치의 지배적인 규정 요인이었던 지역주의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젊은 유권자층의 급격한 성장의 존재이다.

반박근혜 정서의 표출은 지역이나 세대에 관계없이 전국적-전세대적인 현상으로 나타났지만 이 현상을 주도한 것은 20~40대의 젊은 유권자들이며, 20~40대의 투표율이 상대적으로 높아지면서, 보수정당의 패배가 현실화되었다.

 

<19대 총선과 20대 총선의 세대별 투표율 비교> (단위 %)

 

20

30

40

50

60대 이상

평균

19

41.5

45.5

52.6

62.4

68.6

54.2

20

49.4

49.5

53.4

65.0

70.6

58.0

비교

+7.9 p

+4.0 p

+0.8 p

+2.6 p

+2.0 p

+3.8 p

(19대는 선관위 표본조사에 의한 공식 집계 자료, 20대는 방송사 출구조사 자료)

 

박근혜 정권에 대한 심판의지가 높아지면서 투표율이 지난 총선보다 전반적으로 상승하였으며 특히 야성이 강한 20~30대의 투표율의 상승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세대별 지지 성향 : 비례 대표 정당투표> (단위 %)

 

20

30

40

50

60대 이상

총계

19

새누리

27.4

23.7

33.0

51.5

61.8

42.8

민주당+통진

59.8

67.2

58.2

40.0

?

46,7

20

새누리

16.5

14.9

20.7

39.9

59.3

33.5

더민주+국민+정의

76.0

79.5

72.9

53.7

35,2

59.5

(19, 20대 총선 모두 출구조사에 의한 결과)

 

우선 위의 표를 보면 총계가 이상해보일 수 있다. 50대 이상 특히 60대 이상의 인구가 월등히 많고 이들의 투표율이 높기 때문에 세대별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매우 낮지만 새누리당의 총계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오는 것이다.

20대 총선의 세대별 투표에서 가장 눈에 띠는 것은 20~40대의 압도적 야당 지지율이다. 이들은 19대 총선에서도 야권지지 성향이 강하였지만 20대 총선에서는 야당에 압도적 몰표를 몰아주었다. 이는 20~40 세대들이 현재 경제적 위기로부터 가장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 반면(취업문제, 불안정 노동, 전월세 폭등 등),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은 민감하고, 지역주의나 안보이슈, 성장신화와 같은 보수적인 이데올로기 공세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들은 대다수가 높은 학력을 지니고 있으며 비이성적인 감정이나 이데올로기적 선동에 휘말려들지 않고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판단할 수 있는 개인주의적 합리성이 강한 세대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절박한 삶의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면서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통치와 언행을 반복하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하여 상당한 거부감과 혐오감을 느꼈을 것이다. 더 이상 낡은 꼴통 보수 즉 수구적 성향의 보수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50대의 변화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50대의 경우 19대 총선에 비해 새누리당 지지는 12% 감소하고 야당 지지는 13.7% 상승하여 여야의 지지 구도가 역전되었다. 이는 박근혜 정권의 실정에 기인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세대 구성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19대 총선에서 야당을 58%나 지지했던 40대 중에 약 4/1020대 총선에서는 50대가 되어 투표에 임하게 되었다. 새롭게 진입한 50대 초반들은 대개 1980년대에 20대 초반을 보내면서 광주민주화 운동과 6월민주항쟁 등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이다. 다음 선거에서는 40대에서 50대로 진입하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며 이에 따라 전통적인 20~40 50~60의 대립구도가 이미 바뀌기 시작한 20~50 60 이상의 대립구도로 더욱 확실하게 변할 것이다.

결국 20대 총선의 여소야대는 앞에서 이끈 젊은 20~40대와 뒤에서 밀어준 중년의 50대의 합작품이다.

 

그런데, 이런 정치성향에 따른 세대별 투표가 지역 구도를 허물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난 2012년 대선 당시에도 세대 구도가 지역 구도를 능가했다. 전국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2040세대는 문재인, 5060세대는 박근혜를 지지했다. 그러나 호남과 대구경북 등 두 곳은 예외였다. 2012년 당시 출구조사에 따르면, 호남은 2040세대(90~95%)는 물론 50(90%)60(85%)도 문재인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반면 에 대구경북은 50(90%), 60(95%)는 물론 2040세대에서도 70%가 박근혜를 지지했다. 그러나 이번 총선 결과는 호남과 대구·경북에서도 세대균열이 발생했다. 호남에서 2040세대는 더민주를 지지했고, 5060세대는 국민의당을 지지했다. 대구·경북에서도 5060세대는 새누리당을 지지했지만 2040세대는 더민주와 무소속을 지지했다. 그 결과 20대 총선에서 영남 득표율(비례대표 정당득표율기준)은 새누리 45.51%, 더민주 20.3%, 국민의당 17.4, 정의당 6.2%로 보수정당 득표율이 3당 합당 이후 최초로 50% 아래로 떨어졌다. 또한 대구와 부산, 울산 그리고 경남지역에서 야당과 무소속 국회의원들이 대거 당선되었다. 특히 PK(울산포함) 지역에서 지역주의 약화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또한 호남 지역에서도 정통적인 지지 정당인 더민주당이 대패하고 국민의당이 압승하였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국민의당 지지세력은 호남토호세력과 50대 이상의 장년층과 노인층이 많을 것으로 판단된다. 호남 지역주의 내에서도 보수적 성향과 진보적 성향의 분열이 시작되었다고 판단된다.

하여튼 한국 정치에서 영호남 지역주의의 퇴조는 매우 중요한 현상이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지역주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오래전의 일이지만 이것이 가시적인 흐름으로 확인됨으로써 탈지역주의의 경향은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한국 정치 지형 전반에 커다란 변형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3) 중도보수와 약진(?)과 진보의 침체

 

이 번 선거는 반박근혜 정서가 중심이 되고 비민주 정서가 부차적으로 결합된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박근혜 정권의 실정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민주당은 계파 간 분열과 대립을 계속 보이면서 박근혜 정권의 실정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박근혜 정권만큼은 아니지만 민주당에 대한 불신과 혐오도 상당 정도 축적되었다.

 

<자유주의 정당에서의 비례대표 정당 득표 비율>

 

 

20

30

40

50

60대 이상

평균

민주당

19대총선

46.7

46.8

42.6

33.5

27.0

36.45

더민주

20대총선

41.6

39.5

30.8

19.6

11.7

25.54

국민의당

20대총선

23(?)

28

30

28

21.4

26.74

(19, 20대 모두 출구조사)

 

이런 상황에서 예상외로 국민의당이 약진하는 결과가 나왔다. 특히 비례 대표에서 더 민주당보다 더 많은 득표를 하였다. 새누리당의 이탈표의 대부분은 비례대표 정당투표의 경우 중도보수를 표방한 국민의 당으로 갔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민주당 이탈표도 정의당이 통진당보다 3% 적게 득표한 것을 감안하면 왼쪽으로 옮겨간 것이 아니라 대부분이 국민의당으로 갔을 것이다. 위표를 보면 20~30대의 이탈자가 40~60대의 이탈자보다 훨씬 적다. 따라서 현재 국민의당의 중심적인 지지 세력은 새누리당 이탈세력, 40~60대 중심의 민주당 이탈 세력 그리고 호남 다수 세력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새누리당을 이탈하여 국민의당으로 합류한 사람들은 왼편으로 이동하였다. 그런데 그들보다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되는 민주당을 이탈하여 국민의당으로 합류한 사람들은 오른편으로 이동한 것인가? 국민의당이 내세우는 자신들의 포지션을 보면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민주당 이탈자들이 민주당보다 더 보수적인 정치를 원하여 국민의당을 지지했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이런 대규모 이탈은 민주당에 대한 실망과 새로운 정치에 대한 막연한 기대에 의한 것이다.

더민주에 대한 지지가 반박근혜 정서에 의존하고 있다면, 국민의당에 지지는 반박근혜-비민주의 정서에 기대고 있다. 국민의 당은 선거 과정에서 양당체제에 대한 추상적인 비판 이외에 구체적인 대안이나 정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국민의 당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지향성보다는 안철수의 개인 이미지에 많이 의존하는 정당이다. 그간의 과정에서 안철수의 이미지가 많이 퇴색하였지만, 반박근혜-비민주의 강력한 정서 덕분에 안철수의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국민의당의 약진을 한국 정치지형의 중도보수로의 이동으로 해석하는 것은 과도한 것이다. 더민주에 대한 지지든 국민의당에 대한 지지든 확고한 방향성과 지속성을 지니고 있는 충성스런 흐름이 아니다. 그것은 반박근혜는 확실하지만 새로운 대안을 찾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의 한시적인 지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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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총선에서 현상적이기는 하지만 중도보수의 확장을 가져온 또 하나의 이유는 진보세력의 침체와 약세 때문이다. 20대 총선에서 진보정당들의 정당 지지율은 역대 최저였다. 정의당이 7.23%4석의 비례대표를 얻었으며, 노동당 0.38% 녹색당 0.76% 민중연합당 0.61%을 모두 합쳐도 8.95%에 불과하다.

이는 지난 17대부터 19대 국회의원 선거의 정당 지지율에서 진보정당의 전체의 합산과 비교하면 더 뚜렷해진다. 17대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을 합치면 13.2%, 18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그리고 창조한국당(3.8%)을 합치면 12.6%, 19대의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 녹색당을 치면 12%에 이르는 등 꾸준히 10%를 넘었었다. 하지만 20대 선거에서는 한 자리 수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는 지난 수년간 진보정당들이 적극적인 대안세력으로 부상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존재감마저 점점 상실해갔기 때문이다.

20대 총선에서 박근혜를 반대하면서 야당을 지지한 흐름들은 매우 커다란 유동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유동성의 폭은 더 클 것이다. 만약 진보 세력이 일정한 준비만 되어 있었다면 20대 총선 국면에서 상당한 약진을 이루었을 가능성이 높다. 반박근혜-비민주의 흐름들을 왼쪽으로 틀어 진보정치의 지지 세력으로 흡수해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진보정치는 그런 기회를 놓쳤으며, 과감한 정치적 베팅을 한 안철수가 최대의 수혜자가 되고 말았다.

 

 4) 간단한 정리

 

20대 총선을 지배한 것은 집권세력에 대한 강력한 반대와 거부 정서였다. 이것은 사회-경제적 위기의 시대에 흔히 볼 수 있는 집권세력에 대한 심판론을 넘어선 것이었다. 대통령의 퇴행적이고-반동적인 통치방식과 집권여당의 오만과 분열이 결합되면서, 꼴통 보수의 이미지를 유감없이 드러낸 집권세력에 대해 반대를 넘어선 혐오의 정서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었다.

하지만 대안세력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았다. 야당 또한 무능력과 분열의 모습을 계속 보여 왔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전략투표라는 방식으로 이런 상황에 대응하였다. 지역구 투표에서는 경쟁력 있는 야당 후보에 표를 몰아주고, 비례투표에서는 기존의 여야 모두를 불신하는 표심을 발휘하였다. 결국 지역구 투표에서는 전통 야당이, 비례에서는 중도보수를 자처하는 제3세력이 약진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20대 총선에서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흐름이 등장하였다. 한국 정치사에 중요한 변곡점을 형성한 선거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첫째로, 정치적 성향에 기초한 세대별 투표 경향이 지역주의 경향을 넘어섰다. 지역주의의 산실인 영호남 모두에서 지역주의 기반이 허물어지기 시작하였다.

둘째로, 한국 사회에서 꼴통보수(극우보수)적 통치 방식이 뿌리내리기 어렵다는 사실이 최종적으로 확인되었다. 87년체제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반동적 시도는 쉽게 먹힐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셋째로, 보수블록과 자유주의블록의 수적 구도에서 변화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전반적인 세대교체로 인하여 보수정치이념보다는 자유주의적 정치이념에 대한 지지성향이 강한 세대들의 폭이 더 넓어졌다.

 

20대 총선에서 여소야대는 20~40대가 주도하고 50대가 이에 동조하여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현집권세력에 대한 심판론이 중심인 것 같지만, 그 근저에는 한국사회의 심각한 사회경제적 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 수구보수-중도보수-자유주의 세력으로 구성된 현재의 여소야대 국면은 한국 사회의 심각한 위기를 제대로 반영한 정치적 구도가 아니다. 이런 구도 하에서 가장 커다란 고통을 받고 있는 노동자-서민-청년-여성들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창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주류 정치세력들이 제대로 된 해결책을 스스로 마련할 것을 기대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만약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여소야대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제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

 

5. 향후 전망

 

1) 박근혜 정권의 레임덕 심화와 보수 내부의 권력 투쟁

 

20대 총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대중의 가장 명료한 메시지는 극우보수적인 통치 방식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50대까지도 극우보수에 대한 반대의 입장을 명확히 하였기 때문에 극우보수의 입지는 더욱 좁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총선 직후 박근혜 대통령의 반응에 확인할 수 있듯이, 박근혜 대통령이 정책의 기조나 통치 방식을 선회할 가능성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사후 측근들의 배신에 한이 사무친 사람이다. 퇴임 전까지 박근혜는 퇴임 이후의 안전장치를 만드는데 전력을 다할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여당은 친박근혜 세력을 중심으로 정권을 재창출하려는 시도와 총선에서 확인된 민심을 활용하여 탈박근혜-온건보수 노선을 강화하여 새누리당을 재구성하려는 시도 사이에 지속적인 대립과 갈등이 일어날 것이다.

이 싸움의 향방은 쉽게 예측할 수 없다. 박근혜가 새누리당에 대해 강력한 통제력을 지니고 있었던 이유는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상당한 고정적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총선에서 이미 그 한계(오히려 역효과)가 드러났고 앞으로 대선까지 선거가 없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의 통제력은 임기 말이 다가올수록 약화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여전히 동원할 수 있는 많은 권력 자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스스로 후퇴하지 않는다면 싸움은 격렬해질 수 있다.

보수 정치 세력의 미래는 이 두 흐름의 권력 투쟁의 결과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권력 투쟁이 격화되고 극단적인 분열로 치닫는다면 보수 세력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축소될 것이다. 반면에 권력투쟁을 적절하게 통제하고 온건 보수 세력의 주도권이 확립된다면 이탈하였던 보수 지지 세력을 재결집시키면서 정치적 경쟁력을 회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권은 국정의 안정적 운영과 비박 세력 견제를 위해 국민의당과 제휴를 선호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하지만 호남당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국민의당이 쉽게 손을 내밀 수는 없을 것이다. 반면에 새누리당 내에 투쟁이 격렬해지고 수구와 온건 세력이 분리된다면 새누리 온건세력과 국민의당이 영호남 지역화합과 중도보수 중심의 안정적 사회 관리라는 모토를 내걸고 제휴할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한다.

20대 총선에서 드러난 표심은 수구 보수에 대한 거부이지 보수 전반에 대한 거부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자유주의 세력과 진보세력의 무능력은 온건보수의 입지를 강화시킬 비옥한 토대이다.

 

2) 야당 세력들의 이중적 태도 및 경쟁

 

20대 총선에 야당들이 드러낸 정체성과 지향성은 모호하지만 그들의 정책과 언행을 분석해보면 그들이 취할 향후 행보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박근혜 정권의 퇴행적-반동적 통치 방식에 대해서는 분명한 반대를 표명해왔으며 앞으로 그럴 것이다. 하지만 사회경제적 위기에 대한 대응 방안은 매우 모호하거나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계급적 성향은 기본적으로 친자본적이며 신자유주의에 대한 확고한 반대 입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국정원-전경련 정치 개입 등 박근혜 정권의 퇴행적 통치 방식에 대해서는 대립각을 세우면서 자신들의 선명성 경쟁을 할 것이다. 야대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정부와 여당을 압박해 나가면서 전선을 확대해 나가려 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위기에 대한 대응에 있어서는 현재의 집권 세력과의 별다른 차별성을 보이지 못할 것이다. 현재 한국자본주의는 세계경제의 장기 침체와 이로 인한 무역 축소, 사회적 양극화에 의한 내수 시장 위축 등으로 자본의 수익성이 극도로 악화되고 있으며, 과잉중복 투자로 의한 한계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은 각종 노동개악을 통해 노동 착취를 강화함으로써 자본의 수익성을 높이려 하고 있다. 또한 노동자의 희생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공적자금 지원으로 자본가의 책임은 면제해주고 나아가 위기에 빠진 자본가를 구원해주는 기업구조조정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더민주는 계속 해서 소득주도 성장론을 제시하였지만, 실제로 그들이 최저임금을 공약대로 올리고, 노동운동의 활성화를 지원하여 임금인상을 유도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통해 노동자의 소득 증대를 꾀하고, 각종 복지 정책의 확대를 통해 사회적 약자의 소비력을 촉진하는 등의 정책을 제대로 추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매우 의문스럽다. 그들은 자본과 상층계급의 조그마한 반격에도 곧장 꼬리를 내리려 할 것이다. 또한 한계 기업 구조조정의 경우 사회적 소유로의 전환, 노동자 고용의 유지, 사회적 안정망의 확대, 자본가와 금융기관의 무한 책임 요구까지 다양한 대처 방안들이 존재하는데 과연 이런 것들을 제대로 추진할지 의문이 든다.

소득주도 성장과 올바른 자본구조 개혁을 위해서는 자본의 단기적 이익의 희생, 자본가의 책임성 강화, 부자 증세와 재정의 과감한 확대, 임금정책의 변화와 노동운동 활성화 등이 필요한데, 그들의 기본적 계급적 성향이 자본의 소방수이지 노동자-민중의 대변인은 아니기 때문에 이를 기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들에게 사회 공공성 강화와 노동친화적인 정책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들은 청년실업이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대안보다는 제한적이고 실효성이 없는 정책을 내세울 것이다. 폭등하는 전월세 대책에서도 주택 공개념에 입각한 획기적인 대안보다는 포퓰리즘적인 임시방편만을 제시할 것이다. 친시장-친자본 중심의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를 변화시키기보다는 신자유주의의 필연적 산물인 빈곤계층에 대해 온정주의적 복지 정책을 내세우면서 집권 보수 세력과 차별화를 시도할 것이다.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야당 대표성의 지위를 획득하기 위하여 당분간 경쟁을 계속할 것이다. 서로 정책적 우위를 점하기 위하여 적극성을 보일 것이다. 위기와 불안의 시대에 안정적 관리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경쟁할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그들이 내세울 정책들이 사회-경제적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실효성을 가지기는 어렵다. 자본주의 구조적 위기라는 객관적 어려움과 그들의 계급 속성과 정치적 능력의 한계라는 주관적 한계 때문에 그들이 내세우는 정책들은 매우 제한적인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민의당이 확장성을 가질 수 있을지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안철수의 개인 이미지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표방하는 것처럼 합리적 중도 정책들로 사회-경제적 위기 해결의 전망을 제시할 수 있을까? 그들이 위기에 처한 대중의 삶을 구원할 수 있는 일련의 정책들을 제시할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하지만 자신들의 이미지를 합리적 온건 세력으로 포장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 될 것이다. 현재 국민의당의 면면을 보면 이런 노력들이 별로 성공적이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안철수에 대한 기대가 갑자기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무능이 완전히 드러나거나 새로운 대안 세력이 등장하지 상황에서 대중들은 이미 주었던 기대를 쉽게 철회하지 않는다.

(더민주는 오른쪽에서 왼쪽까지 훨씬 잡다한 색깔들로 구성되어 있어 분산성이 강한 반면, 국민의 당은 비교적 중도보수적 색깔로 집중되어 있어 균질적인 편이다. 하지만 더민주의 주도 세력은 분명 보수적 자유주의와 자본편향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래서 더민주의 지금까지의 모습을 보면 논의는 제법 그럴듯하게 다양하게 전개하지만 항상 결론은 일정한 한계 내에 머물러 있음을 볼 수 있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역동적인 시기이고, 양자구도가 아니고 삼자구도이기 때문에 향후 제도 정치의 국면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지난 대선에 박근혜가 그랬듯이 자신의 정체성을 넘어서는 행보를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국민의당의 인기가 높아지는 반면 대중의 요구와 진출이 거세지는 국면이 형성된다면 더민주는 큰 폭의 좌클릭을 시도할 수 있다. 반대로 국민의당과 더민주 사이에 보수 경쟁이 발생할 수도 있다. 특히 진보정치가 계속 침체되어 있으면 더민주의 입장에서는 왼편의 대중들은 이미 집토끼로 자기편이기 때문에 오른편의 대중을 놓고 국민의당과 경쟁하는데 집중할 수도 있다. 더민주와 경쟁에서 불리해질 경우 국민의당에서는 야권통합과 새누리의 온건보수와의 연대사이에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 너무 많은 변수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현재 국민의당의 경우 제3당이자 높은 비례대표에서 득표율 때문에 대선에서는 결선투표, 총선에서는 비례대표 확대에 커다란 이해관계를 가질 수 있으며, 이는 진보정치 요구와 일치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3) 대중 운동의 활성화와 사회-정치적 대립의 격화

 

연이은 총선과 대선에서의 보수 세력의 승리는 대중운동의 활성화를 가로막았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선거에서의 보수 세력의 승리는 불리한 정치적 세력관계의 형성 문제는 물론 대중의 사기에도 커다란 악영향을 미쳤다.

20대 총선에서의 여당의 참패는 반박근혜 대중 투쟁 전선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대중의 사기는 높아지는 반면, 집권세력의 무모한 탄압과 무리한 개입에는 제동이 걸릴 것이다. 또한 제도정치 내의 공간 활용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대중운동에 역동성을 부여해 줄 것이다.

이전의 투쟁들이 주로 힘겨운 수세적 방어투쟁 중심이었다면, 이제 공세적이고 새로운 진출을 도모하는 투쟁에 대한 기대와 요구가 높아질 것이다.

 

대중투쟁이 활성화되고 대중의 진출이 확대되겠지만 이것이 곧바로 투쟁의 결실을 수확하는 단계로 이어지지는 못할 것이다. 여전히 행정권력을 극우보수 세력이 장악하고 있고, 현재의 야당들이 대중의 요구를 관철시킬만한 의지와 역량을 충분히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대중투쟁을 통해 분출된 요구들은 대선 국면에서의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각 정치세력들의 정책이나 공약으로 수렴되는 양상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과 제도정치 사이의 부조응과 괴리는 커질 수밖에 없다. 대중운동은 자기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대변할 수 있는 대의체계의 재구성을 요구할 것이지만 진보정치가 이에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만약 그런 통로가 막힌다면 결국 또 다시 왜곡된 선택지의 한계에 갇히게 될 수밖에 없다. 지금 상황이 지속된다면 대선 국면에서 진보정치가 대중들의 요구와 투쟁에 제대로 응답할 수 없을 것이 너무 뻔하다.

 

6. 진보정치의 과제

 

1) 문제의 지점들

 

돌이켜보면 20대 총선은 기존의 정치세력에 대한 불신이 매우 높은 상태에서 진행되었다. 그 어떤 정치세력도 대중의 절박한 요구를 수렴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보수정당이나 자유주의 정당이 한국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 국면에서 노동자-민중이 처한 생존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 그들에게 우선순위는 노동자-민중의 생존이 아니라 위기에 처한 자본을 구원하는 것이고 원활한 자본축적의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사실 20대 총선은 진보정치세력이 약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여소야대를 주도하였던 20~40대는 지역주의로부터 자유로운 만큼 진보정치에 대한 거부감 즉 낡은 반공주의로부터도 자유롭다. 그들은 자신들의 절박한 요구를 담을 수 있는 대안만 제대로 제시한다면 얼마든지 진보정치 세력을 지지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20대 총선에서 진보정치는 더욱 후퇴하였다. 우선 진보정치세력의 존재감 자체가 거의 없었다. 특히 안철수 신당의 출현으로 제3세력으로서의 위상마저 사라지면서 존재감은 더욱 약화되었다. 정의당은 선거의 핵심전략으로 야권연대를 내세웠지만 더민주당과 국민의당 사이의 연대 문제가 중심이 되면서 관심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여야가 격렬한 공천파동에 휩싸이면서 모든 정책이슈들을 빨아들이는 기본적인 어려움은 있었지만 그래도 야권연대 이외에 정의당이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부각시키지 못하였다. 상황도 불리했고, 주체도 무기력했다.

 

20대 총선에서의 진보정치의 후퇴는 단기적인 선거 전략의 실패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실패의 뿌리는 훨씬 깊다. 2000년 민노당의 출범 이후 본격화된 진보적 제도 정치의 실험은 높은 당내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당원들의 아래로부터의 참여를 확대하고 외연을 확장해 나가는데 실패하였다. 진보정당은 엘리트주의와 패권주의에 의한 분열과 갈등으로 점철되었다. 당내 민주주의는 형식화되어 오히려 패권다툼에서 우위를 거머쥐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이에 따라 당내에 있는 각종 회의기구들은 당원들의 정보공유와 토론 그리고 결정과정에의 주체적 참여를 확대하고 활성화하는 공간이 아니라 정파 간의 힘대결의 장으로 전락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각 그룹 간의 의견의 차이가 발생했을 때, 이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통일로 이끌어 나갈 수단이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차이는 극단적인 적대로 치달았고 분열에 의해 당이 내파되는 경우가 많았다. 민노당과 통진당의 분당이라는 커다란 분열 이외에도 크고 작은 분화들이 계속 일어났다.

진보정당들은 분열만 한 것은 아니다. 통합 과정도 반복하였다. 그런데 분열 못지않게 통합의 과정도 문제가 많았다. 통합과정에서 새로 지향해야할 가치, 전망, 전략이 무엇인지에 대한 대중적 토론과 합의가 충분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200여만 명의 진보정당 지지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만한 어떤 대중적 사업도 배치되지 않았다. 분열의 과정과 마찬가지로 통합과정도 대부분 상층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따라서 진보정당 통합 과정이 대중의 관심과 감동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전혀 되지 못했다. 가장 최근에 이루어진 정의당과 노동당 일부 세력 그리고 진보적 교수 집단의 통합도 진보정치의 대중적 기반 확대에 거의 기여를 하지 못했다.

 

진보정당의 잦은 이합집산은 인적 물적 자원이 열악한 진보 정치의 기반을 더욱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진보세력이 발휘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장점은 정책과 대안 분야이다.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와 유럽에서의 사민주의의 후퇴라는 대외적인 어려움이 있었지만, 세계자본주의와 한국자본주의 위기와 한계들이 더욱 명료해지는 상황에서 다양한 대안 담론과 정책들이 생산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진보 정치 내외의 전문적 역량과 대중적 집단 지성의 힘을 제대로 가동시켜 성과를 모아내는데 실패했다. 현실에 대한 정치한 분석, 거시적 대안 담론 연구, 영역별 미시적 대안 정책 개발 등 어느 것도 제대로 활성화시키지 못했다. 자본의 위기와 한계로 인해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을 진보 정치에 동참시키는데 무능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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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안의 단초들

 

진보정치는 객관적 사회 현실의 문제와 위기들, 이로부터 발생하는 대중의 요구와 열망들을 진보적 전망과 대안을 통해 실현하는 운동이다. 현재 세계자본주의와 한국자본주의는 황혼 무렵에 접어든 것 같다. 자본주의는 세 가지 차원에서 매우 격심한 위기를 겪고 있다.

우선 자본주의의 경제적 위기 특히 경제적 무능력이 심화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매력은 빠른 성장 속도에 있다. 빠른 성장을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그 과실을 나누어주겠다는 것이 자본주의의 경제적 약속이다. 하지만 현대자본주의는 중장기적 저성장과 경기침체 그리고 반복되는 위기 상황으로 점철되고 있다. 지역별 차이는 있지만 2차 대전 후 30여년 간 지속되었던 장기 호황이 마감되면서 장기 침체가 지속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인 전환 이후 노동에 대한 착취 강화와 금융적 수탈에 의해 자본의 주머니는 두둑해졌는지 모르겠지만 신자유주의 축척 체제가 자본주의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신자유주의는 경기침체와 금융불안정성을 결합시키면서 원활한 자본축적에 더 많은 문제를 초래하였다. 하지만 나날이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지만 지배세력들은 마땅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인류의 생산능력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자본주의 시스템이 족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중장기적 자본주의 동향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한다. 과연 자본주의가 새로운 장기 호황 국면으로 전환하여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상황으로 재진입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회의적이다.)

둘째로 자본주의 문명의 위기도 한계에 이르고 있다. 초기 자본주의는 중세 봉건사회와 다르게 공정한 경쟁, 기회 균등, 선택과 계약의 자유, 개인성에 대한 존중, 역동적 변화 등 중세의 신분적 족쇄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개인 중심의 문명을 만들어냈다고 자랑하였다.

하지만 자본주의 문명이 전개되면서 오늘날 탐욕에 기초한 소비와 물질 만능주의, 과도한 경쟁으로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파괴, 강자들에 의한 폭력과 착취의 만연, 전세계적-일국적 불평등의 극단적인 심화 등 사회의 붕괴와 인간성의 파괴라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는 사람들의 삶을 피폐화시키고 반윤리적이고 비인간적 삶을 강요하고 있다.

셋째로 자본주의에 의한 생태적 위기도 역시 한계 지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지구온난화, 환경오염, 핵위기 등 인간과 지구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점차 커지고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이렇듯 자본주의 경제적, 문명적, 생태적 위기의 심화는 대안사회와 대안적 삶에 대한 갈망을 더 강화시키고 있으며, 이는 진보정치의 비옥한 토양이 될 수 있다. 현재의 진보정치는 선구적인 소수자 운동이 아니라, 현실화되어 있는 위기에 대응하는 대중적 운동이다. 진보정치 운동은 우선 이런 위기의 원인과 실상을 정확히 규명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거시적이고 미시적인 대안담론과 정책들을 개발하고 공유하고 확산해야 한다. 또한 이런 담론과 정책들을 대중의 현실적인 삶의 문제와 결합시켜 나가야 한다. 즉 대안과 정책을 매개로 진보정치와 대중운동을 접목시켜 나가야 한다.

 

또한 우리 사회는 평화와 사회적 안전을 확보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가 존재한다. 미중의 대립과 남북대립의 중첩되는 지점으로서 한반도의 평화는 지속적으로 위협받고 있다. 한반도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고 동아시아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할 때이다.

 

그런데 이런 대안들을 추구해 나가는 과정은 기존의 방식을 넘어서는 새로운 대안적 방식을 필요로 한다. 새로운 내용과 새로운 형식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우선 200만의 진보정치 지지 세력 특히 젊은 세대들을 결집시키고 함께 대안을 모색하고 정책들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누가 대신하고 누가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참여 속에서 대안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 즉 새로운 방식의 핵심에는 직접-참여 민주주의가 존재한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나 붕괴한 현실사회주의 사회 모두 사회 운영의 원리는 대리(대의)주의에 기초하고 있었다. 근대정치의 핵심 원리는 인민들이 자신들을 통치할 주권자나 입법자를 선출하는 것이다. 이런 선출 과정은 곧 인민의 주권을 대리자에게 양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경제 원리도 유사하다. 노동력 판매 계약을 통해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능력 즉 노동권을 양도한다.(물론 이 과정은 생존 때문에 훨씬 강제적이다.) 현실사회주의도 마찬가지이다. 당과 관료가 노동계급과 인민의 주권을 양도받아 통치한다.(현실사회주의에서는 근대부르주아 사회에서처럼 양도의 과정에 일정한 형식-예를 들어 다당제와 선거-이 개입되기보다는 내용적 동어반복의 경향이 있다. 즉 당이 노동자와 인민의 보편적 의지와 이해를 구현하기 때문에 이들을 대리한다는 동어반복) 사회주의 경제도 노동자와 인민의 노동권을 양도 받은 관료와 테크노크라트들에 의해 운영된다.

근대자본주의 국가나 현실사회의 국가에서 대리(민주)주의가 성립한 이유는 지배계급의 이해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당시의 시대적 조건을 반영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형태는 대중의 역량에 의해 규정된다. 그런데 대중의 역량은 대중의 지성과 대중 내부의 소통과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근대자본주의 국가와 현실사회주의 국가의 출범할 당시, 대다수의 대중은 문맹이었고 교육시설이 부족하여 대중의 지성을 계발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중의 소통 수단도 열악하였다. 신속한 정보 공유도 어려웠고, 집단적 토론과 상시적인 결정 과정에의 참여는 거의 불가능했다. 따라서 당시에 가능했던 민주주의 형태는 대중을 대리하는 엘리트들에 의한 대리 민주주의가 최선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자본주의 국가나 사회주의 국가 모두에서 대중교육기관이 확산되면서 대중지성은 비약적으로 성장하였다. 또한 각종 통신 수단의 발전으로 신속한 정보공유는 물론 집단적 토론과 대중에 의한 상시적 결정도 가능해졌다. 즉 직접민주주의의 조건이 성숙한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국가와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의 지배계급들은 자신들의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리민주주의가 적합하다는 것을 인식하였으며, 직접민주주의의 발흥을 억제하고 있다.

 

진보정치세력들이 직접민주주의의 확장에 적극 나서야 한다. 우선 진보정치운동 내부에 직접민주주의를 최대한 도입해야 한다. 직접 민주주의의 과정은 참여자의 주체성을 최대로 고양시킨다. 스스로 토론하고 결정한 일에 대해 인간은 가장 높은 자발성과 실천성을 발휘한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권위가 아니라 수평적인 소통과 자율적인 결정을 선호한다.

또한 직접 민주주의는 그 간의 진보정치의 문제였던 분열과 패권주의에도 좋은 해독제가 될 것이다. 주요 사안들을 참여자 스스로가 함께 결정함으로써 모두가 수긍하는 분위기가 고양될 것이다.

 

우선 2017년 대선 국면을 맞이하여, 진보 정치에 동의하는 사람들과 제 세력들이 참여하여 대선에 내세울 주요 정책과 공약을 아래로부터 토론과 결정을 통해 만들어 나가고, 이를 기초로 해 대선 후보도 선출해나가는 실험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직접민주주의를 위한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하여 충분한 정보 공유, 토론, 결정을 과정을 전개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노동, 복지, 생태, 여성, 청년, 교육, 의료, 평화 등 영역별 토론을 전개하고 거기에서 모여진 풍부한 논의 내용과 추려진 쟁점들을 전체 성원들과 공유하고 대선에서 부각시켜야할 핵심 의제와 세부적 정책들을 결정해 나가면 될 것이다.

 

7. 나아가며

 

20대 총선의 결과 정치지형이 급변하면서 대선까지의 정치적 역동성이 매우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자본의 구조적 위기라는 훨씬 더 근본적인 흐름이 자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핵심 과제는 진보정치의 재구성을 통해 진보정치의 활력을 강화하고 대중적 기반을 확대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가장 진보적인 방식이면서도 가장 대중적인 방식으로 진보정치를 재구성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위의 제안은 엉성하고 어설프다. 그럼에도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은 진보정치의 재구성에 대한 고민과 상상력을 촉발하기 위해서다.

 

대안 사회를 구상하고, 진보정치를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할 수많은 쟁점들과 과제들이 존재한다. 여러 가지 실천적 이론적 난관이 존재할 것이며, 좀 더 구체적인 방법과 경로에 대한 세부적인 계획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은 채, 무기력하게 방관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나는 것이 한 걸음이라도 전진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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