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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60(2016.05.09. 발간)

 

[담론과 문화]

 

마이너리티와 클래식

 

2016.5.1. 송재혁 



 

노동절에 글 쓰는 노동 중이다. 메마른 땅에 우물 파는 기분이다. 물이 있는지도 모르고 물을 달라는 사람도 없는데 우물 파는 노동자의 심정은 복잡하다. 지난 겨울 실린 글을 읽었다는 두 분을 확인했다. 기다리는 독자가 있는 것도 아니요 언급된 음악을 찾아 들어보려는 이도 없겠지만, 그래도 약속을 지킨다는 의무감으로 뭔가 쓰고 있다. 본래 말하기와 글쓰기와 공부하기를 싫어하는 천성은 어디 가지 않는지 종종 브레이크를 걸어온다. 음악을 과도하게 듣는 이유 또한 언어가 싫어서이기도 하다. 군대에서 박격포 소대장을 하던 중 청력 손상을 당해 136524시간 나를 괴롭히는 극심한 고주파 이명은 공교롭게도 음악 소리의 대부분을 이루는 주파수 대역보다 언어의 자음 소리에 해당하는 주파수 대역에서 청취를 곤란하게 한다. 어렸을 적 음악 실기 하나라도 배웠더라면 주저 없이 음악 관련 진로를 선택했을 것이다. 이제는 그저 들음으로써 스스로 그 열망에 대한 보상을 하고 있을 뿐, 남에게 음악을 이야기하고자 함은 아니었다.

 

나름 의미 있고 완성도 있는 글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저 사적인 비망록 수준에 불과한 것들을 사람들 앞에 내어 놓는 건 민폐이자 종이 낭비일 것이다. 더욱이 이 분야 전문가도 아니면서 너무 함부로 쉽게 쓰는 것 아닌가, 음악을 많이 들었다는 소문이 만들어 준 일종의 권위 같은 것이 허위를 사실로 둔갑시키거나 일방적 주장을 무슨 가설 수준으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다들 너무도 쉽게 말하는 최근에는 더욱 그렇다. 에스엔에스(SNS)는 크고 작은 권력에의 욕망이 춤추는 난잡한 가면 무도회장처럼 보인다. 배경음악으로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가 딱 어울릴 것 같다. 김연아가 배경음악으로 삼았던 관현악곡이다.

 

클래식 음악을 공연하는 측과 감상하는 측에는 이른바 대가명곡의 반열에 올라 신처럼 추앙받는 작곡가와 주요 작품의 목록이 있다. 이들을 주류 음악계는 공연장에 되풀이해 올리고 청중은 아낌없는 찬사를 반복한다. 이로써 메이저리티(majority)는 유지, 강화되고 마이너리티(minority)는 초라하게 배제된다. 주요 작곡가의 주요 작품 목록은 음악을 교양 삼는 사람들에게 필수 지식이며 학교에서는 학습의 목표이자 내용이 된다. 이들은 레코드 가게나 음반 보관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나도 어느덧 주류에 물들어 이들에게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찬양을 바치고 있음을 고백한다.

 

최근 클래식 음악계 일각에서 마이너리티가 서서히 떠오른다. 단순히 수적인 개념이 아니므로 비주류라 일컫는 게 낫겠다. 음반 기록이 포화 상태에 직면하자 기존의 주류 레파토리만으로는 클래식 산업의 지속가능한 상업성을 기대하기 어려워서일까. ‘듣보잡이 이윤 창출을 위한 돌파구의 하나로 동원되는 것처럼 보인다. 모르는 대상에 대해서는 두려워하거나 외면하는 게 인지상정인지라 진열대에 오른 새로운 상품들이 주목을 받는 데에는 꽤 시간이 걸린다. 그래도 오래도록 같은 것 우려먹기에 질려버린 사람들은 새로운 미적 탐구의 대상으로서 이들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 비주류 음악에 대한 관심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소수자, 비주류에 공감하려는 태도는 진보운동에 필요한 인권 감수성 측면에서 바람직하므로, 밀려난 음악들에 때때로 주목하려는 욕구 또한 도덕적으로 온당할 것이다. 그렇지만 내 자신 그렇게 소수자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거나 운동의 제 원칙을 단호히 견지해 온 사람으로 평가하지는 않는다. 나는 아직 멀었다. 한편 나 역시 비주류다. 운동 세계에서 알티(RT)’ 출신은 생뚱맞다. 제대 후 교직에 와서도 알티 가방을 들고 다녔는데, 비합법 시기 지회 사무실에 나타난 나를 뭔가 수상한 듯이 바라보던 시선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음악적으로 군가나 진배없는 일부 투쟁가가 귀에 거슬려 애써 참아내는 것도 비주류로서의 모습이다. 그리하여 비주류가 비주류 음악에 공감하는 것은 자연스러워진다. 하지만 어떤 비주류 음악이 정말로 별 볼 일 없다면 의무성 관심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다. 진정 훌륭한 음악이 화려한 음악사의 그늘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아직 많지는 않지만 발견의 기쁨이 있다. 이들은 스스로 빛을 발하지는 않아도 누군가 빛을 비추면 반짝인다.

 

역사적으로 음악계에도 권력이 있어서 권력자들의 취사선택이 음악사 서술에 개입되었음은 당연하다. 당대에 인정받지 못한 음악이 후대에 재조명되기도 하고 당대에 인기 있었지만 후대에 잊혀지기도 하면서 오늘의 음악사가 만들어졌다. 아직도 다 읽지 못한 두꺼운 책, 베로니카 베치가 쓴 음악과 권력에는 역사 속에 부침한 음악가와 작품의 사례가 다양하게 등장한다. 여기 개입되는 힘을 문화 권력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특정 개인이나 단체 또는 매체가 가진 권위가 그의 말과 글에 대한 맹신을 불러일으키는 사례는 현재진행형이다. 권위에 의존해 사안을 판단하는 비이성적이고 비주체적이며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한, ‘주류는 옳건 그르건 위력적일 수밖에 없다. 큰 힘에 빌붙으려는 경향 역시 작은 힘들이 가진 권력에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그래서 저명한 사람을 인용함으로써 자기 입장에 권위를 부여하려는 모습이 흔히 보인다. ‘필수적인 인용이 아니라 필요에 의한 이용이 범람한다. 진보운동 세계에서도 눈꼴사나운 힘의 관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일들이 보이곤 한다. 최근 우리를 둘러싼 하나의 사건에서 펼쳐지는 크고 작은 권력들의 반응에서 놀라운 맹목성을 발견한다. 지켜보자니 때때로 구역질이 날 지경이다.

 

비주류 음악을 집중 조명하는 책도 나와 있다. 칼럼니스트 이영진은 제목을 아예 마이너리티 클래식이라고 달아 연재물들을 책으로 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쓴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에서도 마이너리티에 대한 관점이 엿보인다. 독일 소설가 파트리크 쥐스킨트(Patrick Süskind)1984년 쓴 모노드라마 콘트라베이스는 바이올린이나 첼로에 비해 확연히 비주류 취급당하는 더블베이스 연주자의 복잡한 심경을 다루었다.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 더블베이스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일은 좀처럼 드물다. 하지만 더블베이스 없는 풀 오케스트라를 상상하기란 어렵다. 더블베이스가 관현악에서 주선율을 연주하는 일은 거의 없어도 그들이 내는 최저음이 없으면 밑장 빠진 소리가 날 것이다. 부재야말로 존재의 소중함을 확실하게 일깨워준다지만, 더블베이스가 부재한 순간을 체험하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리가 사용하는 스피커의 대부분은 더블베이스 소리를 날려버리거나 부밍(booming) 사운드로 왜곡하거나 윤곽만 간신히 전하고 있다. 연주회 무대 우측에서 무거운 악기를 메고 몸을 가장 많이 움직이며 낑낑대는 더블베이스 주자들은 기여한 바에 비해 소홀히 대접된다. 쥐스킨트는 이들에게 주목하여 장황한 독백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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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소개한 책들에서 다루어진 작품들과는 무관하게, 마이너리티 음악 몇 곡을 지면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잘 알려지지 않았고 권력자들이 명곡의 반열에 올리지 않았지만 주관적으로 참 좋은 음악, 참 좋은 음반이다.

 

토이보 쿨라 : 일출, 내 아이를 투오넬라로 보내라

 

핀란드는 제도적으로 사회주의적인 것과 자본주의적인 것이 공존하는 특이한 국가로 보이는데 이런 모습은 외세의 틈바구니에서 시달리던 근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획득된 생존의 기술과 연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경우도 역사적 배경은 비슷하지만 두 개의 강력한 외세가 뿜는 구심력에 빨려 들어가 극단적이고 기형적인 두 개의 사회로 완전히 분리되어 버렸다. 핀란드 역시 최근 신자유주의를 비껴가지는 못하는 모양이지만, 사회 투명성과 안정적인 복지, 그리고 경쟁 없는 교육은 여전히 모범적이다. 비판 세력에 대해 단 한 명도 남김없이 추적해 엄벌하겠다는 으름장이 으르렁거리는 나라에서 살아야 하는 입장에서는, 억울한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대통령으로서 할 일이 있는 것이라고 따뜻하게 말하는 소박한 리더를 이미 10여 년 전에 가질 수 있었던 이 나라가 마냥 부럽기만 하다.

 

핀란드는 호수와 숲, 그리고 오로라와 백야의 나라로 알려졌는데, 민중들이 우리처럼 노래를 좋아하여 합창 음악 또한 유명하다.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 토이보 쿨라(Toivo Kuula, 1883-1918)의 합창곡들은 핀란드의 특이한 풍광을 담아낸 듯, 오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시벨리우스의 첫 작곡 제자였던 그는 핀란드 자연과 민중을 그려낸 작곡가이다. 그의 합창곡들은 종교와 세속 사이 어딘가에 놓여 있는 것 같다. 숭고하되 작위적이지 않고, 민중적이면서 기품도 있다. 한 마디로 인간의 내면 깊숙이 닿아 있는 곡들이라고 하겠다. 사고로 요절하지만 않았다면 더 많은 걸작들을 남겼을 이 작곡가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오래 전, 그저 표지가 예뻐서 북유럽 음악을 담은 음반 두 장을 집어 들었다. 그 중 파랑색 표지를 한 음반 Northern Lights(오로라)에 담긴 합창 두 곡이 가슴을 쳤다. 일출내 아이를 투오넬라로 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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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오넬라(Tuonela)’는 핀란드 전설에 나오는 죽음의 세계이다.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죽으면 모두 투오넬라로 가게 된다. 살아 있는 사람이 지혜를 얻기 위해 이곳에 가려면 황야를 지나 소용돌이치는 검푸른 죽음의 강을 건너야 한다. 이러한 전설에 바탕 한 시벨리우스의 관현악곡 투오넬라의 백조가 유명한데, 쿨라가 쓴 합창곡 내 아이를 투오넬라로 보내라또한 북구적인 어두움과 쓸쓸함을 담아낸 걸작이다. 일출에서는 핀란드의 자연에 대한 민중의 감성이 느껴진다. 타피올라 실내 합창단에 의한 혼성합창을 담은 이 음반은 그의 합창 전집과 함께 핀란디아(Finlandia)’ 음반으로 나왔으나 지금은 구하기 매우 어렵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에게는 유튜브(YouTube)가 있다. 내 아이를 투오넬라로 보내라(Rock My Child to Tuonela)‘Tuuti lasta Tuonelahan’, 일출(Sunrise)‘Auringon Noustessa’로 검색하면 된다.

 

마르께스 : 단쏜 2

 

남아메리카는 아랍 지역과 더불어 우리에게 여전히 비주류의 세계이다. 2외국어 교육을 사실상 추방하고 영어 획일화를 진행한 지 어느덧 30년이 되어가니, 그 후유증으로 만성 질환이 생겼다. 해당 언어를 통한 심층적인 1차 정보에 접근하기가 어려워졌고 영어에 의한 선별적, 제한적, 간접적 정보를 반신반의하며 접해야 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새로운 사회 변혁운동으로 주목받았던 베네수엘라 혁명은 차베스 대통령 사후 위기를 맞고 있는 모양이다. 산유국임에도 불구하고 전력난이 심해져서 전력공급 제한, 4일 근무제, 공무원 주 2일 근무제에 이어 최근에는 표준시를 앞당기는 조치까지 취했다고 한다. 우파 야당이 17년 만에 다수가 되면서 집권 세력에 위기가 오고 있단다. 세계 음악계가 주목하는 오케스트라에 의한 무상 음악교육 체제 엘 시스테마(El Sistema)’조차 위기를 맞게 되지 않을까. ‘엘 시스테마를 다룬 다큐멘터리 음악의 약속첫 부분, 빈민가의 골목을 카메라가 따라갈 때 단조의 구슬픈 멜로디가 캐스터네츠에 실려 온다. 멕시코의 아르뚜로 마르께스(Arturo Márquez, 1950-)가 쓴 단쏜 2이다. ‘단쏜(Danzon)’춤곡을 뜻한다. 엘 시스테마가 세계적으로 소개되면서 이 비주류의 음악도 널리 알려졌다.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과 시몬 볼리바르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비롯해 베네수엘라의 청소년 관현악단들은 세계를 돌며 이 곡을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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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스 필하모니 관현악단(Philharmonic Orchestra of the Americas)나의 멕시코 혼(My Mexican Soul)이란 음반을 2010년 남겼다. ‘단쏜 2을 포함해 남아메리카 관현악 여러 곡을 담았다. 알론드라 데 라 파라(Alondra de la Parra)라는 멕시코의 여성 지휘자가 이끈다. 편견 속에 남성적인 역할로 규정되곤 하던 관현악단의 팀파니 연주나 지휘를 여성이 맡는 게 이제 매우 자연스러워졌다. 부천시향의 여성 팀파니스트는 오래 전부터 당당한 연주를 들려주고 있으며, 국내외에서 여성 지휘자들이 공연하고 음반을 낸다. 이로써 클래식 무대에서 여성이 마이너리티인 시대는 극복되고 있다.

 

루에드 랑고르 : 교향곡 1벼랑의 목가

 

음악에서 장음계(major scale)와 단음계(minor scale)는 우열의 관계가 아니라 상보적 관계이다. 1990년대 말 학교에서 방송반을 맡고 있을 때였다. 어느 비 오는 날 등굣길을 위해 김추자의 님은 먼 곳에를 장사익이 부른 음반으로 틀었을 때, 음악교사였던 교감은 이를 따지면서 장조의 행진곡을 틀라고 강요했다. 그래서 다음 날인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틀었다. ‘단조의 행진곡이므로 교감의 지시를 반만 이행한 셈이다. 행진곡이 밝다는 것도 편견이다. 베토벤의 영웅(Eroica)교향곡 2악장은 걸작 중의 걸작이지만 어두운 단조의 장송 행진곡이다. 장례 음악은 시종일관 침울한가?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의 악극 니벨룽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 신들의 황혼(Götterdämmerung)’에 나오는 지그프리트의 장송음악(Siegfrieds Tod und Trauermarsch)’은 단조에서 장조로 이행하면서 영웅의 죽음을 통한 새 세상의 도래를 트럼펫으로 힘차게 예고한다. 포레(Fauré)는 레퀴엠에서 장조를 사용하여 죽음마저 감미롭고 평화롭게 노래함으로써 인생의 종말을 긍정하게 한다. 음악성이 높은 악곡에서는 조성 변화가 빈번하고 모호하여 장조와 단조의 구분조차 무의미해진다. 만일 장조나 단조만 존재했다면 서구 음악은 미쳐버렸을 것이고 어느 한쪽만 듣는 사람에게는 정신 이상이 왔을 것이다. 악보 위의 세계는 이러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메이저와 마이너가 사이좋게 공존하지 않는다. 양적 압도 또는 질적 압도는 다양성을 거세하기도 하고 진실을 왜곡하기도 한다.

 

구자범 지휘자가 2009년 가을 전교조 서울지부 강연 후 뒤풀이 자리에서 물었다. “주류의 반대말이 뭔지 아시나요?” “비주류 아닌가요?” “안주입니다. 비주류끼리 건배합시다!” 그는 조만간 마이너리티 음악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교육희망425일자에 실은 글에서 언급한 내용을 좀 더 상세히 설명해 보련다.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는 한국 작곡가 류재준은 2013'난파음악상' 수상을 거부하여 주류 음악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감히 홍난파의 이름을 건 권위 있는 상을 대놓고 거부하다니! 그리하여 그는 비주류로 밀려난다.

 

잠시 옛 기억이 떠올라 빗나가련다. 다시 1990년대 말이다. 연구부 기획을 맡으면서 당시 기준으로 봤을 때 다소 파격적으로 교내 전시회를 기획했다. 학생 우수 작품을 선별해 진열하고 화분 몇 개 옆에 놓던 기존 전람회 방식을 탈피하여, 학급별 활동과 학생 활동을 담은 사진도 전시했다. 농촌봉사활동을 기안했더니 학교장이 불허해서 그냥 데리고 갔다가 다리를 다쳐 공상 처리도 못 받고 한동안 목발 짚고 다녀야 했는데, 그 농활 사진도 크게 뽑아 전시했다. 학부모 작품 전시도 있었는데, 평소 소심하던 아이가 쑥스러워하며 내어 놓은 아버지의 그림은 모작 같기도 했지만 기를 살려주고자 그냥 전시했다. 독특하거나 성의가 돋보이는 작품들은 뛰어나지 않더라도 최대한 펼쳐 두었다. 당시 서울을 풍미했던, 교육감에 의한 교육감을 위한 교육감의 새물결 운동우리는 꾸정물인가라고 일갈해 풍자한 한 조합원의 시는 특별히 전시장 중앙에 못 박아 모셔두었다. 그리고 전시대 아래에는 오디오를 숨겨 음악을 깔았다. 모든 것이 판박이처럼 획일적으로 돌아가던 시절, 나름 참신한 발상으로 인정되었다. 전시장을 방문한 높은 분들은 대강 보고 갔는지 이후 별 말이 나오지 않았고, 학교는 고생했다며 교육장 표창을 주려 했다. 상신 마감일까지 용케도 피해 다녀 표창 없는 학교를 만들고 말았는데, 추천 공문 발송이 나의 담당업무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물의를 일으키면서 떠들고 다녔던 첫 번째 명분은 상을 받을 만한 공훈이 없다는 겸양이었고, 둘째는 교육장이 나에게 표창할 만한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으며, 셋째는 나에게 표창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전교조 위원장이 유일하다는 것이었다. 그 뒤로 지금까지 참교육상을 받지 못했고, 법외노조 탄압으로 만약 해고된다면 기회가 영영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후 첫 번째 징계가 다가왔을 때 표창이 있으면 감경된다는 말을 듣고는 당시의 호기로움이 살짝 야속했으나, 지금 생각해도 젊은 날의 허세만은 아니었다. 군대에서도 사단장 표창 받으면 말뚝 박게 될지 모른다며 기피하지 않는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류재준 작곡가가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서울국제음악제'가 말 많은 문화예술위원회지원 심사에서 탈락하여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류재준은 주류 음악계를 비판하며 지난 달 절필 선언까지 했다. 그러자 수년 간 기성 주류 음악계와 거리를 두던 구자범 지휘자가 지휘를 맡기로 하여 음악제의 두 번째 연주회가 52814시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게 된다. 류재준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두 대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판타지가 세계 초연되며, 더불어 덴마크 작곡가 루에드 랑고르(Rued Langgaard, 1893-1952)의 교향곡 1번이 아시아에서 처음 연주된다. 이 소식을 접할 때까지 존재조차 모르던 작곡가와 작품이다. 랑고르 역시 음악사상 주류가 아니지만 무려 16곡의 대편성 교향곡을 작곡한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로, 최근 음반 녹음이 이루어지면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연주 역시 기성의 주류 악단이 아니라 서울국제음악제를 위해 결성되는 ‘SIMF 오케스트라가 맡는다. 그야말로 위기 속에 비주류들이 나서는 이 공연의 제목은 재미있게도 ‘Mission Impossible (불가능한 임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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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연주되는 교향곡 1벼랑의 목가(Klippen-Pastorale)’는 고독한 낭만주의자 랑고르가 ‘17에 남긴 작품이라고 하는데, 웹상에서 찾아 들어보니 시작부터 비범하다. 416일 비가 쏟아지는 세월호 문화제에서 유로기아와 친구들합창단과 함께 흑인영가민중영가’ 3곡을 노래해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심금을 울렸던 구자범 지휘자는 이 교향곡 또한 세월호의 맥락에서 재해석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 ‘17’, ‘비주류’, ‘벼랑’, ‘기억’, ‘환생’, 그리고 위안과 이상을 노래하는 목가……. 만사 제치고 이 연주회에 달려가야 하지만 이번만은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 비주류에서 더 비주류로 내몰린 채 스물일곱 생일을 맞는 전교조의 역사적인 대회가 있을 시각이고 우리의 ‘528 합창단이 무대에 서기 때문이다. ‘마이너리티의 우렁찬 외침! 상상만 해도 즐거운 5월 28일이다. 랑고르의 교향곡 1번은 유튜브에서 감상할 수 있으며, 토마스 다우스고르(Thomas Dausgaard)가 지휘한 덴마크 국립 교향악단의 2007년 연주(DACAPO) 등이 음반으로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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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천대받던 1989, 우리는 교실에서 소외되어 그늘 속에 웅크린 아이들에게 다가가 눈을 맞추었고 이들이 학교에서 당당하게 설 수 있도록 돕고자 전교조를 창립했다. 참교육은 다른 말로 평등교육이며 마이너리티의 제 자리 찾기다. 우리 투쟁과 실천의 꾸준한 축적은 전교조가 이 사회의 주류로 서는 날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음악사가 부여한 권위나 평론가들이 쏟아낸 말의 무게에 짓눌려 대가냐 아니냐, 걸작이냐 범작이냐 규정부터 하려 들지 않고, 언젠가 호기심에 집어 들었을 듣보잡음반들을 꺼내 먼지 떨어 들어보련다. 넓은 들판에서 이름 모를 꽃들을 살펴보듯이. 마이너면 어떻고 메이저면 어떠랴. 지음(知音)에게 소중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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