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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60(2016.05.09. 발간)

 

[현장에서] 중등교사로 살아가기

자본론으로 아이들에게 사회적 상상력을!

 

권용해 / 안산 ㅇㅇ 고등학교

 

 

 

제가 담당하고 있는 국어교과의 성격에 대한 많은 설명 중 가장 못마땅한 이론은 국어가 소위 도구교과라는 것입니다. 다른 교과 선생님들도 이와 비슷한 관점에서 아이들이 문항을 이해하지 못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국어공부, 또는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합니다. 전적으로 틀린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모국어 학습이 단순히 텍스트에 대한 이해력이나 표현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면 언어 일반에 대한 학습과 구별되지도 않을뿐더러, 언어에 담겨진 세계를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게다가 도구교과라는 표현은 국어교사로서 솔직히 자존심이 좀 상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국어 공부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 한다는 바람 때문입니다. 하지만 입시에 몰입되어 있는 공부가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고도 험합니다. 입시 위주의 교육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는 논리는, 우리 스스로 반성이 없는 수업을 할 뿐이라는 걸 인정하는 건 아닌지 되묻게 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작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에 편성되어 있는 고전’(얼마 후 사라질 과목이기는 하지만)은 제가 크게 욕심을 부렸던 과목입니다. 정규 수업 시간에 노골적으로 자본론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내용이 너무 어렵고 고등학생들에게 굳이 읽힐 필요가 있겠냐는 생각도 있을 수 있지만, 아이들을 괴롭히는 다양한 문제들이 결국에는 자본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자본론을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이유로는 충분할 것입니다. 못된 체제는 이야기하지 않고 개인의 노력만 강조하는 것이야말로 현 시스템에서 이득을 보고 있는 자들이 만들어낸 언어적 기만일 테니까요. 아마도 국어는 이러한 지배자들의 언어적 기만에 맞서기 위해 배우는 과목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고전 과목을 위해 별도로 마련된 교과서는 있다지만 이미 자본론을 교재로 삼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상, 교과서는 제법 이름이 알려진 글들을 맥락 없이 수록해 놓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물론 좋은 글들이겠지만 교과서에 수록된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나 카프카의 변신과 같은 글은 자신 있게 가르칠 수 있는 내용도 아니었고, 동방견문록이나 오디세이아도 지루하고 현실의 아이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또한 지금이 아니라면 과연 언제 자본론을 수박 겉핥기식으로라도 접할 수 있을까 싶었기에 다른 글들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과목의 성격 상 얼마든지 교과서 밖의 다른 글을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고, 관리자들이 수업 내용에 대해 우려를 하더라도 이 과목은 원래 그런 과목이라며 당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더구나 자본론의 표지에 경제학 고전이라고 대놓고 쓰여 있는데 고전 시간에 다루지 못한다면 이것이야말로 교실을 편향된 공간으로 만드는 일이겠지요. 자본론을 가르치기 위해 이런 구차해 보이는 명분을 찾은 이유도 혹시 제가 자기검열을 하게 되지는 않을까 싶어서였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가르치지 않을 수 없다는 확실한 결론을 얻어야 아이들 앞에서도, 그리고 관리자들이 방해를 한다 해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전태일 노동대학에서 공부를 하면서 자본론을 뒤적거린 지 수년이 지났지만 그 난해한 책을 전문 연구자만큼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사회의 모든 현상을 명쾌하게 설명해 줄 능력도 없지만 최소한 우리가 왜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하는 물음에 대한 일반적인 수준의 대답은 해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잘 모르겠더라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으로 파고들면 이해 못할 것도 없을 거라는 생각도 있긴 했습니다. 게다가 다행스럽게도 자연계열 고전을 저 혼자 전담하게 되면서 교과 내용 구성과 텍스트 선정의 권한을 혼자 틀어쥘 수 있었기에 이번 기회에 맘껏 날뛰어 볼 수 있는 환경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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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의 생각이었는지 모르지만 이제 10년째로 접어드는 교직 생활 중 작년 고전 시간이 가장 역동적으로 수업을 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4년째 담임에서 배제되고 지금도 수업계로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꼴통(?) 기질이 한풀 꺾일 때쯤 시작한 자본론 수업은 수업에 대한 새로운 의욕을 가져왔고, 더 날카롭고 치열하게 투쟁하는 삶이야말로 아이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확실한 길이라는 걸 깨닫게 했습니다.

 

자본론 수업을 처음 시작하면서 농담 같은 진담이었지만, 아이들에게 아마 정규 수업 시간에 자본론을 교재로 공부하는 학생들은 너희들밖에 없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알려주었습니다. 간혹 도대체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는 아이들이 있으면 시험 문제를 나중에 전부 알려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달래가면서요.

실제로 시험 문제를 모두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이래도 돼냐는 아이들에게는 시험은 너희가 꼭 알아야 하는 것들을 알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나는 너희가 반드시 알고 있었으면 하는 것을 문제로 낼 것이고 너희들은 그것을 확실히 공부하면 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라면 반발을 할만도 했을 텐데 다행히 별 불만들은 없었습니다. 되묻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등수보다 중요한 건 깨달음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저 혼자 믿고 싶습니다.

 

시험 문제는 이런 수준이었습니다.

화폐와 상품이 자본으로 전환되기 위한 조건에 해당되지 않는 것은?

화폐생산수단생활수단 소유자의 등장

노동자를 자기의 노동조건으로부터 분리하는 과정

농노와 같은 직접적 생산자를 임금노동자로 전환시키는 과정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생산수단을 소유하여 착취가 사라지는 과정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고 유리되어 있는 노동의 판매자의 등장

 

자본가 계급이 탄생하는 순간에 일어나는 사회적 변화로 옳지 않은 것은?

농노적 예속과 길드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

봉건적 착취를 자본주의적 착취로 전환시키는 과정

근면성실하게 부를 축적한 사람들과 기술적 혁신의 결합

enclosure를 통해 농노들로부터 토지를 폭력적으로 수탈하는 과정

모든 생산수단을 박탈당해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해야 하는 노동계급의 등장

 

[서술형] 시초축적의 본질적 측면 두 가지를 서술하시오.

[서술형] 노동시장이 다른 상품시장과 다른 점을 두 가지 서술하시오.

 

다들 아시겠지만 자본론은 1장부터 숨이 턱턱 막힙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형성과 진행 과정을 다루고 있는 부분들은 아이들과 함께 읽어 나가기에 큰 무리가 없었습니다. 특히 시초축적을 다루고 있는 24은 아이들도 꽤나 흥미롭게 받아들이곤 했습니다. 또한 13장 기계와 대공업역시 산업혁명에 대한 대략적인 상식을 지니고 있는 아이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6편 임금에 대한 부분도 공부해 볼만 했습니다. 아이들 덕분에 저도 간만에 열공할 수 있었기도 하고요. 문장이 그리 친절하지 않은 관계로 진도는 빠르지 못했지만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던 학기 초와는 달리, 학기 말에는 대답도 곧잘 하면서 정부의 노동개혁안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는 아이들도 있어서, 이에 대한 수업을 하고 시험문제로 출제하기도 했었습니다. 정답이야 제 성향을 아는 아이들이라면 간단히 알 수 있었지요. 대부분의 아이들이 저화 함께 2년 째 수업을 하다 보니 여러 선생님들이 함께 출제를 한다 해도 어떤 문제가 제가 낸 건지 쉽게 골라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 듣기 싫은 이야기는 아니지요.

 

올해 3월 제 개인적으로 매우 안타까운 교과협의회 결정이 있었습니다. 현재 2학년에 편성되어 있는 고전 과목을 3학년으로 올리고 3학년에 있는 독서와 문법을 2학년으로 내려서 문법 교육을 강화한다는 결정이었습니다. 3학년 때는 EBS를 많이 풀어봐야 하는데 문법적 기초가 부족하니 2학년 때 문법을 많이 배우고 올라오는 게 좋겠다는 얘기죠. 자본론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일단 아이들과 고전을 배우면서 본격적으로 세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은 올해가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몇 년 안에 그나마 있던 고전은 사라지고 매체언어라는 요상한 과목이 생긴다고 하네요. 하긴 3학년에 편성되어 있는 고전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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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자본론만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자본주의를 모르고서는 이 부도덕한 체제를 넘어설 수 있는 사회적 상상력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애매하게 신자유주의 반대를 얘기할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란 무엇이고, 이로 인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적나라하게 얘기하는 수업이 아이들에게는 절실합니다. 자본주의 시대를 살면서 자본주의를 모른다면 이를 넘어서는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상상은 불가능하니까요. 어찌 보면 국어라는 과목이 기성질서를 가장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 과목이지만 반대로 이를 앞장서서 깨칠 수 있는 과목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태평천하를 가르치면서도 왜 종학이를 사회주의자로 설정하였는지, 그렇다면 사회주의란 무엇인지 이야기하며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인간다운 세상에 대해 꿈꾸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것이 위기의 시대가 교사에게 부여한 사명일지도 모릅니다.

 

어제는 세월호 2주기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다시는 이러한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자는 다짐은 세월호 이후의 교육에 대한 적잖은 고민과,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만들자는 약속, 그리고 안전정의진실연대배려공감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자는 약속을 낳았습니다. 문제는 이 좋은 언어들을 다 담아낼 상상력이 우리에게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독점은 나쁘다고 하면서 자본주의는 합리적이라는 교과서를 긍정하고,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면서 자본주의는 인정하는 비상식으로는 안전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 수 없으니까요.

 

내일도 아이들과 더 좋은 세상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존 레논의 <Imagine> 가사처럼 평화와 인류애가 가득한 세상, 탐욕과 굶주림, 그리고 전쟁이 없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누군가 꿈을 꾸고 있다고 말한다면, 꿈조차 꾸지 못하는 그를 딱하게 여기며 함께 꿈을 꾸자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갈 세상이 우리의 상상력을 벗어날 수 없다면 모든 불가능한 것들을 상상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요? 세상의 모든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함께 현실의 굴레를 벗어나는 상상으로 교실을 가득 채운다면 2년 전 별이 된 우리 아이들도 하늘에서 행복하게 세상을 바라볼 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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