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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59(2015.12.15. 발간)

 

[책소개]

혁신학교를 넘어 민주학교로

마이클 애플의 민주학교

 

이형빈 / 광주여대 교수

 

 


 

지금까지 혁신학교는 아이들을 변별과 통제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획일식, 일제식 교육을 탈피하고 참여적인 주체로 성장시키고자 노력해왔다. 그리고 상당한 성과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노력이 불평등과 부정의를 객관적인 것처럼 재생산하고 있는, 교육이라는 제도화된 시스템을 얼마나 극복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다. 그것은 학교혁신 운동이 혁신학교 정책으로 제도화되었던 순간 맞이한 운명인지도 모른다. 학교가 조금 좋아질 수는 있어도, 사회를 훨씬 나아지게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이런 질문이 여전히 떠나지 않는다. 학교는 나중에 커서도 가난하게 될지 모르는 많은 아이들, 인정받지 못하게 될지 모르는 많은 아이들, 대표되지 못할 지도 모르는 많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혁신학교는 뭔가 다를 수 있을까?

- 성열관, 력수업과 생활협약으로 나타난 혁신학교의 정체성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엮음, 혁신학교에 대한 교육학적 성찰, 147

 

열악한 학교 환경에 분노한 일단의 5학년 학생들은 시와 교육 당국 관리들이 수년 전에 약속했던 새로운 학교를 지을 수 있도록 압력을 가하기로 했다. 당국의 이러한 해태가 그들이 살고 있는 것과 같은 저소득층 지역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었지만, 이 지역은 다른 지역과 달리 학생들이 행동에 나섰다. 일 년 내내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시위를 조직하고, 신문 등에 기고를 하고, 비디오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배포하고, 공무원들을 만나는 등의 활동을 했다. 또한 이들은 웹사이트를 만들었으며,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연구, 조사, 인터뷰 등을 진행했다. 새로운 학교를 쟁취하려는 이와 같은 행동은 곧바로 교육과정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는데, 이는 학생들이 자신들의 행동에 다양한 범위의 기술들을 익히고 바로 적용해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다.

마이클 애플제임스 빈 엮음, 마이클 애플의 민주학교1920.

 

 

세계적인 교육학자 마이클 애플 교수가 지난 10월 말에 한국에 세 번째로 방문했다. 원래는 작년에 방문이 예정되었고, 이에 맞추어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에서는 그의 책 교육은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를 번역 출간했다. 그러나 애플 교수의 건강상의 문제로 방문이 취소되고 올해 다시 방문이 예정되었을 때,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에서는 그의 저서 Democratic Schools를 번역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판단하여 얼마 전 마이클 애플의 민주학교라는 이름의 번역서를 출간했다. 이 책이 특히 한국의 혁신학교 운동에 주는 시사점이 크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교육은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는 미국, 브라질, 한국 등지에서 진행된 교육운동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교육을 통해 사회를 변혁할 수 있는 전략으로서 이데올로기적 우산’, ‘탈중심 연합’, ‘반헤게모니 전략’, ‘감성적 평등’, ‘장구한 혁명’, ‘공적 지식인으로서의 교사등의 개념이 제시되었다. 이 책이 다소 거시적이고 역사적 맥락에서 교육과 사회 변혁의 관계를 것이라면, 마이클 애플의 민주학교는 미국의 다섯 학교의 사례를 통해 단위학교 차원에서의 실천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마이클 애플이 바라 본 미국의 혁신학교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의 나라인 미국에도 혁신학교라 불릴 만한 학교들이 있다. 그리고 그 뿌리는 193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그 중심에는 민주주의와 교육, 경험과 교육의 저자 존 듀이가 있다. ‘프래그머티즘, 아동 중심 교육철학, 경험 중심 교육과정론, 민주주의 교육등으로 유명한 존 듀이는 자신의 이론을 실천하기 위해 진보주의 교육협회를 결성하고 시카고 대학 내에서 실험학교를 운영하였다. 이러한 진보주의 전통에 입각한 실험학교가 미국 전역으로 확대되었으며, ‘8년 연구라는 유명한 종단연구를 통해, 이러한 학교의 졸업생들이 대학에서 오히려 뛰어난 성과를 보이고 있음이 증명되었다. 이는 마치 한국의 혁신학교의 효과성을 증명하기 위해 혁신학교 학생들이 학교만족도, 자아존중감,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보여 준 각 시도교육청의 정책연구보고서 내용과 유사하다.

그러나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호 충격 이후 미국에서 학문 중심 교육과정론이 득세를 하며 진보주의 학교는 상당히 위축된다. 보수주의자들은 미국 학생들의 학력저하를 낳은 원흉으로 존 듀이를 지목하면서 진보주의자들에게 빼앗긴 헤게모니를 되찾아갔다. 더욱이 1980년대 레이건의 집권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이 본격화되고 최근 부시 행정부의 NCLB(낙오자 방지법)을 거쳐 신자유주의들과 신보수주의자들은 강고한 헤게모니 연합을 구축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교육을 상품화하는 각종 정책들(바우처 제도, 학교선택제 등)을 쏟아냈고, 신보수주의자들은 마약의 남용, 총기사고, 미혼모 증가 등에 따른 위기의식을 조장하며 학교 교육과정에 전통적 가치(가족의 윤리, 국가에 대한 충성, 개인적 인성에 대한 강요 등)을 반영하였다. 이 과정에 대해서는 마이클 애플의 저서 미국의 교육개혁, 옳은 길로 가고 있나, 문화정치학과 교육에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하지만 많은 교육자들의 노력으로 진보주의 전통을 이어가는 학교도 꾸준히 설립되었다. 뉴욕 시의 빈민촌에서 혁신교육의 모범을 보인 센트럴파크 이스트 학교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 학교의 설립자인 데보라 마이어의 저서도 우리가 신뢰하는 학교,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마이클 애플의 민주학교에서 애플은 미국의 다섯 학교에 대한 관찰을 통해, 이들 학교가 듀이의 진보주의를 뛰어넘은 민주적 학교(Democratic Schools)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고 하였다. 그가 말하는 민주주의란 단지 제도적 차원의 문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인 생활 방식의 기초를 이루는 원칙과 가치를 포괄하는 것이다. 마이클 애플은 이 원칙과 가치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개인 및 소수자들의 권리와 존엄성에 대한 관심

타인과 공공선에 대한 관심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개인 및 집단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

사람들이 가능한 많은 정보를 얻게 하도록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것

민주주의가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

민주적인 삶의 방식을 확장시키는 사회 제도들의 조직체

 

마이클 애플이 말하는 민주학교는 듀이가 주창한 진보주의적 학교의 특징을 포함하되, 그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고양하는 학교라 할 수 있다. 마이클 애플이 보기에, 진보주의 학교들이 인본주의적이고 아동 중심적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학교는 학생들의 자아존중감을 높여주고 학습문화를 개선하여 사회적 불평등으로부터 오는 곤란함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해야 하지만, 더 나아가 학생들이 스스로 그러한 불평등을 초래한 사회적 조건을 개선하며 민주주의와 평등을 위해 적극적으로 실천하도록 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학생들이 참여하는 교육과정, 학생들이 바꾸는 사회

 

이 책에는 다섯 학교의 사례가 나온다. 이 학교들은 대부분 극도로 빈곤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설립된 학교이다. 미국의 학교는 한국과는 달리 공립학교라 할지라도 학교마다 학교 여건이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연방정부가 교육재정을 책임지지 않고 지방정부가 걷는 지방세로 학교가 운영되기 때문에, 지역마다 학교재정이나 교사들의 임금까지도 차이가 크게 난다. 더욱이 미국은 한국보다도 거주지 계층분화가 심각하다. 대부분의 중산층 유색인종은 교외에 살면서 자녀들을 비싼 사립학교에 보내는 반면, 대부분의 노동계급이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도심의 슬럼가에 살면서 자녀들을 열악한 시설의 공립학교에 보낸다. 이런 지역의 학교들은 사실상 방치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 책에 보면 총기 사고로 인해 학교 유리창에 총탄 자국이 남아 있어도 이를 그대로 방치해 놓고 있으며, 화장실은 턱없이 부족하며 매우 불결하다.

그러나 이들 학교에서는 이러한 학생들의 삶의 여건 자체가 일종의 교육과정 주제가 된다. 학생들은 자신을 둘러싼 삶을 개선하기 위해 스스로 학습 주제를 선정하고, 교사들과 함께 자신의 역사와 사회적 조건을 탐구하며, 열악한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실천을 보인다. 이 글의 서두에도 언급했듯이 시카고의 카브리니 그린 학교에서는 열악한 학교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학생들이 집단적으로 의원들을 만나 설득을 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모습 등은 참으로 눈물겹다. 매사추세츠의 린지 직업학교에서는 인문교육과 직업교육의 분리를 극복하고 학생들이 자신의 지식과 기능을 활용하여 도시공간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시티웍스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위스컨신의 프래트니 학교에는 남미계 학생이 65퍼센트, 아프리카계 학생이 20퍼센트를 차지하는데, 이 학교에서는 모국어와 영어를 동등한 자격으로 배우는 이중언어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자각하고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이는 한국의 혁신학교에서 흔히 운영하고 있는 주제 중심 통합교육과정과도 유사하지만 이보다는 훨씬 급진적이다. 예를 들어 프래트니 초등학교에서 교사들과 학생들이 시행착오를 거치며 끊임없이 새롭게 개발해 온 교육과정 주제는 다음과 같다.

 

1주제 : 우리는 우리 자신과 세상을 존중한다.

나는 중요한 사람이다.

우리 모두는 문화적 유산(인종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평화롭게 살 필요가 있다.

 

2주제 : 우리는 이중언어, 다문화 학습자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우리는 다양한 언어, 문화, 경험이 있음을 인정하고 이를 존중한다.

우리는 수많은 언어와 수많은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우리는 만화책, 잡지, 대중매체 등에 들어 있는 고정관념에 맞서 행동한다.

 

3주제 : 우리는 지구 행성에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아프리카계는 미국에 많은 공헌을 했다.

우리는 여성들의 공헌을 인정한다.

우리는 편견과 인종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4주제 : 우리는 세상의 이야기를 함께 나눈다.

내 가족의 이야기는 중요하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에 대해서 배운다.

우리 모두는 이야기꾼과 배우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교육과정은 프레이리가 브라질 성인농민들을 대상으로 시행했던 문해력 교육의 과정과 유사하다. 프레이리는 민중들의 삶 속에서 스스로 탐구할 주제, 생성적 주제를 발굴하고 이를 중심으로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새롭게 명명(命名)하며, 자신의 의식을 해방하고 변혁적 실천에 참여하는 교육과정을 제시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민주학교에서도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인식하며 이를 변화시켜 나갈 힘을 키운다. 이들이 졸업을 한 후에도 이러한 힘(power)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권력(power)를 형성해 나갈 수 있도록 학교 교육과정은 이들에게 임파워먼트(empowerment)의 기회를 제공한다. 학생들이 참여하여 만드는 교육과정 속에서 배움이 일어나는 순간이 실현된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 과정이 참으로 눈물겹도록 감동적이다.

 

한국의 혁신학교 운동에 주는 시사점

 

한국의 혁신학교는 어떠할까? 한국의 혁신학교는 대체로 듀이의 진보주의적 학교, 즉 학생을 중심에 놓고 학생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의 혁신학교는 분명 견고한 관료주의와 경쟁교육의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 교육의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수업의 방식을 잠들었던 아이들이 일어나고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경쟁과 차별이 아닌 우정과 협력을 배우고 있다. 그런데 이 학생들이 혁신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불리한 사회경제적 배경으로 인해 어차피 가난하게 살아가게 될 학생들에게 학교는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우리 학생들이 단지 학교에서 행복한 경험을 하는 것을 넘어, 자신들이 살아가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을 길러가고 있는지 함께 성찰해야 할 것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생태, 인권, 노동, 평화 등 진보적 가치를 가르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교사들이 이러한 일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나아가 교육과정과 수업, 평가의 방식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단지 주제 중심 통합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참여형협력형 수업을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일상적인 교육과정과 수업, 평가 속에서 배제와 통제의 질서를 넘어 민주주의와 평등의 구조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 학생들이 학교와 사회를 바꾸어 나갈 힘을 얻어가야 할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필자의 졸작 교육과정-수업-평가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를 참고하는 것도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일반학교, 혁신학교 2년차, 혁신학교 5년차를 맞이한 중학교를 대상으로 교육과정-수업-평가의 유형 속에 담긴 사회학적 코드를 분석해 보았다.)

마이클 애플 교수는 지난 10월 전교조 서울지부에서 진행된 간담회에서 민주학교2권을 써 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가 새롭게 쓸 책에, 아니 우리가 함께 쓸 책에, 한국의 학교들이 소개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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