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가(輓歌) - 심 훈
궂은 비 줄줄이 내리는 황혼의 거리를
우리들은 동지의 관을 메고 나간다.
수의(壽衣)도 명정(銘旌)도 세우지 못하고
수의조차 못 입힌 시체를 어깨에 얹고
엊그제 떠메어 내오던 옥문(獄門)을 지나
철벅철벅 말 없이 무학재를 넘는다.
비는 퍼붓듯 쏟아지고 날은 더욱 저물어
가등(街燈)은 귀화(鬼火)같이 껌벅이는데
동지들은 옷을 벗어 관 위에 덮는다.
평생을 헐벗던 알몸이 추울상 싶어
얇다란 널조각에 비가 새들지나 않을까 하여
단거리 옷을 벗어 겹겹이 덮어 준다.
( 이하 6행 검열로 인해 삭제, 복구 불능 )
동지들은 여전히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숙인채 저벅저벅 걸어간다.
친척도 애인도 따르는 이 없어도
저승길까지 지긋지긋 미행이 붙어서
조가(弔歌)도 부르지 못하는 산 송장들은
관을 메고 철벅철벅 무학재를 넘는다.
.... 요즘 세상에서는 우리가 다시 ‘시’를 읽어야, ‘시’를 가까이해야 하리라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옮겨보았습니다.
배달호 동지의 죽음을 잊은지 언제던가요? 김주익 동지의 죽음은 아직 우리 뇌리에 남아, 지금 가슴에 검은 리본으로 꽂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어젠가 그젠가 세원테크 이해남 동지가 또 제 목숨을 버렸습니다. 노동계급에게 ‘분노의 불꽃’을 일으키는 일은 배달호 한 사람으로, 김주익 한 사람으로 족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불꽃이 아직 모자란가 봅니다.
유서를 곁들인 메모장에서 이해남 동지는 "여기서 차비 7백원, 물통 3천원, 기름 1만원, 계 1만3천7백원"이라고 분신에 따른 '비용'을 계산한 뒤 "남은 돈으로 뭘 하지"라며 내일모레로 다가온 아들 생일을 떠올리며 "△△ 케잌사서 보낼까? 낼 모레가 △△ 생일인데 어떻게"라고 적었습니다. 김주익과 이해남이 두고간 가족들을, 아이들을 떠올립니다. 우리는 지금 바람찬 일제하 식민지 시절도 다시 돌아간 걸까요?
추상적인 논설 몇 줄만으로 아니 됩니다. 한진중공업 35미터 크레인 위에 거세게 불어닥치는 겨울바람 속에 꽁꽁 얼어있는 김주익의 시체와 이해남이 남기고간 자식들의 단칸방 씽크대를 떠올려야 합니다. ‘시’를 뒤져 거기 철철 넘치는 고단한 민중의 삶을 느껴야 합니다.
오래 전에 문익환 목사가 어느 집회엔가 나와서 아무 군소리 없이 ‘사람 이름들’만 외쳐 부르고 내려갔다고 합니다. “김상진 열사여! 000 열사여! 000열사여!.....”
땅 밑에서 들으시라.
배달호 동지여! 이경해 동지여! 김주익 동지여! 이해남 동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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