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국민교육연대 출범의 의의 2003-10-15
범국민교육연대 출범에 부쳐
지난 10월 11일, 기독교회관에서는 백여 명이 모여 '연대 단체'를 하나 세웠다. 'WTO교육개방저지와 교육공공성 실현을 위한 범국민연대'가 그것이다. 그동안 민중운동진영에서 연대단체가 무수히 명멸해간 역사를 아는 사람은 '또 하나의 그렇고 그런 단체가 하나 생겼군' 하고 무심히 지나칠 지 모른다. '간판'을 다는 일이야 손쉬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학부모단체와 제휴해 오면서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했던 전교조로서는 이 단체의 출범이 정말로 소중한 결실이 아닐 수 없다. 마치 거대한 대장정(大長征)의 첫 발을 내딛는 기쁨이라고나 할까. 그 까닭은 두 가지다.
첫째, 노동자 민중끼리 똘똘 뭉쳤다는 이야기다. 그동안의 교육시민운동은 중산층 지향의 학부모단체들이 다수 활약(?)하는 바람에 올바르게 '민중 지향'을 견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신자유주의 지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같은 단체뿐 아니라, 전교조 출범때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탄압받는 전교조를 엄호했던 '참교육학부모회'조차 세월이 흐르면서 '수요자중심 교육론' 같은 신자유주의 담론을 적지않이 받아들여 '노조=이익집단'이라며 비난을 일삼고, 기성 정권을 두둔하고 나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제는 동지였건만 오늘은 갈등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지금까지도 연대틀은 운영돼 왔다. 약칭 '교육연대'가 그것이다. 그러나 근래 들어와 이 연대틀에서 '전교조를 내쫓았으면...'하는 요구를 몇몇 단체가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전교조가 사라져 줘야, 그 연대틀을 '친정부 친신자유주의 흐름'쪽으로 자유롭게 이끌 수 있으니 말이다.
전교조로서는 '노동자 학부모단체'에 대한 바램을 오래전부터 품어왔다. 최근 경기나 부산에서 뚜렷한 진전이 있어 다행스럽다.
갓 출범한 '범국민교육연대'도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을 비롯해 민중진영의 내로라 하는 단체들이 다 결합되었다. 그러니 결성의 '기세'야 대나무를 쪼개고(파죽), 하늘을 찌를 수도 있다. 학부모단체로서는 참교육학부모회에 실망하여 나온, 방향이 올곧은 '함께 하는 교육시민모임'과 서민의 절실한 요구를 대변하여 무럭무럭 커나가고 있는 '학교급식 네트워크', 문제의식이 진지한 '학벌 없는 사회', 게다가 소외된 자들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장애인교육권연대', 척박해진 대학에서 꿋꿋이 뜻을 펼치는 대학생단체들뿐 아니라 '영화주권'을 지켜내는 '스크린쿼터문화연대'까지 죄다 모여들었으니 이 '기세'를 꾸준히 펼치기만 한다면 시민민중 교육운동을 본때있게 벌여볼 만하다. 핵심 일꾼들이 결합하여 실질적으로 큰 일을 한 '문화연대'의 뚝심도 이 연대틀의 장래를 밝게 한다.
기쁨의 두 번째 이유는 '범국민교육연대'가 본격적인 교육개혁의 상을 제출할 계획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개혁'이라는 낱말만큼 혼란스런 내용을 담은 낱말도 없었다. 95. 5. 31 교육개혁안에 대해서도 '개혁은 좋은 것 아니냐'는 단순한 통념과 우리는 오래 힘들게 싸워야 했다.
아직도 우리는 교육개방/시장화 저지의 수세적인 싸움에 온힘을 기울여 맞설 수밖에 없지만, 이제는 우리의 '대안'을 제시할 여력도 웬만큼 갖추게 된 것이다. 진정한 대안은 '자율'과 '다양성'과 '분권화'의 자유주의 수사학과 무관하다! 실질적 교육평등과 공공성을 다시 들어올려야 한다! 무상교육과 중등교양교육의 보편적 보장(실업계열 폐지), 대학평준화가 '상식'이 되어야 한다! 입시경쟁과 사교육이 창궐하여 민생고를 가중시키는 현실을 타개할 길은 이 길뿐이다!
한국의 교육이 그동안 여러 결함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활력'을 보여왔던 비결은 '평준화 체제'에 있다. 한국의 교육은 식민통치에 따른 양반계층의 몰락, 해방정국의 격변에 따른 지주계급의 몰락으로 계급 격차가 엷어진 상태에서 한동안 비교적 평등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도성장이 벽에 부딪치고 계급구조가 굳어지면서 서민들의 똥통학교(?)와 귀족학교를 갈라치는 '불평등 교육체제'의 도입 압력이 전방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출구 찾기에 짜증이 난 부유층은 아예 '조기 유학' '미국시민권 획득'을 통하여 별개의 트랙을 개설해 나갔다. 한편으로는 과잉팽창한 대학 진학률과 깊어가는 경제위기로 말미암아 대학이 고학력 실업자들을 양산하는 '취업 대기소'로 전락했다. 한국 교육은 총체적인 위기 국면에 돌입해 있는 것이다.
'범국민교육연대'는 이 위기를 타개하는 일에 앞장서야할 책무를 떠안고 있다. 아래로는 천만 학생의 교육복지를 위하여 눈 앞의 '무상 급식' 실현에 함께 할 일이요, 위로는 청년학생들의 진로를 뚫을 '공공일자리 창출운동'과 모든 성인의 평생교육 기회보장까지, 민중이 절실히 간구하는 교육적 요구들을 '사회적 의제'로 들어올려야 한다. 위기는 점점 깊어가고, 시간은 언제까지나 우리를 기다려주는 게 아니다. 불평등체제가 완강하게 자리잡기 전에 우리의 길을 뚫어낼 수 있느냐는 문제다. 지구상의 여러 사회 중에는 변화를 추동할 활력을 다 잃고 가라앉은 사회마저 없지 않다. 우리들 학교의 미래는 어느쪽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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