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등교육에 대한 OECD 검토보고서>의 재해석
- 언론과 교육부의 아전인수 경쟁
문제의 발단
지난 2월 23일(금) 교육부는 언론사에 보도자료 한 종을 뿌렸다. ‘한국 고등교육 경쟁력 강화를 위한 OECD의 제언’ 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는 2005년 10월에 OECD가 파견한 전문가들이 한국을 방문하여 교육부, 대학총장, 전경련 등과의 면담을 통해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작성한 ‘OECD 검토보고서’ (이하 보고서)의 주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보고서는 한국 고등교육 정책의 방향과 구체 과제를 제시하고 있는데, 노동시장과의 연계강화, 고등교육 질 제고, 지배구조와 규제의 자율화 등이 주요 내용이다. 그런데 정작 교육부가 정리한 보고서의 주요 내용에 대해 몇몇 언론들이 다른 해석을 내놓으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이를테면 보고서가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3불 정책(고교등급제, 본고사, 기여입학제 금지)의 폐지를 권고하고 있다는 일부 언론의 해석에 대해 교육부는 결코 그런 적이 없다며 맞대응을 했다. 또한 등록금, 사립학교법, 정원 등 규제를 철폐하라고 권고했다는 해석에 대해서도 교육부는 일일이 원문을 인용하며 사실이 아니라는 해명을 내놓았다.
언론의 오독(誤讀)
진실게임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문화, 조선, 중앙, 동아일보 등은 OECD 보고서가 한국의 고등교육정책이 규제 일변도여서 자율성 확대를 위해 각종 규제를 철폐할 것을 강조했다며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특히 보고서가 규제정책의 대표적인 사례로 3불 정책, 대학정원, 등록금, 개정된 사립학교법을 들고 있어 OECD의 권고에 따라 어서 빨리 이 규제를 없애라는 압력까지 가한다.
“3불 정책, 입학정원 규제, 학생· 교수 정원 규제, 등록금 규제, 개정 사학법 등 다섯 가지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중략) 교육부 역할을 대폭 축소하라고 권고했다. 대학· 정부 관계자로 구성된 고등교육위원회를 설치해 교육부 기능을 민간으로 대폭 이양하고, 교육부는 재정지원과 회계감독만 하라는 것이다.” - 중앙일보 2. 27
“OECD가 우리 정부에 대해 대학입시의 ‘3불 정책’을 사실상 없애라고 조언했다. (중략) ‘고등교육위원회’를 만들어 대학행정은 그 위원회에 맡기고 교육부는 손을 떼라는 말까지 했다.” - 조선일보 2. 26 기사
그러자 교육부가 발끈했다. 언론의 ‘3불 정책 폐지 권고’ 주장에 대해 보고서는 “투명성 제고를 위한 제도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고등교육 관리시스템이 향상되지 않은 현 체제 하에서 3불제의 급격한 폐지는 어렵다”고 권고하고 있다며 ‘3불 정책 폐지 권고’ 주장은 사실이 아님을 보였다. 또한 ‘고등교육위원회를 신설하여 교육부 기능을 대체하고 교육부는 재정지원과 회계 감독기능으로 재조정할’ 것과 ‘대학행정은 고등교육위원회에 맡기고 교육부는 손을 떼라’는 언론보도에 대해서도 교육부는 “고등교육위원회는 대안 중의 하나일 뿐, 곧바로 위원회를 신설하라고 제언한 바 없다”며 보고서를 인용하여 반박했다(교육부 해명자료 참조).
일부 언론의 주장에 대해 보고서의 원문을 놓고 대조해보면, 언론의 오독은 명백하다. 즉 보고서는 3불 폐지, 등록금 규제 폐지, 학생정원 규제 폐지, 교육부 축소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은데, 언론들은 이를 확대해석하여 OECD 검토단이 모든 규제를 없애라고 권고한 것처럼 보도하였다.
교육부가 먼저 규제완화 주장
보고서에 대한 언론의 오독과 왜곡이 명백한 반면, 교육부의 해명은 영 미덥지가 않다. 일일이 원문까지 대조해가며 언론보도에 대응하는 교육부의 주장이 그다지 설득력이 없는 이유는 보고서의 시각이 기본적으로 대학운영에서 정부의 규제와 통제를 점차 축소하라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몇 가지 단서조항을 달고 있긴 하지만 대학정책 전반에 있어 자율화와 다양화를 추구하라는 것이 권고사항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번 보고서가 나오기까지는 해외 전문가평가단의 한국 방문과 함께, 교육부가 교육개발원에 의뢰해 작성한 “한국 고등교육 체제 진단 및 개선 방안 연구” 라는 배경보고서가 전문가단에게 주어졌다. OECD 검토보고서는 한국 방문과 관계자 면담, 그리고 한국이 제출한 배경보고서를 토대로 작성되는데, 이 배경보고서가 전문가평가단에게는 중요한 참고자료가 된다. 그런데 정작 한국이 제출한 배경보고서가 학생선발방법, 사립학교 설립· 운영, 학사운영 등에 대한 현행 법령과 제도들을 ‘규제’로 표현하고 있으며, 대학 자율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교육부는 지난 2004년부터 이들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대학자율화 추진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런 과제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라고 제안하고 있다. 참고로 ‘대학자율화 추진위원회’가 정한 4대 과제는 다음과 같다.
자율화 영역
자율화 내용
입시·학사·정원의 자율화
·대입전형기본계획 수립을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위탁함
·수도권 및 국립대를 제외한 학생 정원책정은 대학의 자율로 맡김
대학 교원 인사 자율화
·교원인사자료의 관리 및 교원 통계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위탁함
·교원 임용 관련 규제 완화 및 자율화
사학법인 자율화
·사립대학운영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핵심적 본질적 규제는 존치
·사립대 이사회 운영의 자율성 강화
국립대 운영
개선
·각종 법령에 근거한 국립대 관련 규제 완화
·총액배분 예산제의 도입으로 정부의 세부예산 편성지침 폐지
대학 자율화 4대 과제 (교육부, 2005)
이처럼 배경보고서는 현행 제도와 법령을 일단 규제로 보고 대학 자율화를 위해 이들 규제를 개혁할 것을 주문하고 있는 바, 이번 OECD 검토보고서는 이러한 한국 정부의 시각을 상당부분 수용하여 반영하고 있을 따름이다. 또한 OECD 검토보고서에서 제안한 ‘고등교육위원회’ 도 실은 배경보고서에서 먼저 제안하고 있는 내용이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이유
결국 OECD 전문가평가단은 한국정부가 제출한 배경보고서를 충실하게 수용하여 제언을 하고 있음에도 교육부는 언론들이 원래 내용을 왜곡했다고 난리법석이다. 특히 3불 정책을 놓고 봤을 때, 보수언론의 집요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3불 정책만은 고집스럽게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대학입시에서 특정 고교 졸업생 우대, 대학별 본고사 실시는 이미 널리 행해지고 있다. 기여입학제도 마찬가지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식의 학업성취도, 나아가 대학서열까지 규정하는 현실에서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대학입학, 또는 원하는 대학입학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상위권 대학입학은 개인의 능력이 아닌 배경이 좌우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기여입학제라 할 수 있다. 현행 제도의 허점을 틈타 이미 3불 정책은 무력화되었는데, 교육부만 ‘지킬 건 지킨다’며 홀로 보수언론과 맞서 싸우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 보수언론은 말이 되든 안 되든 끊임없이 물어뜯고, 교육부는 막을 능력도, 지킬 것도 없으면서 큰소리치며 뒤로 슬글슬금 물러나는 모양새를 취한 결과, 고교평준화가, 3불 정책이, 사립학교법이 그렇게 무력화되지 않았는가.
어디 그 뿐이랴. 교육부는 OECD 검토보고서가 ‘국립대 법인화는 바람직’ 하다며, 공과 자랑에 바쁘다. 하지만 검토보고서 원문 어디에도 ‘국립대 법인화 바람직’ 이란 표현은 없다. 보고서 원문에는 ‘국립대학의 제도적 자율성을 추구하는 움직임은 옳은 방향이라 생각한다’고 되어 있는데, 만일 정부가 추진하는 국립대 법인화가 국립대학의 제도적 자율성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모르겠으나 실상은 결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국립대학이 사립대학처럼 죽든 살든 알아서 운영하라는 것도 ‘자율성’이고, 정부 관료가 이사회에 포함되고, 각종 행정절차마다 일일이 교육부장관의 허가를 얻어야 하는 것도 ‘자율성’인가.
사실 OECD 검토보고서가 그리 주목할 만한 내용을 제언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를 두고 언론이나 교육부나 제 입맛에 맞는 것만 취하여 부풀려 주장하는 본새가 영 꼴사납다. 교육부가 제출한 배경보고서를 검토하고, 교육부 관료, 대학총장들, 전경련 따위나 만나 견학하고 면담한다고 얼마나 충실하고 종합적인 보고서가 나오겠는가. 한낱 해프닝으로 끝났을 일을 언론과 교육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괜히 부풀리는 바람에 애꿎은 3불제만 피해를 봤으니 어디 가서 하소연을 할까….
<참고 자료>
OECD 검토보고서
http://jinboedu.jinbo.net/bbs/zboard.php?id=pds&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414
한국 배경보고서
http://www.moe.go.kr/main.jsp?idx=0306020101
교육부 보도자료
http://www.moe.go.kr/main.jsp?idx=0506010101
교육부 해명자료
http://www.moe.go.kr/main.jsp?idx=05050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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