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 보고서에 대한 반박문
한국개발연구원의 “비전 2011” 보고서는 교육문제에 대한 경제적 시각의 월권행위이며, 한국의 공교육 말살과 다름없다.
KDI(한국개발연구원)는 “비전 2011” 최종보고서에서 교육에 관련한 사항으로, (1) 사립대학 기부금입학제 허용, (2) 고교평준화 폐지, (3) 고교등급제 인정, (4) 자립형 사립고 도입, (5) 사립고와 민간학원의 통합 등을 제시하였다. 또, 진념 경제 부총리는 기자간담회에서 KDI의 보고서 내용을 언급하면서 “대학 기여입학 제도의 허용여부에 정부가 간여하기보다는 공평성과 투명성을 전제로 학생선발권을 대학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경제정책의 실패를 교육에 전가하고 있으며, 사실상 공교육의 말살을 가져올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계획은 철회되어야 하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사립대학 기부금입학제 허용은 국가의 공교육에 대한 재정투자 책무를 국민에게 전가하는 행위이다. 또한, 국민 교육기회의 평등을 경제적 능력이 지배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이다.
(1) 세계적 변화의 추세 속에서 우리나라 교육이 적응하고 발전하는 데 필요한 재정투자의 절대액은 선진국에 비해 매우 열악하며, 이는 국공립학교에 대한 투자뿐만 아니라, 사학에 대한 투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부족을 국민이 부담하는 세계 최고수준의 사교육비로 메우고있는 셈이다. 이것은 사교육의 발흥으로 이어져 공교육의 위기로 귀결된다.
(2) 사립대학의 재원확보를 위한 사립대학의 기부금입학제 허용은 국가의 공교육에 대한 재정투자 책무유기로서, 국민에게 세금과 사교육비의 부담을 넘어 대학진학에 까지 경제적 부담을 떠넘기는 행위이다. 사립대학이 우리나라 전체 대학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대학운영의 투명성이 부족하고 재단전입금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등의 사학현실 속에서 대학교육의 기회는 경제적 능력이 지배하게 되고, 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또한, 대학간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서열화가 심화될 것은 자명하며, 경제적 능력에 따른 교육기회의 지배마저도 서열화될 것이다.
2. 우리나라 경제위기, 사회문제 및 교육문제의 원인을 고교평준화 제도로 매도하는 것은 일종의 마녀사냥으로서, 경제정책의 실패를 교육문제에 전가하는 술책이며, 교육의 문외한들이 교육의 기본틀을 파괴하는 행위이다.
(1) 얼마전 중앙일간지의 보도를 보면, 서울 강남지역 부동산 투기과열 및 집값 상승의 원인을 경기도지역 고교평준화 실시에 따른 경기도 신도시로부터 서울 강남으로의 전입생수 급증으로 돌리고,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은 이와 관련하여 고교평준화가 망국의 원인이라고 까지 주장하는 등, 경제정책의 실패마저 고교평준화에 전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기에 경기도 신도시로부터 서울로 전출한 학생수가 대폭 늘었다는 주장은 허위이다. 경기도교육청의 발표에 따르면 실제로는 경기도 신도시에서 서울로 전출한 학생수가 오히려 감소하였다. 또한 경기도지역 고교평준화 실시 후, 그 지역에는 입시위주의 사설학원이 줄어들었으며, 이는 사교육열의 감소를 의미한다.
(2) KDI의 보고서와 진념 부총리의 발언을 계기로 사회각층에서는 우리나라 경제문제 뿐만 아니라 사회문제에까지 고교평준화에 그 원인을 전가하는 광풍이 일고 있다. 또한, 이들은 우리나라의 사회적, 경제적 현실과 교육발전 사이의 인과관계에서 그 원인과 결과를 뒤바꾸어 책임을 전가할 뿐만 아니라, 국민을 혼란과 혼동에 빠뜨리고 있다.
경제정책 및 운영의 실패로 인하여 우리나라는 IMF의 위기를 맞았었고, 이는 우리나라 교육의 황폐화를 가져왔다. 이는 특수목적고인 과학고 학생들을 포함한 우수 고등학생들의 대학진학 선호도에서 의치대에 극심하게 몰리는 현상과 대학생들이 전공을 무시하고 사법고시 등에만 매달리는 고시열풍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이와 같이, 오히려 우리나라의 경제위기가 고등학교 교육은 물론 대학교육에까지 영향을 미쳐 교육파행을 불러왔고, 이는 우리나라 미래사회 발전과 국가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그 여파는 오래도록 지속할 것이다.
(3) 고교평준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평준화의 문제점으로 학력의 하향평준화와 학교선택권을 들고있으나, 이는 우리나라 고교평준화의 역사에서 평준화를 반대하는 측에서 주장해왔던 오래된 논점으로서, 실증적 및 학술적 근거가 결여되어 있다.
가톨릭대 성기선 교수 및 중앙대 강태중 교수의 연구논문(평준화 정책과 지적 수월성 교육의 관계에 관한 실증적 검토, 한국교육개발원, 제2차 교육정책 포럼, 2001년 5월 24일)에 따르면 고교평준화지역이 비평준화지역에 비해 학력이 상승한 결과가 나타났으며, 2001년에 OECD 회원국 중 27개국을 포함한 32개국의 만 15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학업성취도국제비교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생의 학업성취도는 과학 1위, 수학 2위, 읽기도 6위로서, 3과목 모두 OECD 국가 평균을 훨씬 웃돌았으며, 6위인 읽기도 순위는 6위이지만 3～5위 국가와 차이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교평준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학교선택권에 대해서도 선택권이라는 용어의 개념에 혼동을 야기하고 있다. 과거 비평준화 제도 하에서의 학교선택권이란 이미 설정되어 있는 학교서열에 따라 학생의 다양한 능력을 무시하고 오직 학력만을 기준으로 입학할 가능성이 있는 학교를 고르는 선택을 의미하며, 명문학교에서 학력 우수학생만을 선택하고자 하는 의도와 맞물려 있다. 즉, 그들이 말하는 학생의 학교선택권이란 실제로는 학력이 우수한 소수 학생의 명문학교 선택과 명문학교가 우수학생만을 입학시키고자 하는 학교의 학생선택권이다.
(4) 고교입시제도를 과거의 비평준화 시절로 돌리고자 하는 의도는 우리나라 교육을 퇴행으로 몰고가 결국에는 사회발전을 가로막는 반역사적 행위이다. 또한, 비평준화 제도는 인간의 다양성을 무시하는 반교육적 제도다.
과거 비평준화 제도의 교육적, 사회적 폐해를 우리는 이미 겪었으며, 이를 극복하고자 고교평준화를 단행한지 30여년이 되었고, 거의 전국적으로 실행되고 있는 제도이다. 비평준화 제도 하에서는 중학교 교육목표가 고교진학의 단기적 목적에 둘 수밖에 없으며, 이에 중학생은 입시위주의 교육, 점수따기를 위한 주입식 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상은 초등학교에까지 파급되어 초등교육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교육(학원수강이나 과외) 현장은 국어, 영어, 수학 등 소위 중요과목에 더욱 집중되고, 사교육 열풍과 함께 교육기회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심화될 것이다.
고교진학 후에는 고교서열에 따라 학생은 물론 학부모까지 서열이 결정된다. 따라서 정신적, 지적으로 성장의 기회가 충분히 남아 있는 청소년기임에도 불구하고 조기에 많은 학생이 패배감, 열등감 및 위화감을 갖게 되어 학습에 대한 의욕을 잃어버린다.
따라서, 비평준화 제도 하에서는 미래지향적 사회발전에 필수적인, 인간의 다양한 잠재력을 찾아내고 창의력과 사고력을 계발할 수 있는 교육이 실현되기 위한 교육적 조건과 풍토가 불가능해진다. 즉, 올바른 인성교육, 전인교육뿐만 아니라 정상적 교과학습을 위한 기본조건이 무너지게 된다.
(5) 고교평준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마치 평준화가 인간 능력의 평준화를 의미하며, 이에 고교평준화 제도가 인재 양성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고교평준화의 개념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변화의 속도가 빠르게 구조적으로 더욱 복잡해지고 다양화되고 있고, 이에 인간 능력의 질적 다양성이 요구되고 있다.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는 다양하며, 이러한 인재는 경제적으로 풍족한 계층뿐만 아니라 열악한 계층에도 존재한다.
고교평준화 제도는 비평준화 제도가 필연적으로 지니는 교육적 폐해를 극복하고자 하는 제도로서, 인간 능력의 다양한 잠재력을 계발하고, 학생의 인지발달 단계를 고려하며, 시대변화에 역동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제도이다. 또한, 경제적 능력에 의한 교육기회의 불균형을 완화시킴으로써 인적자원의 축소화를 방지하여 고르고 많은 인재 양성으로 국가경쟁력을 극대화시키는 제도이다.
3. 고교간 등급제 인정은 고교평준화 제도의 기본조건을 파괴하는 수단을 의미하며, 현대판 학교연좌제이다.
고교등급제는 고교평준화 제도 시행목적에 정면으로 위배될 뿐 아니라 그 존립기반을 무너뜨리는 것으로서, 비평준화 제도 주장의 다른 얼굴이다. 고교등급제는 필연적으로 비평준화 제도로 귀결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비평준화 제도 하에서 생기는 학교서열의 현상적 실제를 넘어 서열을 정확히 제도적으로 규정하는 더 큰 해악이다.
고교등급제 하에서는 자신의 능력만이 아니라 선배의 대학입학 실적에 따라 후배의 진로가 결정될 수밖에 없다. 또한, 어느 대학에 입학하는 고등학교별 입학실적에 따라 각 대학별로 고교등급이 매겨지게 되어, 대학과 고등학교의 계열화가 생길 뿐만 아니라 이 계열화는 매우 복잡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는 학생 자신과 선배, 고등학교와 대학 사이의 현대판 학교연좌제이다.
4. 자립형 사립고 도입은 사립대학 기부금입학제의 고등학교판 변형이다.
자립형 사립고 도입은 사립대학의 기부금입학제 허용의도와 마찬가지로 국가의 공교육에 대한 재정투자 책무유기이며, 나아가 경제적 능력에 의한 교육불평등을 고교진학에까지 전진 확산시키는 제도로 귀착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이는 비평준화 제도로 이어지는 핵심고리의 정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사회발전을 위하여 올바른 경쟁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용 및 운영에 공정성과 형평성이 필수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립형 사립학교에만 주어지는 자율권은 비자립형 사립학교 및 국공립학교의 자율권 제한에 비추어, 교육을 제공하고 교육을 받는 기본적 권리의 평등마저도 경제적 능력으로 결정하는 비민주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이미 자립형 사립고로 지정된 고교에서의 학생선발 지침과 과정을 보면, 도입 목적에 어긋나는, 사립재단의 기업적 목적을 위한 폐쇄적 원칙이 적용되고 있다. 이는 사립학교의 자율권이 실제로는 사립재단의 자율권에 지나지 않으며 제도 도입을 위해서는 먼저 사립학교 운영의 민주성과 투명성이 전제되어야 함을 반증하고 있다.
5. 사립고와 민간학원의 통합 주장은 우리나라 교육위기의 근본 원인이 교육의 문외한에 의한 정책시행에 있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학교현장을 정확히 모르는 교육전문가에 의해서 조령모개의, 심사숙고하지 않는 졸속한 교육정책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KDI의 사립고와 민간학원의 통합 주장은 전문 영역을 넘어서 까지 간섭하는 희대의 사건으로서, 교육의 본질에 무지한 정책입안자들이 교육에 미치는 폐해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교육기관을 마치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체와 동일하게 보는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경제부처 당국자 및 KDI 정책입안자들의 그릇된 교육관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이를 통하여 그들이 교육문제를 경제현상과 동일시하여 교육문제에 부당하게 간섭하는 원인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사립학교도 공교육 기관이다. 공교육 기관과 민간학원의 통합 주장은 학교(정규 교육기관의 목적)와 학원(사설학원의 목적)을 동일시하는 것으로서, 중등교육의 목적이 오로지 지식 교육과 대학입시에 있다는 반교육적 사고의 발현이다. 또한, 이는 교육에 미칠 폐악에 대한 우려에 앞서 교사들에 대한 명예훼손이며, 교직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무례이다.
우리는 경제부처 당국자 및 KDI 정책입안자에게 준엄하게 요구하고자 한다. 먼저, 교육문제에 대한 부당하고 무지한 월권행위를 중지하라.
완벽한 입시제도는 없으며 고교평준화에도 단점은 있다. 그러나, 고교평준화 제도는 과거 비평준화 제도에 비해 진일보한 제도로서, 중학교 평준화가 초등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가져왔듯이, 우리나라 중학교 교육의 정상화에 발전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이는 공교육의 현장에서 인정받고 있으며, 대다수 국민이 공감하고 있는 사실이다.
어느 제도든 완전할 수는 없는 원초적 단점을 이용하여 우리나라 경제위기나 사회문제에 대한 책임을 고교평준화 제도에 전가하는 마녀사냥을 중지하라. 또한, 무슨 방법으로든 학력사회의 정점에서 기득권을 유지■강화하려는 소수 계층의 편에 서서 우리나라 교육정책의 근간인 평준화 정책을 걸고넘어지는 행태를 철회하라.
고교 평준화 폐지를 주장하기에 앞서, 먼저 현재 비평준화로 남아있는 지역에서 학생과 학부모가 겪고있는 고통과 교육문제를 생각하라.
경제적 시각의 경쟁원리만을 내세워 고교평준화 폐지를 주장하기에 앞서, 교육적 시각의 경쟁원리와 교육기회의 평등원리를 생각하라. 또한, 먼저 “인간은 무엇이며, 교육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진지한 고뇌를 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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