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이 중심이 돼 작성한 `비전 2011' 보고서는 앞으로 우리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열린
세상, 유연한 경제'로 요약하고 있다. 이는 국가간 무역 및 투자 자유화가 갈수록 확대되고, 금융의 국제화
또한 더욱 가속화한다는 전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런 `세계화' 추세에 대응해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규제와 육성'보다는 `시장 안에서 자율적인 경쟁'을 촉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 기술혁신이 성장동력=보고서는 1980년대까지 8%대를 넘던 우리 경제의 연간 잠재 성장률이 앞으로
10년간은 4.4~5.1%, 2011년 이후 10년간은 3.3~4.1% 수준으로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동안은 노동과
자본의 투입이 성장을 주도했지만, 앞으로는 기술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얼마나 높이느냐가 성장률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신기술 분야에서 선진국과 경쟁하기는 어려우므로 전략적 선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기술
집약적인 중소·벤처기업의 육성이 실효를 거두려면 지역기반의 산업 집적화, 연구개발의 산학협동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이런 기술혁신을 통해 개발도상국에 산업화에 필요한 고부가가치의 자본재와
중간재를 공급하는 것을 우리 경제의 성장모델로 제시했다.
■ 시장경쟁의 촉진=보고서는 이런 성장전략을 바탕으로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시장경제의 구축'을
주요과제로 꼽았다. 기업의 경우 이해관계자에 의한 경영감시를 강화하고, 재벌도 국가보다는 시장의 힘에
의해 규율되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산업은 민영화를 촉진해 자율책임경영 체제를 확립하고,
공기업에 대해서도 민영화와 경영혁신을 강조했다. 한편으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외국인 직접투자를 적극
유치하기 위한 제도 개선도 제안했다.
이와 함께 재취업이 원활해지도록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하고, 인적자원 양성체계도
산업현장의 인력수요에 맞추는 쪽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업도 시장기능에 의한 쌀 수급균형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지 않으면 어떤 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 불안감 잠재우지 못하는 사회복지=보고서는 전반적으로 경쟁촉진을 통한 성장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은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는 아직 시장기능이 작동할 여건이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는데도
시장기능과 이를 통한 성장에 초점을 맞출 뿐, `바람직한 사회'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오히려 재정의 건전성 유지와 고령화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국민연금의 급여수준을 낮추는 등
현재의 복지시스템은 부분적인 후퇴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진보적 경제학자들에게는 다분히 신자유주의
색채가 배어 있는 것으로 비칠 만한 기조다.
또한 외환위기 이후 분배구조가 나빠진 상황에서 `비전'에서 제시된 정책제안이 그대로 실행될 경우 사회적
약자들의 경쟁 탈락 우려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비전'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그 만큼
어렵게 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남구 기자jeje@hani.co.kr
교육분야는 현재의 모든 교육제도를 `시장원리'에 따라 재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교 평준화의 보완
또는 사실상 폐지, 사립학교와 입시학원 통합, 기여입학제 허용, 대학정원 규제 폐지, 고등학교 등급제 인정
등이 주된 내용이다.
보고서는 “현행 고교 평준화 제도로는 학교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교육행정을 단위학교 중심으로
전면 개편할 것”을 주장했다. 이를 위해 사립학교에 대한 교육당국의 통제를 의무교육 기관인 중학교로
한정하고, 사립고교에 대해서는 학교운영의 자율권 및 학부모와 학생의 학교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모든 사립학교에 대해 공납금 규제를 완화하고 교사 보수체계를 자율화할 것을
제안했다. 자율화 조처로 절감된 예산을 공립학교 예산으로 활용하면 뒤떨어진 공립학교 교육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보고서는 사립고와 민간학원도 통합할 것을 제창했다. 사립학교 자율화 조처가
취해지면 정규 교육기관인 사립고교와 입시기관인 민간학원을 인위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런 주장에 대해 “은행과 사채업자를 통합하라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대학에 대해서도 “학생 선발권은 대학의 고유한 법적 권리”라는 논리를 들어 대학정원 관리를 완전
폐지하고 고등학교간 학력차이 인정 여부도 대학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부금 입학제도도 점차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요컨대 보고서는 공교육 내실화를 위한 재정투자 확대는 사실상 포기하는 반면, 지금까지 교육부가 견지해온
교육정책의 기조를 크게 뒤흔드는 내용로 가득차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재정경제부를 중심으로 한
경제부처와 교육부 및 교육단체들 사이에 격렬한 논란이 빚어질 가능성이 높다. 교육부의 한 당국자는
“고교 평준화 등에 관해 재경부와 교육부 실국장이 함께 참석하는 공개토론회를 벌이자고 청와대
정책기획수석비서관을 통해 제안해 두었다”고 밝혔다. 차기태 기자 folium@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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